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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24화 (124/250)

로엔의 마나뱅크 124화

승산은? 없다.

도망갈 확률은? 렉스가 때맞춰 도착하면 10%정도?

마나파동포를 사용하면? 저 정도 반응력이면 무조건 피한다. 그리고 한 번 피하면 그걸로 마나파동포는 끝이다. 두 번 다시 쏠 기회는 얻지 못한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내가 할 일은 10%라도 확률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나마 시간을 많이 확보했으니 곧 마리포즈가 렉스를 데리고 올 거다.

두 번, 아니면 세 번 정도 공격을 막아내면 된다. 반대로 내가 공격을 가해도 되고.

역시 선수필승이겠지?

나는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내가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등 뒤가 섬뜩함을 느끼고는 급히 허리를 굽혀 앞으로 굴렀다.

휘익

머리 위로 다스 페론의 손이 지나감을 느꼈다. 내 뒤통수를 후려치려 한 것 같다.

내가 피한 것은 예측과도 같은 감각이라 상대가 치기 전에 숙인 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스 페론이 내 앞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반응한 셈이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구르는 속도보다 다스 페론이 한 발자국 더 나와 나의 몸을 발로 차는 게 빨랐다.

“으윽.”

충격이 느껴졌다. 또 결계로브의 힘을 약화시키고 충격을 통과시킨 것이다.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중심을 잡고 섰다.

“그걸 버텨? 도대체 그건 무슨 로브냐?”

다스 페론도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더니 곧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브부터 찢어야겠군. 아니면 벗기거나.”

어, 이봐. 벗기는 건 곤란해.

결계로브의 단점이 바로 살살 벗기면 정말로 벗겨진다는 거다. 마법으로 못 벗기게 하는 장치가 없는데, 이게 바로 마법의 맹점이라고 할까? 가장 강력한 아공간 결계로 만들어진 로브라 다른 장치는 따로 걸 수가 없었다.

위기다.

정말 저놈이 내 로브를 벗기려 한다면 내가 막기 어렵다. 눈뜨고 옷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썬더 브레이크!”

꽈드드등

강력한 뇌전이 일직선으로 다스 페론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다스 페론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옆으로 순간이동하듯 피했다.

하지만 내가 노린 것은 다스 페론이 아니다. 그의 뒤쪽 벽이 썬더 브레이크에 의해 파괴되어 큰 구멍이 뚫렸다.

6서클 단일 대상 공격마법 중 최고의 파괴력을 가지는 썬더 브레이크는 단순한 뇌전이 아니라 공성병기급의 물리력을 동시에 발휘한다.

“뿌우야, 저놈을 막앗!”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며 외쳤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뿌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나를 향해 달려드는 다스 페론을 막았다.

푸욱

다스 페론은 갑자기 나타난 뿌우에 당황하여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뿌우의 몸에 처박혔다.

기회다!

“뿌우야, 그자를 껴안고 놓지 마.”

“안 놓는당.”

“으읏, 이놈, 놔라!”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걸? 뿌우는 대기의 정령이라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솜사탕에 파묻힌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는 나의 마나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지팡이 창도 휘두를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뿌우는 정령이라 다스 페론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뿌우야, 그자 놓치면 이제는 다시 못 잡는다. 끝까지 놓지 마.”

“두 번 말하지 마랑. 안 놓는당.”

“그래, 잘하고 있어.”

나는 뿌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지팡이 속에 숨어있던 서피가 튀어나와 뿌우와 다스 페론을 휘어 감았다.

“이봥, 나도 같이 감으면 어떻게 행!”

뿌우가 항의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뿌우야, 그 자 못 빠져나가게 놓지 말고 버텨.”

“뿌우! 이런 의미였었냥.”

이중 포박 상태다. 뿌우는 투덜대면서도 여전히 페론을 향해 힘을 집중시켰다. 서피 역시 최선을 다해 조였다. 그러자 비로소 다스 페론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섰다.

뿌우만 있을 때에는 속도는 느려졌어도 움직일 수 있었는데 서피의 힘까지 더해지니 압력이 장난 아닌 듯 했다.

나는 그 사이 무너진 벽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위를 향해 썬더 브레이크를 날렸다.

콰콰콰쾅

천정이 무너졌다. 이곳은 지하, 위로 구멍을 뚫고 마리포즈에게 나의 위치를 알리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시 한 번!”

꽈드드등

뚫렸다. 천정이 와르르 무너지며 위쪽에 공간이 나타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구멍 속으로 렉스가 뛰어드는 게 보였다.

렉스와 마리는 이미 와서 아래로 내려갈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크왕

렉스는 다스 페론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보자 흥분한 눈으로 크게 짖었다. 마기를 먹는 마수의 본성이 끓어오르나 보다.

“그래, 렉스. 저놈을 물어뜯어!”

크와아앙

덥썩

렉스는 그대로 몸을 날려 다스 페론의 머리를 묻어버렸다.

몸은 뿌우와 서피에 의해 묶이고 머리는 렉스에게 깨물린 다스는 크윽 하고 신음성을 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죽을 리가 없다. 뱀파이어는 원래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다. 언데드의 귀족이라고 불리며 데스나이트와 함께 상급 언데드의 순위를 다투는 존재다.

그런데 마족의 계약자가 되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된 다스 페론이 과연 얼마나 강할지는 상상도 쉽게 되지 않는다. 아마 지금까지 만났던 마족의 계약자들에 비해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을 거다.

그것도 본업이 암살자였던 자다. 대인살상력은 거의 극한까지 갔다고 봐야 한다. 저거 놓치는 순간 내 목이 날아갈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다.

지금 내가 노리는 것은 하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다스 페론은 아직 본신의 힘을 10분의 1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는 그 정도가 한계다. 더 큰 힘을 쓰려면 변신을 해야 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게는 몇 시간이나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리포즈도 달려들려 했지만 내가 막았다. 마리포즈는 인공자아고, 그녀의 육체는 골렘이다.

만약 다스 페론의 능력이 마리포즈의 육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문제가 커진다.

마리포즈는 내 말을 듣고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판단으로도 다스 페론에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다고 느낀 듯 했다.

시간이 흘렀다.

1초라도 더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렉스는 다스 페론의 마기를 흡수하고 있다. 서피 역시 렉스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같이 마기를 빨아먹는 중이다.

저 상태로 10분만 있어도 다스 페론은 상당히 약해질 테지만 10분이나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런 괴물 개와 뱀, 그리고 정령까지 다루다니. 대단하군.”

그래 칭찬 고마워. 그렇게 여유 부리며 마기를 빨아 먹혀 준 것도 고맙고. 그러니 이제 내 최후의 공격도 좀 받아줘.

“차압!”

나는 지팡이창을 앞에 세우고 다스 페론에게 돌진했다. 지팡이에 있는 마법적인 효과들은 다스 페론에게 접근함과 동시에 효력을 잃었지만, 창날은 마법이 아니다.

푸욱

창이 페론의 아랫배를 뚫고 들어갔다. 심장 부위를 찌르면 더 좋겠지만 뿌우와 서피가 감싸고 있어 불가능했다.

어쨌든 내 예상이 맞았다.

이자는 마법적인 모든 것을 약화시키는 대신 실질적으로 물리력에 대한 방어력은 보통 인간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뱀파이어니 조금 더 강하고 재생도 할 거다. 하지만 창에 찔리면 회복될 때까지는 쉽게 움직일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이면 내장이 튀어나오니까 말이다.

“튀어!”

나는 미련 없이 렉스의 목줄을 잡고 몸통 위에 올라타며 외쳤다. 렉스는 한번 물어뜯은 놈을 포기하기는 싫다는 듯 움찔했지만 내가 목을 툭 하고 두드리자 바로 깨문 것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뿌우와 서피 역시 지금까지 힘들었다는 듯 한 표정으로 다스 페론으로부터 벗어나 렉스의 위쪽으로 올라왔다.

마리는 렉스의 목띠를 두 손으로 붙잡고 배에 붙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타자 렉스는 그대로 몸을 날려 천정에 뚫린 구멍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기어 올라온 게 아니라 통로를 발로 차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올랐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내가 구멍 위쪽에 화염폭발 마법인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터뜨리자 그 충격을 벽이 무너지며 돌과 나무들이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파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그것들이 다시 위로 튕겨졌지만 내가 다시 건물 천정을 무너뜨리자 그대로 지하로 통하는 구멍이 막혀버렸다.

성공이다. 일단은 따돌린 셈이다.

“렉스야. 무조건 마을 밖까지 뛰어.”

우오오오옹

렉스는 내 말에 충실히 따랐다. 사람들은 갑자기 거대한 개가 거리를 뛰어서 지나가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약 세 시간 후, 우리는 도시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쫒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우리가 건드린 것은 암살자가 변한 뱀파이어고, 그는 내가 렌 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쫒아 온다.

배가 고파서라도 온다고 나는 확인한다.

그런데 내가 마땅히 그자를 상대할 방법이 없다. 마법을 약화시키는 능력이라니. 그건 정말 마법사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사기적인 능력이 가능할 리가 없다. 분명히 무슨 약점이 있다고 봐야 한다.

“마리야. 그런 능력이 존재할 경우 어떤 약점이 있을 수 있지?”

나는 일단 마리포즈에게 물었다. 그녀는 모든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필요한 부분을 빠짐없이 나에게 알려준다.

“마법을 약화시키는 능력은 두 가지 원리로 실현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마나를 흡수하는 것. 두 번째는 마나를 중화하는 것.”

“첫 번째는 아니야. 흡수하는 거라면 한 번 사라진 힘이 그자로부터 떨어졌다고 다시 돌아오지는 않아야 하거든.”

내 마법무구들은 지금 모두 정상으로 작동한다. 그걸로 봐서 다스 페론이 마나를 흡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마나를 중화시키는 거네요. 특정한 파장의 마나를 아무런 효과도 없는 평범한 마나로 바뀌는 능력일 거예요.”

“역시 그쪽인가? 그렇다면 어떤 힘으로 중화시키는 걸까?”

“마나의 역파장을 이용할 확률이 가장 커요. 다스 페론은 모든 마법적인 현상을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그에 대한 역파장을 발산하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 되요.”

“그렇군! 감지가 된다면 역파장을 낼 수 있지. 그럼 일단 다스 페론의 능력을 감지와 역파장 발산이라고 생각하자고. 대응책은 없어?”

“그건 모르겠어요. 역파장을 내는 능력의 근원을 찾던가. 아니면 감각을 흐트러뜨리거나 하는 게 가능한 방법일 거 같아요.”

“감지 능력을 깬다. 그러면 적합한 역파장을 못 발산하니 마법의 약화도 못 하겠지. 흐음.”

뭔가 될 것도 같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궁리하면 대응책이 나올 것도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언제 다스 페론이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단 다시 이동하자. 지금은 낮이니 괜찮지만 밤이 되면 아마 틀림없이 다스 페론이 나타날 거야.”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자. 그것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응법이다.

우리는 다시 렉스를 타고 가능한 한 항구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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