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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13화 (113/250)

로엔의 마나뱅크 113화

난 서피가 뽑아낸 섀도우 드루이드가 붙어있던 드루이드 링의 기둥바위 쪽으로 향했다. 의식의 구조로 볼 때 구성원 중 절반이 죽기 전까지는 깨어지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절반을 제거하면 의식이 깨어지는 게 아니라 폭주를 해 버린다.

의식을 방해한 자에 대한 엄청난 저주가 쏟아지고, 반대로 와테스는 실패이긴 해도 여전히 상당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역시 무턱대고 뽀개면 이런 식의 함정에 걸리게 되는 거다. 그렇게 손해 보는 짓을 할 수는 없지.

나는 카이스난의 저주흡수 해골을 꺼내 아까 섀도우 드루이드가 박혀 있었던 흔적의 머리 부분에 끼웠다.

“저주융해!”

끼이이이이

적지 않은 섀도우 드루이드의 원념이 바위로 흘러들어간다. 나는 그 힘을 적당히 조절하여 바위와 동화하려는 힘 자체를 바꾸었다. 이것으로 게이트가 열린 셈이다. 나는 얼른 그 틈에 내 몸을 끼웠다.

“으윽!”

몸이 바위에 녹아서 붙는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서피가 꺼낸 섀도우 드루이드를 대신해서 의식의 일부가 되려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바위와 동화할 생각이 없다. 그 차이를 메우는 것은 바로 카이스난의 저주흡수 해골이다.

그래도 바위가 나를 빨아들여 붙이려는 흡입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면이 있었다.

바위 주변에 이끼덩쿨이 나를 서서히 감기 시작했다. 흡혈의 기능이 있는 이끼덩쿨이다. 하지만 결계로브를 입은 나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내 의식이 다른 섀도우 드루이드와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의식의 일부가 되어 침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트레저골렘을 파괴한다.-

-숲 이외의 모든 것을 제거한다.-

-와테스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들의 의식이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아마도 와테스가 사전에 수하 드루이드들의 정신체계를 단순화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하지 않다.

나는 즉시 정신을 집중하여 그들의 의식체계를 휘젓기 시작했다.

왜 트레저골렘을 파괴해야 하나?

다르게 이용할 방법은 없을까?

숲 이외의 것이 모두 제거되면 과연 숲은 멀쩡할까? 와테스의 뜻이 무엇일까?

반대는 하지 않지만 끊임없는 의문부호를 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의식의 진행이 늦어졌다.

우습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방해받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와테스조차 이게 왜 이러는지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크리드 경은 뿌우의 도움으로 허공에 뜬 채 끊임없이 와테스를 핍박했고, 와테스는 의식이 더 이상 진행이 안 되는 것이 자기 탓이라 생각했다.

사실 크리드 경이 와테스를 이길 수만 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역시 드루이드 링의 힘을 쓰는 와테스를 크리드 경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드루이드 링 자체를 파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숲의 마법진은 그대로 남겨놔야 엘프들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 마나파동포는 쓸 수 없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은 했다. 와테스는 앞으로 삼박사일동안 의식을 거행해도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실컷 마음 졸이며 헛고생만 하다가 절망 속에 사라지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드드득

왔구나!

저 멀리서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드디어 콜레스 2세가 경계선까지 와서 트리언트와 싸우는 모양이다.

나는 텔레파시 마법으로 일행에게 말했다.

[콜레스 2세가 오면 그를 도와 와테스를 쳐요. 와테스를 제거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적이 둘이니 우선순위를 정해주어야 한다. 지금은 콜레스 2세보다 와테스가 먼저다.

렉스는 이미 늑대인간이 된 섀도우 드루이드들을 모두 죽였다. 하지만 더 이상 드루이드 링 쪽으로 다가오지는 않고 내 눈치를 보며 대기했다.

이반 경도 더 이상 마법을 쓰는 게 힘들기 때문에 미리아와 함께 점점 외곽 쪽으로 빠져나갔다. 미리아가 이반 경에게 치유 마법을 써서 조금이라도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모습이 보인다.

크리드 경은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다. 하지만 내 텔레파시를 받은 이후 언제라도 몸을 뺄 수 있게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일격이탈 전법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콜레스 2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오오오오, 슈우우, 슈우우

진짜 거대하다. 숨소리만으로 주변 공기가 흔들리네.

콜레스 2세는 이미 키가 10미터 가까이까지 커져 있었다. 저런 거대 골렘은 만들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못 만들 거다. 정말 이놈의 섀도우 드루이드들 때문에 일이 몇 배나 커진 건지 모르겠다.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았다.

와테스의 심장고동이 빨라진 게 느껴진다. 다급한 모양이다. 하긴, 저놈을 저렇게 만든 게 와테스일테니 그 힘을 충분히 알겠지.

그리고 대항하기 위한 마법의식은 결국 완성이 안 되었고 말이야.

콜레스 2세는 크리드 경이 와테스와 싸우는 것을 보고는 웃었다.

“쿠쿠쿠, 어부지리로군. 숲의 떨거지들이 의식을 완성했으면 귀찮을 뻔 했는데 역시 짐은 세상을 지배할 운명이었던 건가.”

그래그래, 네 운명은 조금 뒤에 확실히 알게 해 줄 테니 어서 오라고, 웃고 있을 여유는 없잖아? 의식이 완성되기 전에 와테스를 쳐!

쿵, 쿵, 쿵

내 마음속의 외침을 들은 것은 아니겠지만 콜레스 2세도 마음이 급했나보다. 지금이라도 마법 의식이 완성되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카오오, 죽어라!”

위잉 쾅

콜레스 2세는 달려오는 기세 그대로 팔을 들어서 주먹으로 와테스를 내리쳤다. 그러자 와테스는 처음으로 손을 들어서 콜레스 2세의 주먹을 막았다.

지금까지 크로드 경과 싸울 때에는 본인은 움직이지 않고 주변의 이끼덩쿨만으로 공격과 방어를 했었는데, 콜레스 2세의 공격은 그걸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나보다.

의식의 굴레가 약해졌다. 당연한 일이다. 주체가 몸을 움직였으니까.

나는 얼른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위험해, 우리의 의식이 실패할 것 같아. 위험해

외부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기둥의 섀도우 드루이드들은 내 마음의 외침을 듣고 와테스가 육체를 움직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고요한 물에 작은 돌맹이 하나가 떨어진 듯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파문은 곧 와테스의 마음속에도 생겨났다.

내가 보기에 와테스는 마법사로 따지면 8서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정신 상태도 거의 비슷하다고 보이는데, 이정도 되는 자의 의식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일파의 멸망이 눈앞으로 다가온데 다가 비장의 마법의식이 실패로 끝나려 하니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도 냉정할 수 있다면 9서클이다.

쾅, 쾅

콜레스 2세의 주먹질은 계속 되었다. 와테스는 팔로 결계의 인을 만들어 막고 있었는데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 없는 듯 코에서 피를 흘리고 팔이 점점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제 몇 방이면 와테스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못가서 마법의식이 완전히 깨어질 판이다.

그러나 이정도 마법의식은 깨어져도 그냥 깨어지지 않는다. 파괴한 자에게 엄청난 저주를 걸게 되는 것이다.

콜레스 2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콜레스 2세가 그 저주에 대한 카운터 저주를 건 상태여서 그게 오히려 축복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나는 다시 섀도우 드루이드들의 의식에 파문을 던졌다.

저자에게는 파괴의 저주가 작용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다른 방법이라면?

드디어 처음으로 반응이 왔다. 섀도우 드루이드들 중 하나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앱솔루트 도미넌트 효과가 약해졌다. 와테스가 약해진 것과 같다. 무엇보다 와테스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

이것이야말로 주문을 시전하고 손에서 불덩이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지독한. 진정한 마법이다. 혹자는 사기라고도 말할지 모르지만 마나를 쓰지 않고도 타인의 마음을 움직여 조종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마법 위의 마법이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서 말했다.

와테스는 곧 죽는다. 그 전에 의식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저자가 힘을 얻는 것을 막고 의식을 완성시킬 수 있다.

의식을 완성시킬 수 있는가?

오호, 이것은 와테스의 질문이다.

반만 완성시킬 수 있다. 그 완성된 힘을 파괴의 주문으로 바꾸면 저자를 칠 수 있다. 우리는 소모되겠지만 링은 보존될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고 진심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을 말했다. 의식이 공유된 상황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좋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행하라.

와테스가 명했다. 더불어 그의 제어가 서서히 풀려나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풀리기 시작한 의식의 주도권을 잡았다. 다른 섀도우 드루이드들도 와테스의 명에 순응하여 내가 의식을 주도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오예! 이것으로 드루이드 링을 손에 넣었다. 나는 마법의식을 진행하여 모든 힘이 나에게 집중되도록 했다.

쾅, 쾅, 퍽

와테스가 견디지 못하고 주먹에 맞아 피떡이 되었다. 비명도 없이 갔지만 영혼이 지르는 고통의 외침은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콜레스 2세는 그런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외쳤다.

“크하하하, 이것으로 마법의식은 끝이다. 저희들이 얻으려 했던 힘은 모두 나의 것이다.”

아니거든요. 그렇게 쉽게 힘을 얻게 내가 놔두지 않거든요.

나는 콜레스 2세를 향해 썩소를 날렸다.

우우우웅

드루이드 링 전체가 파란 빛을 띠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의식이 완성된 것이다. 원래의 주체자인 와테스가 죽는 바람에 원래 얻으려 했던 힘의 절반정도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막대한 수준의 힘이 나의 몸으로 흘러들어온다.

내 몸의 마나가 차오른다. 그것은 단순한 마나의 주입이 아니다.

육체가 개변된다. 불사체를 만들 수 있는 힘의 절반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콜레스 2세는 그때서야 당황하며 발로 드루이드 링의 기둥을 찼다.

쾅, 쾅, 쾅

하지만 마법의 의식이 완성된 드루이드 링은 콜레스 2세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했다.

즈즈즈즈

내 몸의 내부가 계속해서 변화한다. 하지만 나는 불사체가 될 마음이 없다.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마나홀의 확장이다.

7서클!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를 7서클의 벽을 지금 이 순간 육체개변을 통해 뚫고 있다.

투툭, 투툭

“우욱!”

몸의 혈관이 터져나간다. 심장도 터지기 직전이다. 역시 한순간에 서클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 힘이라면 가능하다. 내가 이런 고통 속에서도 의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집중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죽지만 않는다면 틀림없이 된다.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한다. 적을 치고, 적을 유인하고, 그리고 나를 성장시킨다!

내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환희인지 고통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각의 영역이었다.

스스스스

드루이드 링이 움직임을 멈췄다. 파란 색의 빛이 사라지고 원래의 칙칙한 바위 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바위에서 떨어져 나왔다. 내가 베개처럼 머리 뒤에 대고 있던 카이스난의 저주흡수 해골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동화의 힘을 흡수하느라 힘이 다한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7서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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