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51화
로엔의 마나뱅크 7권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
1장 그림자의 세계
“케이니 양, 포트라에게서 이미 들었겠지만 케이니 양은 하프 엘레멘탈이에요.”
“그게 꿈이 아니었군요. 전 비몽사몽간이라 뭐가 뭔지 몰랐어요.”
“꿈은 아닙니다. 단지 포트라는 대정령이라 보통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접촉만 해도 힘드니까 충격을 줄이려고 약간 의식을 흐린 거죠. 아무튼 케이니 양은 대기의 대정령 포트라의 가호를 받게 되었고, 포트라는 케이니 양을 딸이라고 부를 겁니다.”
“딸이라니…그럼 포트라라는 분이 제 양부가 되는 건가요?”
뭔가 감동한 표정이다. 미리아가 이반 경을 만났을 때와 비슷하네.
세상에 가까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생기니 기분이 묘한 것일까?
“상대는 대정령이니 양부라기보다는 대부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케이니 양은 그 증표로 트라 라는 성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쓰시겠습니까?”
“제 성이 트라라고요?”
“기존에 쓰던 성이 소중하다면 안 쓰셔도 됩니다. 아니면 미들 네임으로 넣어도 되고요.”
“전 성이 없어요. 그냥 미스 케이니가 어렸을 때부터 제 호칭일 뿐이죠. 신기하네요. 제가 성을 가지다니.”
그러고 보니 정말 케이니 양은 케이니라는 이름밖에 없다. 암살자 길드에서 자란 여자라 성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굳이 붙이자면 페론의 암살자처럼 조직명인 페론이 성이 되는 셈이다.
어쨌든 케이니 양은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령의 성을 받았다. 대정령 포트라의 이름에서 딴 트라 라는 성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힘을 지녔다.
케이니 트라, 태어날 때부터 영혼의 절반이 엘레멘탈이고,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영혼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나는 케이니 트라의 보호자로써 그녀의 수호정령인 포트라의 힘을 일부 끌어다 쓸 수 있는 계약을 한 것인데, 나중에 9서클이 되면 정식 계약을 다시 하겠지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솔직히 7서클의 마나로는 포트라를 소환할 수도 없다. 굳이 소환을 하려면 마나뱅크의 마나를 끌어다 써야 하는데, 옛날 뿌우에게 그걸 시도했다가 마나파동포가 만들어졌던 것처럼 위험한 시도다. 이번에는 뿌우의 몸이 날아가는 걸로 끝나지 않고 내가 영혼까지 소멸할 수도 있으니 자제하자.
지금 내가 포트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 중 가장 큰 것은 정령의 지식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대정령의 지식이다.
그 안에는 섀도우 플레인과 셰이드에 대한 지식도 있었고, 덕분에 나는 셰이드의 침식에 대한 치료법과 방지법을 고안할 수 있었다.
“저 그런데요. 제가 하프 엘레멘탈이라면 혹시 저도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건가요?”
케이니 양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물었다. 마법사가 되는 것은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런 조사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요. 정령은 마법을 쓰지 못 해요.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더 마법과 인연이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아, 그런가요.”
실망하지 말라고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이능력자가 마법사를 부러워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케이니 양은 선천적인 마법사라 따로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는 거예요. 대기와 관련된 능력 중 몇 개는 그냥 쓸 수 있을 겁니다.”
“예? 저는 하나도 쓸 줄 몰라요.”
“개방이 안 된 거죠. 어제 포트라와 접촉을 했으니 이제는 모두 개방이 되었다고 봐도 되요. 능력을 쓰는 것은 제가 도와드릴게요.”
“예, 렌 경께서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배울게요.”
“그럼 내일 미리아의 집으로 가죠.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예.”
케이니 양은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나는 케이니 양과 함께 미리아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반 경과 미리아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둘만이 케이니 양의 정체를 들었다. 나를 항상 따라다니는 마리포즈까지 더해서 비밀 실험의 멤버가 모두 모인 셈이다.
“어서 와요. 언니.”
미리아가 아주 살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실제로 미리아는 케이니 양의 정체에 대해 들은 후 큰 호감을 보였는데, 미리아의 영혼 역시 하프 서큐버스라 일종의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다.
미리아는 내 말을 들은 후 바로 ‘그 언니도 나처럼 오래 살아?’ 라고 물었다. 그러나 케이니 양은 보통 인간의 수명밖에 가지지 못하고, 미리아의 경우 육체도 하프 엘프이기 때문에 오래 사는 거라고 다시 설명을 해주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보다 긴 수명을 지닌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게 미리아의 생각이고, 나 역시 어느 정도 동감하는 부분은 있다.
“미리아 양,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서 죄송해요.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케이니 양도 미리아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들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인사는 조금 있다가 하고 일단 실험부터 진행합시다.”
이반 경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양반, 눈빛이 살짝 돌아가 있네. 거의 매드 메이지 수준인데?
하긴 대정령의 가호를 받는 하프 엘레멘탈이라고 하면 어떤 마법사가 미치지 않을까? 하지만 이반 경에 대해서는 케이니 양에 대해 말하기 전에 몇 가지 맹세를 시켰다.
이반 경은 내 허락 없이 케이니 양을 만나거나 어떠한 실험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실험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늘의 실험은 케이니 양에게 자신의 영혼을 확인시키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숨겨진 힘을 개방하는 것이죠.”
“예.”
“보통 유체이탈을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고, 영혼이 육체를 벗어났다가 돌아올 때 상당한 고통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케이니 양은 기본적인 능력이 있으니 충격이 훨씬 덜할 겁니다.”
“맞아요. 나도 별로 아프지 않았어요.”
미리아가 옆에서 말했다. 그녀도 얼마 전 처음으로 유체이탈을 경험했고, 그 전에는 꿈 침투 능력만 썼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확인한 후 조금 더 꿈 침투 능력이 강해졌다고 말한 바 있다.
“알았어요. 어서 시작해 주세요.”
케이니 양은 긴장감을 떨치려는 듯 침을 한 번 삼키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를 유체이탈 용 침대에 눕히고 나 역시 옆 침대에 누웠다.
“그럼 마리야, 시작해줘.”
내가 마리포즈에게 마법진 가동을 명하자, 미리아도 같이 숲의 힘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곧 우리는 미스틱 섀도우의 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 이게 제 영혼인가요?”
케이니 양은 신기하다는 듯 스스로를 보았다. 그녀는 원래의 모습이 아닌 반투명한 대기의 정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정령은 아니고 인간의 육체와 정령의 육체가 이리저리 섞여 있는 모습이랄까?
상당히 불안정한 영혼이다. 이래서야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겠는걸.
“원래 이곳은 현실에서의 상을 그대로 투영하게 되어 있는데, 케이니 양의 경우만 그걸 없앤 거예요. 케이니 양은 일단 의식을 집중해서 스스로의 영혼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어요.”
“놀라워요. 저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니, 이게 보이는 건가요?”
설명을 안 듣네. 하긴, 들을 상황은 아니지.
지금 케이니 양은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혼의 감각이 그렇게 본인에게 인식을 시키고 있다.
“렌 경의 모습도 보여요. 아아, 사물의 형상이라는 게 이런 거군요. 여기가 영주관이네요. 공간 구조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어요.”
영혼 상태라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지만 케이니 양은 생전 처음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해서 울고 있었다.
나는 일단 설명을 멈추고 조용히 그녀가 사방을 살피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1분이 지났을 무렵, 케이니 양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1분 지났어요. 일단 돌아갈게요.”
“아, 잠깐만. 10초만 더요. 아아아.”
슉
강제 종료 시스템이거든요. 미안해요.
곧 나는 강렬한 육체의 자극, 그러니까 고통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꽤 익숙해졌는지 1분 정도의 이탈로는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게 되었다. 이게 한 시간만 넘어도 정말 아파서 죽을 것 같다니까.
케이니 양은 오히려 고통은 없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크게 실망한 듯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는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와 말했다.
“죄송해요. 실험을 해야 하는데 제가 흥분해서 도움이 못 되었네요.”
“아니요. 내일 또 다시 들어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케이니 양은 일반인이 아니니 곧 바로 다시 들어가도 될 것 같지만 추측으로 안전성 규칙을 무시하지는 않아야 한다.
처음에는 하루 1분이 적정량이니 내일 다시 시도를 해 봐야지.
“언니, 눈이 보였어요?”
미리아가 물었다.
“예, 정말로 보였어요. 제가 보고 싶었던 것들이요. 렌 경이랑, 렌 경의 집이랑.”
“익숙해지면 조금 더 오래 있어도 되니 매일 와요. 렌이 없어도 제가 마법진을 가동시킬 수 있으니까요.”
“어이어이, 미리아야. 내 허락 없이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지금 미스틱 섀도우에는 셰이든이 산단 말이야.”
“어멋,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미안해요. 언니, 역시 렌이랑 같이 들어가시는 게 좋겠네요.”
“응, 나도 렌 경 없이 혼자 들어가는 건 불안해서 싫어.”
“그럼 내일 보자고.”
“렌은 안 들어가?”
“난 당분간 치료를 해야 해. 이 손가락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아항, 그렇구나.”
미리아는 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내가 안 들어간다니까 그대로 숲의 힘을 끊고 정리를 했다.
이렇게 오늘의 실험은 케이니 양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능력개방을 위한 영혼 안정화 작업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