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26화
로엔의 마나뱅크 6권
1장 둘이자 하나인 존재
촤아아악
마나파동포가 발사되는 반동으로 나는 뒤로 튕겼다. 나를 뒤에서 받치던 마리포즈 역시 같이 허공에 떴다.
렉스는 갑자기 등 뒤에 엄청난 압력을 받고 앞으로 넘어져 깨갱 하고 오랜만에 귀여운 원초적 비명을 질렀고, 뿌우는 나를 공중에서 잡아채서 허공에 뜬 채 외쳤다.
“나이스 캐칭!”
“고마워.”
그때 땅에 착지한 마리포즈가 말했다.
“반 명중이에요. 다스 페론의 가슴 아래가 소멸됐어요.”
오예! 머리가 안 날아간 게 아쉽지만 그 정도면 성공이군.
나는 반색을 하며 마리포즈에게 물었다.
“죽을 거 같아?”
“아니요. 남은 상반신 전체가 균열되어 쥐들로 변했어요.”
“이런, 플레임 필, 으윽.”
몸 안의 충격이 장난 아니다. 쥐로 변한 다스 페론이 과연 마법을 약화시킬 수 있는지 시험해 봐야 하는데 내가 비틀거리는 사이 쥐들은 땅속으로 파고들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피, 가서 한 마리라도 잡아먹어랏!”
샤사사사사사
서피가 갔다. 땅에 엎어졌던 렉스도 질 새라 뛰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갔을 때에는 이미 쥐들은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설마 쥐로 변해도 그 속도가 유지되는 걸까? 그렇다면 오히려 분열되었을 때가 더 무서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살아남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리포즈에게 물었다.
“도망가면 다시 재생돼서 나타나겠지?”
“보통 뱀파이어라면 죽었을 거예요. 신체의 70%이상이 소멸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쥐로 분열되는 능력을 쓸 정도면 아직 멀쩡한 셈이지?”
“예, 더 심한 상황이었으면 안개로 변했을 거고요.”
“그럼 반쯤 죽은 거라고 보고, 재생능력이 강화되지 않았다면 보름정도겠군?”
“저도 그 정도로 예측해요.”
마리포즈의 예측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데이터를 분석해서 하는 예측이기 때문이다.
보름이라, 그렇다면 크리드 경이 오는 시기와 거의 비슷한데?
결정을 내리자.
첫째, 보름동안 숨어서 크리드 경을 기다린다.
둘째, 마법의 천적인 다스 페론은 보름간 못 움직인다. 이때 최대한 반격을 가하자.
“생각해 볼 것도 없군. 마리야. 항구로 돌아가자. 다스 페론이 못 움직이는 사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예. 그자들의 본거지를 부수고 항구의 배를 확보해요.”
“좋아.”
나와 마리포즈는 다시 렉스를 타고 항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뱀파이어가 얼마나 있는지 몰라도 지금 한 마리라도 더 줄여놓는 게 나중에 유리하다. 하지만 다스 페론의 관을 찾으러 가기는 조금 그런데, 안개로 변했다면 몰라도 쥐로 변한 수준이라면 아직 위험하다.
보통 뱀파이어는 자신의 관 근처에서는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지하기지를 치는 것은 포기하고, 지상에 숨어 있는 뱀파이어들과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
“캬아아아!”
얼마 안 가서 또 다른 뱀파이어 무리들과 만났다.
아무래도 다스 페론이 길 막기를 시킨 듯 하군. 이것은 그자가 우리가 항구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뿌우, 렉스, 서피, 가랏.”
“알았당! 뱀파이어도 벼락 맞으면 죽는다는 걸 보여주겠당.”
“크와아앙!”
“샤아아아!”
서피도 모처럼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 기쁜 듯 큰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마리포즈는 여전히 내 앞에서 나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뱀파이어들의 싸움광경을 관찰했다. 그들은 확실히 기본적으로 암살자의 움직임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무지하게 빨랐다.
하지만 그들이 싸우는 것은 보통 물리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대기의 정령 뿌우, 강철보다 단단한 털과 가죽을 가진 흡마의 마수 렉스, 그리고 마계로부터 소환된 물의 마수 서피다.
상성이 나쁘다고 할까? 저쪽의 공격은 이쪽에 거의 통하지 않고, 이쪽의 공격은 빠르다고 피할 수 없는 뇌전이나 대형몸통박치기, 주변을 휘어감아 조이기 등등이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마리포즈에게 물었다.
“마리야, 너 저놈들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겠니?”
“지금 상태로는 힘들 것 같아요. 단지 저는 전신갑옷을 이용해 조금 느려도 싸울 수는 있겠지만 렌 경이 공격당하는 것을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요.”
“결계의 로브가 있으니 저놈들 수준으로는 날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네 움직임이 조금 더 빠를 필요는 있겠구나.”
어차피 이곳은 마리포즈의 외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언데드의 소굴이다. 마리포즈의 육체를 전투 형으로 변형시키도록 하자.
“마리야, 렉스의 목띠를 사용해서 갑옷과 융합해. 소드 드레드 형태로 적을 무찌를 것을 명할게.”
“옛! 소드 드레드 형으로 육체를 변형시킬게요.”
소드 드레드 형은 마리포즈의 육체가 완전히 갑옷과 붙고, 심지어는 대검까지 팔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전투만을 위한 형태다. 또한 목띠로부터 상당한 양의 마나를 흡수하여 일정시간동안 최대한의 힘과 파괴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형태를 할 동안에 마리포즈는 연산능력이나 인간의 감정표현능력은 약화되고, 파괴적인 기능만 극대화 되니 그야말로 병기가 되는 셈이다.
마리포즈에게 소드 드레드 형을 명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 지금은 극한 상황이다. 조력자는 없지만, 우리만으로 적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입혀서 항구의 표면을 장악해야 한다.
곧 마리포즈는 렉스의 곁으로 가서 목띠를 잡고 몸의 변형을 끝냈다. 그리고는 뱀파이어와의 싸움에 끼어들어 렉스와 팀을 이루어 확실하게 적들을 처단했다.
마나가 가득 주입된 마리포즈의 대검은 오렌지색의 화염을 내뿜으며 뱀파이어를 둘로 갈랐고, 대검에 잘린 적들은 활활 불타오르며 괴로워하다가 렉스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서피 역시 질 새라 동강난 뱀파이어들을 삼키기 시작했고, 뿌우는 하늘을 날며 외곽 쪽으로 빠지려는 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뇌전을 쏴서 다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강하구나. 우리 팀은.”
새삼 느끼는 건데, 마수 둘, 정령 하나, 인공자아 하나로 구성된 저들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팀이다. 거기에 마법사인 내가 백업을 해준다면 거의 완벽한 전투조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크리드 경과 이반 경이 있으면 어떤 적과도 맞서 싸울만한 전력이 된다. 하자만 그들이 없어도 이제는 마족의 후계자와 한번 붙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스 페론은 예외다.
솔직히 나도 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될 줄은 몰랐다. 마법의 천적 같은 능력을 지닌 다스 페론은 나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기껏 7서클에 올라 이제는 8서클 마법사를 만나도 대응을 할 수 있다가 자신만만했었는데, 상성이 안 좋은 강적을 만나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해. 그리고 상성이고 뭐고 다 무시할 수 있는 9서클이 되어야 하는 거지. 암.
*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앞을 가로막는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며 항구로 돌아갔고, 그 사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사방이 밝아졌다.
이제 뱀파이어는 나오지 못한다. 다스 페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본거지와 항구부두, 어느 쪽부터 공격할까요?”
“항구부두부터. 적어도 오늘 내로 항구에 숨어 있는 뱀파이어들은 모두 제거하자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배를 타고 이곳을 떠나도록 해야 해.”
내가 인명구제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뱀파이어들의 먹잇감이 되어 있는 항구 사람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우리는 사람들을 탈출시킬 배를 확보하기 위해 항구부두로 향했다.
역시 날이 밝으니 적은 자취를 감췄고, 우리는 거의 빈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항구부두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뱀파이어릭 미스트가!”
항구부두 전체가 회색의 안개에 휩싸여 햇살이 전혀 비치지 않고, 안에서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잘 보면 그것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좀비였는데, 딱히 전투를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이리저리 짐을 나르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구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하나둘씩 출항을 하는데, 좀비들이 배에 실고 있는 것을 보니 하나같이 죽은 사람이 들어가 있는 ‘관’이었다.
“이런, 저놈들이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려는 건가.”
다스 페론은 항구의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다른 도시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린 듯 했다. 이대로 항구 내에 숨어있으면 내 손에 걸릴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난리 났다. 저것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다 잡아 죽이지?
나는 진하게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참고, 아직 출항하지 않은 배들에 있는 관과 뱀파이어들을 하나라도 더 파괴하려고 최선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아예 배를 통째로 침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관 째로 바닷물 속에 처넣어 버리면 하급 뱀파이어는 아예 깨어나지 못한다. 단지 물고기들이 그들을 뜯어먹고 언데드 물고기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사실 사람들을 탈출 시키려면 배를 부수면 안 되지만 뱀파이어들이 다른 항구로 떠난 이상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거의 반나절이 지나 해가 넘어갈 무렵이 될 때까지 나는 항구에 남은 대부분의 배를 파괴했고 딱 한척만 남겼다.
이것은 만약의 경우 우리가 탈출을 할 때 쓸 것으로 뱀파이어는 바다 위해서 활동이 안 되고 오로지 관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스 페론이 회복되어 다시 튀어나오면 이제는 배를 타고 후퇴할 생각으로 확보한 것이다.
“좋아. 놓친 놈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제는 적의 본거지를 치자고.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 부수고, 지하는 무너뜨리는 방법을 택하면 될 거야.”
어차피 마나파동포를 적에게 들킨 이상, 지하에 대고 몇 방 더 쏴주기로 했다. 그래서 지진을 일으키면 적의 지하기지는 땅에 매몰되어 버릴 테니 대부분의 뱀파이어는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땅속에 파묻힌 채로 굳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