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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27화 (127/250)

로엔의 마나뱅크 127화

우리는 다스 페론의 본거지가 있는 장소로 갔다.

의외로 그곳은 별 다른 방비가 없었다. 단지 한 사람이 서 있을 뿐이다.

이런 젠장.

“다스 페론!”

어떻게 저자가 멀쩡히 서 있을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돌려 마리포즈를 보았다. 그러나 마리포즈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크크크, 덕분에 또 한 번 죽음을 경험했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던 기분이었는데 말이야.”

“정말 멀쩡한 겁니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묻는 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경우가 있다.

다스 페론 역시 별로 숨기려 하지 않았다.

“몇 가지만 빼고는 멀쩡하지. 네놈들이 다시 이곳으로 올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함정에 빠진 거군요. 우리는.”

그러고 보니 주변이 이상하다. 항구에 그런 큰 이변이 일어났는데 도시는 평온하고 이 부근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주변을 살피려하자 갑자기 확 하고 기세가 바뀌었다. 뱀파이어의 소굴다운 피냄새와 살기, 그리고 음습함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회색의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너희들을 제거하고 우리도 항구로 갈 것이다. 이제 세상에 마법사들은 사라지고 우리 뱀파이어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 채운다. 어둠의 힘이 인간을 지배하니 공포가 세상의 유일한 규칙이 되리라.”

으, 저놈은 진짜 나쁜 놈이네. 제대로 마족의 계약자잖아.

다스 페론은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자신의 할 말만 하고는 손을 들며 외쳤다.

“쳐라! 저 젊은 마법사의 피로 행군의 축배를 들도록 하자.”

꺄하아아아아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렉스가 그에 대응하려는 듯 크게 포효했다.

크와아아앙

그래, 렉스야. 네가 있으니 조금 위안이 되긴 한다.

나는 얼른 렉스의 등 뒤에 올라타며 외쳤다.

“빠져나가자. 렉스야. 뛰어!”

크왕

렉스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도 눈치가 빨라서 지금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위협과 동시에 몸은 피하려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포즈 역시 목띠를 손으로 잡고 있다가 바로 올라타며 목띠의 에너지를 최대한 방출시켰다.

콰콰콰콰콰콰

이건 정말 자주 안 쓰는 건데, 목띠의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방출시키면 상당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난 결계의 로브로, 마리포즈는 원래 튼튼한 몸이라 버틸 수 있는 거다.

우리에게 달려들던 뱀파이어들은 그 충격파에 밀려 뒤로 튕겼다. 그리고 렉스가 움직임에 따라 방출된 에너지가 털에 반응하여 하나의 결계를 형성했다.

“마리야, 다스 페론은?”

“안 움직여요.”

“그럼 몸이 완전한 게 아니군.”

도망가는 시늉을 했는데 그대로 서서 다른 뱀파이어들이 달려드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저놈의 멀쩡함은 허세이기 쉽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정도의 허세냐 하는 거다.

겨우 서 있는 데 강한 척 하는 거면 지금 달려들어 끝장을 봐야 한다.

무리하면 곤란하지만 싸울 수는 있는 상태라면? 당연히 도망가야지.

도망갈 준비는 되어 있다.

가냐? 마냐?

“뿌우야, 앞장 서!”

못 먹어도 고! 다.

“알았당! 뿌우우우우.”

뿌우는 다스 페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 뒤로 서피가 날아갔고, 마리포즈와 내가 탄 렉스가 연속해서 다스 페론을 향해 돌진했다.

모험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회복력을 보인 다스 페론에게 지금 물러선다면, 앞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계속 될 것이다.

다스 페론은 나의 마나파동포를 경험했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상황을 분석하면 마나파동포가 가진 문제점을 알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다스 페론은 내 지팡이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지팡이 끝으로부터 나오는 절대적인 파괴력의 마나파동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스쳐도 거의 사망이었으니 제대로 걸리면 한 방에 소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거의 불멸자에 가까운 뱀파이어가 되었으니 자신이 소멸될 가능성이 만분의 일이라도 있으면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소멸에 대한 편집광적인 경계심.

그게 바로 불멸자가 가지는 거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놈! 겁도 없는 놈!”

성공이다. 다스 페론은 뿌우의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고 옆으로 피했다. 서피의 공격도 마찬가지, 작은 결계를 방패처럼 만들어 튕겨냈을 뿐 반격으로 서피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다스 페론의 시선은 여전히 내 지팡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힘의 방출을 최대한 아끼며, 언제든지 마나파동포로부터 피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마나파동포는 발사! 그러면 펑 하고 나가는 그런 게 아니거든.

발사! 그러면 지지지지직, 펑 하고 나가는 거라고.

이런 난전 상황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기술이란 뜻이지.

나는 마나파동포를 쓰는 대신 지팡이의 창날을 꺼내 크게 휘둘렀다.

휘익

다스 페론은 상체만 굽혀서 너무나도 쉽게 피했다. 그의 반응속도로 볼 때, 나의 공격은 그야말로 굼벵이가 기어가는 수준일 터이다.

하지만 렉스의 몸통 박치기와 물어뜯기는 거대한 덩치로 인해 다스 페론이 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흥, 그 정도로 나에게 덤비다니.”

휘익, 펑

다스 페론은 몸을 크게 움직인 게 자존심이 상한 듯 코웃음을 치며 처음으로 반격을 했다.

마리포즈가 달려들어 대검으로 내려찍다가 가슴을 얻어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전투 형태의 마리포즈를 한 방에 쓰러뜨리다니, 저 주먹질은 공성병기 수준의 파괴력이 있다는 소리군.

하지만 전투 형태의 마리포즈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되지.

마리포즈는 쓰러지자마자 몸을 굴려서 일어나며 대검을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다스 페론은 대검에 담긴 힘을 무시 못 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가 되었다.

뿌우는 첫 공격을 한 후 바로 하늘로 올라가 위쪽을 막고, 서피는 다스 페론의 뒤에 똬리를 틀 듯 자리를 잡았다.

왼쪽에는 렉스가, 오른쪽에는 마리가 대검으로 다스 페론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영지에서 틈이 날 때마다 연습한 연속공격을 통한 즉석 포위진형을 지금 처음으로 써서 성공시킨 것이다.

“이때다. 썬더 스톰!”

“뇌전 강화당!”

“샤아아아!”

“크왕!”

“마력방출!”

콰콰콰콰콰, 꽈드드드등

이건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전 방위에서 몰아치는 마나의 폭풍과 뿌우로 강화한 뇌전의 소나기.

단지 이걸 쓰려면 우리 일행 전부가 상대의 공격권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야말로 결판을 내기 위한 집단연쇄 공격인 셈이다.

이거 막으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간다!

나는 굳게 결심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다스 페론을 지켜보았다. 과연 다스 페론은 모든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동시에 얻어맞았다.

훈련의 성과다. 후훗.

“크으으으.”

참지 못하고 신음성을 흘리는 다스 페론, 그의 눈이 붉은 빛을 띠웠다.

나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이놈이 회복이 되긴 됐구나. 그걸 다 몸에 맞았는데 여전히 멀쩡하다니.

“좋다. 죽여주지.”

거의 쇠를 긁는 듯 한 목소리다. 살기가 형상화되어 입에서 튀어나오는 듯 한 느낌?

다스 페론의 양 손의 피부가 벗겨지더니 뼈다귀만 남았다.

마법은 아니다. 뭔지 모르지만 뱀파이어 특유의 필살기를 쓰려는 모양이다.

“죽어보자!”

저게 뭔지 모르지만 렉스든 서피든 맞으면 치명적일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마리포즈는 이번 공격으로 이미 기능이 저하되어 움직임이 둔해졌다.

가까이 접근한 것만으로도 마법력이 약해진 것이다. 겨우 뒤로 굴러서 다스 페론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보인다.

어쨌든 나는 최강의 방어구를 입고 있다. 기능이 약화되어도 여전히 최강인 결계로브. 동료를 희생시키는 것 보다는 이걸 믿는 게 낫다.

꽈드드득

내가 앞으로 달려들어 몸으로 다스 페론을 막자, 그의 뼈다귀만 남은 손이 송곳처럼 나의 아랫배를 찔러왔다. 그리고 그 손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해서 무서운 관통력을 보였다.

“크으윽!”

배가 아프다. 결계로브가 뚫리지는 않았는데, 안쪽에 있는 배에 내상을 입는 것은 무슨 이치일까? 피가 울컥하고 넘어왔지만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여전히 뼈다귀 손은 맹렬하게 회전하며 내 아랫배에 압력을 가했다. 기필코 결계로브를 뚫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어쨌든 난 안 죽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멋진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나는 품속에 손을 넣고, 발더스 스팅을 꺼내 다스 페론의 뼈다귀만 남은 손목을 거침없이 잘랐다.

파캉

“크아아아악!”

다스 페론은 크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지듯 넘어갔다. 단순히 팔을 잘린 걸로 끝나지 않고 능력에 큰 피해를 입었나보다.

발더스 스팅, 결계로브를 뚫은 유일한 무기. 이게 내 손에 있으니 좋긴 좋구나. 하하.

“렉스야, 물어!”

크왕!

렉스는 쓰러진 다스 페론의 몸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서피는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발을 묶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크윽, 이놈의 똥개가!”

푸욱

“앗, 렉스야!”

다스 페론이 팔뚝만 남은 뼈다귀 팔을 렉스의 턱 아래에 박아 넣었다. 그러나 렉스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깨문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놀라서 얼른 다가가 발데스 스팅으로 다스 페론의 팔을 어깻죽지부터 잘라냈다. 그리고는 벌려진 입사이로 지팡이 창을 쑤셔 넣으며 외쳤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마나파동포를 또 쏘겠다.”

“크으으, 마나파동포?”

“그래, 이번에 맞으면 목 아래가 소멸된 걸로 끝나진 않을 거다.”

“크크크크.”

통했다. 다스 페론이 저항을 포기한 것이다. 이자는 내가 시동어만 외치면 마나파동포가 발사된다고 생각했나보다.

뭐, 지금 상황이면 지지지지직, 펑 해도 못 피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허세가 통했으니 이쪽의 약점을 밝힐 필요는 없다.

근데 이제는 어떻게 하지? 마족의 후계자를 사로잡은 건 또 첨이네.

내가 잠깐 망설이는데, 갑자가 다스 페론의 몸이 스르륵 녹아서 땅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움직이면 쏜다고 했다.”

이놈이 눈치 채고 튀는 걸까?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일단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녹는 몸과 얼굴 속에서 또 한 사람이 튀어나오며 말했다.

“쏘지 말아요. 오빠는 도망간 게 아니라 내가 나온 거니까.”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 붉은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긴 송곳니가 그녀 역시 뱀파이어임을 말해주긴 하는데, 갑자기 다스 페론이 미녀로 변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안 섰다.

“전 다스 레베카, 대화는 나의 몫이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봐요.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살살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하는 레베카는 어느새 원래대로 회복된 팔뚝으로 렉스의 콧잔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 명예를 걸고 도망 안 갈 테니, 얘 좀 치워줘요. 깨물리니 꽤 아프네요.”

“하아, 어쩔 수 없군. 렉스야. 됐어. 놔 줘.”

크르르르

렉스도 갑자기 상대가 변하니 투지가 약해진 듯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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