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39화
다른 뱀파이어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무조건 다스 페론만 막는다. 그믐날에 다스 페론을 상대로 결판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 시키려는 게 목적이다.
결판은 해가 뜬 이후에 낸다.
결국 승부는 이 지옥과도 같은 밤을 버티느냐 못 버티느냐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뿌우와 크리드 경도 다스 페론이 가는 쪽으로 이동하게 했다.
달이 없어서 축 쳐져 있던 렉스도 다스 페론의 냄새를 맡았는지 이빨을 드러내며 눈을 부릅떴다.
그러니까 동쪽의 뱀파이어들을 막으러 간 서피 이외에 우리 멤버는 모두 다스 페론을 상대하러 가는 셈이다.
“저기군.”
내 눈에도 다스 페론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니 양의 말대로 그는 정말로 인간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족의 날개와 네 개의 팔을 하고 있었다.
네 개의 팔이라. 그것도 각 손에 묘한 무기를 들고 있네. 뱀처럼 구불구불한 검신을 지닌 단검이 둘,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지창 비슷한 단창 하나, 낫인지 갈고리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무기가 하나.
“크리드 경, 저런 무기에 대한 대처법을 아세요?”
상대가 암살자 전용의 특수무기를 쓰면 일반 검으로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검과 검으로만 싸움을 해 온 기사들에게는 크게 불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드 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 염려 말게. 하지만 팔이 넷인 괴물과는 처음 싸워보니 조심하긴 해야겠군.”
“좋아요. 그럼 이전과 마찬가지로 크리드 경이 맞서 싸우고 저와 이반 경이 뒤에서 보조를 하도록 하죠. 이반 경, 다스 페론을 상대로 끊임없이 공격 마법을 써 주세요. 강할 필요는 없어요. 단지 연속해서 계속 써야 해요.”
“다스 페론의 역파장을 무효화 할 방법이 있나 보군. 알았네.”
이반 경은 크리드 경의 앞이라 반말로 나에게 대답했지만 표정을 보니 어떻게 방법을 찾았는지 무척 궁금해 하고 있었다.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듯 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이거 가르쳐 주려면 흑마법에 대한 이론을 제대로 알려줄 수밖에 없다. 괜찮으려나?
생각해보니 상관없을 것 같다. 어차피 이반 경은 백마법 특화라 흑마법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고, 흑마법의 원리를 제대로 배우면 그만큼 백마법의 효과도 더 올라갈 테니까 나중에 가르쳐 줘야겠군.
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시선을 다스 페론에게로 돌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다스 페론의 모습이 슉 하고 꺼졌다.
“엇, 투명 마법을 썼나 봅니다.”
이반 경은 얼른 진실의 시야를 사용하며 말했다. 그러나 난 진실의 시야고 뭐고 무조건 최고의 방어마법을 이반 경에게 썼다.
“3중 배리어!”
카카캉
겨우 타이밍이 맞았다.
다스 페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고, 그가 은신을 했다는 것은 곧 바로 공격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찾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게 더 우선순위가 아니겠는가.
다스 페론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누군가를 노리고 소위 말하는 뒤치기를 시도했는데, 그건 크리드 경이나 내가 아닌 이반 경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크리드 경은 뒤치기가 통할 상대가 아니고, 나 역시 로브 덕에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음을 다스 페론은 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이반 경뿐.
나의 순간적인 판단이 이반 경의 목숨을 구했다.
내가 친 배리어는 생성되자마자 깨어졌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반 경, 앞으로 굴러요!”
나는 크리드 경이 이미 다스 페론을 향해 검을 지르는 것을 보고 외쳤다. 이반 경은 내 말에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히고 앞으로 굴렀고, 절묘하게 크리드 경의 검이 다스 페론의 동선을 가로막았다.
“큿, 역시 쉽게 가지는 않는군.”
다스 페론은 기습이 실패로 끝나자 아쉽다는 듯이 몸을 뒤로 뺐다. 그는 크리드 경과 정면에서 싸울 마음이 없는 듯 바람처럼 빠르게 물러나려 했지만 뒤쪽에는 뿌우가 버티고 있었다.
“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갈 때는 아니란당.”
파지지직
“이놈의 정령 새끼!”
그래, 우리 뿌우 잘 한다.
뿌우는 다스 페론을 상대로 싸울 생각이 없다. 그냥 막을 뿐이다.
싸움은 크리드 경이 한다.
크리드 경은 이미 다스 페론을 자신의 영역 속에 가두어 버렸다. 검의 고수가 왜 무서운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광경이었다.
다스 페론이 아무리 빨라도 이제는 크리드 경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빠르게 움직이려다 크리드 경의 검날을 향해 스스로 뛰어드는 상태가 되어 한쪽 팔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암살자는 대전 상태가 된 순간 이미 패한 거라며? 다스 페론, 넌 숨는데 실패했고 이렇게 우리와 다시 정면에서 싸우게 됐잖아. 이번에는 결판을 내자.”
사실 그믐날의 다스 페론과 결판을 낼 마음은 없다. 이건 말 뿐이고, 다스 페론이 도망가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와 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발한 것이다.
“크크, 어떻게 내가 이쪽으로 올 줄 알았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은 내가 예측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어.”
그러게. 케이니 양의 청력은 나도 예측하지 못했지.
어쨌든 다스 페론은 내 말에 대답하느라 한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 사이 크리드 경이 다스 페론의 팔 하나를 잘라내는 데 성공했고, 나는 이때다 하고 이반 경에게 말했다.
“공격해요.”
“플래임 볼트.”
파파파팍
“어스 웨이브.”
두두두두
“이뮤니티 크랙.”
파직
나 역시 변형 흑마법을 사용하여 다스 페론에게 저주를 걸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저주도 통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제대로 내 변형 흑마법에 대해 분석을 해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이것으로 다스 페론의 뒤를 봐주는 마법사가 흑마법에도 능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잘 된 거지.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나 사이트!”
마나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마나 사이트 마법을 거니 다스 페론의 역파장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이미 한 번 분석을 한 파장인 만큼 전체가 보이지 않아도 쉽게 파악이 되었다. 뭔가 묘하게 뒤틀린 듯한 파장의 흐름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후훗, 저걸 개량이라 한 건가?
혹시나가 역시나다.
나는 진심으로 웃었다. 고위마족이 준 능력은 그 자체로써 완벽에 가까운 성능을 발휘한다. 거기에 약점이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약점을 보완하려 시도하는 순간 오히려 개량이 아니라 퇴보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반 경이 계속해서 공격마법을 쓰기 때문에 역파장은 끓임 없이 요동을 쳤고, 가끔씩은 필요이상으로 크게 움직였다.
역시 원래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다스 페론의 의지가 알게 모르게 역파장에 개입되기 시작했군. 이전에는 다스 페론이 마법을 인식하는 순간 거의 자동으로 역파장이 발산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역파장의 강도도 다스 페론이 조절할 수 있게 되었기에 본인의 의지가 역파장에 영향을 미치는 거다.
나는 손과 입으로는 계속 마법을 쓰면서 시선과 마음은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크리드 경의 공격이 점점 다스 페론을 압박해 갔고, 이반 경과 나의 마법 공격 역시 쉬지 않고 발사되었다.
그 사이 뿌우와 렉스가 뒤를 막고 틈틈이 뇌전을 쏘고 렉스는 발로 돌덩이를 쳐서 날리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스 페론은 믿는 바가 있는지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팔 하나가 잘려 나갔는데도 괴로워하거나 분노하지도 않는다.
이건 뭔가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다.
아마 크리드 경을 단숨에 보낼 필살기를 준비해 왔겠지.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내가 잡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필살기를 치는 순간, 다시 말해서 다스 페론의 의지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역으로 치고 들어간다면 역파장의 힘을 깰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계속해서 결판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드디어 다스 페론이 변형을 시작했다.
부우욱
팔이 두 개 더 늘어났다. 잘린 팔 이외에 다섯 개의 팔이 생겨난 셈이다.
사실 네 개도 동선이 겹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한 몸에 여섯 개의 팔이라는 것은 과해도 너무 과하다. 전투력이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섯 개의 팔로 육박전이 아닌 마법을 쓴다면?
두 팔로 수식을 그리는 게 아니라 여섯 개의 팔로 수식을 그린다면 마법의 강도가 몇 배는 세질 것이다.
“크리드 경, 피해요.”
나는 빠르게 외치며 지팡이의 미스릴 우산을 팍 하고 폈다.
이반 경 역시 일순 공격마법을 멈추고 지니고 있던 미스릴 우산을 꺼내 폈다.
크리드 경도 뒤로 휙 하고 물러나더니 등에 매고 있던 미스릴 우산을 폈다.
이건 사전에 약속된 움직임이다. 내가 미스릴 우산을 펴면 무조건 같이 펴주는 게 우리의 작전이다.
다스 페론은 순간 움찔했다.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킬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의 사전 동작이 바로 이 미스릴 우산을 펴는 것이라 믿고, 지팡이 끝으로부터 몸을 빼도록 준비한 것이니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
바로 몸을 움직여 나의 지팡이 끝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면서 다스 페론이 쓰려는 능력이 약간 늦어지고, 역파장 역시 강하게 발산되었다가 그 반동으로 확 하고 줄어들었다.
이때다.
“리플렉트!”
7서클 마법 중에 상대의 마법을 반사하는 리플렉트는 잘 쓰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가 있는 것이다.
리플렉트는 반투명한 거울처럼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위치는 다스 페론의 바로 앞이고, 평소라면 역파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역파장 범위가 워낙 좁아서 약화되지 않았다.
그걸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다스 페론은 더 이상 타이밍을 늦출 수는 없다는 듯 다섯 개의 팔을 하나로 모아 중앙에 사람 머리통만한 검은 기운을 형성시켰다.
“죽어랏, 다크 브레스!”
콰콰콰콰콰콰
검은 기운은 한쪽이 퍽 하고 터지며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갔다. 바로 크리드 경이 있던 곳이고, 리플렉트가 설치된 위치이기도 하다.
파파파파파파
리플렉트가 제대로 작동하니 검은 기운은 그대로 반사되어 다스 페론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 힘은 역파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필살의 집념까지 온전하게 다스 페론에게 되돌려 주었다.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능력은 거의 없는 법이지. 후훗.
“이때에요. 결계 형성!”
나는 다스 페론의 주변에 결계를 쳤다. 다스 페론을 노린 게 아니라 이반 경이 쓰려는 마법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반 경은 내가 신호하자마자 자신이 알고 있는 최강의 백마법을 시전했다.
“홀리 워드!”
우우우우웅
흑과 백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까?
다스 페론은 자신이 사용한 다크 브레스와 이반 경이 사용한 홀리 워드의 힘을 동시에 받았다. 평소라면 둘이 공존할 수 없는 흑마법과 백마법의 기운이 역파장과 묘하게 얽히며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켰다.
콰콰콰쾅
내가 친 결계는 그 힘에 1초도 버텨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1초도 못 되는 시간동안 발생한 압력은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