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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55화 (155/250)

로엔의 마나뱅크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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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플레인의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일을 등한시 할 수는 없다.

마도가문의 일은 파우스 스승님이 맡아 하시고 계시고, 영지의 일은 실비아와 케이니 양, 그리고 양부인 몰던이 주로 처리를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맡기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데빌 베인이라는 조직의 업무다.

나 렌 브로스마이어는 데빌 베인의 사무관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반 경과 가상의 존재인 미스틱 엑스를 대신해서 이 조직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때에는 이반 경에게 조직의 관리를 맡길까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반 경은 조직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지휘하는 데에는 거의 재능이 없고, 혼자 수련하고 연구하는 것을 즐긴다.

마법사로써는 바람직한 성격이니 뭐라 할 수는 없고, 그냥 데빌 베인은 내가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데빌 베인은 나날이 발전을 해 나가고 있는데, 특히 지난 뱀파이어와의 전쟁 이후 적지 않은 마법사들이 이쪽에 가입을 했다.

기본적으로 데빌 베인은 다른 마도가문에 적을 두고 있는 마법사도 가리지 않고 받는다. 단, 데빌 베인의 임무를 기존의 가문의 손익에 관계없이 수행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하는데, 뱀파이어에게 가족을 잃은 마법사들이나 기사들, 용병들이 마족의 계약자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가입신청을 하는 것이다.

“지부를 설립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이반 경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부를 설립하면 다른 마도가문에서 반발할 것입니다.”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면 그렇지요. 하지만 각 마도가문의 협조를 구해 그들의 마탑 내에 지부를 설립하면 어떨까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어차피 데빌 베인은 한시적 연합집단이에요. 지금은 개인의 사정보다 마족의 후계자를 찾아내서 없애는 것을 우선하도록 맹세를 시키고 있지만, 결국 그들도 개인적인 생활이 있으니까요. 다시 돌아갈 곳이 필요한 거죠.”

“다시 돌아갈 곳인가요?”

“예, 다른 마도가문에도 그런 인식을 줄 필요가 있어요. 우리 조직에 가입하면 마족에 대한 전투경험이나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실질적으로 마법도 많이 배울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그들 가문에 강력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말이에요.”

“과연 이쪽에서 일한 자들은 확실히 워메이지로써의 경험을 쌓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그들이 평소에는 자신들의 출신마탑에서 일을 하도록 하는 거죠. 데빌 베인이 필요할 때만 동원하는 걸로요.”

이건 양날의 검과도 같은 제도변환이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 각 마도가문에서는 적극적으로 우리 데빌 베인을 도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대로 회원들 자체의 충성도는 떨어진다. 모든 것이 우선해서 데빌 베인을 위해 일한다는 맹세는 거의 형식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금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실제로 데빌 베인의 조직원이라고 해도 마족의 후계자와 직접 싸우는 것은 나와 이반 경을 비롯해 몇 명뿐이고, 나머지는 서포트 역이다.

여기서 조직의 충성심을 키우려면 그들 중 능력이 있는 자들을 모아 집중훈련을 시키는 동시에 거의 세뇌 수준의 정신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걸 위해서 실전에도 참가시켜야 하고, 실전 결과 희생된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희생된 자들 몫까지 조직에 충성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확실한 적이 있으면 조직을 키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데빌 베인을 키워 세계 최고의 조직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없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애매한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게 애초의 구상이다.

결국 나와 일차적으로 가까운 사람들 이외에는 별로 챙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반대로 이야기하면 대중을 이용해서 뭔가를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조직의 규칙을 정치적으로 개편해서 연합체 성격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반쯤은 형식적인 존재지만 강대한 적이 존재하니 현재는 힘을 발휘하는, 미래에는 유명무실한 명예뿐인 조직을 만들 생각이다.

허울 좋은 명예, 하지만 그게 의외로 중요하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안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데빌 베인이라는 이름은 의미를 가질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모두 데빌 베인의 이름으로 행해질 것이다.

“데빌 베인의 문장을 단 마법사들이 각 마도 가문에서 우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어요. 그들에게 돌아갈 자리와 미래의 영광을 보장하는 게 중요해요.”

사람을 쓰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이야 복수가 어쩌고저쩌고 해서 맹목적으로 가입을 하려 하지만 나중에 머리의 열기가 식으면 역시 이성적으로 자신의 안위와 부귀영화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원한다면 그것을 주자. 데빌 베인에 가입하는 게 성공의 길 중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내가 만든 데빌 베인 지부 설립 계획서와 각 마도 가문에 대한 협조 공문에 미스틱 액스와 이반 경의 인장을 찍어서 발송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마도 가문은 그들 소속의 마법사들이 개인적 원한으로 데빌 베인에 가입하려 하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대의명분과 개인의 감정적인 부분을 알기에 말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가 내가 그런 공문을 보내자 아주 좋아하며 적극 협조해 주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10대 마도가문을 비롯, 모두 열여섯 군데의 마도가문 내부에 지부를 건설하기로 했는데, 이것은 데빌 베인이 대륙 어느 곳에서 활동하더라도 인적 지원과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전력적인 도움도 받게끔 되었다.

소집 명령에는 일차적으로 무조건 따를 것을 약속받았고, 필요하면 용병을 비롯, 왕국의 기사들까지 동원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상 데빌 베인은 대륙 전체의 평화유지군 같은 성격이 되었다.

확실히 이렇게 해 놓으니 일이 조금 커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미 덴판 제국의 사태도 있었고, 10대 마도가문 전체가 뱀파이어에게 습격을 받는 사건까지 발생하니 마족의 계약자들을 위해서라면 대륙의 선량한 인간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서 의외로 쉽게 진행이 되었다.

특히 아론 체프코트 경이 의문의 실종을 한 후, 유일하게 활동하는 8서클 마법사 이반 경의 명성도 큰 역할을 했는데, 이반 경은 지부 건설에 협조해준 16개의 마도가문에게 ‘정령의 이론과 실제 계약법’이라는 책을 선물로 보냈다.

체프코트 가문 이외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정령서는 그야말로 그들 마도가문의 고위 마도사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큰 선물이었고, 지부 건설에 참가하지 않았던 마도가문들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 자신들도 참가하겠다고 신청을 했지만 이미 대륙 요소요소에 지부를 새웠는데 더 늘려봐야 조직망의 낭비다.

그러니까 내가 뭔 일 하겠다고 하면 알아서 협조 좀 하란 말이지. 꼭 보상을 보고 뒤늦게 퀘스트를 신청하는 놈들이 있다니까.

어쨌든 지부 건설 문제는 생각보다 빠르고 간단하게 끝났다. 이제 앞으로 저자들이 어떻게 하든 그건 봐가면서 대응하면 된다. 하는 일에 따라 보상을 주면 되니까.

사실 보상이라는 게 사라진 마법과 정령 이론을 하나씩 가르쳐 주는 거라 나는 거의 밑천이 안 든다. 하지만 받는 마법사들 입장에서는 전 재산을 털든 노예계약을 하든 무조건 얻어야 하는 지식이니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없는 거지. 후훗.

자, 이제 조직 문제는 적당히 처리를 했고, 이제 남은 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한 이벤트.

바로 실비아 공주와의 결혼이다.

결혼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니 대륙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영지 내부는 이미 축제 분위기로 모두들 한 달 내내 놀고먹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이고 있는데 정작 결혼식을 치루는 나와 실비아 공주는 매일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왕국의 공주와 결혼하는 거니까 일반 귀족의 결혼식과는 또 다른 예식방법을 써야 합니다.”

아도리아 왕국에서 온 몽쉔 백작부인의 말이다. 결혼식 상담역이자 도우미인데, 체구가 아담하면서 약간 통통한, 인상 좋은 아줌마다.

하지만 일처리는 꼼꼼하다 못해 깐깐할 정도라, 나에게도 몇 번이나 설명을 하고 확인을 한다.

우리 브로스마이어 가문에서도 결혼식 준비를 담당할 여성을 한 명 초빙했는데, 토른 자작부인이라고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먼 친척 중 하나라고 한다.

“렌 경은 기본적으로 마법사이시니 너무 격식에 맞춘 화려한 식을 원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최대한 약식으로 식을 치르도록 하죠.”

토른 자작부인은 미리 나와 상의를 한 바 있기에 몽쉔 백작부인이 세우는 결혼식 설계를 최소한 간략화 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몽쉔 백작부인과 토른 자작부인은 서로 원수처럼 싸우게 되었는데, 둘이 대화를 할 때에는 항상 우리를 빼고 밀실에 들어가곤 한다.

밀실 안에서 얼마나 날카로운 말이 오가는 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와 실비아 공주는 그녀들이 뭐라고 하면 적당히 예, 예, 하고 대답을 하다가 일 핑계를 대고 도망쳐 나오곤 했다.

솔직히 식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내가 알 게 뭔가? 실비아 공주도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할 뿐, 전체 예식 순서를 외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어쨌든 나와 실비아 공주는 너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데, 지금 그녀의 집도 그렇고 내 집도 손님으로 가득 차서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실 나는 미리아의 집으로 피신하면 되지만, 실비아 공주를 놔두고 혼자 미리아의 집으로 가는 것은 미안한 일이기에 당분간 섀도우 플레인을 여행하는 새벽 시간 이외에는 실비아 공주를 챙겨주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실비아 공주와 단 둘이 영주관을 빠져나와 숲 외곽에서 낮시간 동안 머물기로 했다.

말하자면 소풍인데, 마법으로 즉석에서 작은 집을 세우고 화덕에 미리 준비해 온 식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중이다.

요리는 실비아 공주가 아닌 내가 하고 있다. 서민적인 요리지만 그래도 즉석에서 구운 소시지는 맛있고, 버섯과 생선구이도 나름 먹을 만 했다.

샐러드도 세 가지 드레싱을 뿌려서 깔끔한 접시에 담아 내 놓으니 실비아 공주가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적당히 식사를 끝낸 우리는 집 밖으로 나와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았다. 파라솔로 햇볕을 가렸고, 바람은 적당히 불어서 선선한 느낌이다.

“여기 허브티, 꿀을 조금 탔어요.”

“고마워요.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단 게 당기네요.”

“나도 피곤해서 거의 죽을 거 같아요. 이 짓을 앞으로 한 달이나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네요.”

“렌 경은 새벽에 마법 실험까지 하시니 더욱 힘들겠네요. 저는 그나마 오전에는 일이 없어서 괜찮아요.”

역시 귀족이 좋다. 귀족의 기상시간은 정오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은 낮에 일어나서 새벽에 잠을 자는데, 실비아 공주는 연회에 잘 참가를 안 하기 때문에 밤에 일찍 자는 편이다.

“그런데 연구는 잘 되고 있나요? 전에 말씀하신 걸로는 다른 공간에 들어가서 하는 실험이라고 했는데, 위험한 실험이 아닌지 걱정되네요.”

“안전한 실험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하고 있으니 염려마세요. 전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위험은 피할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다행이네요. 사실 조금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걱정할 만 하지.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언제 어디서 폭발에 휘말려 죽을지 모르는 미친놈이라는 소문도 있잖아. 남한테 칼 맞아 죽는 게 아니라 자기가 실험하다 죽는 확률이 사망률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하거든.

실비아 공주가 많이 걱정했나 보다. 원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잘 이야기 안 하는 편인데, 일부러 말을 꺼낸 것을 보니.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실비아 공주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게 위험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안전을 장담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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