로엔의 마나뱅크 156화
*
결혼 준비를 하는 기간 동안에도 섀도우 플레인의 탐험은 계속되었다. 하루에 탐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으니 그 시간만큼은 꾸준히 실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미리아의 집에 가니 렉스가 와 있었다.
컹
“렉스? 넌 몰던이랑 같이 도시 순찰을 나간 거 아니었어?”
컹, 컹
아니란다.
“내가 아빠한테 말해서 불렀어.”
“미리아 네가?”
“꿈에서 봤는데, 렉스도 너랑 같이 갈 수 있을 거 같아.”
어, 이거 오러클 능력 발현인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성녀의 특성은 본인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대로 행하는 게 좋다.
“흠, 이성이 없는 생물을 섀도우 플레인에 끌고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전례가 없는데, 자신의 의지로 되돌아오지 못하면 그대로 셰이드가 될 가능성이 커.”
나는 일단 신중하게 의견을 냈다.
그러나 미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렉스는 머리가 좋아. 그리고 돌아올 수 있어. 본인이 렌 너랑 같이 가고 싶어 하거든.”
“그래? 그럼 한 번 해 보자. 그럼 침대를 개조해야겠네.”
지금 유체이탈용 침대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다. 이런 거대괴수급의 개가 침대에 누울 수는 없다.
나는 침대에 그려진 마법진에 연동되는 보조 마법진을 그려서 렉스가 웅크리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거의 하루 종일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미리아가 해야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자, 그럼 렉스야. 저기 가서 가만히 있어.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도 놀라지 말고.”
컹
얘가 알고 대답하는 거 맞아? 어떻게 개가 유체이탈에 대해 알 수 있지?
“헤헤, 사실은 내가 렉스의 꿈속에 들어가서 직접 물어봤어.”
“어이, 미리아. 얘 꿈속에 자꾸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지? 머리가 나빠진단 말이야.”
“미안, 꼭 필요할 때 이외에는 안 들어갈게.”
바로 사과를 하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곧 섀도우 플레인에 진입을 했는데, 정말로 바로 옆에 렉스의 영혼이 떡 하고 버티고 있었다.
“와, 정말 너도 들어올 수 있구나. 그런데 넌 의지력도 없으니 침식에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일단 주의 깊게 렉스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렉스의 몸에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더니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크르르르
머릿속에 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리아가 렉스에게도 꿈 능력을 사용해서 우리 둘의 정신을 연결시킨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미리아의 설명이 들려왔다.
“렉스가 주변에 이상한 게 많다고 조심하래. 아마 침식의 기운을 느끼나봐.”
아, 얘는 야수라 내가 못 느끼는 것도 느낄 수 있구나. 그래서 그걸 경계하며 본능적으로 밀어내는 거고.
본능의 힘이라니, 어쩌면 렉스가 나보다 섀도우 플레인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왠지 모르게 허탈한 느낌이 들어 씁쓸하게 웃었다.
“알았어. 그럼 같이 돌아다녀보자.”
침식만 버틸 수 있다면 같이 다녀도 큰 문제는 없다. 셰이드가 나타나면 내가 쫓아내면 되니까.
렉스는 내가 목 부위를 툭툭 두드리고 한 걸음 먼저 앞으로 나아가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따라왔다. 그러고 보니 렉스와 같이 산책을 한 지도 오래됐군. 돌아가면 실비아 공주와 같이 산책이나 해야겠다.
얼마쯤 나아가니 처음 발견한 구멍이 나왔고, 다시 더 나아가니 또 다른 구멍이 나왔다. 알고 보니 마족들이 모두 무책임하게 구멍을 뚫고 그냥 놔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 거야?”
아마 물질계에 진입한 마족의 수만큼 뚫려있겠지. 지금 섀도우 플레인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라 볼 수 있다. 이계로의 구멍이 이렇게 뚫려 있으면 결코 좋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찾아낸 구멍은 모두 3개다. 신의 흔적이 느껴진 통로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탐색을 할 건데, 그 사이 구멍을 몇 개나 더 찾아낼지 모르겠다. 모두 찾아내면 좋을 텐데 말이야.
컹, 컹, 컹, 컹
렉스가 뭔가 발견했구나. 윽, 셰이드다.
아직 정확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동안 섀도우 플레인에서 지낸 경험 상 이건 한 마리가 아니다. 적어도 세 마리는 된다.
스스스
저쪽도 우리를 발견하고 서로 흩어지듯 움직였다.
“이런, 어느 정도 이성이 남은 셰이드네.”
맹목적으로 달려들지 않고 포위할 생각으로 산개를 한 것이다. 세 마리가 모여 있었던 것도 그렇고,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 같다.
“렉스야, 저놈들이 몸에 닿지 않게 조심해.”
나는 렉스에게 주의를 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서 의지력을 발산했다.
“물러나라!”
츠츠츠츠
셰이드들이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의지에 저항을 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사방으로 발산을 하면 아무래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일단 의지력을 집중하여 가장 가까이 있는 놈에게 집중시켰다.
“물러서라고 했다!”
스르르
역시 집중을 하니까 효과가 있구나. 그러나 확실히 이성의 찌꺼기라도 남은 놈들은 저항도 그만큼 거세다.
그 사이에 다른 두 마리고 빠르게 우리에게 접근을 했다.
나는 즉시 손을 내밀어 삭풍의 창을 소환했다.
팍
창에 꿰뚫린 셰이드가 그래도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그러나 남은 한 마리는 그 사이에 렉스 쪽으로 접근을 하는 데 성공했다.
“칫, 약간은 침식당하겠는걸.”
나는 급히 렉스의 거대한 몸을 돌아서 렉스를 공격하려는 셰이드에게 창을 찌르려 했다. 힘은 들지만 역시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삭풍의 창이 여러 마리의 셰이드를 상대하는 데에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 렉스가 갑자기 휙 하고 몸을 돌리더니 입으로 셰이드를 깨물어 버렸다.
크왕
“헛, 렉스야.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어서 뱉어.”
나는 기겁해서 외쳤다. 셰이드가 저렇게 렉스의 입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제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안쪽에서부터 셰이드의 침식이 시작되면 정말로 큰일이 날 수 있는 것이다.
꿀꺽
늦었다. 렉스는 셰이드를 깨물자마자 그대로 머리를 하늘 위로 치켜들며 한 입에 삼켜버렸다.
“아이고, 난리 났네.”
나는 얼른 렉스의 몸 안쪽을 살폈다.
그런 내심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렉스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그거 지지랬지. 먹는 거 아니랬잖아. 다시 토해 내!”
나는 다시 외쳤다. 그러나 렉스는 꺼억 하고 트림을 해 버렸다.
“설마, 소화된 거냐?”
뭔가 이상했다. 셰이드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삭풍의 창에 찔려 소멸된 셰이드처럼 렉스가 삼킨 순간부터 셰이드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할짝, 할짝
렉스는 맛있는 식사였다는 느낌으로 자신의 앞과 목을 혀로 핥아 다듬기 시작했다. 얘는 지금 영혼 상태라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그냥 평소의 습관대로 움직이는 듯 했다.
“으, 일단 다시 돌아가자. 네 영혼과 몸 상태를 제대로 분석해봐야겠네.”
어차피 삭풍의 창을 소환해 두 번이나 써서 더 이상 탐험을 하기는 힘들다. 나는 렉스와 함께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와 귀환을 했다.
“컹, 컹.”
현실로 돌아와 보니 나와는 다르게 렉스는 전혀 몸이 아프지 않은 듯 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 몇 번이나 짖어대는데 그 바람에 두통이 심한 내 머릿속이 울렸다.
“에고, 좀 조용히 해라. 영혼이 육체에 안착할 때까지 몇 분간은 안정해야 한단 말이야.”
나는 렉스를 조용히 하게하고 몸 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놓은 궁극마법진의 위로 렉스를 데리고 갔다.
“진짜 궁극마법진을 쓰다가 영지의 자금 3분의 1이 날아가네.”
9서클 마법진은 제작비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영지는 그동안 쌓아놓은 재물이 꽤 많고, 섀도우 플레인을 여행하는 데 자금을 아낀다고 했다가는 그만큼 위험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나는 즉시 렉스의 몸과 영혼을 분석했다.
“허, 정말 소화했네.”
놀랍게도 렉스의 영혼이 셰이드를 흡수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치 렉스가 마기를 먹듯, 셰이드도 먹어버린 것이다.
“이정도면 정말 고위의 마수라 해도 틀리지 않겠네.”
렉스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
웨어울프 킹의 야망이 사라지면서 그의 권족인 웨어울프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렉스는 여전히 살아남아서 웨어울프가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 개로 진화를 하고 있다.
어쩌면 렉스는 웨어울프 킹의 능력을 이어받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웨어울프 킹과 계약 아닌 계약을 했고, 또 저주까지 받았기에 그 영향을 렉스도 같이 받는지도 모르지.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반 경에게 말했다.
“제가 전에 웨어울프 킹의 심장보석을 이반 경에게 드렸죠?”
“예,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 어느 정도까지 분석했나요? 유사품을 만들 수 있나요?”
“유사품은 아직 힘들고, 마족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제가 8서클 마법으로 구현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마법으로 되더군요.”
“그렇다면 이제는 보석이 없어도 되겠군요. 돌려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이반 경은 별로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품속에서 검은 보석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검은 보석의 힘이라고 해 봐야 마기를 볼 수 있는 것뿐이니, 마법으로 그게 가능해진 지금 보석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듯 했다.
오히려 내가 그걸 어디에 쓸 건지가 궁금한 듯 보석을 건넨 후에 유심히 나를 지켜보고 있다.
“렉스야, 이거 먹을 수 있는 거니?”
컹
먹을 수 있다네.
“그럼 한 번 먹어 봐라. 기분 이상하면 다시 뱉고, 알았지?”
컹, 컹
렉스는 신이 난다는 듯 크게 몇 번 짖고는 보석을 날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