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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53화 (153/250)

로엔의 마나뱅크 153화

“공간 자체에 셰이드의 침식효과가 있다는 거군요.”

이반 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이건 강력한 의지의 힘으로 영혼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돼.”

“제 힘으로 가능할까요?”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의지의 힘을 단련하는 데에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 만약 침식을 당해도 현실로 돌아와서 정화를 하면 되니까.”

“지독한 고통이 뒤따르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말이지요.”

“그래, 어쨌든 의지의 힘이 강화되면 그건 곧 9서클의 관문을 뚫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지.”

“하겠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딱 좋은 수련장소로군요.”

역시 9서클의 욕망은 크구나. 이반 경은 두 눈을 빛내며 승낙했고, 나는 이반 경을 섀도우 플레인으로 들여보냈다.

어떤 에너지도 존재할 수 없는 영혼만의 공간. 그곳에서 통용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의지로 작용하는 언령의 힘이다.

결국 섀도우 플레인에서 수련을 하면 영혼을 단련시킬 수 있고, 물질계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9서클의 영역에 들어설 자격을 갖추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자격이 안 되는 자는 그대로 셰이드가 되어 버리는 거다.

물론 나야 정령을 이용한 셰이드의 침식 정화법을 무려 대정령으로부터 배웠으니 전혀 상관이 없지만 다른 마법사들은 저 안에서 수련하겠다고 설치다가는 거의 확실하게 영혼이 오염되어 버릴 것이다.

“그럼 같이 들어가자고.”

계획은 신중하게 실행은 화끈하게. 나는 바로 이반 경과 함께 섀도우 플레인으로 들어갔다.

“이반 경은 여기 머물러요. 혹시라도 셰이드가 나타나면 싸우려 하지 말고 즉시 귀환하고요.”

“예, 알겠습니다.”

이반 경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는 추위가 장난 아닌 듯 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정화를 받아야 할 거다.

나는 이번에는 철저하게 스스로를 보호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방향감각은커녕 시간감각조차 마비되어가는 공간이지만 이반 경과 나와의 거리를 감지하며 계속 멀어지려 했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아직 1분이 안 되었지만 나에게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듯이 느껴졌다. 앞쪽으로 무엇인가가 잡혔다.

바로 셰이드다!

스스스

내가 셰이드를 발견함과 동시에 셰이드도 나를 발견했다. 상대는 즉시 나를 향해 다가왔는데,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존재 자체가 악의이기 때문에 무조건 막아야 했다.

“하압!”

마음속으로 기합성을 지르며 셰이드를 향해 나의 강렬한 의지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셰이드가 움찔하며 머뭇거렸다.

오지 마. 오면 안 돼. 오면 너만 고생할걸. 그냥 다른 데로 가. 오면 죽을 줄 알아.

나는 셰이드의 파괴된 영혼의 본능에 계속 협박과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셰이드는 나에 대한 욕망보다 공포가 더욱 커졌는지 어디론가 가 버렸다.

“휴, 쉽지는 않군.”

“렌, 셰이드를 만났어?”

미리아가 내 기합소리를 들었는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응, 방금 쫓아 보냈어. 그런데 언령을 너무 써서 몸의 보호력이 약해지네. 지금 귀환할게.”

“어서 돌아와.”

나는 서둘러 이반 경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둘이 동시에 물질계로 귀환해 육체로 돌아갔다.

“아아아악!”

이반 경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뿌우가 자동적으로 정령의 정화술을 쓰고 있나보다. 고문이 따로 없겠지.

나도 몸이 아프긴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 만 하다.

“결국 의지력이 섀도우 플레인을 여행할 수 있는 절대조건이군요.”

겨우 치료가 끝낸 이반 경이 말했다.

“맞아요. 셰이드를 물리치기 위해서도 의지력이 필요하니 상당히 힘든 여행이 되겠네요.”

“렌 경께서는 어느 정도까지 섀도우 플레인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익숙해지면 두 시간? 셰이드를 만날 때마다 30분정도 깎여나갈 것이고요.”

“두 시간이면 대단하군요.”

나 9서클 대마법사거든. 물론 육체는 아니고 영혼만 그렇지만. 내가 보이게 이반 경은 5분이 한계다. 결국 이번 여행은 이반 경도 동반이 힘들고 그냥 나 혼자 가야하는구나.

그나마 섀도우 플레인에서 사용되는 의지력은 내 육체와는 관계가 없으니 전생의 능력을 거의 다 발휘할 수 있는 셈이다.

“앞으로 나는 계속 탐색을 하고, 이반 경은 입구 바로 앞에서 수련을 하는 걸로 해요. 이반 경이 9서클이 되면 같이 움직여도 되겠지만 지금은 무리인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섀도우 플레인을 여행할 수 있으면 정령계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니 나중에 그곳도 한 번 가보고요.”

“옛!”

앞으로 매일같이 죽게 아플 이반 경에게 동기라도 부여해 줘야지. 암. 힘내라고요.

나는 다시 섀도우 플레인에 진입을 했다.

이번에는 입구에 이반 경도 없으니 상대적인 거리감각도 없다. 당연히 아까 갔던 길도 기억할 수 없다. 애초에 정해진 길이라는 게 없는 것이다.

단지 의지력을 소모해 좌표를 기억할 수는 있다. 지금 서 있는 출발점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나는 계속 움직였다.

이번에는 굳이 거리 같은 것도 신경 안 쓰고 마음이 가는 데로 이동하기로 했다. 설령 제자리에서 빙빙 돌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눈앞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검은 구멍. 그것은 차원을 벗어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신이 지나간 통로는 아닌 것 같고, 이 흔적은 누군가가 들어온 모양인데?”

묘한 느낌이 든다. 내 영혼이 이 구멍에 이끌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서 내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하려 했다.

그것은 강력한 저주다. 궁극마법에 해당하는 저주. 바로 내가 마족과 접촉하게 되는 운명을 가지게 된 저주의 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이 구멍은 고위마족이 이곳에 들어온 흔적이라는 거군.”

이거 막을 수 없나?

나는 일단 구멍 앞에 의지의 좌표를 박아 넣었다. 이것으로 언제든지 이곳을 향해 올 수 있게 되었다.

구멍 안으로 들어가 볼까?

어쩌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럴 경우 그 세계의 법칙에 내가 적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 돌아서 나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일단 이 구멍을 막는 것을 먼저 생각하자.

이계의 절대적 존재인 고위마족이 진입한 구멍을 막는다면 그자의 힘을 봉인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한마디로 여길 통과한 고위마족과 계약한 자의 능력이 봉인 되거나 약화될 것이다.

“나쁘지 않군. 파워 소스를 틀어막는 거니 확실히 효과가 있을 거야.”

어떻게 막아야 할까?

나는 우선 의지의 힘으로 결계를 칠 수 있나 실험을 해 보았다.

츠츠츠츠

막이 생겨난다. 그러나 의지의 힘을 거두는 순간 다시 사라진다.

결계를 칠 수는 있는데 유지가 안 된다.

“쩝, 어쩔 수 없군. 이곳에서 결계를 유지하려면 거의 신급의 의지력이 필요한 거네.”

대충 견적이 나오는데, 그게 나로서는 힘든 상황이다.

나는 일시적으로는 신급의 힘을 낼 수 있지만 그걸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절대마법진을 구축할 수도 없다.

“일단 돌아가자.”

이미 시간이 십 분이나 지났다. 평소보다 무리를 한 것이고 돌아갔을 때 느껴지는 고통도 감안한다면 이 이상은 자제하는 게 좋다. 생각은 돌아가서 차분하게 해도 된다.

“으으으윽!”

역시 십분은 빡세구나.

나는 전신이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에 팔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마리포즈가 얼른 와서 내 몸을 누르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괜찮아?”

“응, 미리아. 10분이나 있어서 고통이 좀 심할 뿐이야.”

“갑자기 10분이나 있어서 놀랐어.”

“그러게. 갑자기 한계까지 있어보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뭔가 작용을 한 거 같아.”

“뭐가 작용을 했는데?”

“내 운명.”

운명을 조작하는 저주.

어쨌든 난 마족이 들어온 구멍을 찾아냈다. 이놈들이 어디서 그렇게 들어왔나 했더니 섀도우 플레인에 구멍을 뚫어 놓았던 거다.

나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이반 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군요.”

“솔직히 말해서 있기는 있어요. 그냥 사람의 영혼 하나를 통째로 희생시켜서 결계를 형성하면 되요. 그런데 그러면 내가 마족과 다를 바가 없으니 못 하는 거죠.”

영혼을 무기로 쓰면 그건 가장 최악의 공격마법이 된다. 9서클 흑마법 공격마법인 소울 크러시가 바로 그건데, 이걸 응용하면 사람의 영혼 하나를 소모해서 구멍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희생된 사람은 그야말로 영겁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셈이다. 영혼자체가 소멸되어 버릴 때까지 고생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결계가 사라지니 큰 의미도 없다.

“연구를 해봐야겠네요. 그걸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섀도우 플레인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목적이 생기는 셈이니까요.”

이전에도 마족이 그쪽으로 들어왔을 거라는 예측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구멍까지 뚫어 놓았을 줄은 몰랐다. 구멍이 뚫려있는 이상 고위마족 정도 되는 존재라면 언제든지 물질계에 자신의 힘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힘의 일부를 형상화시켜 물질계에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내가 전에 그거 중 하나인 파즈스 잡는다고 그렇게 고생했었는데, 구멍만 틀어막는다면 굳이 잡을 필요도 없이 끝낼 수 있다.

“읏.”

갑자기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아파온다.

이것은?

내가 소멸시킨 파즈스의 항의적인 느낌이다.

미리아의 어머니인 카이스난과 계약했던 고위마족. 그와의 계약이 정말로 오랜만에 발동한 것이다.

구멍만 막지 말고 다 끌어들여서 제거하라는 건가? 게임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마족들도 모두 현신시켜서 제거하라고 요구했었지.

이놈이 그걸 위해 나한테 아이템까지 주었단 말이야. 쩝.

받은 게 있으니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파즈스의 창은 같은 마족의 현생체를 죽일 수 있는 무기다. 그건 내 지팡이 속에 봉인되어 있고, 마족의 현생체를 만나면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평소에는 안 쓰는 게 좋은데, 마족의 무기를 함부로 쓰다가는 진짜 심한 저주에 걸릴 수 있어서 그냥 봉인해 둔 거다.

“가만, 파즈스의 창 같은 초월자의 무기도 섀도우 플레인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건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지만 초월자라는 게 기본 법칙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초월자이니 어쩌면 이 창의 힘만큼은 섀도우 플레인에서 어느 정도 구현화 될 지도 모르겠다.

당장 실험해 보자. 에너지가 없는 공간에서 최고위 에너지를 보유한 창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봐야겠다. 그걸 보면 또 다른 방법이 생각나겠지.

역시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즐겁다. 미리아는 내 눈이 무섭다고 말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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