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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52화 (152/250)

로엔의 마나뱅크 152화

*

다음 날, 우리는 다시 모였다.

“오늘은 차분하게 가는 겁니다.”

“예.”

케이니 양은 어제 자신이 흥분했었던 것이 실험에 차질을 주었다고 생각했는지 각오를 단단히 다진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케이니 양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에너지가 전혀 없는 공간에서는 서로 간에 감지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케이니 양은 영혼의 모습 자체가 굉장히 특이해요. 정령의 기운이 섞여 있어서 그런 건데, 이걸 안정화 시켜서 케이니 양만의 영혼모습을 확립시켜야 해요.”

“예.”

“안에 들어가면 미리아가 우리 둘에게 동시에 꿈 침투를 사용할 거예요. 혹시 능력이 활성화되면 그걸 느낄 수도 있는데, 거부하면 안 됩니다. 그걸 거부하면 말을 못하게 되니까요.”

“그렇게 할 거예요.”

원래 허상공간에서는 대화를 할 수 없다. 말은 음파의 파장전달이고, 그것은 곧 힘이기 때문에 허상공간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아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동시에 꿈 침투의 영향을 받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그런 자세한 사항까지 이야기 해 줄 필요가 없었지만 오늘 만약 능력이 발현되면 본능적으로 저주의 일종인 꿈 침투를 거부할 수 있기에 미리 주의를 준 것이다.

“그럼 진입하죠.”

지금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둘뿐이다. 진입용 장치를 더 만들면 이반 경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 터이지만 아직 여러 명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안전 확인이 안 끝났으니 둘이 한계라고 본다.

곧 나와 케이니 양은 미스틱 섀도우에 진입했다. 이번에도 케이니 양의 허상은 제거를 한 상태였기에 그녀는 영혼의 모습 그대로였다. 반투명한 영혼 특유의 모습에 대기의 정령과도 같은 느낌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모습.

정말 불안정하다. 이대로 영혼이 산산조각 나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포트라에게 영혼의 안정법에 대한 지식을 받은 나는 이제부터 그걸 케이니 양에게 전하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

안정된 영혼은 자연스럽게 굳어져 그 뒤로는 케이니 양의 영혼모습이 정해질 것이다.

솔직히 어떤 게 제 모습인지 나도 상상이 안 간다.

하프 엘레멘탈이라니. 아마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최초의 존재일 것이다.

미리아의 경우 하프 서큐버스는 전례가 있다. 하프 엘프이면서 하프 서큐버스인 경우가 없는 거지. 거기에 성녀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눈앞의 케이니 양은 정말 대정령 포트라도 예상 못한 존재라 영혼의 본모습과 그에 따란 육체의 변화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의 영혼을 안정화 시키는 게 먼저다.

“손으로 자신의 몸 안을 뒤진다고 생각해요. 서두르지 말고 살살 저어야 합니다. 그러면 정령의 기운이 손을 따라 움직일 거예요. 계속 움직이다보면 원래의 조금씩 인간의 영혼부분에 녹아 들어가는데, 그때 묘한 느낌이 들어도 멈추지 말고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해요.”

“이렇게요?”

케이니 양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손을 몸속에 넣었다. 원래 이런 행위는 상당히 위험한 짓으로 자신의 영혼을 겹치게 만드는 것은 셰이든이 형태를 바꾸어 몸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고단수의 변형이다.

그러나 케이니 양은 아예 그것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서 내가 시키는 게 힘든지 쉬운지도 인식하지 못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하프 엘레멘탈. 시키니까 그냥 된다. 영혼의 형이 고정되지 않아서인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스스스스

묘한 느낌이 든다.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가 되는 느낌이랄까? 두 영혼이 서로 섞여서 전혀 다른 영혼이 되는 듯 한 기분이다.

“아!”

“뭔가 변화가 느껴져도 그냥 계속 해요.”

“예, 예.”

지금 케이니 양은 새로운 능력을 하나 얻었을 것이다. 육지를 걷던 생물이 등에 갑자기 날개가 돋아나고, 옆구리에 아가미가 생겨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감각에 놀랐을 것이다. 영혼 상태의 변화가 있었으니 육체도 같이 변화했을 것인데, 설마 외형이 바뀌지는 않겠지?

나는 조용히 케이니 양의 영혼이 안정화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1분이 지나고 우리는 자동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육체의 고통에 적응한 후 일어나 케이니 양을 보니 그녀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런데 머리카락 색이 연한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맑은 하늘색 같다.

“이건…….”

“아무래도 영혼의 변화가 육체에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다른 곳은 바뀌지 않았나요?”

“예, 단지 머릿속이 변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뭐가 바뀌었나요?”

“머릿속에 렌 경의 모습이 떠올라요. 미리아 양의 모습도…….”

“단순히 모습만 떠오르는 건가요?”

“렌 경이 지금 여기 있잖아요. 미리아 양은 여기 있고, 이반 경은 여기. 거기 그대로 있는 모습이 그려져요.”

“절대시각이군요. 사람뿐 아니라 사물도 볼 수 있지 않아요?”

“사물은 잘 안 떠올라요.”

“조금 더 집중 해봐요. 사람뿐 아니라 다른 것도 볼 수 있는지.”

“잠시 만요. 아! 맞아요. 저기 침대도 보여요. 맙소사. 정말 모든 게 보여요!”

이거 좋다.

케이니 양은 눈으로 사물을 보지 못하는 대신 영혼으로 본다. 사람의 시각은 평면만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완벽하게 사물의 모든 면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내가 9서클 마법인 공간의 주시자라는 마법을 써서 일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인데, 이렇게 되면 케이니 양의 감각 영역 안에서는 그 무엇도 숨기거나 위장할 수 없다.

나는 절대시각에 대한 설명을 케이니 양에게 했고, 그녀는 자신이 얻은 능력이 그게 맞는다고 시인했다.

“에게, 그거 말고 좀 더 전투적인 거는 없어?”

옆에서 미리아가 실망한 투로 말했다. 대정령의 가호를 받아서 생기는 능력이라고 뭔가 엄청난 것을 기대한 걸까? 막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그런 거 말이지.

“미리아야, 저거 상당히 대단한 능력 맞아. 적어도 감각기관에서만큼은 초월자의 수준에 오른 거거든.”

참고로 미리아의 꿈 침투 능력은 7서클 능력이다. 그리고 지금 케이니 양이 얻은 능력은 9서클에 해당하고.

“그래도 뭔가 확 하고 와 닿지 않잖아. 대정령 소환능력이라던가. 대기 정령 변신 능력이라던가. 그런 거 없어?”

“글쎄. 케이니 양. 다른 변화는 없나요?”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영혼이 완전히 안정화 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더 생길지도 몰라요. 차분하게 해 보죠.”

“그럴게요. 사실 전 이 능력이 너무 좋아요. 이제는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는걸요.”

사물만 보나. 절대시각의 좋은 점은 영혼도 볼 수 있다는 거다. 진실의 시야 계열 마법 중 최고봉에 해당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보기만 하고 그걸 어떻게 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지만 아무래도 케이니 양은 뭔가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이쪽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고, 본인도 만족하니 그걸로 된 거다.

다음 날도 나와 케이니 양은 미스틱 섀도우에 들어가서 영혼 안정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영혼이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케이니 양의 새로운 능력은 개발되지 않았고, 그녀의 유일한 능력은 절대시각이라는 게 확실시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시각을 지원할 수 있는 마법무구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건 바로 원견의 수정구다.

엘프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물건인데, 미스틱 게이트 내부 곳곳에 동조하는 마법수정을 설치해서 케이니 양은 언제든지 수정구를 통해 미스틱 게이트 안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곳은 제외하고 거리나 외곽의 숲 안쪽 등을 말하는 거다.

“이 수정구를 이용해 감각의 영역을 넓히면 나중에는 미스틱 게이트 전체를 인식할 수 있게 될 거에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리니 평소에는 조금씩만 봐요.”

“그렇게 할게요.”

말로는 알았다고 하지만 당분간 케이니 양은 수정구를 이용한 미스틱 게이트 탐색에 전념할 것 같다.

그렇게 케이니 양은 미스틱 게이트의 ‘주시자’가 되었다. 실시간으로 미스틱 게이트의 거리 전체를 탐색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걸 이용해 각종 조사와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 이제 케이니 양의 일은 대충 정리됐고, 셰이드를 상대할 방법도 얻었으니 이제는 실제로 섀도우 플레인에 진입을 시도할 차례다.

그림자만 존재하는 허무의 공간. 영혼 이외에는 어떤 에너지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침묵의 세계는 미스틱 섀도우와는 또 다른 적막함과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들어간 곳을 정확하게 특정 짓지 않으면 영원히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

나름 준비는 다 했다.

포트라의 도움으로 셰이드에 대한 방비와 혹시라도 침식 되었을 때 정령을 이용해 침식을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만들어 놨고, 안에 들어가서 고정좌표를 인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영혼은 결국 스스로의 육체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길이 없는 공간속에서 길을 만드는 법도 개발했으니 이제는 조금씩 무리하지 않고 탐색을 해나가면 된다.

“일단은 나 혼자 들어갈 거고, 이반 경은 나중에 합류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리아 너는 서포터 역이니까 들어오지 마. 네가 이곳에 있어야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응, 미스틱 섀도우는 몰라도 섀도우 플레인은 무서워서 싫어.”

“그럼 한 번 들어가 보자.”

사전에 할 거 다 했으니 이제는 부딪치는 일뿐이다.

나는 그대로 유체이탈용 침대에 누워 마법진을 가동시켰고, 곧 내 영혼은 섀도우 플레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으으, 춥네. 진짜 춥다.”

역시 느낌부터 다르다. 설마 내 영혼이 추위를 느끼다니? 그것도 진입하자마자.

영혼이 느끼는 추위는 고독과 적막의 감정이 표출되는 것인데, 아무래도 섀도우 플레인에서 느끼는 추위는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 듯하다.

나는 일단 정신집중을 통해 추위가 내 몸속에 침투하지 못하게 했다.

“한결 낫군.”

생각해보니 이건 셰이드에 침식당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아주 미약하지만 이 공간 자체가 셰이드의 침식 능력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러니 오래도록 이 안에 머물면 무조건 셰이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일단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려 했다.

그러나 뭐가 있어야 살펴보던지 할 터인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이 느껴지기는 한데, 실제로 아래를 보면 허공에 떠 있다. 그러니까 바닥은 내가 관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냥 허공에 뜬 상태로 인식하면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럼 이동을 해 보자.”

나는 천천히 한 걸음을 걸었다. 스르륵하고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게 정말로 앞으로 가는 건지 사실은 제자리에서 다리만 버둥거리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렌, 1분이 다 됐어.”

미리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온다. 정말 천상의 목소리가 따로 없다. 이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알았어. 나갈게.”

눈을 떠보니 현실세계다. 그리고 어김없이 밀려오는 육체의 고통은 미스틱 섀도우에 진입했다고 복귀했을 때보다 몇 배나 심하다. 이거 침식 때문이겠지?

“으으, 뿌우야. 정령정화 시켜줘.”

“알았당.”

파지지지지

뇌전의 샤워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포트라가 가르쳐 준 정령의 정화술이 바로 이렇다. 젠장.

잠시 후, 나는 머리카락은 꼬불꼬불하게 일어섰지만 한결 개운해진 몸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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