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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42화 (142/250)

로엔의 마나뱅크 142화

6장 그림자가 아는 것

“자, 이제 방해꾼이 올 염려는 없으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하지. 그 힘은 무엇인가? 아무리 이반 경이라도 그런 공격마법을 쓸 수는 없을 텐데, 아직 어린 마법사인 자네가 썼단 말이지. 자네의 후견인인 미스틱 엑스 경의 수법인가? 설마 미스틱 엑스 경이 전설의 대마법사 로엔 경은 아닐 테고.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군.”

섀이드 마법사는 그림자만 남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미소가 있다면 바로 저럴 것이다.

그림자가 되면 기본적으로 감성이 거의 죽어버리고 이성만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평소 성품이 착하면 큰 문제가 없는데, 악한 자라면 극단적으로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맹세한 것이 있는 자라면 맹목적으로 맹세를 위해 살아가고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점도 연구 결과 예측된 바 있다.

아무래도 저 섀이드 마법사는 다스 페론과 함께 세상의 모든 마법사를 다 죽이겠다고 맹세한 모양이다. 그러나 마법사의 호기심은 섀이드가 된 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자신이 모르는 마법에 대해서는 집요할 정도의 탐구심을 보이는 듯하다.

나는 일단 대답을 회피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것은 9서클 마법인 포켓 플레인이다. 지하대전을 통째로 아공간화 한 것으로 단순한 결계와는 다르다.

이곳은 물질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마나의 흐름이 물질계와 다르기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그래봤자 저 섀이드 마법사도 마법을 써야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마나의 흐름 자체에 묘한 수작을 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 크크크. 그럼 억지로라도 대답을 들어야겠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여기 없을걸요.”

나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섀이드 마법사는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지팡이 끝이 가리키는 궤적으로부터 몸을 피했다.

역시 저 섀이드 마법사도 마나파동포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다스 페론과 정보를 공유했다면 당연하겠지.

하지만 저자는 고위마도사다. 내가 마나파동포를 쓰는 것을 직접 본다면 단숨에 허와 실을 파악해 낼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협박과 시간 끌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대는 이걸 피할 수 있겠지만 저 관속에 들어간 다스 페론 경은 못 피할걸요. 관 채로 소멸시켜 드리지요.”

“큿, 네놈이!”

그때서야 섀이드 마법사는 내가 노리는 게 자신이 아닌 다스 페론의 관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거두고 화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런 섀이드 마법사를 보며 싱긋 웃어 주었고. 형세 역전이라고 할까? 다스 페론을 인질로 잡은 셈이니 일단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철컹

나는 지팡이의 미스릴 우산을 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바로 쏴 버리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다스 페론의 관을 향해 다가갔다.

섀이드 마법사는 나를 경계하며 옆으로 물러섰고, 곧 나는 다스 페론의 관 바로 옆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드르륵, 쿵

관 뚜껑을 여니 과연 다스 페론이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누워있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는데 분노나 원한 같은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죽이러 왔나? 지독한 놈.”

“그렇긴 한데, 지금 널 죽이기에는 저 섀이드 마법사가 무섭네.”

“이곳은 밤의 공간이로군. 여기 들어온 이상 넌 살아서 나갈 수 없다.”

“나 죽을 거 같으면 무조건 너부터 처리할 거니까 입 닥치고 있어라.”

얘가 상황파악을 잘 못하네. 나는 한마디 툭 쏘아붙이고는 섀이드 마법사를 보았다.

“경의 이름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셰이든이라 불러라. 그래서 너의 제안은 뭐지?”

“제안은 없습니다. 어차피 전 다스 페론을 소멸시켜야 하고, 셰이든 경은 절 잡아 마법의 비밀을 캐내어야 하는 입장이니 누군가는 성공하고 다른 한쪽은 실패하겠죠. 아니면 둘 다 성공하거나요.”

“크으음.”

역시 다스 페론이 소멸되면 곤란한 모양이지? 섀이드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물질계에 힘을 쓸 수 있다. 마법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다스 페론의 몫이자 역할이고, 저 셰이드 경은 일종의 서포터 역할밖에는 못 하는 것이다.

내가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용사였다면 여기서는 앞뒤 볼 거 없이 무조건 다스 페론부터 소멸시키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난 십중팔구 저자에게 붙잡혀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던 두뇌를 강제로 탐색당하든 하겠지? 그건 아니다.

난 열혈용사가 아니니까. 나도 살고 다스 페론과 셰이든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운명까지 비트는 게 바로 마법사 아닐까?

“뭐, 제안을 할 게 있긴 있군요. 우리 진실게임을 하는 게 어떨까요?”

“진실게임?”

“서로 한 가지씩 묻고 대답하는 거죠. 진실 된 대답을 하기로 약속하고요.”

이건 모험이다. 난 사실 숨기고 있는 게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진실게임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

거짓말?

그거 안 좋다. 마법사는 거짓말을 최대한 안 하는 게 좋다. 고위 마법은 대부분 언령의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그만큼 힘이 줄어들고, 나중에는 아예 마법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 만큼 셰이든이 나에 대한 비밀을 캐어내기 전에 내가 먼저 얻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적은 수의 질문으로 얻어내야 한다.

어찌되었든 셰이든이 알고자 하는 게 내가 가진 비밀하고는 거리가 있어서 조금 여유는 있어 보이지만 마나파동포에 대해 질문을 하다보면 마나뱅크에 대한 부분까지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셰이든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알았다. 내가 먼저 하도록 하지.”

“하세요.”

“그 마법의 이름은 뭐지?”

그거부터 물어볼 줄 알았지.

“마나파동포라고 합니다.”

“렌 경 차례로군. 질문하게.”

“이 공간을 유지하는 힘은 다스 페론으로부터 나오는 건가요?”

“그걸 어떻게!”

아싸, 질문 하나로 알고 싶은 것을 다 알았다.

난 진실게임 한다고 질질 끄는 것을 싫어하지. 이거 한 마디의 대답을 들은 것으로 충분하다니까.

파워 소스가 다스 페론이라는 말의 의미는 포켓 플레인을 가동시킨 힘의 주체 역시 그라는 거다.

다스 페론은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8서클 마도사라 할 수 있고, 몸에 새겨진 역파장 마법진은 그러한 다스 페론의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셰이든은 그걸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스 페론을 핵으로 마법진을 구축하면 9서클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엄밀히 말해서 이 포켓 플레인 마법은 셰이든이 아니라 다스 페론이 만든 셈이다.

그걸 알았는데 내가 망설일 필요는 없다.

“마나파동포.”

드드드드드

“이놈, 어림없다.”

내가 마나파동포를 가동시키자 셰이든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치며 즉시 공격마법을 시전했다.

포스 램

눈에 보이지 않는 공성병기가 나를 밀쳐내려 했다.

그런데 말이야. 셰이든.

넌 미처 몰랐겠지만 나 역시 7서클이거든. 마법력에서는 너와 같고, 정신력은 너보다 훨씬 윗줄이라는 거지.

지난 밤, 다스 페론과 싸우느라 거의 마나가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마법을 써야 한다.

나는 즉시 내 손목을 찢어 피를 내어 혈마법을 사용했다.

사실 마나파동포는 마나뱅크의 게이트를 여는 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마법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가동만 시키고 다른 마법도 쓸 수 있는 것이다.

“마법 제거!”

파짓

나를 향해 날아오던 포스 램이 사라져버렸다. 같은 서클의 마법사끼리의 전투는 거의 한쪽이 선공하고 다른 한쪽이 제거하면서 방어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법.

이번에는 내 차례군.

“그림자를 제거하는 데에는 역시 빛이 최고지. 썬버스트!”

번쩍, 꽈드드등

내 몸이 환하게 빛났다. 이것은 7서클 백마법. 다스 페론이 혹시라도 몸을 움직여 피하지 못하게 대미지를 주면서 셰이든이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강력한 빛의 폭발을 발생시켰다.

“크으, 이럴 수가 7서클 마법이라니.”

셰이든은 기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십대의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가 갑자기 7서클 마법을 쓰니 황당하기도 하겠지.

“마녀의 혈마법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게 없나보군요. 모르면 몸으로 때워야 합니다.”

나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리며 말했다. 다른 한 손은 여전히 지팡이를 쥐고 다스 페론의 관을 겨눈 채다.

드드드드, 쾅

드디어 마나파동포가 발사되었다. 다스 페론의 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순간적으로 주변 공간이 얼어붙더니 쨍 하고 얇은 유리막처럼 깨어져 버렸다.

좁은 밀폐된 아공간에 마나파동포의 충격파가 발생하니 아공간 전체에 마나의 폭풍이 일어났고, 힘의 주체를 잃은 포켓 플레인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크으, 그 기술은 발동시간이 길군.”

역시 셰이든은 한 번 보고 마나파동포의 약점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거든. 여기 그거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아공간이 깨어지니 바로 눈앞에 이반 경이 나타났다. 뿌우와 렉스, 마리포즈 역시 이미 와 있었다.

“이반 경, 다스 페론은 제거했어요. 저 섀이드 마법사가 마나파동포의 약점을 알았으니 도망가지 못하게 합시다.”

“염려 마십시오. 어스 케이지!”

오호, 이것은 정령력과 8서클 마법의 콜라보레이션. 이반 경이 드디어 자체 마법을 개발하기 시작했구나.

지하실 전체에 땅의 정령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공간과는 다르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결계는 쉽게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방금 전까지 나를 가두었던 셰이든은 이제 자신이 갇힌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안에는 우리 쪽 아군만 가득 있고, 셰이든을 도울만한 뱀파이어를 비롯한 동료들은 지하실 바깥쪽에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다.

“셰이든, 다스 페론의 뒤를 따라 물질계에서 사라져라.”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동시에 이반 경이 셰이든 경에게 백마법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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