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54화
2장 영혼으로 제련된 무기
파즈스의 무기는 삭풍의 창으로 강력한 부식력을 포함한 돌개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의 정령인 뿌우도 그것을 제어할 수 없고, 시전자의 마력이 더해지면 광범위 공격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살상력은 거의 사라지지만 사람의 눈에 부정한 모래바람이 들어가서 심한 눈병에 걸리게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무엇보다 삭풍의 창은 정해진 형체가 없다. 크기의 한계도 없는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창 자체가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의 덩어리같다.
과거 이 창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창의 재료가 생명체의 영혼이라는 절대분석 결과 때문이다.
가령 미리아의 어머니가 파즈스에게 영혼을 빼앗겼다면 파즈스는 이 창의 강화에 그녀의 영혼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영혼을 뭉쳐서 만든 무기.
그것을 평소에 사용하기에는 뭔가 거슬리는 게 있었다. 그래서 마족의 현생체를 상대할 때만 사용하려 했었다.
사실 6서클일 때에는 이 무기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해졌다. 영혼이 뭉쳐져 있다고 했으니 섀도우 플레인에서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7서클도 약간 불안하기는 하다. 적어도 8서클은 되어야 이정도 무기를 제압해서 잘 써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무리를 할 때는 해야 하는 법.
일단 지르고 보자.
“그러려면 우선 이 무기를 내 영혼과 연결시켜놔야겠지?”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결국 파즈스가 만든 무기이니, 렌 경의 영혼과 무기가 연결되면 파즈스도 무기를 타고 렌 경의 영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반 경의 생각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일단 파즈스를 물질계에서 소멸시켰고, 그는 웬만하면 여기 다시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면 못 들어온다는 게 맞다. 지금 물질계는 고위마족들간의 게임이 진행되는 장소이고, 파즈스는 이미 탈락이 확정되어 있으니 게임이 끝나기 전에는 물질계에 전혀 간섭을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만큼 이 파즈스의 창은 그야말로 주인 없는 아티팩트인 셈이니 내가 잘 써주기만 하면 된다.
“과연 그렇군요. 그럼 영혼 바인드의 의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반 경은 즐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영혼 바인드 같은 고급 의식은 평생 한번 해볼까말까 하는 것이니 마법사로써 즐거울 만 하다.
나는 나대로 준비를 해야 했기에 옆에 있는 마리포즈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삭풍의 창에 결계를 씌우자. 파즈스는 몰라도 창 자체가 내 영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삭풍의 창은 진심으로 렌 경에게 귀속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쩝, 그럴까?”
삭풍의 창 정도 되는 무기면 분명히 자아가 있을 것이다. 말을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좋고 싫음 정도는 구분할 게 틀림없다.
마리포즈의 말대로 주인이 되겠다고 영혼끼리 묶으려는 자가 자신의 몸에 결계를 씌운다면 삭풍의 창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 내가 조심하면 되지. 그리고 영향 좀 받으면 어때. 심각한 것만 아니면 포용하는 게 옳을 거야.”
마족이 준 무기라고 해서 내가 너무 경계를 하나보다. 이렇게 할 거면 아예 안 쓰는 게 옳고, 쓰려면 믿어야 한다.
“알았어. 그럼 마리 너는 수시로 내 몸 상태나 확인해 줘.”
“예, 지금도 매일 확인하고 있어요.”
“그래, 너랑 케이니 양에게 검사를 받으면 문제가 생겨도 바로 발견할 수 있으니 일단 과감하게 가 보자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나는 이반 경이 준비한 영혼 바인드의 의식을 위한 마법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법진을 활성화 시키니 과연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힘을 원하는가? 영혼을 바쳐서 한계를 초월하는 힘을 얻겠는가?-
-미친놈아, 내 영혼을 왜 바쳐? 마족이 만들었다고 꼭 대사도 마족처럼 치네.-
-넌 누구냐?-
-난 렌 브로스마이어, 너와 영혼의 연결을 위해 이러고 있는 거다.-
-나와 영혼을 연결하겠다고? 나한테 영혼을 빼앗길 것이 두렵지 않은가?-
-솔직히 조금 두려운 부분은 있어. 하지만 네가 필요해. 영혼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무기인 네가.-
-내가 필요하다면 힘을 주겠다.-
의외로 착하네. 처음에 무슨 영혼을 바치라고 해서 식겁했잖아.
나는 다시 말했다.
-좋아. 그럼 정식으로 계약하자. 내가 너의 주인이고, 넌 내 무기다. 알겠지?-
-좋다. 나 삭풍의 창은 렌 브로스마이어의 무기로써 그대의 적을 모두 소멸시키겠다. 그것이 물질이든 영혼이든 상관없다.-
-그래, 그걸 원했어.-
촤아아아아아
삭풍의 창이 모래바람으로 변해 내 주변을 돌더니 서서히 내 몸속에 스며들었다. 전신의 땀구멍으로 모래가 스며 들어오는 느낌이 굉장히 껄끄러웠지만 참았다.
뿌우가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말은 안 했지만 내 집에 그거 들어있어서 불안했었는데 잘 빼갔당. 기왕이면 창날도 좀 빼가랑.”
“창날은 그냥 놔 둘건데, 평소에는 그거 써야지. 아니면 뿌우 네가 쓰던가.”
“내 집에는 너무 잡동사니가 많당. 미스릴 우산도 그렇공.”
“어차피 너 사는데 지장은 없잖아. 좀 참아라.”
사실 다른 건 몰라도 삭풍의 창은 뿌우에게 영향을 주긴 줬을 거다. 그래도 그게 다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도 빼 줬고.
어쨌든 삭풍의 창과 계약을 하니 처음에는 전신에 모래가 낀 느낌이었다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창이 내 영혼과 연결되면서 육체 안에 둥치를 튼 모양인데, 나중에 상태이상 점검을 하긴 해야겠다. 설마 육체의 기력을 빨아먹는 놈은 아니겠지?
“그럼 이제 다시 섀도우 플레인으로 가 보자.”
나는 다시 미리아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뿌우로부터 전갈을 받은 미리아가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역시 이반 경이 이 구경을 빼먹지는 않는군. 영혼이 무기를 든 모습을 보는 것은 나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곧 나는 영혼상태로 섀도우 플레인에 들어섰다.
“무기 없는데요.”
옆에서 이반 경이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봐요. 이제 소환할 테니.”
영혼이 연결되어 있으니 언제든 부를 수 있다. 나는 의지를 모아 삭풍의 창이 내 손에 있다고 상상하며 그를 불렀다.
“와라, 삭풍의 창.”
슉
정말로 창이 내 손에 잡혀 있다. 아무런 감촉도 없는 투명한 창이지만 손 안에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정말 나타나는군요. 설마 그걸로 영혼을 공격할 수도 있는 건가요?”
“그건 모르겠네요. 이반 경을 찌를 수도 없으니.”
“그럼 셰이드를 찾아 시험을 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이거 소환하니 힘이 들어요. 창을 소환해서 셰이드를 찌르는 것보다 그냥 셰이드를 쫓아 버리는 의지력이 오히려 덜 들 거 같네요.”
힘들다. 과연 고위 마족의 무기는 쉽게 쓸 수 없구나. 나는 곧 다시 삭풍의 창을 소환해제 시켰다.
“일단 전 들어온 김에 탐험을 해 볼게요. 셰이드가 나오면 창을 써 보도록 하지요.”
나도 궁금하니 일단 나오면 쓴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목표는 전에 발견했던 구멍이다.
내심 셰이드가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만나지 못하고 구멍에 도착했다. 확실히 절대좌표를 찍어놓으니 오는 시간이 절반도 안 걸린다. 아직 시간이 남은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정도 나아갔을까? 느낌이 왔다.
뭔가 숨어있다.
“셰이드가 숨어서 나를 노리다니. 본능만 남은 게 아니라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내가 멈춰 서자 상대는 자신이 들킨 것을 알고 아래쪽에서 스르륵하고 솟아나왔다.
나는 일단 수화로 상대에게 물었다.
“대화를 할 수 있나?”
그러나 상대는 수화를 모르는 듯 잠시 서 있다가 이윽고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리 하나 없이 앞에서 검은 그림자가 오는 느낌은 언제 봐도 좋지 않다.
“소환!”
슉
내 손에 창이 잡혔다. 창은 내 의지에 반응을 했는지 검게 변해 있었다.
“합!”
기합이 나올 리는 없지만 그래도 속으로라도 폭발적인 호흡에 맞춰서 셰이드에게 창을 내질렀다.
팍
와, 정말 뚫리네.
셰이드는 창이 관통하고 지나간 자리가 뻥 뚫려버렸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곧 몸에 사람 머리가 들어갈만한 구멍이 생긴 것을 알고 놀라서 허우적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삭풍의 창에서 나온 기운은 단순히 구멍만 뚫는 게 아니라 영혼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느낌을 주더니 파삭 하고 깨어져 모래가루처럼 흩어지더니 그대로 공간속에 녹아버렸다.
“으, 정말 영혼을 소멸 시키는 무기인건가?”
무섭네.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거였구나. 내가 이 창에 안 찔리길 다행이지. 이정도면 보통 인간은 스쳐도 사망이다.
이제 의지력이 거의 다 소모 되서 더 이상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곧 바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물질계로 돌아와 이반 경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삭풍의 창으로 섀도우 플레인의 결계를 깰 수도 있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그게 정말 신이 친 결계라면 영혼 하나를 소멸시키는 것보다는 어렵겠죠. 그래도 일단 시도해 볼 가치는 있네요.”
방법이 나왔다.
그럼 이제 슬슬 진심으로 탐색을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