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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35화 (135/250)

로엔의 마나뱅크 135화

4장 암살자를 찾아서

밤이 뱀파이어의 것이라면 낮은 인간의 시간이다.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렉스와 함께 사방을 돌아다니며 근처에 뱀파이어들이 왔었는지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역시 그날의 전투 이후로 뱀파이어는 완전히 떠났는지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스코트 가문에서도 나처럼 따로 수색대를 편성하여 뱀파이어들이 관을 숨길만한 장소를 철저하게 찾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믐날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스코트 가문에서도 더 이상 뱀파이어의 위협은 없다는 결론에 동의를 했다.

나는 그 사이 스코트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했다. 어차피 지금의 스코트 가문은 뱀파이어의 공격을 자력으로 막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오기 전에 마법사들을 파견하여 다른 가문을 지원,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코트 가문에서는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지만, 마법사를 파견해주지 않으면 유사시 이쪽도 지원이 어려울 거라는 이반 경의 냉정한 한 마디에 6서클 마도사 3명과 4, 5 서클 마법사 17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남은 전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이니 꽤 무리를 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요?”

이반 경이 조용히 와서 나에게 물었다. 아직 공격을 당하고 있는 가문이 없는 만큼 페론의 암살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다.

“페론의 암살자들을 추적할 생각은 없어요. 암살자의 뒤를 쫓다보면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고, 실패는 곧 함정으로 스스로 뛰어드는 결과를 만드니까요.”

“그렇다면 따로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암살자를 찾는 것은 역시 같은 직업인 암살자겠죠. 우리는 페론이 아닌 다른 암살자조직을 찾아서 협조를 구해야 해요.”

“다른 암살자조직이 순순히 협조를 해 줄까요?”

“그들은 선택을 해야 해요. 뱀파이어의 수하가 될 것인가. 아니면 마도가문의 편을 들어 뱀파이어와 싸울 것인지.”

페론이 이대로 어둠의 영역을 모두 장악하게 되면 다른 암살자 조직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 주요 인물들은 하급 뱀파이어가 되거나 하다못해 뱀파이어에게 현혹당한 꼭두각시가 될 게 뻔하다.

뱀파이어가 되기 싫어서라도 암살자조직들은 우리에게 적극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가 암살자조직을 찾아내서 타협을 해야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다. 그들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과거 마도가문은 필요에 따라 암살자조직을 토벌했는데, 그때의 기본 원칙은 뿌리까지 뽑는 것이어서 본거지를 찾아내기만 하면 안에 있는 자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죽였다.

암살자 조직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협조한다고 놔두어도 나중에 토벌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결코 먼저 접근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저들의 본거지를 찾아내고, 협조하면 놔두고, 거부하면 토벌을 한다는 식으로 타협을 해야 울며 겨자 먹기로 협조를 해 줄 터이다.

“그렇다면 제가 아는 곳을 먼저 들리도록 하지요. 소론달의 그림자라는 조직인데, 수는 많지 않지만 꽤 실력이 있습니다.”

이반 경이 말했다.

“어, 암살자 조직을 알고 계신다고요?”

“과거 마족을 찾아다닐 때 암살자 조직을 이용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곳입니다.”

“좋네요. 그럼 소론달의 그림자라는 곳을 먼저 들리죠.”

나는 이반 경의 제안을 받아들여 바로 소론달의 그림자가 본거지로 삼고 있다는 휄룬으로 향했다.

*

휄룬 역시 항구를 낀 무역도시로 배를 타고 일주일 정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반 경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가장 큰 저택으로 향했다.

휄룬 항구의 최대 실력자인 소론달 자작의 저택은 웬만한 백작가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크고 화려했는데, 이반 경의 설명으로는 그 저택 지하 전체가 소론달의 그림자 본거지라고 했다.

소론달 자작은 우리가 찾아오자 직접 나와서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했고, 차를 한 잔 마신 후에 별로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제 또 다른 직업을 알고 오신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경의 그림자와 대화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예상은 하고 계시겠지만 페론의 암살자들을 추적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위험한 존재라서 마법사뿐만 아니라 경의 그림자에게도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부인할 생각은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꼭 우리 쪽에서 사람을 보내야 하나요?”

“그런 건 아니고, 따로 협조를 요청할 곳 두 군데를 추천해 주신다면 소론달 자작께서 우리를 도운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후훗, 페론의 암살자들을 쫓던가, 아니면 다른 조직 두 군데를 알려 달라. 이게 나의 조건이다. 이런 식으로 암살자 조직들의 본거지를 계속 알아나가면 얼마 안 가서 전 대륙의 암살자 조직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과연 내 예상대로 소론달 자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두 군데의 조직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으로 따로 추적대를 편성할 의무에서 벗어나고 이 지역 내에 페론의 암살자들이 들어오는지 감시하는 것만으로 타협을 보았다.

우리는 그날 바로 소론달 자작이 알려준 조직을 찾아갔고, 그들 중 하나는 추적대를, 다른 하나는 또 다른 조직 두 군데의 정보를 주었다.

약 보름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총 16개의 암살자 조직을 방문할 수 있었다. 하루에 두 군데도 들른 날이 있는 셈이니 그야말로 쉬지 않고 암살자조직의 본거지를 방문한 셈이다.

그 가운데에 우리의 협조를 거부한 곳은 세 군데에 불과했고, 그들은 즉석에서 토벌을 당했다. 특히 만디온의 조직은 이미 페론의 암살자들의 손에 떨어진 듯, 안쪽에서 뱀파이어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추적대를 파견한 암살자 조직은 모두 여섯 군데, 그들은 만디온의 조직 토벌에 직접 참가는 하지 않았지만 구경은 했기에 뱀파이어의 위협이 심각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이후로는 우리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뱀파이어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전력을 다 했다.

그 결과 우리는 마침내 페론의 암살자들이 간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바로 현재 최고의 가문인 체프코트 가문이었다.

“바로 머리부터 치겠다는 거군요.”

“체프코트 가문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효과는 최고일 테니까요. 가문도 가문이고 덴판 제국의 영역 내에서 일을 벌일 수 있다면 대륙 어느 곳도 뱀파이어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겁니다.”

이건 사기 문제다. 사기가 꺾이면 대응이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공포에 떨며 다들 마탑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떨다가 하나하나 각개격파 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믐날이 며칠 안 남았네요. 서둘러서 체프코트 가문으로 향하죠.”

“서둘러 간다면 2,3일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군요. 바로 준비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시간싸움이다. 하루를 먼저 도착할 수 있다면 그만큼 적의 공격에 대응할 여유가 더 생긴다.

우리는 우선 체프코트 가문에 뱀파이어들이 그쪽으로 향했음을 알리고 마법사와 암살자들을 데리고 이동을 시작했다.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아무래도 이동속도는 떨어졌지만 그래도 시간 내에 도착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을 가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뱀파이어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이쪽의 움직임도 페론의 암살자 측에 의해 관찰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심야에 시작된 뱀파이어들의 기습은 은밀하면서도 악독했고, 우리 무리의 뒤쪽에서 쫓아오는 다른 조직의 암살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

“어서 피해요. 마법사들이 그대들을 보호할 겁니다.”

나는 즉시 암살자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뛰어가 외쳤다. 그러나 다른 마법사들은 암살자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렌 경, 저들이 우리와 섞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저들 중에 페론의 암살자가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서로 믿지 못하면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하지만 믿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게,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마법사들은 이미 상당히 겁에 질려 있었다. 이들은 모두 스코트 가문의 사람들이니 뱀파이어와 암살자들의 공포를 직접 경험했다.

“파이어 볼!”

마법사 한 명이 겁에 질려 이성을 상실했는지 암살자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파이어볼을 날렸다.

“무슨 짓인가!”

파싯

다행히도 이반 경이 때를 맞춰서 마법해제를 했기에 아군이 아군의 마법에 희생당하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측 암살자들은 마법사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 버렸고, 그들은 마법사 쪽으로 접근을 멈추고 오히려 반대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런, 저자들은 아예 부대를 이탈할 생각이로군.”

크리드 경이 혀를 차며 말했다. 확실히 그들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이 행동할 생각이 없는 듯 했고, 여기를 벗어나면 본거지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서 숨을지도 모른다.

그건 안 되지.

강제로 잡아두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암살자들을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를 악 물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더 이상 도망가면 마법사들에게 공격하라고 할 겁니다. 돌아와요.”

상황이 정말 더러우니 아군을 위협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네. 쩝.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나는 크리드 경에게 말했다.

“크리드 경, 저와 같이 뱀파이어를 막아 주세요. 이반 경, 정말 암살자들이 도망가면 공격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크리드 경과 함께 암살자들 사이로 뛰어들어 뱀파이어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암살자들도 도망갈 마음을 비우고 필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겨우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마법사들과 암살자들 사이에 생긴 감정적인 골은 너무나도 깊어져서 서로 가까이 접근하려 하지도 않았다.

아마 암살자들은 자신들이 이용만 당할 뿐, 어차피 뱀파이어들을 소탕해도 결국에는 자신들 역시 토벌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참 어려운 문제다. 나는 길을 가면서 계속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이것만큼은 쉽게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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