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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41화 (141/250)

로엔의 마나뱅크 141화

새벽이 왔다. 칠흑 같은 하늘의 색이 점점 파란색을 띠기 시작했다.

어둠의 주민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우리는 뱀파이어의 습격을 성공적으로 지켜낸 것이다.

체프코트 가문의 힘은 확실히 강했다. 숨겨져 있던 마법진을 몇 개 개방하니 뱀파이어들을 막아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믐날의 뱀파이어는 거의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을 가지고 힘과 마력 또한 극대화되기 때문에 이쪽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다.

기사단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가 났으리라.

그나마 우리가 다스 페론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전체적인 작전에 큰 차질이 왔다. 다스 페론이 움직였다면 마탑의 마법진 몇 개는 파괴되었을 것이고, 방어진형에 균열이 생겨 승패를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리라.

어찌되었든 이제 날이 밝았고, 뱀파이어들의 움직임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후퇴를 하고 싶어 했지만 다스 페론의 명령이 없어서 억지로 싸우는 듯 한 느낌이었다.

자, 다스 페론, 이제 슬슬 몸을 뺄 시기가 아닐까? 아니면 설마 땅에 파묻혀서 시간의 흐름을 잊은 건가? 그렇다면 정말 좋은데 말이야.

츠츠츠츠츠

땅에서 묘한 기운이 일어난다. 하얀 안개의 덩어리가 흙 사이로 올라오는 것이다.

“왔어요. 작동시켜요.”

나는 시선은 안개를 주시한 채 이반 경에게 말했다.

이반 경은 즉시 오염의 마법진을 가동시켰고, 나는 그 힘을 조종하여 안개에게 씌웠다.

촤아아아아

“아앗, 싫어. 이 냄새.”

뒤쪽에서 구경하던 케이니 양이 급히 코를 막으며 말했다. 후각이 민감한 그녀로써는 참기 어려운 악취일 것이다.

컹, 컹, 컹

렉스도 이게 뭔 냄새냐는 듯 크게 짖었다.

나는 얼른 손짓으로 렉스를 부르며 마리포즈에게 말했다.

“마리야. 렉스를 타고 안개를 쫒아가자. 이 냄새가 있는 한 우리를 따돌릴 수는 없을 거야. 이반 경, 가요. 지금 끝장을 봐야 합니다.”

어둠의 시간은 끝나고 이제는 인간의 시간이다.

반격의 시간이고, 추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모두 렉스를 탔다.

안개가 날아가는 속도는 꽤 빨랐지만 렉스가 전력으로 달리니 충분히 쫒을 수 있었다.

중간에 가로막는 뱀파이어들이 있었지만 렉스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몸통박치기로 막아서는 자들을 뚫고 지나쳤다. 그러면 뿌우가 뒤쫓아오는 뱀파이어들에게 뇌전을 한방씩 날렸다.

다스 페론은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지난밤의 공격을 주도했나보다. 자신이 안개로 변할 거라고는 거의 생각을 안 한두 퇴로의 준비를 그다지 철저하게 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뱀파이어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퇴각하고 있었다. 저들의 추적은 암살자 길드에서 담당하기로 했으니 우리는 다스 페론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이미 우리는 시가지로 들어와 있다.

황제의 명에 의해 날이 완전히 밝을 때까지 오늘은 아무도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뱀파이어의 습격에 대한 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나오라 해도 안 나올 것이다.

덕분에 렉스가 덴판의 수도거리를 마구 뛰어다닐 수 있다.

촤앙

“결계군요. 조심해야 합니다.”

이반 경이 공간의 일그러짐을 감지하고는 말했다.

“진실의 시야.”

나는 즉시 주문을 시전 했다. 내가 아닌 렉스를 대상으로 사용했는데 그것으로 렉스의 눈에는 묘하게 뒤틀어진 공간이 모두 제대로 보일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몸 안에 있는 대부분의 마나를 사용한 셈이다. 이제는 지팡이 창을 들고 육박전으로 싸워야 한다.

그 사이 다스 페론의 안개는 상당히 커다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반쯤 열려진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갔고, 창문은 바로 닫혀 버렸다.

“렉스야. 부숴.”

콰지직

렉스는 창문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고, 벽을 통째로 부수며 저택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스 페론의 냄새를 맡으며 앞을 막는 것은 문이든 벽이든 모두 부수었다.

하지만 역시 건물 안쪽에는 상당한 전력이 숨겨져 있었다.

가장 먼저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검게 칠한 전신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는데 눈빛이 흐릿한 게 현혹된 자들인 것 같았다.

“마리야, 네가 상대해.”

“옛.”

마리가 렉스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 사이 렉스는 다시 몸으로 그들을 밀쳐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흑기사들이 렉스를 향해 연신 칼질을 해댔지만 렉스의 털 오라기 하나도 잘라내지 못했다.

이렇게 보니 렉스가 강하긴 강하다. 지금가지 달리면서 목띠의 힘을 충분히 받은 렉스의 털과 가죽은 크리드 경이라고 해도 상처 입히기 힘들 정도로 강화되었다. 방어적인 면에서는 렉스가 우리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면의 문이 부서지며 문어와도 같은 괴물이 촉수를 쏟아냈다. 렉스와 크기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거대 문어였다.

마치 전설에 나오는 마수 크라켄처럼 보였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크기가 10미터 전후이니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옥트라팬! 다스 페론이 마수도 소환했군요.”

이반 경이 문어 마수를 알아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옥트라팬은 중급 마수로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서식하는 괴물문어인데, 보통 흑마법사가 자신의 본거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소환한다.

이동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열두 개의 다리가 수십 미터까지 늘어나고, 재생력도 뛰어나서 거점을 방어하는 데에는 최적화 된 마수라 할 수 있다.

“마수를 소환한 것은 다스 페론의 뒤를 봐주는 마법사일 거예요. 옥트라팬을 소환했다면 7서클 흑마법사겠죠.”

“확실히 7서클은 되어야 옥트라팬을 소환할 수 있을 겁니다.”

이반 경은 렉스의 등에서 뛰어 내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땅의 정령을 소환하여 옥트라팬의 촉소를 막아냈다.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흑마법사 역시 소환수 근처에 있을 테니 같이 정리하지요.”

마수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말하는 이반 경, 흑마법사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백마법사의 자신감이랄까?

무엇보다 그는 8서클이다. 여기는 맡기자.

“렉스야, 옆방으로 뚫고 들어가.”

크왕

렉스는 옥트라팬을 피해서 옆방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안에서 몇 개의 벽을 부수며 다스 페론의 냄새를 찾았다.

옥트라팬이 있는 곳에서 눈부신 섬광이 일어났다. 이반 경이 작정하고 백마법을 쓰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조심해야 한다.

이반 경까지 빠졌으니 이제는 나와 렉스, 그리고 뿌우만 남았다.

나는 지금 마법을 쓰기 애매한 상황이니 큰 전력이 되지 못한다. 방금 전 옥트라팬 같은 존재가 한 번 더 앞을 막는다면 렉스의 추적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옥트라팬 이후로는 이렇다 할 방해가 없었다.

뱀파이어들도 모두 지난밤의 전투에 나갔는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렉스가 갑자기 찾았다는 듯 크게 한 번 짖고는 커다란 문을 부수고 나타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자 지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방이었는데, 그 안에는 수십 개의 관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제단 같은 게 있고 마찬가지로 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전에 본 레베카의 관하고 모양이 같았다.

“찾았군. 가자 렉스.”

크르르르르

렉스는 내가 말을 했는데도 전진하지 않고 자세를 낮춘 채 앞을 경계했다. 그리고 보니 그림자가 이상하다. 내가 순간적으로 감지하지 못할 그림자라.

“섀이드인가?”

섀이드는 그림자로 변한 인간이다. 고스트보다 상위의 언데드인데, 평소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그림자로만 존재하지만 특정 공간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힘을 발휘한다.

바로 이 공간같은 결계 안에서는 말이지.

“크크크, 어서 오게. 자네가 렌 경이로군.”

나타났군. 저건 마법사다. 섀이드로 변한 마법사로구나. 젠장.

단순한 인간 마법사가 아니었다. 이걸 왜 생각 못했지?

그림자로 변한 인간은 평소에 지닌 힘을 다 쓸 수 있다. 이성도 그대로 가지기 때문에 마법사가 저런 식으로 섀이드로 변하면 정말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스 페론보다 더 귀찮을 수도 있다.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는 말이다.

“쩝, 마지막 순간에 생각보다 위험한 가디언이 있었군요.”

나는 렉스의 등 뒤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그나마 렉스가 마기를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일반 물리공격은 섀이드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다.

“누구시죠? 왜 뱀파이어의 편을 드는 겁니까.”

“이 상황에서 질문을 하다니, 렌 경은 소문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군. 좋은 재목이야.”

재목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질문에 대답이나 좀 하지 그래?

나는 속으로 욕을 하며 다시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 같은 존재가 어째서 뱀파이어의 관지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말이죠.”

“관지기라, 맞는 말이야. 난 다스 페론의 관지기지. 최초의 배반자이자 최후의 추종자. 한번은 배반했지만 두 번은 배반하지 않은 후원자.”

한 번 배반했는데 두 번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그런 애매한 소리는 다른 데 가서 하고 어서 네 정체나 말해 봐.

“난 다스 페론의 친부라네. 페론의 암살자들은 내 아이를 납치해갔고, 난 그들을 추적해서 전멸시켰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아이도 죽었고, 마족과 계약을 함으로써 되살아났지.”

“그래서 다스 페론을 돕는다는 겁니까? 같은 마법사들을 모두 죽이려는 자를?”

“크크크, 마법사들이야말로 내 진정한 원수지. 그들이 날 추방하지 않았다면 페론의 암살자들이 감히 내 아이를 납치할 수 있었겠나? 나는 마법사들을 이용해 페론의 암살자들에게 복수했고, 다시 그들을 이용해 나 이외의 마법사들을 모두 죽일 걸세.”

그렇고 그런 관계군. 인과 관계가 묘하게 얽혀서 같이 복수를 하려는 건데,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이자도 타협할 수 없는 적이니 제거하는 게 맞겠지.

“뿌우야, 이반 경에게 가서 마법사 찾았다고 이쪽으로 좀 오시라고 해.”

“알았당.”

“크크크, 이반 경을 부르겠다고? 아무리 내가 섀이드로 변한 상태라지만 그자가 오면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겠군.”

“그렇죠. 원래 이반 경은 옥트라팬 주변에 당신이 있을 줄 알고 남은 거니까요.”

말하자면 마수와 마법사를 동시에 상대해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거다. 내가 보기에도 이반 경이 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난 그 사이 저 관속에 누워있을 다스 페론의 심장에 말뚝을 박고 관을 파괴한 후 흙을 정화하면 된다.

문제는 저자가 이반 경이 올 때까지 그냥 저렇게 서서 웃고 있을까 하는 점인데, 그나마 이쪽에는 렉스가 있으니 어떻게든 된다.

나 또한 결계로브를 입고 있으니 죽지 않을 자신은 있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때 자네가 쓴 기술은 뭔가? 다스 페론의 육체 중 대부분을 일순간에 소멸시킨 그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군. 이반 경이 마법진을 써서 9서클 공격마법을 사용했다면 또 모르겠는데, 도망가는 도중에 어떻게 그런 공격력이 나올 수 있는지 말이야.”

돌연한 질문에 한숨이 나온다. 이자는 정말 마법사가 맞구나. 이 상황에서도 궁금한 것을 못 참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같은 마법사로서 대답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걸 말할 수는 없지.

“쉽게 말할 수도, 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상황이 급해서 썼고요.”

“흠, 그렇다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 물어봐야겠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있을까요?”

나는 창을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뿌우가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이반 경도 같이 오고 있으리라.

이반 경이 오자마자 손을 쓸 거다. 정확하게는 바로 직전에 나와 돌진을 함으로써 저 섀이드 마법사가 이반 경보다 우리에게 먼저 손을 쓰도록 유도할 거다.

그러나 섀이드 마법사는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반 경은 우리의 대화에 끼지 않는 게 좋겠군. 시동!”

콰드드드드

“아, 이런 젠장.”

갑자기 지하실 전체가 확 뒤집혔다. 천정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천정이 되었다. 나는 거꾸로 서 있는 셈이었는데, 이게 무슨 현상인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포켓 플레인, 섀이드 마법사는 지하실 전체를 아공간화 한 것이다.

이건 9서클 마법이다. 상식적으로 7서클 마법사는 쓸 수 없는 것인데 그는 썼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8서클인 것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어찌되었든 지금 난 거의 망했다. 이제 이 지하실에는 누구도 못 들어온다. 이 포켓 플레인이 풀리려면 적어도 며칠은 걸릴 거고, 그 사이에는 이반 경도 뿌우도 못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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