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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33화 (133/250)

로엔의 마나뱅크 133화

지루하다면 지루한 싸움이었다.

밤새 내내 우리는 화염의 장벽을 유지한 채 뱀파이어들과 싸웠다.

크리드 경은 그야말로 쉬지 않고 싸웠는데, 화염의 장벽 안으로 진입해 오는 뱀파이어들은 꽤 강한 놈들뿐이라서 그런지 쉽게 처리할 수 없었다.

그래도 크리드 경의 검에 당해 안개화 된 뱀파이어가 30은 넘는다. 안개화를 할 정도면 하급은 아니니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안개화 된 놈들은 외곽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놈들을 놓칠 수는 없다. 관 속에서 며칠 쉬면 다시 멀쩡해질 게 뻔 하니 그 전에 찾아내서 관을 부숴야 한다.

“뿌우야, 저놈들 따라가. 위치 확인하고.”

“알았당.”

뿌우가 바람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갔다. 안개가 날아가는 속도보다 바람이 나는 게 더 빠르니까 아마 거의 놓치지 않을 거다.

이제 곧 새벽, 날이 밝으면 뱀파이어들이 물러갈 테고, 우리는 그들을 추적하여 숨겨진 관을 찾으면 된다.

아직까지 이쪽의 피해는 거의 없다. 몇몇 마법사가 오일펌프 마법을 계속 쓰다가 탈진해서 쓰러진 정도?

화염의 장벽이 정말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원견의 마법사가 크게 외쳤다.

“적의 수괴입니다!”

수괴? 설마 다스 페론!

얼른 바깥쪽을 살피니 과연 다스 페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초승달 빛 아래서 싸우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크크크, 과연 왔군. 내 누이를 소멸시킨 자들이.”

“다스 페론 복수를 원하는가?”

“임무를 수행하다 죽은 자에 대한 복수는 없다. 우리 페론은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기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지.”

다스 페론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놈이 처음 우리를 보자마자 자기 누이를 소멸시킨 놈들이라고 했으니 지금 하는 말은 그야말로 말일 뿐, 저 차가운 눈동자 속에는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는 게 틀림없다.

“다스 페론, 잔말은 필요 없다. 싸우는 도중이니 덤빌 테면 덤벼라.”

“크크크, 난 암살자다. 전사가 아니지. 너희를 정면에서 단숨에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대결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왜 나타난 거냐?”

“말을 해주기 위함이지.”

“말?”

“10대 마도가문의 가주 중 넷을 비롯해 고위 마도사 열네 명이 오늘 밤 죽었다. 내 수하들의 성과지.”

“뭐라고!”

“렌 경, 고맙다. 네놈이 우리에 대해 10대 마도가문에게 알려주었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언데드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했을 뿐, 인간에 대한 방비는 오히려 소홀히 했다. 방심한 자들만큼 암살하기 좋은 대상은 없지.”

“…….”

“우리는 암살자다. 뱀파이어가 된 형제들도 있지만 아닌 형제들도 있지. 본가가 공격당해 전멸한 후, 지류의 형제들은 중앙의 지시를 받지 못해 모두 흩어졌었다. 나는 그들을 십년의 세월동안 모두 끌어 모았지. 크크크크.”

이런, 당했다.

저놈이 초승달의 결전 당시부터 나를 통해 10대마도가문을 속일 생각이었구나.

인간 암살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10대마도가문에 침투하여 기회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전쟁이 선포되고 마법사들의 정신이 온통 뱀파이어에 쏠리니 그들이 움직인 것이다.

성동격서!

암살자들은 결코 정면에서 상대를 치지 않는다.

항상 상대를 속이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적의 빈틈을 찌른다. 한번 당하면 치명적이고,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가주들을 비롯해 장로급 마도사들이 열 명 넘게 암살당했다면 10대 마도가문의 위상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들 뱀파이어와 싸우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힘이 모자란 자들은 이곳 스코트 가문처럼 공격을 당해 무너지고, 힘이 되는 자들도 문을 걸어 잠그고 활동을 정지한 채 방어에 치중하다가 결국 서서히 말라서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 본거지가 공격당할지 모르니 사람들을 모아 연합을 만들기도 애매하다. 무엇보다 다스 페론의 본거지를 모르니 힘을 모아도 공격할 곳이 없다.

더군다나 이자들은 뱀파이어, 죽지 않는다. 10년이고 100년이고 마도가문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다.

다스 페론은 준비를 많이 한 자다. 나 때문에 조금 일찍 세상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걸 거꾸로 이용할 정도로 머리도 좋다.

강적이구나.

나는 이를 악 물고 외쳤다.

“적어도 오늘 이곳을 공격한 뱀파이어들은 모두 소멸될 것이다!”

“글쎄 그럴까? 네놈의 정령이 내 형제들을 쫒고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정령이 과연 너에게 돌아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

“뭣!”

이놈이 정령에 대한 대책까지 세웠다는 건가?

나는 급히 뿌우에게 원거리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러나 정말로 뿌우와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연결은 되는데,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다. 뿌우는 결계에 갇힌 것이다. 자신이 갇힌 지도 모르는 결계다. 아마 깨달으려면 한참 걸리겠지. 깨닫는다고 해도 결계를 빠져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스 페론을 노려보았다.

결계까지 칠 수 있다니? 그건 바로 다스 페론이 수하에 꽤 뛰어난 마법사를 두었다는 의미가 된다.

아마 7서클 마도사가 그를 돕는 것 같다.

마법사를 멸종시키겠다는 자를 돕는 마도사라니. 그놈도 제정신이 아닐 듯하다. 무엇보다 마법사라면 치를 떠는 다스 페론이 마법사를 수하에 두는 것이 제일 무섭다.

아 놔, 곤란하다. 이런 타입 정말로 싫은데.

지금까지 만났던 마족의 후계자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도취되어 그것을 쓰기 바빴다. 나는 힘의 크기에 관계없이 전생의 지식을 이용하여 그들을 연구하고 빈틈을 찾아내 최적의 전술로 대응을 함으로써 비교적 쉽게 적을 무찌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다스 페론이 우리를 연구해서 작전을 짜고 있다. 본인의 능력이 부족하면 따로 방법을 간구해서 조력자를 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다스 페론에 대해 알고 있는 능력과 전투력은 이제 크게 의지할 수 없는 정보가 되었다. 저자가 지난 한달 동안 어떤 식으로 힘을 키웠고, 누가 그를 돕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반면에 다스 페론은 오랜 시간동안 10대마도가문을 연구해 왔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약한 지금 공격을 시작했다.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못한 자.

우리는 공격당하는 입장이 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어둠속에 존재한다.

“페론의 형제들은 성공을 확신할 수 있을 때에만 움직인다. 그러하기에 스스로의 목숨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것이지. 오히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축배를 보내기도 하고 말이야.”

다스 페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과거 그들의 암살시도를 벗어난 것을 말하나보다.

하긴 내가 아는 페론의 암살자들은 그런 면이 있었다. 한 번 시도를 하면 재시도를 안 하고 임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저놈이 지금 쓸 데 없는 화제를 꺼내는 것은 시간을 끌려는 속셈인 것 같다.

우리 데빌 베인의 실수를 스코트 가문에게 알려서 체면을 깎는 한 편 뒤로는 무엇인가를 꾸미는 거다.

나는 급히 델모트 백작에게 말했다.

“방어 마법진을 확인하세요. 지금 확인할 수 없는 곳이 어디어디에요?”

“헛, 방어 마법진!”

델모트 백작은 급히 원견의 마법사에게 전갈을 보내고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제3, 제6, 제7번 마법진이 이상합니다.”

“저놈은 크리드 경에게 맡길게요. 이반 경, 가요. 마리야. 와라.”

“알았네.”

“옛.”

이반 경과 나, 마리포즈, 렉스, 서피는 급히 가장 가까운 제3 마법진으로 갔다. 과연 그곳에는 수상한 사람 몇이 작업을 하다가 우리를 보고 급하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렉스, 네가 처리해. 우린 다음 마법진으로.”

나는 상대를 보고 즉석에서 대충 전력을 확인한 후 렉스를 돌진시켰다. 지금 작업을 당하고 있는 곳은 세 군데, 이걸 모두 지켜내지 않으면 그믐날의 결전에 버티기 힘들다.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제7 마법진인데, 이건 오늘 복구해 놓은 곳이다.

저들이 이걸 다시 파괴하면 대규모 폭발을 일으키게 해 놓았는데, 지금 그 함정을 들키면 안 된다. 차라리 멀쩡한 제5 마법진을 포기하더라도 제7 마법진의 함정만큼은 들키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이반 경, 부탁해요.”

나는 제7 마법진에서 작업하는 인간 암살자들도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이반 경에게 부탁했다. 이반 경은 즉시 그들을 현혹시켜서 결계의 핵으로부터 물러나게 했다. 아마 추가적으로 누군가가 공격해 오더라도 이반 경이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마리, 서피는 마지막으로 제5 마법진으로 향했다.

“마리야, 제거해.”

“옛.”

파파파팍

다스 페론이 직접 나타나서 시간을 끌려는 이유가 이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겠지. 작업자들은 전투력이 떨어지니까.

“휴, 다행히 끝난 건가?”

나는 쓰러진 자들을 한번 흩어보고는 마법진의 핵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인간 암살자들은 이상한 도구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봉인용 금속 뚜껑을 제거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았다.

처음 본다. 단순히 뜯어내는 게 아니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장치라니. 뭘까?

나는 그것들을 주워서 내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런데 그때, 다스 페론이 우리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나타나자마자 바로 내 뒤로 와서 두 팔로 내 몸과 목을 조이며 말했다.

“크크크, 과연 렌 경. 머리가 비상하군.”

“으윽, 그대가 이렇게 쉽게 침투하다니.”

“조금 무리를 했지. 내 능력이 흑마법이고 너무 많이 쓰면 마나고갈이 된다는 것을 배운 후, 그걸 역으로 이용하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거든.”

으, 스스로 역파장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네. 그래서 결계로브에 느껴지는 압력이 더 강해진 거로군.

다스 페론은 내가 입고 있는 로브가 엄청난 방어력을 지녔고, 자신의 능력으로도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를 끌어안고 움직임을 막은 것이다.

“너를 지금 죽일 생각은 없다. 내 친구가 너를 만나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 물론 네놈의 로브에도 흥미가 있고 말이야.”

으, 나 납치되는 거야?

마리포즈는 다스 페론에게 접근을 하지 못한다. 기능이 정지되기 때문에 싸우려 해도 오히려 이쪽의 약점만 드러나는 꼴이 된다.

렉스의 목띠가 있었으면 조금 나았을 테지만 지금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서피 역시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다스 페론에게는 덤빌 생각을 안 했다. 내가 명하면 억지로라도 덤볐을 테지만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놔두었다.

“가자. 네놈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스코트 가문을 한 달 정도 더 놔두는 것도 감수할 수 있지.”

다스 페론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끌고 외부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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