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20화
7장 어둠은 그림자로부터 나온다.
도시 미화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자 아도리아 왕국쪽 인근 영지에서 이주민이 엄청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도리아 왕국은 지금도 패전국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상당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도리아 왕국과 볼스테어 왕국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다.
양쪽 모두에게 영지와 작위를 하사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다가 이미 실비아 공주가 나와 혼약한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서 아도리아 왕실 측에서도 우리 영지를 거의 자국의 영지와 다름없이 생각한다는 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이주민이 이렇게 발생하면 저쪽 영주가 강제로라도 막을 만 한데, 실제로는 막기는커녕 오히려 이주민에게 생필품을 지급해가며 무사히 우리 영지로 넘어오도록 권장을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따로 살짝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주변 영지들 중 몇몇은 실비아 공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 영지의 위성 도시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영지를 대도시화 시키고, 자신들은 게이트 역할을 함과 동시에 우리 영지에서의 상권을 나누어 받겠다는 소리다.
영지민의 수는 줄겠지만 굶주리는 자들을 이쪽에 떠넘기고 나중에 이권을 챙기는 셈이니 그들로써는 적극적으로 협조할 만 하다.
나는 그 점에 대해 파우스 스승과 상의를 해 보았다.
“나쁘지 않다. 볼스테어 왕실에서도 이곳을 아도리아 왕국과의 무역도시로 키우는데 동의했으니.”
“어째서 볼스테어 왕실에서 우리에게 그런 특혜를 주려는 거죠? 그들은 우리를 견제하려 하는 게 아니었나요?”
“견제를 하기에는 명성이 너무 높으니 인정하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번에 덴판 제국의 일을 해결한 것이 큰 역할을 했지. 그리고 우리 콘돌스핀 가문에서도 볼스테어 왕국과 상당한 뒷거래를 했다. 가문의 명성이 커져도 볼스테어 왕실이 우리 가문의 뿌리임을 잊지 않겠다고 했지.”
“하긴, 우리가 커졌다고 해서 볼스테어 왕실과 등을 돌리는 것은 좋지 않죠. 고향은 고향이니까요.”
“그래, 그들도 그걸 알기에 편의를 베풀기로 한 거다. 실질적 영주인 네가 볼스테어 출신이니까 말이야.”
“그럼 제대로 된 무역도시로 성장을 시켜야겠네요. 재정이 풍부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정식으로 도시의 이름을 받도록 하자. 세금은 볼스테어와 아도리아에 각각 7대 3으로 지불하면 될 거다.”
“그 정도면 되겠네요. 제가 계획서를 작성해서 스승님께 보낼게요. 볼스테어 왕실에 말씀을 해 주세요.”
“알았다. 계획서가 만들어지면 바로 추진하도록 하자.”
국경의 무역도시란 말이지? 이건 거의 왕성이 있는 수도나 다름없을 정도로 크게 번성할 가능성이 크네. 하지만 도시가 크고 돈이 돌면 돌수록 그만큼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위험한 사건도 자주 발생하는 법이지.
나는 파우스 스승님이 돌아간 이후 책상에 앉아 차분하게 계획서를 짜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볼스테어 왕국에서는 내 혼약식을 기해서 우리 영지의 상업도시화 허가를 내 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일국의 공주와 혼약을 하는 것이니 그 정도의 선물은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획서가 혼약식 이전에 완성되어야 한다.
저쪽에서 검토할 시간도 주어야 하니 적어도 2주일 전에는 파우스 스승님께 넘겨야 할 거다.
시간의 여유는 없지만 사실 나는 이런 쪽에도 재능이 있다.
포트라와 사업 이야기를 하다보면 전 세계의 도시와 제도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크게 돈을 벌까 열띤 토론을 벌이고는 했다.
엉성한 계획서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해서 서류화 시키면 되는 것이다.
일단 방위계획, 상업도시라고 해도 자주적인 방어력이 없으면 안 된다. 오히려 중립을 표방하려면 양 왕국이 압력을 가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은 지녀야 한다.
솔직히 현재 우리 도시의 무력이라면 그 점은 해결되었다고 봐도 된다.
방어 면에서는 군대를 상대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예전에 벌어진 웨어울프 대란이 다시 일어나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병사수는 많지 않아도 영지 전체에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으니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남들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전이 되면 보급문제가 걸리니 역시 불리하다.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말하자면 단기방어전에 특화되어 있다고 할까?
“좋아, 이정도면 군사력은 문제없어. 그러면 상업도시화 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둠의 세력들만 관리할 준비만 하면 되겠군.”
원래 돈이 꼬이면 다른 어두운 것들도 꼬인다.
이권이 걸리면 폭력과 살인까지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인간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영지 정도의 규모라면 조직은 물론이고 암살자 길드가 들어선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현실적인 영주인 내가 그들과의 접점을 가지고 이용을 할지, 아니면 무시하고 말 것인 지다.
“역시 무시할 수는 없지. 어느 정도는 관리를 해야 엄한 꼴을 안 당하지.”
솔직히 모든 일이 광명정대하게 진행될 수는 없으니 조직이나 어둠의 조합은 어느 정도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러나 암살자 길드는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타락과 환락의 도시가 아니다.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일정 이하 수준으로는 떨어지지 않게 관리를 해야 한다.
나는 도시 관리 계획을 진지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파우스 스승님께 드릴 표면적인 도시 계획서와는 다른, 나만의 계획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비로소 마음에 드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알 수 있겠군. 마리야, 네 생각은 어때?”
“글쎄요. 이 계획서에 따르면 오히려 암살자 길드가 필요하지 않아요?”
“암살자 길드는 있어야지. 단지 암살 의뢰를 받지 않는 형식상의 암살길드이지만 다른 지역의 암살자들이 치고 들어올 수 없는 실력과 권위가 있어야 하는 거야.”
“형식적인 암살자 길드를 만드는 건데, 그걸 할 만한 인재가 있을까요?”
“생각해 봤는데, 옛날에 우리 콘돌스핀 가문과 웨어울프 킹쪽에 연관된 암살자 길드가 있었어. 페론의 암살자 길드라고. 갸들이 백 년 전부터 존재한 놈들인데, 이참에 거길 털어보려고.”
“턴다니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날 건드린 놈들이니 언젠가는 정리하려고 했거든. 이번에 추적해서 본거지를 털어버리고, 명성만 우리가 빼앗아 쓰면 될 거 같아.”
페론 정도 되는 길드를 무너뜨린다면 다른 암살자 길드도 이쪽을 쉽게 보지 못한다. 결국 어둠의 명성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키우는 법, 원한도 정리하고 명성도 얻으니 일석이조다.
“백년이나 이어온 길드가 쉽게 무너질까요?”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다른 수를 생각해야지. 하지만 내가 마음먹고 뒤지는데 그걸 벗어날 길드가 있을까?”
자고로 고위 마법사는 암살대상에 넣지 않는 법이다.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닌 나 렌의 손에 걸리면 물질계 내에서 숨을 장소는 없다.
“그렇겠네요.”
“그리고 그들은 마족의 후계자와 거래를 했어. 그들의 속성 상 의뢰자에 대한 역조사는 충분히 했을 테니 웨어울프킹의 존재를 알고도 거래를 한 셈이지.”
“렌 경의 말씀이 맞아요. 제 판단에도 그럴 거라 생각 되요.”
“어쩌면 다른 마족의 후계자와도 연관이 있을지 모르니 확실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어.”
“그럼 언제 조사하러 갈까요?”
눈치 빠른 마리포즈, 내가 직접 조사를 하러 갈 거라는 것을 깨달았구나. 이번 일은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진짜 비밀스러운 임무다. 사실 내가 그동안 페론의 암살자들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은 6서클 가지고는 그놈들을 확실하게 제압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하지만 지금은 7서클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떤 상황이 되어도 거의 처리가 가능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내 한 몸 빼내는 것은 자신이 있다.
“그래, 그럼 혼약식이 끝나는 대로 페론 놈들에 대해 알아보자고, 백 년 전 본거지는 내가 아니까 그쪽 부근을 뒤지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이게 바로 페론 놈들이 모르는 점이다. 그들은 나름 모든 단서를 지웠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나는 백 년 전에 이미 그들에 대해 조사를 한 바가 있다.
그들이 백 년 동안 같은 본거지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그쪽을 뒤지면 어떤 단서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아무것도 안 나온다면 렉스를 이용해 페론의 암살자들의 냄새를 추적할 거다.
그들 특유의 문신에 쓰는 물감의 향은 백년간 바뀌지 않았음을 그때 확인했으니까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다. 단지 시간이 걸리겠지.
결정이 되었으니 가야할 날짜와 멤버를 정해야 한다.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은 물론 안 되고, 미리아도 데리고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마리포즈와 렉스, 그리고 서피와 갈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렉스이다.
“렉스를 데려가면 너무 눈에 띈단 말이야.”
“하지만 만약 단서가 없으면 렉스한테 찾게 할 거잖아요.”
“어쩔 수 없지. 저번에 했던 것처럼 평소에는 마리 네가 렉스를 투명 상태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녀라.”
“그럴게요.”
마리포즈가 렉스의 목띠를 조작하면 렉스는 투명상태가 된다. 전투행위만 하지 않으면 웬만하면 들키지 않을 거다.
단지 마리포즈가 렉스의 목띠로부터 손을 떼면 10초 뒤 렉스의 투명상태는 해제된다. 결국 마리포즈는 렉스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고, 그만큼 나를 지키는 임무에는 충실치 못하게 된다.
“그럼 이번에는 서피를 내 가드로 삼아야겠네. 출발할 때까지 서피를 이용한 방어진형을 생각해봐야겠어.”
“그러세요. 하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저도 렌 경을 지킬 거예요.”
“물론이지. 위험한 상황에서는 마리 너 뿐만 아니라 렉스도 싸워야지 별 수 있어? 그때는 우리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각오하고 화끈하게 싸우면 돼.”
“예.”
이걸로 여행 멤버가 정해진 셈이다.
모처럼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을 놔두고 우리끼리 조사를 하러 간다고 생각하자 살짝 긴장은 되었지만 이제는 이반 경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로엔의 환생체인 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