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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50화 (150/250)

로엔의 마나뱅크 150화

*

“렌 경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케이니 양이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했다.

“이상한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그쪽 부분이 좀 이상해요. 묘한 울림이 있어요.”

케이니 양이 가리킨 곳은 나의 손가락 부분이다.

바로 셰이든에 의해 침식당한 그 부분! 나는 뜨끔해서 다시 물었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사각사각 하는 느낌이네요. 움직이지 않아도 표면이 굳어서 떨어지는 듯해요.”

“실제로는 전혀 각질 같은 게 없습니다만.”

“그러게요. 이게 무슨 소릴까요?”

케이니 양도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결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닌 듯 하다.

무엇일까? 나는 케이니 양에게 섀이드에게 침식을 당한 부분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자 케이니 양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섀이드에게 침식당한 사람은 본 적이 없고요. 좀비화 되어가는 사람은 봤어요. 확실히 그것과 비슷하네요.”

“그럼 제 손가락이 언데드화 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비슷한데 언데드화 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거 같아요.”

“음, 그렇다면 아직 제 손가락이 언데드화 되고 있고, 그래도 회복이 되려는 현상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직 진행 중인 것을 제가 미처 몰랐군요. 감사합니다.”

젠장, 보통 마법분석으로는 안 나오는 상태였나. 섀이드의 침식력이 이 정도였다니.

그런데 참 신기하다.

좀비의 언데드화는 육체의 변화이니 케이니 양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치고, 영혼상태의 침식과 재생까지 어떻게 듣지? 이건 귀가 민감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케이니 양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케이니 양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내가 쳐다보는 것을 아는 거군. 이것 역시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텐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했나보다.

케이니 양의 능력은 단순히 청각, 후각이 민감하다는 게 아니다.

“케이니 양, 죄송한데 케이니 양의 몸을 분석해 봐도 되나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케이니 양은 몸을 움츠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한 듯하다.

“제가 손가락을 궁극분석마법으로 조사할 건데, 하는 김에 케이니 양도 한번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케이니 양의 청력은 단순한 청력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의 능력을 벗어났고, 마법적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아, 제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군요.”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살짝 다른 피가 섞여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케이니 양의 선조 중 누군가가 초자연적인 존재와 계약해서 능력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한번 받아볼게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요?”

케이니 양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몰라요. 하지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결과에 따라 이게 케이니 양에게 해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 최선을 다 해 막아드릴 겁니다.”

내 말에 케이니 양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를 위해서 조사를 하시려는 거군요. 고마워요.”

아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해가 될 수도 있고 이익이 될 수도 있거든. 가령 케이니 양이 드래곤의 피를 타고 태어났다고 하면 그걸 이용해 드래곤과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물론 주체는 내가 아닌 케이니 양이 되겠지만 한 다리 건너서 드래곤 테이머가 생기는 거니 나한테도 도움이 되지.

나는 서둘러 이반 경을 불러서 9서클 마법진의 준비를 했다. 어떤 현상이든 분석해주는 궁극의 분석마법을 2회나 마법진으로 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만 해도 장난 아니지만 이건 어떻게든 해야 한다.

만약 내 영혼의 회복력이 섀이드의 침식력보다 약하다면 나중에는 결국 침식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혼의 기운이 많이 소모되는 셈이니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지 알 수 없다.

하루 만에 마법진을 만들고, 나는 바로 이반 경에게 발동을 하게 했다.

강력한 마나의 파동과 함께 내 손가락에 대한 결과가 떴는데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없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섀이드의 침식력은 따로 치료를 하기 전에는 계속 유지되는 거군요. 그냥 놔두면 결국 언젠가는 섀이드가 되는 거네요.”

이반 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건 손가락을 잘라도 소용이 없다. 육체는 잘려도 영혼은 잘리지 않으니까.

“언령의 힘으로 치료를 해도 안 된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도 고민이 된다. 궁극 분석마법의 결과에 의하면 섀이드의 침식은 언데드화가 아니다. 영혼이 완전히 오염되면 그때는 죽어서 언데드가 되는 건데, 정작 섀이드의 육체는 변형된 영혼이지 언데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백마법으로도 정화가 안 된다.

“섀이드를 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군.”

치료가 아닌 정화가 필요하다.

일단 이 부분의 문제점은 깨달았고, 다음에는 케이니 양이다.

케이니 양은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 분석마법진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결과가 나왔다.

“정령의 실험체?”

놀랍다.

케이니 양은 대기의 대정령 포트라가 물질계에 한 실험의 결과물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나와 계약했을 당시 정령사의 자질을 가진 존재를 조금 더 많이 탄생시키기 위해 몇몇 인간에게 정령의 씨앗이라는 것을 심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 심은 씨앗들이 모두 다 발아하지 못하고 죽어버려서 역시 안 되는가보다 하고 포기했다.

그런데 그게 오랜 세월을 거쳐 죽었던 씨앗이 인간의 유전자에 남아 다시 살아나고, 그때에는 완전히 인간의 몸에 적응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케이니 양은 반인간 반정령인 존재다.

이렇게 되니 이 여자가 왜 나한테 그렇게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나의 호흡에 항상 황홀한 느낌을 받았냐 하면 내 영혼에 포트라와의 계약에 대한 잔향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 아니면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무조건 적인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제가 정령이라고요?”

케이니 양은 정말로 당황해서 물었다.

“그래요. 하지만 순수한 인간하고 거의 다를 바가 없으니 염려마세요. 그냥 영혼의 일부분에 정령의 기운이 스며들었을 뿐, 좋은 것만 있고 나쁜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리고 케이니 양의 존재를 확인해서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됐어요.”

“정말요?”

기쁜 모양이다. 얘가 나한테 마음이 있기는 있구나. 일부러 왜면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신경을 써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제대로 보호를 해 줘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케이니 양의 상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걸 알면 케이니 양을 납치해서 분석을 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 드릴게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서 쉬세요.”

나는 케이니 양을 돌려보내고 바로 영주관으로 돌아와 뿌우를 소환했다.

“너 케이니 양에게 특별한 거 못 느꼈어?”

“몰랐당.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당.”

하긴 뿌우가 느낄 정도로 정령력이 외부로 발산되면 나도 이미 알았겠지.

“알았어. 그럼 지금 당장 포트라에게 가서 나 좀 보자고 해.”

“또 가야 하냥.”

“상황 설명하고 더 이상 빼면 재미없을 거라고 해.”

“으앙, 협박까지 하라는 거냥. 나한테 왜 이러냥.”

“대신 계약하자는 소리는 안 하겠다고 해. 그냥 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만 할 거라고.”

난 포트라의 진명을 안다. 그래서 포트라는 강제계약에 걸릴까봐 내 앞에 안 나타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강제계약을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포트라와 밀당을 할 재료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지금은 그래도 내가 부탁하면 대충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진명으로 무슨 장난을 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케이니 양이라는 존재가 확인된 이상 포트라와는 다시 대화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도 나를 만나야 한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후 곧 공간이 확 하고 닫혀버리는 느낌이 들며 내 방안 전체가 다른 공간처럼 바뀌었다.

마치 물질계와 정령계를 절반씩 섞어놓은 듯 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순간부터 강렬하게 느껴지는 포트라의 존재감이 나의 숨통을 조여 왔다.

젠장, 역시 9서클이 안 되니까 압도당하는 부분이 있네.

“드디어 만나는군.”

“내말이. 치사하게 오라 그래도 안 오고 말이야.”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지금의 넌 나와 대화할 자격이 없지만 과거의 인연으로 잠시 시간을 내 주는 거니까.”

“알았어. 고맙다고 해 주지. 그나저나 케이니 양은 어떻게 할 거냐?”

“설마 저런 존재로 개화가 될 줄은 몰랐군. 내 실수라 인정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 맞지?”

“맞다.”

원래 포트라는 정령의 씨앗 실험을 하고 발아하는 순간 다시 씨앗을 거두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증거인멸을 하고 정령의 씨앗이 성공적인 것만 확인한 후, 나중에 다른 정령사에게 일을 시키고 보상품으로 살살 배포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령의 씨앗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포트라는 끝난 이야기라고 방심해서 씨앗을 회수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대정령이 인간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고, 그걸 인간인 나에게 들켰다. 이건 금기를 범한 것이기 때문에 대정령인 포트라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사항이다.

“케이니 양 말고 다른 성과는 있었나?”

“없었다. 방금 보고를 받고 다시 확인해 봤으니 틀림없다.”

“알았어. 그럼 내가 케이니 양의 인생은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나의 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수명이 있으니 수명이 다 할 때까지만 내가 인연을 인정하겠다.”

대정령의 가호를 받는 셈이군. 장난 아닌데?

하지만 그걸로 끝낼 수는 없다.

“그걸로 책임을 다 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그녀와 대화를 해 보았다. 원하는 것이 있더군.”

이런 선수를 쳤구나. 케이니 양은 뭔가 소원을 말한 모양이다.

“케이니 양이 원하는 게 뭔데?”

“그녀의 본능에 물었다. 그랬더니 평생 네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더군.”

“허걱, 정말로?”

“나는 이미 승낙했다. 그러니 네가 그녀를 평생 보호해라.”

“저기, 그게 뭘 의미 하는지 알지?”

“넌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

“솔직히 그래. 물어볼 것도 있고.”

“마족이 계속 물질계에 간섭하는 것은 나도 별로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도울 수 있는 것은 돕도록 하지. 대신 그녀를 책임져라.”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했다.

“정말 케이니 양이 그것을 원하면 어떻게든 해 보지.”

“무의식의 본능에 물은 것이니 틀림없다. 그럼 계약이 끝난 것으로 하지.”

휘리리리리리링

으윽, 이놈이 갑자기 계약의식을 진행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전신이 바람의 칼날에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버텼다. 곧 대기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까지 스며들며 계약의 순간이 끝났다.

정식 계약이 아닌 케이니 양의 보호라는 조건부 계약이지만 대정령인 포트라와의 재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 정령의 지식 중 일부가 스며 들어왔다. 포트라가 전해주는 섀도우 플레인에 대한 지식이다. 그야말로 신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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