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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25화 (125/250)

로엔의 마나뱅크 125화

*

“뱀파이어니까 햇볕에는 약하겠지?”

“아무리 마족의 계약자라고 해도 속성적인 약점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단지 태양빛을 받는다고 바로 불에 타서 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완전히 소멸시키려면 관을 찾아서 심장에 말뚝을 박아야 할까?”

“마법에 의해 신체의 60%이상이 파괴되면 굳이 관을 찾지 않아도 될 거예요. 하지만 무기에 의한 상처는 관 안에 들어가면 회복되니 아무래도 관을 찾는 게 확실하겠죠.”

“무엇보다 마법으로 그자를 어떻게 하기 힘들 거 같아. 젠장, 마법을 약화시키는 능력이라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마리포즈는 렉스의 등에 타고 이동을 하면서 여전히 다스 페론의 약점에 대해 토의하는 중이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없다.

“백마법도 약화되겠지?”

“마나의 흐름에 역파장을 일으키는 방식이라면 백마법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요. 단지 완전히 약화되지 않은 백마법이라면 속성 상 뱀파이어에게 큰 타격을 주겠죠.”

“이반 경의 8서클 마법이라면 완전히 무효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역시 크리드 경이 계셔야 그자와 상대가 가능해요.”

“그래, 다스 페론의 속도는 크리드 경만이 반응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크리드 경을 여기까지 부를지를 생각해 봐야겠군.”

뿌우를 보낼 수는 없다. 예전에는 무한에 가까운 마나가 있어서 거리와 상관없이 뿌우를 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 몸 안의 마나만으로 뿌우를 소환하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

“숲의 마법을 이용해야겠군.”

“이곳의 나무들도 엘프의 숲과 연결이 될까요?”

“기본적으로 가능은 한데, 단지 확률의 문제야.”

내가 아는 바로는 일반 나무로 엘프의 숲에 접속해서 무엇인가 내용을 전하려고 한다면 성공률이 약 3%정도다. 그런데 이건 달이 뜬 밤에만 행할 수 있는 마법의식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하루 세 번 정도 시도할 수 있다.

“열흘 정도 걸리겠군. 재수 없으면 더 걸릴 수도 있고.”

“하지만 연락이 되도 크리드 경이 오려면 보름이 넘게 걸릴 텐데요.”

“결국 한 달은 잡아야 하겠지. 그때까지 살아남는 게 우리의 당면과제고.”

비굴해도 상관없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어쨌든 다스 페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해. 당분간 이렇게 계속해서 이동하자고. 뿌우의 바람으로 냄새가 흐르는 것을 막고, 사일런트 스트라이더로 발자국의 흔적과 소리까지 죽였으니 산짐승이라도 우리를 쫓아올 수는 없어.”

“어느 정도 멀어져야 할까요?”

“적어도 이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야지.”

문제는 이곳 할롬은 육로가 없는 고립된 항구 도시다. 다른 도시로 가려면 무조건 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데, 외곽의 숲과 산의 지리가 워낙 험하고 복잡해서 걸어서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리가 복잡하니 저들도 우릴 찾기 어렵다는 뜻이지. 버텨 보자고.”

나는 희망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정령인 뿌우의 힘은 통한다는 것을 알았고, 발데스 스팅이나 내 결계로브 정도 되는 마법무구는 완전히 무효화 되지 않고 조금 약화될 뿐이니 최소한 자신을 지킬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법도 직접 공격을 하는 것은 소용이 없겠지만 바위를 날리거나 발밑에 구덩이를 파는 것 정도는 먹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대 일 상황이라면 힘들어도 크리드 경을 앞세우고 내가 지원을 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그것보다 역파장을 중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게 핵심이다. 아니면 역파장을 일으키기 위해 기존 마법의 파장을 분석하는 감각을 흩뜨리는 수법도 좋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렉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 역시 앞쪽에서 오싹한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따라잡혔나?”

아니다. 다스 페론의 기척이라기에는 너무 약하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강력한 힘이다.

지하에서 만났던 여자 광대 수준이다.

“크크크, 발견했다. 다스 페론께서 너희가 이곳으로 올지 모른다고 하셨지.”

“주변 산맥에 뱀파이어를 깔아놨군.”

“잘 아는군. 우리는 지난 30여 년간 이곳에서 계속 힘을 쌓았다. 마나뱅크가 사라진 지금, 아무리 마도가문의 힘이 강해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육로 적으로 고립된 할롬이라는 항구도시를 이용해 페론이라는 암살자 집단이 100년간 존재할 수 있었다. 이제 그것과 같은 이치로 뱀파이어들이 마도가문의 견제를 받지 않고 힘을 키운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다스 페론이 없다. 나의 마법은 효과적으로 적을 분쇄할 수 있고, 마리포즈 역시 기능이 정지할 걱정 없이 싸울 수 있다.

“마리야. 저놈 해치워라.”

“옛.”

파팍

마리포즈는 대검을 머리위로 치켜든 채 그대로 몸을 날려 상대를 내리쳤다. 그러나 상대는 뱀파이어 특유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마리포즈의 공격을 피했다.

둘은 치열하게 싸웠고, 그 사이 나는 마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웹!”

촤아악

마법으로 된 굵은 거미줄이 둘이 싸우는 일대를 덮었다. 그것은 그다지 강력한 마법이 아니었기에 거미줄에 감긴 마리포즈와 상대 뱀파이어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을 뿐, 곧 거미줄을 가볍게 뜯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뱀파이어는 거미줄을 찢어내기 위해 멈췄고, 마리포즈는 그냥 거미줄을 무시하고 대검을 휘둘렀다.

대검이 뱀파이어의 허리를 두 동강으로 갈랐다.

역시 마리포즈는 일류의 기사다. 크리드 경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검술도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 인공자아의 좋은 점은 육체적인 수련을 반복하지 않아도 다른 자의 검술을 지켜보며 분석하는 것만으로 강해진다는 것이다.

“크윽, 생각보다 강하구나.”

상반신만 남은 자가 태연하게 말을 한다. 나는 그 모습이 짜증나서 그냥 라이트닝 볼트를 날려 상대를 뇌전으로 지져버렸다.

“뿌우야, 다른 자가 접근하고 있니?”

“있당, 네 명의 뱀파이어가 사방에서 무서운 속도로 접근 중이당.”

네 명! 미치겠네.

“렉스야, 달려!”

크왕

렉스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나와 마리포즈는 렉스의 몸에 딱 붙어서 목띠를 잡고 버텼다. 목띠로부터 마나가 흘러나와 렉스의 털에 반응하니 곧 우리는 하얀 빛덩어리로 화해 숲속을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뱀파이어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렉스가 전력을 다해도 그들을 떼어놓지는 못했다.

오히려 뱀파이어들이 점점 늘어나 이제는 여덟 명이 되었다.

이쯤 되면 다스 페론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자가 우리가 도망간 방향을 알아차린 이상 따돌리기는 쉽지 않다.

우선 뒤에 따라오는 놈들부터 처리하자. 다스 페론은 그 뒤에 생각하는 게 옳고.

도망갈 때 가장 확실한 마법이 있지.

“블레이드 월!”

그그그그긍

수천 개의 칼날이 촘촘하게 얽혀 돌아가는 벽이 생겨났다. 그것은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자신을 통과하려는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는 7서클 마법이다.

크아아아!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쫓아오던 뱀파이어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스스로 블레이드 월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외 없이 잘게 찢어져 조각이 나 버렸다.

가장 뒤쪽에 오던 셋은 겨우 멈춰 섰지만 이미 한 번 멈춰선 이상 렉스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좋았어. 이렇게 마법이 먹혀야지.”

마법 한 번에 다섯을 제거하고 셋을 따돌렸다. 적절한 마법사용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스 페론에게는 저것도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식으로 뿌우가 외쳤다.

“뒤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뭔가 오고 있당. 다스 페론이당.”

“아 놔, 제발 좀 오지 말라고!”

이판사판이다.

나는 지팡이의 미스릴 우산을 펴고 뒤를 겨누었다.

“마리야. 이 상황에서 내가 마나파동포를 쏘면 다스 페론이 맞을 가능성은?”

“적중은 0.7%, 빗껴맞는 것까지 포함하면 8%에요.”

8%, 우리가 살아서 도망갈 수 있는 확률이다.

그걸 위해서 마나파동포라는 비장의 수법을 적에게 알려야 하는가?

죽는 것보다는 낫지.

“준비해.”

“예, 민민과 접속할게요.”

“잠깐, 뭐라고? 민민하고 접속할 수 있다고?”

“렌 경도 할 수 있잖아요. 민민은 마나뱅크의 서브자아니까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해요.”

“아참, 그렇지. 내가 왜 숲의 마법 같은 걸 쓰려 했을까? 민민에게 말하면 바로 크리드 경에게 알릴 수 있는데 말이야.”

마법사라는 게 말이지. 선택 사항이 많으면 그중에서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머릿속에 해결책이 떠오르면 그걸 최선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거지. 왜냐고? 다시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그럼 민민에게 알려. 실비아 공주에게 말해서 크리드 경과 이반 경을 오라고 해.”

“예. 말했어요. 그럼 마나파동포 준비할게요.”

마리포즈가 없으면 내가 직접 민민포즈에게 지시를 내려야겠지만 마리포즈가 있으면 조금 더 편하게 마나파동포를 쏠 수 있다.

나는 일단 지팡이의 미스릴 우산 부분을 렉스의 등에 고장시키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꼬리를 뿌우에게 붙잡고 있으라고 했다.

괜히 우리 렉스가 꼬리 끊어진 개가 되면 미안하니까.

하지만 흔들리는 렉스의 등 위에서 무엇인가를 쏴서 맞추는 게 쉽지는 않다.

“젠장,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돼.”

나는 급히 마법을 시전했다.

“스태틱볼!”

파지지지

약한 뇌전을 띠는 검은 구체가 내 지팡이 앞에 생성되었다. 그것은 내가 집중을 하자 내 시선에 따라 점점 지팡이 끝에서 떨어져갔는데, 지팡이가 흔들리면 그것도 같이 흔들렸다.

한마디로 지팡이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구체로, 실제 효능은 거의 없다.

그냥 측량을 위해 만들어진 1서클 마법인 것이다.

난 그것을 내 마력과 정신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멀리 보냈다. 거의 시야의 끝까지 간 스태틱볼은 지팡이가 흔들릴 때마다 수 미터씩 빠르게 요동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조준이 불가능하면 상대가 알아서 조준선에 들어오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내가 만약 다스 페론이라면 허공에 검은 공이 흔들리면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고 제거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마법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으니까. 능력이 있으면 쓰고 싶고, 그냥 놔뒀다가 내가 무슨 수를 써서 문제가 생기면 기분 나쁘니까.

나는 다스 페론이 내 시야에 보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다스 페론이 나타나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

마나파동포가 발사되는 시간은 어느 정도 일정하다. 나는 다스 페론이 우리와의 간격을 좁히는 시간을 가늠했고, 그가 딱 스태틱 볼에 도달할 시간에 마나파동포가 발사되도록 가동을 시켰다.

휘익, 퍽

내 예상대로 다스 페론은 일부러 점프를 해서 스태틱 볼을 제거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정확하게 때를 맞춰서 마나파동포가 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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