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15화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니 가뜩이나 어두운 숲이 아예 밤처럼 캄캄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다크니스 마법을 시전해서 주변에 어둠을 깔았다.
“크크크, 진실의 시야를 가진 나에게 그런 게 통할 거 같으냐?”
안 통하는 거 알아. 그러니까 입 다물어. 주문시전하지 말고.
나는 속으로 투덜댔지만 아론 경은 방심하지 않고 그대로 공격마법을 사용했다.
“플레임 스네이크!”
“아 놔, 반 소환 마법이냐?”
불의 뱀이 살아있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나를 향해 날아온다. 저놈은 피해도 끝까지 쫒아온다. 심지어는 공격하는 척하다가 물러나면서 타이밍까지 맞추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정말 어렵다.
“서피! 삼켜버려.”
샤아아아아
콰쾅, 화르르륵
서피는 오히려 플레임 스네이크를 집어 삼켜버렸고, 그것은 바로 폭발했다. 하지만 에고 기능이 있는 대신 파괴력 자체는 조금 약한 편이라 서피는 버틸 만 한가 보다.
“잘한다. 서피, 이 전투 끝나면 너 팍팍 밀어줄게.”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
서피는 용기 백해해서 나와 템포를 맞추어 같이 돌격을 했다.
“크크, 마법사 같지 않은 놈. 보고에 의하면 네놈이 자이언트 벨트를 차고 있다고 하더군.”
아론 경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즉시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역시 공격마법이다.
이걸 보면 이자는 지금 방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 공격마법을 난사하는 것은 마법사끼리의 싸움에는 자제해야 하는 부분이다.
파지지직
체인 라이트닝.
뇌전의 체인이 사방으로 퍼졌다가 일제히 나를 향해 쏘아졌다.
오호, 이렇게 좋을 수가!
뇌전하면 또 나 아닌가. 나는 얼른 지팡이에서 창날을 뽑으며 외쳤다.
“리플렉트! 증폭!”
파지지지지직
체인 라이트닝은 세 배로 강화되어 아론 경을 향해 되돌아갔다. 그러자 아론 경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6서클 마법을 반사한다고?”
그래, 나 7서클이라 6서클 반사 되거든. 그리고 창에 깃든 힘까지 더해 증폭도 시킬 수 있고.
거의 공짜로 7서클 급의 공격마법을 쓴 셈이다. 그것도 거의 기습효과다.
아론 경은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고 손에 든 지팡이로 나의 공격을 막았다. 이걸로 마법을 연속해서 시전 하는 것을 방해했고, 나는 거의 아론 경의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블링크.”
팟
아론 경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30미터쯤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방심하지 않고 마법사 전투의 정석답게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제발 방심 좀 하라고! 썬더 스톰!”
꽈드드드등
구름에 들어간 뿌우가 뇌전의 기운을 엄청나게 모아서 한 번에 뿌려댔다.
이것은 체인 라이트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범위 공격이다. 뇌전의 폭우가 쏟아진다고 할까?
막 단거리 순간이동을 한 아론 경을 중심으로 떨어진 썬더 스톰은 효과적으로 아론 경의 시야와 움직임을 막았다. 하지만 아론 경에게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방어막을 친 데다 입고 있는 로브도 결계로브보다는 못해도 상당한 방어력과 원소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역시 마법사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때려잡는 거다.
그 사이 나는 멈추지 않고 뇌전이 치는 범위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지팡이 창을 크게 휘저어 뇌전을 긁어모았다.
“이거나 먹엇!”
꽈드드등
수십 개의 뇌전을 모은 창날로 아론 경의 아랫배를 찔렀다. 그러나 아론 경의 모습이 흐릿해 지더니 사라지고 바로 옆쪽에 본신이 나타났다.
“그쪽이군!”
휘익 퍽
이번에는 맞았다. 타격이 문제가 아니라 창대로 아론 경을 때려 마법을 쓰지 못하게 했다.
드드드드
땅의 진동이 조금 더 심해졌다. 콜레스 2세가 꽤 많이 올라온 듯 했다.
“젠장.”
나는 짧게 욕을 하면서 창을 위로 던졌다. 그러자 구름 속에서 뿌우가 튀어나와 아론 경을 머리 위에서 공격했다.
동시에 서피가 아론 경의 발목을 휘어 감는데 성공했다.
“으읏, 이 놈이!”
아론 경은 질색해서 서피를 보았다. 사실 우리의 공격 중 화려한 나나 뿌우는 들러리고, 서피가 아론 경을 붙잡는 게 진짜 목표였다.
서피는 마기를 빨아먹을 수 있다. 아론 경은 마기를 마나로 바꾸어서 마법을 쓰고 있는데, 서피가 맹렬하게 마기를 빨아먹자 동요를 했다.
“잘 했어! 계속 해!”
나는 서피를 응원하며 연속해서 마법해제 마법을 시전 했다.
증, 증, 증, 증
세 번 시전하면 한 번 정도는 통한다. 1서클 차이라면 충분히 할 만 한 것이다.
“이놈이!”
아론 경은 자신의 방어마법이 깨어지자 조금 더 동요를 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고 오히려 과감하게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이걸 받아봐라. 프리즘 레이!”
이크, 저건 다속성 공격이라 대응이 어렵지.
대인 공격 마법으로는 최고로 치는 8서클 마법이다. 라고는 해도 내가 입고 있는 것은 결계로브다. 나는 오히려 가슴을 펴고 몸으로 프리즘 레이를 받았다.
파싯
프리즘 레이는 로브에 닿자마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이제 보니 결계로브였구나.”
지금 와서 알아차려도 늦었거든. 내가 못 피하게 접근해서 지근거리 공격을 한 게 네놈의 실수야.
나는 품속에서 하나의 단검을 꺼냈다. 바로 결계와 방어막을 깨는 데 최고의 성능을 가진 저주의 무기, 발데스 스팅이다.
촤악
“크악!”
“좀 얕았네.”
아론 경이 얼굴부터 아랫배까지 길게 상처를 입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가 입고 있던 로브가 잘려나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상처 입은 아론 경의 얼굴이 마족처럼 변했다. 일찍이 그는 발데스 스팅에 의해 한번 죽을 뻔 했다.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는 듯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게 보였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네놈 잡으려고 챙겨뒀었다.”
휙, 휙
나는 거칠게 단검을 휘두르며 아론 경을 공격해갔다. 사실 내가 전문적인 전사는 아니고, 단검 사용술은 그다지 많이 연습하지 못해서 기습이 아닌 한 공격을 성공시키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아론 경은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나의 공격을 피했다. 공포심과 트라우마가 그의 몸을 움직였다.
그 사이 서피는 계속해서 마기를 빨고 있다. 서피는 렉스와 달라서 한번 마기를 빨기 시작하면 상대는 아예 그쪽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마기가 완전히 빨리고, 생기까지 빨려서 몸이 말라 비틀어져야 겨우 알게 되는 것이다.
쿠쿵
땅이 들썩인다. 콜레스 2세가 이제 거의 다 올라온 듯하다.
나는 손으로는 계속 아론 경을 공격하며 의식은 드루이드 링에 집중했다. 지금이라도 콜레스 2세가 땅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바위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쿵, 쿵, 쿵
드디어 콜레스 2세가 바위의 위치를 알아차렸다. 그는 바위의 힘을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수려고 했다.
나는 속으로 타이밍을 쟀다. 지금 아론 경보다 중요한 것은 콜레스 2세다. 콜레스 2세가 땅 밖으로 나오게 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다.
지금!
“뿌우야, 부탁해.”
나는 몸을 뒤로 날리며 발데스 스팅을 뿌우에게 던져 건네주었다. 동시에 뿌우도 지팡이 창을 나한테 주었다.
뿌우가 하늘을 날며 발데스 스팅을 마구 휘두르니 아론 경은 더욱 긴장해서 피하기 바빴다. 그 바람에 내가 몸을 빼서 하늘을 날아 드루이드 링 위에 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3분만 버텨!”
“염려마랑. 이놈은 내가 잡는당.”
그건 무리. 8서클이 도박해서 딴 게 아닌 이상 발데스 스팅을 들고 시간벌기만 착실해 해주면 고맙다고. 나는 드루이드 링의 바위 위에 서서 지팡이를 땅쪽에 겨누고 미스릴 우산을 폈다.
콜레스 2세는 지금 정확하게 드루이드 링을 향해 오고 있다. 지표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다.
상관없다. 네놈의 머리를 보기도 전에 끝장을 낼 테니까.
나는 심호흡을 하고 지팡이 끝에 마나뱅크 게이트를 개방했다.
드드드드드
공간이 울린다.
바위도 지금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지 나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낸다.
괜찮아. 내 계산이 맞는다면 나도 드루이드 링도 무사할 테니까.
충격파 정도는 버틸 수 있잖아. 천하의 드루이드 링 바위니까.
가랏!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내 몸이 허공으로 십 미터 쯤 튕겨 올랐다.
미스릴 우산이고 뭐고 역시 힘들구나. 결계로브 없었으면 몸 거덜 났겠다.
허공에서 보니 땅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그리고 드루이드 링이 계속해서 위험신호를 보냈다. 자신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파괴력이 발생하니 무서워서 떠는 듯 했다.
됐으니까 콜레스 2세가 어떻게 됐는지 좀 봐봐.
나는 다시 땅에 착지하자마자 바위에 손을 대고 드루이드 링에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바위 중 하나가 구멍을 타고 땅 아래로 내려갔다.
“오호, 머리부터 몸통까지 소멸했군.”
남은 건 팔다리부분뿐이다. 아주 제대로 맞은 거다.
직접 보고서 쏜 게 아니라 혹시 빗나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정확하게 관통했다.
“그, 그 힘은 뭐냐!”
아론 경이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비장의 무기지. 그럼 아무 대책도 없이 콜레스 2세와 싸우러 왔을 것 같냐?”
나는 차갑게 말하며 다시 아론 경을 향해 달려갔다.
아론 경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역시 콜레스 2세가 죽으면 네놈이 차기 후계자가 되기로 되어 있었군.”
“크크, 당연하다. 이 계획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나한테 손해가 없는 것이었지.”
마기가 불어나자 아론 경은 급격히 자신감을 회복하는 듯 했다.
뿌우는 아론 경으로부터 힘을 느끼고 얼른 몸을 뺐다. 서피 역시 눈치 하나는 둘째라면 서러운 놈이라 슬쩍 발목을 풀고 내 쪽으로 왔다.
나는 아론 경과 어중간한 거리를 두고 멈췄다. 아까와는 다르게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며 아론 경을 경계했다.
아론 경은 내가 당장 달려들 듯이 뛰어오다가 갑자기 멈추자 오히려 경계를 하며 말했다.“설마 드루이드 링의 힘을 완벽하게 쓸 수 있는 것이냐?”
9서클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숲의 힘뿐이지. 나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마나뱅크까지 눈치 채지는 못했군.
나는 대답을 안 하고 조용히 경계의 자세만 고수했다.
사실 지금 아론 경과 싸울 생각은 없다.
동료도 모두 당하고, 나도 힘을 거의 소모했다.
그리고 아론 경이 마나파동포를 멍하니 서서 맞아줄 정도로 단순하지도 않다. 콜레스 2세와는 달리 상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일단 목표인 콜레스 2세는 해결했다. 예상외로 아론 경이 다음 후계자가 됐지만, 그건 이제부터 생각하면 된다.
무엇보다 아론 경을 상대할 자는 따로 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아론 경도 더 이상 싸우기가 애매한 지 살짝 한 걸음을 물러섰다. 내가 쓴 마나파동포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싸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거리를 벌이면서 서로 멀어졌다. 암묵적으로 다음을 기약했지만 어차피 숙적 관계이니 다음에 만나면 생사를 걸고 붙어야 할 것이다.
라고 아론 경은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론 경, 아마 지금 헤어지면 고생 좀 할 거예요. 훗.
이곳은 숲이다. 엘프의 숲이다. 아론 경이 과연 엘프의 숲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그의 능력에 달렸지만, 적어도 곧 엘프의 장로에게 아론 경의 존재를 말하고 이번 일의 배후 중 하나임을 알릴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고생했던 것처럼 아론 경도 숲의 힘을 상대로 싸우며 헤매는 경험을 하겠지. 고생 좀 하라고. 기왕이면 확 죽어 버리고.
“후.”
나는 아론 경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허리를 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동료들이 피신한 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