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32화
3장 마도 대 암살자
우리가 영지인 미스틱 게이트로 돌아왔을 때, 이미 마도가문에 대한 뱀파이어들의 습격은 시작된 후였다.
10대 마도 가문 중 하나인 스코트 가문이 뱀파이어들의 습격에 큰 피해를 보고, 다섯 개의 마탑 중 두 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문의 주인이 다스 페론에게 잡혀서 피를 빨려 죽은 것은 스코트 가문뿐 아니라 다른 마도 가문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경고를 해 주었기에 어느 정도 대비를 한 상황이었는데도 그렇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뱀파이어 암살자들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뱀파이어들이 어디를 공격 할지 모르니 마도가문들은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따로 정예들로 힘을 모아 그들을 추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스코트 가문에 대한 지원도 보내지 못했다. 만약 뱀파이어들이 다시 스코트 가문을 공격한다면 이번에는 끝장이 날지도 모른다. 공격을 하지 않아도 이미 십대 가문으로서 어울릴만한 힘은 발휘하지 못하겠지.
“결국 우리보고 그들을 찾아내라는 거군요.”
나는 미스틱 게이트로 날아온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고 이반 경에게 말했다.
“마법사는 지원을 못 해줘도 물질적인 보상은 얼마든지 요구하라고 되어 있군요. 어떻게 할까요?”
“십대 마도가문쯤 되면 배에 기름이 많이 끼었을 테지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돈으로 때우겠다는 마음가짐인데, 이쪽도 나쁠 건 없죠.”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십대 마도가문이 방어에 치중할 경우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아무런 정보도 없다가 기습을 당했다면 한 방에 끝이 났을 지도 모르지만 이 상태라면 다스 페론도 쉽게 십대 가문을 공략하지 못한다.
스코트 가문의 경우 내 경고를 무시하고 국경 분쟁에 마법사를 투입했다가 선수를 맞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다른 가문들은 그야말로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일절 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 현명하다면 현명한 건데, 이렇게 되면 왕국들이 마도 가문을 무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도움이 되지 않는 마도 가문을 계속 우대해 줄 왕국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우리쪽 방비는 거의 완벽하지요?”
“미리아가 숲의 결계를 이용해 언데드 방어마법진을 강화한다고 했습니다. 뱀파이어가 들어오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적어도 기습을 당할 걱정은 없겠군요. 우리 영지는 엘프의 숲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엘프의 숲에는 언데드가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 영지도 마찬가지이고, 억지로 들어와도 절대 숨을 수 없다.
일단 행적이 드러나면 군대가 출동하던지 아니면 아예 민민브이가 가서 밟아 버릴 수도 있으니 다스 페론이 직접 와도 크게 두렵지는 않다.
내가 얼마나 방어에 신경을 썼는지 이제 알겠지? 십대 마도가문보다 우리 영지가 더 훌륭한 방어를 자랑한다고.
“그럼 지금 다스 페론이 공격할 곳은 어디일까요?”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스코트 가문을 다시 공격하는 걸 거예요.”
마리포즈가 말했다. 그동안의 다스 페론의 행동으로 분석해서 말한 의견이니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좋아, 그럼 일단 스코트 가문을 지원하도록 해요. 지원하는 김에 물질적인 부분도 확실하게 해서 이참에 스코트 가문의 지지를 좀 받아야겠네요.”
“따로 물질적인 지원을 해줄게 있을까?”
“방어 마법이 많이 붕괴됐을 테니까 새롭게 마법진을 설치해서 구축을 해줘야지요. 그렇게 해도 이미 피해를 많이 봐서 다시 10대 가문에 들기는 어렵겠지만요.”
“좋아, 그럼 다른 가문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그 물자를 스코트 가문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야겠군.”
“크리드 경의 말씀이 맞아요. 그건 상단에 맞기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스코트 가문으로 가요.”
“알았네. 다음 그믐이 오기 전까지는 도착해야 하니 서두르자고.”
다행히도 스코트 가문은 서두르면 보름 이내에 갈 수 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하루도 쉬지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미리아는 여전히 영지에 남아서 방어를 돕기로 했으니, 이번 멤버도 다스 페론으로 변신한 레베카와 싸울 때 바로 그 인원이다.
“정말 힘들군. 마족의 후계자가 하나 나타날 때마다 대륙 전체가 흔들리니, 이거 원래는 백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큰 사건인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크리드 경. 좀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사는 게 쉽지 않네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혼식이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는데, 그때까지 뱀파이어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하객이 3분의 1로 줄어들 거 같다. 일단 마도가문은 축하 사절을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낼 테니까 말이야.
다스 페론!
내 결혼식을 망칠 수는 없으니 그 전에 꼭 너를 찾아내서 사건을 종결지어 주겠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일행들과 함께 영지를 떠났다.
*
스코트 가문은 근래에 꽤 명성을 떨쳐서 10대 가문에 든 비교적 신참에 속하는 가문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마나뱅크 사태에서도 위축되거나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근 왕국의 대소사에 관여해서 세력을 확장하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다.
우리가 스코트 가문의 본 마탑에 도착했을 무렵, 그들의 분위기는 거의 초상집과 같았고, 문지기들은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는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우리가 데빌 베인의 깃발을 세우고 접근하자, 안에서 장로 중 하나이자 현재 임시 가주인 델모트 백작이 직접 뛰어나왔다. 그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이랄까?
뭐, 현재 이 상황에서 우리가 구세주가 맞긴 맞지.
“또 습격이 있었습니까?”
이반 경이 묻자 델모트 백작은 체면도 잊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밤마다 파상적으로 공격해 옵니다. 여덟 개나 되는 방어 마법진 중 다섯 개가 이미 깨어졌는데, 복구가 안 되는 실정입니다.”
“한번 보지요.”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리는 델모트 백작이 안내하는 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마법진의 핵이 완전히 파괴된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걸 어떻게 부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렌 경께서 보내주신 자료에 의하면 적의 수괴가 마나를 약화시키는 역파장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핵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은…….”
델모트 백작의 말대로다. 이런 시설의 방어 마법진의 핵은 대리석 바닥에 구멍을 파고 위를 마법금속으로 몇 겹이나 씌워서 봉인을 한다.
그런데 파괴된 흔적을 보니 위를 막아놓은 마법금속 뚜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파괴한 게 아니라 그냥 지워버린 느낌이랄까?
다스 페론에게 내가 모르는 능력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른 피해는 없습니까?”
“우리는 모두 방어마법진 안에서 싸웠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인적 피해는 없습니다. 단지 인원이 부족해서 마탑 하나를 더 포기하고 이제는 이곳과 살라인 지역의 마탑에 마법사들을 집결시킨 상황입니다.”
표정이 거의 절망적이군. 다섯 개의 마탑을 운영하다가 순식간에 세 개의 마탑이 날아갔으니 미칠 것 같겠지. 비워놓은 마탑을 뱀파이어들이 그냥 멀쩡하게 놔두었을 리도 없고.
“마탑 말고 왕국의 다른 피해는 없나요?”
“없습니다. 그놈들은 전혀 흔적도 없이 와서 딱 우리 마탑만 공격합니다. 인근 마을이나 성은 전혀 건드리지 않아요.”
마법사의 피만 빨겠다는 건가.
적어도 레베카가 말한 내용 중에 상당한 진실이 있었긴 하군. 지금 공격도 10대 마도가문에 국한되어 있고, 어쩌면 최악의 사태가 와도 10대 마도가문만 희생되면 상황이 종결되고 그자들이 잠적할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어?
피의 갈증은 저주다. 마법사의 피를 마셔야 한다면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가 사라질 때까지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일단 삼일 뒤에가 그믐이니, 그때까지 최대한 적의 공격을 막고 마법진을 복구해 봅시다.”
“복구할 수 있습니까? 아니, 제가 이반 경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할 겁니다. 하루 하나정도씩 3개는 복구할 테니 더 이상 피해가 나지 않도록만 합시다.”
이반 경의 말에 델모트 백작은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거의 가문이 멸망하고 자신들 모두 뱀파이어의 먹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듯하다.
우리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마법진을 손볼 수 있는 것은 나와 이반 경이고, 마리포즈도 그걸 도울 수 있다.
크리드 경은 다른 마법사들의 배치를 확인하러 갔다.
“정식으로 복구하려면 힘들겠군요. 어떻게 할까요?”
“간단하게 고치죠. 일주일만 버티게 만들고, 누가 뚜껑을 열면 아예 폭발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지뢰라고 하지. 다스 페론이 걸리면 꽤 타격을 입을 거다. 물리적인 폭발을 일으킬 테니까 말이야.
우리는 서둘러 어제 파괴되었다는 마법진을 복구했다. 원래대로 하는 게 아니라 외형과 효과만 똑같고, 안에는 자폭형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게 걸리면 좋고, 안 걸려도 일주일 정도는 마법진의 효과가 나타나니 그믐날에 대한 대비로는 충분하다.
그렇게 서둘러 작업을 하다 보니 금세 해가 지고, 바로 달이 떴다.
나는 이반 경과 함께 마탑의 정면에 버티고 서서 적의 진입해 오기를 기다렸다.
데빌 헌터의 깃발을 마탑 위에 세워서 적이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린 상태다.
과연 올까? 아니면 공격을 포기할까.
개인적으로는 다스 페론이 직접 왔으면 좋겠다.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볼 수 있게.
그동안 나는 다스 페론에 대해 연구를 계속 해 왔고, 그자의 마나를 보는 감각능력을 방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리해 왔다.
마나 고갈 상태에 빠뜨리기가 힘들어졌으니 이제는 그의 능력 자체를 봉인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마법진을 파괴한 흔적을 보면 다스 페론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능력이 있는 것도 같다.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데,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붙어보고 생각하자.
“옵니다!”
마탑의 위쪽에서 감시를 하던 원견의 마법사가 외쳤다. 마법의 눈을 한 번에 다섯 개나 가동시킬 수 있는 일급 원견의 마법사다. 그자가 있어서 그나마 뱀파이어의 파상공격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긴장을 한 채 밤안개 속을 헤치고 나타나는 자들을 보았다.
전신에 검을 옷과 두건을 쓴 자들, 겉으로 보기에 사람인지 뱀파이어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냄새로 알 수 있다.
죽은 자의 냄새. 결코 상쾌한 느낌은 아니다.
“불화살을 쏴라!”
델모트 백작이 외쳤다. 그러자 마탑 중앙으로부터 수백발의 불화살이 뱀파이어들을 향해 날아갔다.
뱀파이어가 불화살에 맞을 리는 없지만 특수 처리된 불화살은 땅에 박혀서도 여전히 타올라 마치 횃불처럼 주변을 밝혔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불화살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오일 펌프!”
촤아아악
화르르르륵
거센 화염의 장벽이 생겨나더니 마탑의 방어마법에 반응하여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플레임 웨이브! 불의 파도는 실재 화염이기도 하지만 마법으로 강화되어 거의 금속을 녹일 수준의 고열을 발했다.
이건 그동안 아껴두었던 비장의 수법 중 하나로, 우리가 참전해서 반격의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뱀파이어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반응이 늦은 자들은 그대로 타서 재가 되었다.
하지만 어떤 뱀파이어들은 그런 화염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뚫고 들어왔다.
“크리드 경, 부탁해요.”
“처음부터 힘든 환경이군.”
크리드 경은 물의 정령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그대로 화염지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상대 뱀파이어들을 하나하나 베어나갔다. 나와 이반 경은 아직 마법을 쓰지 않고 아꼈다. 오늘 밤은 길고, 적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