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31화
승부는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다스 페론이 마족 형태의 본체로 변하여 전투력이 강해졌다고 해도 크리드 경은 기술적인 우위로 충분히 그를 상대했다.
또한 이미 다스 페론의 육체 중 태반을 흡수한 렉스와 서피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모습과 투지로 달려들었다.
또한 렉스의 목띠도 렉스의 투지에 반응해 끊임없이 힘을 발산하니 다스 페론의 마법 약화 능력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저게 한계가 있는 거였군.”
대충 어떤 원리인지 확신이 왔다. 마나의 흐름을 인식하는 감각과 역파장의 발산으로 인한 약화는 이미 분석이 끝난 부분이지만, 어떤 형식의 역파장을 발산하는지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저것도 흑마법의 일종인 셈이다.
반자동으로 발동되는 흑마법이랄까? 강력하기는 한데 이것 역시 마법이기 때문에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소모한다.
다스 페론은 스스로 인식하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사를 원망하는 주제에 그 자신이 흑마법사인 것이다.
원래 상급 뱀파이어는 마법도 잘 쓰는데 그것을 마족의 힘으로 변형시켰을 뿐, 내용은 같다.
그래서 마나뱅크가 존재할 때에는 숨어서 살았구나. 상대가 자신보다 더 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면 결국 마법약화능력은 다 소모된 후 기능이 상실되어 버리고, 그 뒤에는 마법사들의 파상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마도가문도 상대할 수 있다고 믿고 세상에 나서려는 거다. 상대 마법사가 다스 페론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승부를 볼 자신이 있었겠지.
“마법이란 말이지? 그럼 대응할 방법이 있지. 후훗.”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반 경에게 말했다.
“이반 경, 다스 페론은 본인이 마법사인지 모르고 있는 마법사에요. 힘은 마족의 후계자답게 8서클 이상이고, 무효화만 쓸 수 있는 상태고요.”
“그게 무슨, 아! 그런 것입니까?”
이반 경도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미소를 지었다.
상식적으로 말해 무효화만 쓸 수 있는 마법사와 수많은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 둘 중 누가 더 셀까?
결국 다스 페론의 능력과 한계가 드러난 지금, 저자는 반쪽짜리 흑마법사인 뱀파이어에 불과할 뿐이다.
더군다나 본인이 자각하지를 못하면 마나의 소모를 제어할 수 없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마나고갈 상태에 대한 지식도 없을 것이다.
“마법 난사로 역파장을 소모시키겠습니다.”
“리듬을 맞추죠. 이반 경이 먼저 하세요.”
“파이어 볼.”
“라이트닝.”
“파이어 볼.”
“라이트닝.”
이반 경과 나는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마나소모가 적은 범위공격마법을 번갈아가며 썼다. 크리드 경이 공격범위 안에 들어가지만 어차피 약화되어 사라질 마법이기에 별로 신경을 안 썼다.
다스 페론의 역파장은 우리가 쏘는 마법을 넙죽넙죽 집어삼켰고, 다스 페론 본인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크리드 경과의 싸움 때문인지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더군다나 근거리에서 렉스의 목띠가 발하는 강화와 방어 마법의 효과는 아무리 약화시켜도 계속해서 다시 효과를 발하니 다스 페론은 지금 세 명의 마법사와 마나 소모전을 펼치는 셈이다.
1대 3이다.
제 아무리 마나가 많아도 이런 식으로 여러 명과 소모전을 벌이면 견뎌낼 장사가 없다.
어느 순간, 다스 페론은 갑자기 전신의 힘이 빠짐을 느끼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왜 이러지?”
뭐긴 뭐야. 마나고갈이지.
마나고갈은 당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멀쩡하다가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전신에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렵게 되어 버리고, 보통은 그대로 기절해서 한참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그냥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고, 쓰러진 것을 돌볼 사람이 없으면 얼어서 죽거나 굶어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마탑에서는 마법사를 키울 때 마나고갈 상태의 위험성을 몇 번이나 경고하고 그 전조현상 같은 것을 확실하게 교육시키게 된다.
전투 중에 마나고갈 상태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대에게 죽여 달라고 항복하는 것과 같은데, 다스 페론은 기본이 뱀파이어라 그런지 바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역파장도 발산하지 못해서 내가 쏜 라이트닝이 그대로 다스 페론의 몸에 직격해 버렸다.
파지지지직
“끄으으으, 이럴 수가.”
“차앗!”
크리드 경은 갑자기 엇박자로 공격패턴을 바꿔서 절묘하게 다스 페론이 보인 빈틈을 찔렀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다스 페론의 목이 날아갔고, 몸통은 서피와 렉스가 한 점의 마기도 흘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집어 삼켜버렸다.
그리고 뿌우가 뇌전의 기운을 일으켜 다스 페론의 머리가 박쥐로 변하지 못하게 감싸 버리니, 이반 경은 바로 동결 마법으로 머리를 얼려서 굳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아아!”
최후의 단말마. 지독한 표정으로 얼음덩어리가 되어버린 다스 페론의 머리는 별로 보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끝난 건가요?”
이반 경은 자신이 결판을 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물었다.
“일단 끝난 것 같기는 한데요.”
나는 말끝을 흐렸다. 다스 페론을 이기긴 했는데, 아까부터 내가 뭔가 빠뜨린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부웅
“엇, 항구의 배가!”
이 고동소리는 항구에서 배가 출항할 때 내는 소리다. 항구에 남은 배는 딱 한척, 레베카를 가두어 놓은 배 뿐인데 출항의 고동소리가 울리다니.
몰래 출항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우리를 약 올리려는 듯 일부러 내는 거다.
“속은 건가요?”
“다스 페론이 스스로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레베카가 탄 배를 출항시켜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나는 얼음덩어리가 된 다스 페론의 머리통을 보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것은 다스 페론이 아니었다. 바로 다름 아닌 레베카의 머리였다.
“이런, 설마 우리는 지금까지 레베카 양과 싸운 건가?”
스스스스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레베카의 머리가 녹았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속여서 미안해요. 동생이 내 몸을 공유하는 것처럼 나도 동생의 몸을 공유할 수 있어요. 힘껏 싸웠는데 결국 이기지 못했네요.”
“설마 다스 페론은 레베카 양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따돌리려 했다는 겁니까?”
“렌 경의 그 기술은 너무나도 막강해서 내 동생은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고 하네요. 동생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복수의 맹세와 자신의 생명이에요. 난 그 다음이니 어쩔 수 없어요.”
“그런가요.”
씁쓸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친혈육이었던 레베카를 남기도 혼자 떠나다니.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불멸자는 자신이 소멸당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피하게 되어 있다. 다스 페론은 불멸자에 가까운 몸이 되면서 이미 인간적인 부분을 거의 잃어버린 모양이다.
“안타까울 뿐이에요. 적어도 전 렌 경이 다시 그 기술을 쓰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동생은 한번만 더 그걸 보면 대응책을 알아낼 수 있다고…….”
레베카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팍 하고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정말로 레베카는 소멸된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하를 뒤져서 레베카 양의 관을 찾아내 파괴하죠. 아마 배 안에 실려 있는 관은 레베카 양의 것이 아니라 다스 페론의 것이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스 페론은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항구를 떠났다. 우리를 따돌리고 승부를 포기한 채 복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지하기지를 탐색해서 결국 레베카의 관을 찾았고, 그 안에 담긴 흙을 정화하고 관 자체를 파괴해 버렸다. 이것으로 레베카는 완벽하게 소멸된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방에서 다스 페론이 남긴 쪽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암살자인 내가 너희와 정식으로 결투를 하게 된 시점에서 이미 나의 패배를 인정한다. 하지만 난 승부를 이기려는 자가 아니다. 너희를 죽이려는 자일뿐이다.
아마 이후에도 너희는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너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내 칼 뿐. 그것이 너희의 심장을 관통하는 날을 기대해라.-
“쩝, 암살자의 살인예고장을 받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요.”
“어떻게 다스 페론을 추적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마도 가문과 뱀파이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행적이 드러날 수도 있겠지요. 돌아가서 추적할 방법을 생각해 봐요.”
“알겠습니다.”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은 묵묵히 뒷정리를 했다. 나 역시 애매해진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느라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마법으로 작은 배 하나를 만들었고, 뿌우의 도움으로 바람을 조종하여 겨우 항구를 떠나 인근 항구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레베카 양의 말대로 마나파동포를 쓰지 않고 승부를 낼 수 있었으니 다스 페론은 계속 우리를 경계할 뿐, 쉽게 공격해 오지 못할 겁니다.”
배 안에서 이반 경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다스 페론은 마나고갈에 대한 경험을 한 셈이라 두 번 다시 그 수법에 당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는 정말 마나파동포를 써서 어떻게든 단숨에 그자를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물론 그것도 다스 페론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이야기다.
다스 페론이 선언한대로 그는 암살자다. 잠자고 있는데 칼로 찌르면 마나파동포고 뭐고 없다.
어떻게든 그자의 본거지를 빠른 시일 내에 알아내야 한다.
관을 쉽게 이동시킬 수는 없으니 관만 찾아낸다면 다스 페론은 싫어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레베카의 관을 부수었을 때 남은 조각이 있다. 그리고 배에 실려 있는 관도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둘의 관은 같은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모양도 똑같았다.
가짜 관에 속을 염려는 없는 셈이다.
“이 관조각으로 추적 장치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들은 원래 한 몸이었고, 서로의 육체를 공유할 수 있으니 관도 통하는 게 있겠죠.”
작은 나뭇조각에 불과하지만, 레베카의 관조각은 지금 다스 페론을 추적할 유일한 단서가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승부는 이제부터다.
꼭 너를 찾아낼 거다. 다스 페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