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48화 (148/250)

로엔의 마나뱅크 148화

8장 소리 속에 사는 여자

케이니 양은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사업보고를 한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처음 한번을 빼고는 지팡이도 없이 마치 사물이 보이는 것처럼 걸어와서 내 앞자리 소파에 앉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고 물어보니 소리와 냄새로 사물의 존재를 인식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온 장소는 돌아가서 석판에 꼬챙이로 구조도를 그린 후 다른 사람에게 확인해서 외운다는 것이다.

“청각과 후각도 대단하지만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으시군요.”

“그렇게 훈련을 받았을 뿐이에요. 예전 조직의 길이 워낙 복잡해서 평범한 저택이나 사무실은 한번만 그려보면 다 외울 수 있어요.”

“그렇군요.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없어요. 이곳은 정말 좋네요. 전 원래 가끔씩이라도 렌 경의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이곳은 정말 사람들 대부분이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요. 숨소리도 그렇고, 목소리도 밝아요.”

케이니 양은 정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전에는 보지 못한 표정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녀는 항상 차분하면서도 약간은 슬픈 듯 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 숨소리와 목소리에 민감하시군요.”

“눈이 안 보이니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다 목소리로 구분 되요. 체향도 있지만 그게 사람의 인격이나 본성을 드러내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숨소리나 목소리는 달라요. 조금 듣다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되죠. 전에 있었던 조직은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숨소리가 없어서 항상 슬펐죠. 그런데 이곳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네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숨소리로 사람의 감정과 인격을 느낀다라. 그럴 수도 있겠지.

이건 내가 모르는 영역이라 뭐라고 분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케이니 양이 이곳 생활과 사람들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은 알았으니 그걸로 된 거다.

솔직히 암살자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좋을 리는 없고, 그런 음산한 숨소리와 목소리와 우리 영지 사람들의 아무 생각 없이 밝은 목소리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거다.

“참, 그런데 이건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요.”

“뭔가요?”

“여기 일단 명단을 적어 왔는데요. 이자들은 좀 수상해요. 호흡이 탁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긴장을 하는 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케이니 양이 내민 서류에는 최근에 이주해 온 상인들 중 몇 명이 적혀 있었다.

“숨기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첩자나 배신자겠죠.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적인 경계와 긴장이라면 그게 확실해요. 전 조직에서 그걸 구분하는 역할을 했었으니까요.”

암살 의뢰자들 중에서는 오히려 암살자 조직에 해를 끼치려는 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케이니 양은 의뢰 접수 담당자로 일하면서 그런 자들을 가려내는 일을 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만 조금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한번 조사를 해 보죠.”

본인도 모르게 마법으로 머릿속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뇌를 아예 파헤치는 거라면 지독한 고통이 따르지만 멍한 상태로 만들어서 진실의 공간 마법을 쓴 후 너 첩자지 라고 대놓고 물어보는 끝나는 이야기다.

나는 케이니 양이 내민 명단의 상인들의 숙소를 확인한 후 밤에 몰래 찾아가 한명씩 조사를 했다.

과연 케이니 양의 말대로 그들은 모두 다른 세력의 사주를 받고 온 자들이었는데, 대부분 십대마도가문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초기에 자리를 잡아서 세력을 이룬 다음에 결정적인 실수로 우리 영지의 발전을 저해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쩝, 그러니까 우리가 더 이상 크는 건 곤란하다는 거군.”

나는 체프코트 가문에서 보낸 상인의 말에 혀를 찼다.

체프코트 가문은 장래 자신들의 제일 강력한 경쟁자로 우리 데빌 베인을 지목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다. 이쪽은 8서클 마도사가 둘이나 있고, 체프코트 가문은 8서클인 가주가 문제를 일으키고 행방불명 된 상태이다.

이미 다른 마도 가문에서는 잠정적으로 체프코트 가문의 힘을 줄이고 우리를 올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현재의 일인자가 내려앉으면서 생기는 힘의 공백 중 일부를 자신들이 흡수하려는 것이다.

줄을 새로 서겠다는 건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 지위가 흔들릴 것 같은 기득권 가문들은 안 좋은 목적으로 우리에게 뒷공작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게 당장 표면화 되지는 않는 게 마나뱅크가 사라진 후 마법사 가문의 힘이 아무래도 약화된 상태에서 덴판 제국의 지지를 받는 체프코트 가문이 쉽게 영향력을 잃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잡아다가 추방을 해버리고 싶지만 역시 그건 좋지 않다. 어디서나 첩자는 필요하다. 특히 이쪽에서 정체를 아는 첩자는 두고두고 이용해 먹는 게 정석이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 부분까지 내가 직접 손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데빌 베인이라는 조직과 콘돌스핀 가문은 발전을 위한 많은 밑작업을 한 상태다. 자체적으로 정보조직도 가지고 있고, 병단을 몇 개나 소유했다. 그러면서도 왕국과의 사이도 원만해서 큰 갈등 없이 세력을 계속 확장하는 추세다.

주변 마도 가문도 우리를 맹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몇 년 안으로 십대가문에 정식으로 편입되면 이쪽 지역에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걸 진행하는 사람은 바로 파우스 스승님이다.

파우스 스승님은 지금 4서클에 도달했는데, 내년쯤에는 5서클이 되실 것 같다. 과거의 서클을 되찾는 셈이고, 그 위에 새로운 경험을 토대로 6서클에 도전하실 거다.

하지만 파우스 스승님은 마도 연구뿐 아니라 가문의 경영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아서 이미 다섯 개로 불어난 마탑을 모두 잘 관리하고 있다.

“역시 이것은 파우스 스승님께 명단을 넘기고 유사시에 조심하라고 부탁드려야겠군.”

남 몰래 관리만 잘 하면 큰일은 안 날거다. 만약 일이 터지만 관련된 가문에 정식으로 항의를 해서 배상을 받든 전쟁을 벌이든 하면 되고.

결정을 내린 나는 파우스 스승님께 가서 첩자들의 명단을 넘기고 지속적인 관리와 정보수집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알았다.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부분이니 이제부터는 나에게 맡겨라. 대신 넌 계속 마도에 대한 연구에 집중을 해야 한다. 마족의 후계자와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네가 희생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예, 염려마세요. 스승님.”

마음속으로부터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시는 파우스 스승님께 나는 속으로 감사를 드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스승님은 내가 장래에 8서클에 도달할 거라고 믿고 있다. 대륙을 대표하는 마도사가 되어 콘돌스핀 가문을 최고의 전성기로 이끌 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는 한다.

뭐, 기대에 못 미치지는 않을 겁니다. 파우스 스승님.

자 이제 한 가지 일을 처리했으니 다시 또 다른 나만의 공간에 대한 일을 처리해볼까?

나는 뿌우에게 이반 경을 부르라고 시킨 후 미리아의 집으로 갔다.

*

미스틱 섀도우는 이제 덩그러니 저택 하나만 있는 공간이 아니다. 집이 열채 정도로 늘어났고, 거리도 만들어졌다.

단지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없는 유령도시와도 같은 느낌의 공간이다. 소리도 없으니 더더욱 음산하다.

“쩝, 이 음산함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혼 상태의 인간들이 입버릇처럼 춥다고 말하는 게 진짜 추위를 느끼는 게 아니라 이러한 적막감에 영향을 받아 착각하는 거다.

온도를 못 느끼니 춥다고 느끼는 거지.

하지만 소리나 열기는 모두 에너지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마음을 안정시키며 서 있었다.

오늘은 드디어 이 세계에 나 외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다.

바로 미리아가 같이 들어오는 날이다.

엘프의 사자가 와서 숲의 힘이 사용되는 상태를 확인한다고 했을 때, 미리아는 아예 마법진의 구동을 직접 관리하라고 말했고, 엘프의 사자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했다. 당연히 우리의 실험내용을 알아가려는 임무를 띠고 왔으니 저쪽에서 부탁해야 되는 일을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말한 거다.

내가 진입한 후 약 30초 후, 미리아가 들어왔다.

“이곳이야?”

미리아가 나한테 말했다. 이건 마법이 아니라 미리아가 가지고 있는 꿈 침투 능력의 일부분이다. 미리아는 내 의식에 접촉해 있는 것이다.

“역시 이 상태면 대화가 되는구나. 결국 유체이탈을 해도 육체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네.”

“응, 영혼만이라면 아공간에 들어와도 육체와의 링크가 끊어지지 않나 봐.”

미리아도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은 이반 경보다 오히려 더 민감한 게 미리아다. 서큐버스의 특성 상 반 영체이기 때문에 본능적인 감각을 지니는 것 같다.

“그럼 너와 내 영혼을 살짝 겹쳐보자.”

나는 손을 내밀어 미리아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겹쳐지게 만들었다. 허상이라면 당연히 통과해야 마땅하지만 두 영혼은 허상이 아닌지라 서로 겹쳐지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묘하게 서로 밀어내는 듯 한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강력한 자기장과도 같은 느낌인데 자기장 역시 이쪽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니 영혼의 존재력이 서로 반발하는 것 같다.

“렌, 이거 모순 아니야?”

“모순 맞아. 에너지가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반발을 하니 영혼은 곧 에너지를 가진다는 이론이 성립되거든. 한 마디로 영혼 자체가 우리 상식으로는 모순된 존재라는 거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결계와도 같은 막. 그건 아마 영혼의 덩어리와 비슷한 성질일 것이다.

다른 영혼은 통과할 수 없는 막이라면 역시 영혼뿐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영혼과 성질이 비슷한 고차원적인 물질일 수도 있다. 그건 역시 신의 영역이겠지?

나는 다시 미리아의 손가락을 만지거나 통과하려 노력하면서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역시 전혀 불가능했는데 영혼의 뒤섞임이 인간의 영역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덧 1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미리아는 자동적으로 이 세계에서 벗어났다. 나는 이미 1분이 넘는 시간을 있어도 상관이 없는 상태였기에 잠시 더 고민을 하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좋아. 이제 섀이드가 어떻게 일반 영혼에 침식을 가하는가만 알면 섀도우 플레인에 들어갈 수 있겠군.”

그러나 이 실험이 제일 위험하다. 왜냐고? 이건 인체실험, 그러니까 영혼을 직접 섀이드에 침식당하는 과정을 살피는 실험이고 실험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 그래도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로 볼 때 가벼운 침식은 충분히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실험을 강행하기로 결심했다.

다음번에 같이 들어올 대상은 바로 셰이든인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