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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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대체자를 보내 주십시오. 전 그사이 권한을 넘길 수 있는 의식의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알았네. 사항이 사항인 만큼 드루이드의 지도자를 보내야겠군.”
나는 엘프 장로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수정구를 통해서지만 엘프가 인간이랑 말을 섞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이변이다.
장로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 숲의 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드루이드 링의 권한을 손에 넣은 상태다. 그리고 그것을 장로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
“북쪽 링의 바위 좌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장로께서 복구하시면 바로 제 기능을 발휘할 겁니다.”
“고맙네. 그것도 드루이드들에게 넘기도록 하지.”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가?”
“아론 경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콜레스 2세를 도와 카운터 저주의 의식을 행한 것 같은데, 지금은 콜레스 2세의 뒤를 이어 마족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군.”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아론 경이 인간 세상에 나가면 얼마나 해악이 되는가, 그리고 그자가 땅속에 묻힌 콜레스 2세의 잔해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설명했다.
“그러니까 아론 이라는 8서클 마법사가 숲을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거군. 알았네. 아론 경은 아마 오랫동안 숲을 나가지 못할 걸세.”
“방법이 있습니까?”
제거한다고 하지 않고 오랫동안 못 나간다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썼다. 내가 대놓고 묻자 장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숲의 밤은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지. 그리고 시간이 가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어. 아마 그자는 한번 잠을 잘 때마다 일 년을 자게 될 걸세.”
앗, 숲의 힘을 이용한 저주다. 괜찮네.
잠을 잘 때마다 일 년을 자게 된다면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 적어도 수십 년은 걸린다. 만약 숲이 장난을 쳐서 아론 경을 조금 헤매게 만든다면 백년도 훅 지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론 경은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는 거다. 저주에 의한 잠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도 않고 그야말로 1년을 하루처럼 자게 된다.
과연 엘프의 장로다운 수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장로와 대화를 끝내고 드루이드 링의 힘을 이전할 준비를 했다.
미리아와 이반 경에 의해 다른 동료들도 모두 회복했고, 마리포즈 역시 재생을 끝냈다.
콜레스 2세의 잔해는 땅속에 묻힌 채인데, 드루이드 링에서 그것을 봉인함과 동시에 남아 있는 힘을 흡수하여 숲으로 되돌리게 만들었다.
그 정도면 이번 사태로 인해 피해 입은 숲에 대해 적당한 보상이 될 것이다.
“정말 아론 경을 엘프들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딱 좋아요. 사실 우리는 아론 경을 처치하기 애매하거든요.”
체프코트 가문에서 아론 경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그리고 가주를 위해 이미 해 놓은 수많은 의식은 아론 경을 죽이는 순간 우리에게 발동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어쨌든 간에 아론 경은 체프코트 가문이 수장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자를 우리가 죽였다하면 체프코트 가문에서 좋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고로 거물은 섣불리 건드리는 게 아니다. 진짜 별의 별 뒤탈이 다 나올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빨리 마무리하고 숲을 벗어나도록 하지. 이제 당분간 숲에는 들어오고 싶지 않군.”
이반 경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동감이다. 미리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숲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야영, 노숙도 하루 이틀 이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헷갈릴 정도다.
얼마 후, 장로가 말한 엘프 드루이드가 나타났다. 그는 인간과의 접촉을 극히 두려워하는지 후드를 깊게 쓰고 나를 보지도 않았지만 내가 시키는 대로 드루이드 링과 접촉하여 관리자 권한을 넘겨받았다.
조금 아쉬운 느낌도 들지만 이 힘을 유지하려면 숲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그건 싫으니 적당히 넘겨주고 떠날 수밖에.
대신 내 이력은 남겼다. 숲은 더 이상 나를 적대할 수 없다. 과거 관리자이기 때문에 영원히 숲의 친구로 인식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섀도우 드루이드는 드루이드 링의 지배권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인 나의 이력이 남음으로 인해 드루이드 링은 인간에 대해 약간의 호의를 품게 되었다.
이건 숲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엘프들도 인간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심을 상당히 줄이게 될 것이다.
“그럼 가요.”
우리는 최단 거리로 숲을 벗어났다. 그 바람에 우리 영지 쪽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왔지만 조금 돌더라도 인간의 도시를 거치며 여행하는 것이 숲에서 야영하는 것보다 백배는 편하고 행복했다.
*
영지로 돌아온 후, 곧 덴판 제국에 사람을 보내 콜레스 2세가 죽음으로 되돌아갔음을 알렸다. 단지 아론 경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다.
나는 그동안 7서클에 오른 나의 몸을 재조정하는데 집중했다.
드루이드 링의 의식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마나를 몸 안에 쌓았다. 과거 7서클 마법사가 지니는 마나 수준은 되는데, 마나뱅크를 잃은 요즘 7서클 마법사에 비하면 거의 세 배에 해당하는 마나다.
이제는 정령에 대한 간섭력도 강해졌다. 7서클은 정령을 모르는 마법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인 만큼 이제부터는 순수한 마나보다 정령과 연관시킨 힘을 기르는 게 8서클로 갈 수 있는 방법이다.
“뿌우야, 네 도움이 필요하다.”
“뭔뎅? 말만 해랑.”
“별 건 아냐. 매일 한 번씩 포트라랑 접촉하면 돼.”
“미쳤냥? 차라리 계약을 해지하장.”
“야, 정령 간섭력 높이려면 대정령과 접촉하는 게 최고란 말이야. 그런데 그건 소정령이 게이트를 해 줘야 하잖아.”
“그냥 다른 소정령 하나 더 계약하면 안 되냥? 내 질투 안 할겡.”
원래 소정령들은 같은 속성끼리는 질투가 심해서 둘과 계약하기 힘들다. 다른 속성의 정령이라면 전혀 상관이 없는데, 이상하게 같으면 서로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뿌우는 또 다른 대기의 정령과 계약하라고 권한다. 어지간히 포트라와 만나기 싫은가보다.
“아니야. 난 너한테 집중하고 싶어. 그래서 다른 속성 정령도 안 부르는 거잖아.”
“뿌우, 진짜 사장님과 매일 면담하면 나 머리털 다 빠질건뎅.”
우리 마음약한 뿌우, 내가 살살 아부를 해주니까 더 이상 강하게 거부를 못 하는구나.
어쨌든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시간을 들여 계속 뿌우를 설득해야겠다.
사실 예전에도 포트라랑 접촉하다가 정령이 계약을 포기하고 도망간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소정령과 계약할 때 단순 계약이 아닌 서로 간에 유대가 가장 강하고 도망도 못 가는 무거운 규칙을 몇 개나 정한다.
이렇게 하면 소정령은 처음에는 아주 좋아하다가, 나중에 대정령과의 접촉 단계가 되면 땅을 치며 후회하지만 솔직히 감정적인 문제만 빼면 대정령과 접촉하는 게 소정령에게 나쁠 리가 없다. 마법사가 힘을 얻는 만큼 소정령도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정령은 소정령에 대한 소멸의 권한까지 가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훅 가는 수가 있다. 그래서 모든 소정령은 대정령에 대해 원초적인 공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특히 포트라는 회사를 차린 후 소정령을 사원이라 부르지만 사실 상 노예 취급하며 상습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잘 생각해 봐. 고통은 순간이고 성장은 영원이잖아. 그럼 난 미리아에게 가볼게.”
“미리아 누님한테 갈 거면 나도 같이 가장.”
“그럼 따라와. 앞으로는 지팡이에 들어가 있을 필요 없어. 내가 널 데리고 다닐 정도의 마나는 충분히 있으니까.”
“그랭, 내가 좋은 바람 많이 몰아다 주겠당.”
우리 영지가 미리아의 숲에 뿌우의 바람까지 있으니 진짜 공기는 세계 최고일거야. 나는 코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미리아에게 갔다.
“미리아야, 몸은 좀 괜찮아?”
미리아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내상이 도져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정양하는 중이다. 마법을 쓰지 않고 숲의 기운을 이용하여 자연치유를 하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지만 이게 좋다. 미리아에게 있어서 시간은 남아도는 자원인 셈이다.
“응, 난 괜찮아. 참, 그런데 나 아론 경 만났다.”
“엇, 그자의 꿈속에 들어갔어?”
“응, 나를 알아보던데?”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을 거 같아. 그자의 마기가 내 신성력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더라고.”
“아하, 성녀니까 괜찮군.”
마족의 후계자와 꿈의 접촉을 하면 보통 세뇌를 당하기 쉬운데, 미리아는 전혀 상관없는 듯 했다. 이쪽 부분에서 미리아는 전문가니까 믿어도 될 거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나에게 후계자 계약을 하자고 해서 거절했어.”
“풋, 웃기는 자네. 하긴, 네가 탐나긴 하겠다. 꿈 접촉을 할 수 있는 능력자니까.”
“그러게. 그리고 또 체프코트 가문에 대해 걱정하더라. 자신이 떠난 후 예전의 권위를 유지하기는 힘들 거라고, 그래서 빨리 가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렇단 말이지? 잘 됐네.”
만의 하나 아론 경이 숲을 빠져나오게 되면 우리가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체프코트 가문에 갈 것임을 알았으니 그쪽에 몇 가지 대비를 해 놓도록 하자.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세리아 공주하고 실비아 공주 말이야.”
“윽, 그래. 이제 그걸 처리해야 되는 순간이 왔네.”
순리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게 덴판 제국의 세리아 공주는 아직 치료를 해서 완쾌를 하려면 몇 년이나 더 걸린다는 점이다.
그녀를 세뇌시킨 콜레스 2세의 마기는 그냥 제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세리아 공주의 정신을 보호하며 서서히 조심스럽게 없애야 한다. 안 그러면 정신이 파괴되어 백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마나 콜레스 2세가 소멸되었기에 치료가 몇 배는 쉽게 되었다. 그래도 5년 이상 걸린다는 게 미리아의 예측이다.
내가 5년 동안 결혼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 부분을 덴판 제국의 칼론 2세에게 잘 설명하면 이번 건은 무난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미리아의 집에서 나와 실비아 공주에게 갔다.
이번에야말로 정식으로 청혼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