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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11화 (111/250)

로엔의 마나뱅크 111화

*

어느 순간 숲의 기운이 확 바뀌었다. 그야말로 모든 나무가 우리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듯하다.

실롯이 알려줄 필요도 없이 우리는 드디어 섀도우 드루이드의 본거지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나무뿐 아니라 새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도 모두 살기를 내뿜고 있다. 마계가 있다면 이런 분위기이지 않을까?

쌓여있는 나뭇잎이 부스스하고 부풀어 오르더니 아래 숨어있던 자가 나타났다.

“물러가라. 지금은 너희와 싸울 여유가 없다.”

“훗, 엘프가 직접 말을 걸어도 되는 거냐?”

“말장난 하고 싶지 않다. 물러가라.”

“미안하지만 우린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면 죽어서 나무들을 위한 거름이 되어라.”

부드드득

땅에서 나무뿌리 수천 개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미 이반 경이 손짓으로 경고를 해 주었기에 우리는 충분한 대비를 했다.

“대지동결!”

쩌저정

땅이 얼어붙고 뿌리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래도 움직여보려고 꿈틀대는 뿌리들은 곧 동사할 것이다.

나는 비웃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콜레스 2세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힘을 아끼다가는 너희들의 숲은 사라질 것이다. 콜레스 2세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손으로!”

“어린놈이 데려온 사람들을 믿고 자신감이 넘치는군.”

섀도우 드루이드가 차갑게 말하며 입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털이 나며 육체가 부풀어 올랐다.

곧 상대는 거대한 곰으로 변했다.

셰이프 체인저. 스스로 웨어베어의 기운을 받아들여 제어하는 자다.

크왕

곰이 달려온다. 크기가 5미터는 넘어 보이는 곰이다.

하지만 힘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나는 즉시 옆에 박혀있는 바위 하나를 들어 올려 앞에 세운 채 곰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하압!”

곰과 나는 바위를 움켜쥔 채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으, 거인의 힘을 지닌 난데 밀어낼 수 없다.

“크리드 경!”

“이미 가고 있다.”

휘익, 탓

내 뒤를 따라 달려오던 크리드 경이 점프하며 곰의 머리를 공격했다. 곰은 크왕 하고 분노의 포효를 하며 바위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바위를 놓으면 지는 거거든.

나는 다시 돌진하며 곰의 몸통을 바위로 찍었다.

끄왕

아프지? 세상에서 바위 들고 때리는 마법사는 처음 보지?

크리드 경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으로 곰을 찔렀다. 그러나 칼에 맞은 곰은 피를 흘리지 않고 그대로 나뭇잎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런, 환영이었나?”

“아니에요. 분명히 실체였지만 나뭇잎을 이용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나 보네요.”

“맞아, 리프 체인지라는 드루이드 마법이야. 고의 마법이고 자기 영역 안에서만 쓸 수 있어.”

미리아가 그동안 실롯과 다니면서 드루이드 마법에 대해 공부를 했나보다. 친절한 설명 고맙네.

“뿌우 소환, 돌개바람으로 나뭇잎을 모두 허공으로 말아올려버렷.”

“뿌우, 알았당.”

마법을 방해하는 데에는 촉매를 제거하는 게 제일 확실하고 편하다. 나뭇잎으로 대체되는 순간이동이라면 나뭇잎이 없으면 쓸 수 없을 걸?

나 같으면 아예 흙으로 대체를 시키겠지만, 숲의 마법은 대지 속성이 아니니 힘들 거다.

휘리리링

나뭇잎은 가볍다. 뿌우는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나뭇잎들을 모두 하늘 위로 올려버렸다.

검게 얼어붙은 땅에 나뭇잎까지 없으니 이제는 숲이라기보다는 수련장 같은 공터가 되었다.

그러자 나무들이 더 이상 못 참겠는지 거대한 가지들을 움직여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딜!”

파팍, 팍

크리드 경이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우리 앞에 서서 가지를 쳐냈다. 그러나 잘라진 나뭇가지 역시 살아서 움직인다. 그것들은 크리드 경의 발쪽으로 기어오는데, 자신을 쳐낸 자의 움직임을 방해하려는 듯 했다.

“역시 모두 트리언트였나? 그것도 강화되어 있군.”

“다 태워버릴까?”

이반 경이 다가와 말했다. 이미 그의 양손에는 불덩이가 생성되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아니요. 태우면 숲의 저주가 시작될 거예요. 여기서는 화염마법을 가능한 한 안 쓰는 게 좋겠어요.”

“그렇다면 부서버려야겠군. 파워램!”

펑, 콰직

이반 경이 주먹을 뻗자 10미터 앞에 있는 트리언트 하나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나 역시 트리언트의 가지를 손으로 잡아서 되는대로 꺾어버렸다.

하지만 나무의 수는 많고,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곧 우리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트리언트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런, 움직임이 제한되면 제대로 싸울 수가 없는데.”

크리드 경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상황은 수천 명의 중장보병에게 낑긴 기사의 느낌이랄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이러면 검을 휘두를 수조차 없다.

“역시 태워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저주는 나중에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잖아.”

“숲의 저주는 처리하기 힘들어요. 우리가 불을 사용하게 만드는 게 바로 저 섀도우 드루이드들의 목적 중 하나일 거예요.”

“그 정도란 말이지?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압!”

콰콰콰콰

크리드 경은 기합을 지르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검날이 파랗게 빛나며 사방에 걸리는 모든 나무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단숨에 잘라내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운 것들은 도끼로 찍어내듯 퍽퍽 패였다. 마치 크리드 경의 검격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분해되어 버리는 듯하다.

“저 양반, 진짜 한 수는 숨기고 있었군.”

크리드 경의 실력을 조금 얕봤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음흉한 분이네. 어쨌든 크리드 경이 실력발휘를 하니 나와 미리아도 움직일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미리아는 얼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트리언트가 파괴되며 지르는 비명이 얘한테는 상당히 크게 작용하나보다.

그런데 실롯은 어딨지? 미리아가 이정도면 실롯은 더 할 텐데.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실롯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실롯이 어디에도 없었다.

“미리아야, 실롯은 어디 있어? 도망갔나?”

“저 나무속에 들어가 있어.”

미리아가 뒤쪽에 있는 트리언트 중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과연 그 트리언트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동화한 거야?”

“아니, 잠시 숨은 거와 같아. 트리언트속에 숨으면 다른 트리언트가 공격하지 않으니까.”

“아하! 맞아. 나무는 나무를 공격하지 않지.”

동물끼리는 서로 잡아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무는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그러지 않는다.

“이반 경, 폴리모프 우드를 써 줘요. 우리 모두 나무로 변신하면 이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못 움직이니 섀도우 드루이드들에게 공격당하지 않을까?”

“일단 트리언트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게 중요해요.”

“알았네. 폴리모프 우드!”

슈슈슈슉

우리는 모두 나무가 되었다. 그러자 과연 트리언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휴, 예상대로군.”

“섀도우 드루이드들은 어디 갔지?”

“갸들은 지금 내부에 모여서 뭔가 의식을 행하는 중일 거예요. 그러니까 이쪽에 신경을 쓸 여유가 별로 없는 거죠.”

트리언트를 쓴다는 것은 말하자면 최종경계 발동과도 같다. 아마 섀도우 드루이드들은 이걸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로 변해 트리언트의 공격을 멈추게 했고, 한번 멈춘 공격은 다시 경계를 발동시키기 전에는 그대로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불로 트리언트를 태웠다면 절대로 멈추지 않겠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거라서 이 영역뿐 아니라 엘프의 숲 전체가 우리를 적대시하게 될 거다.

나는 이 이치를 일행에게 설명해 주었다.

미리아도 내 설명을 듣고는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렌 너는 정말 엘프만큼 숲에 대해 잘 아는구나.”

당연하지. 대마법사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거든. 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사람이잖아.

“그냥, 숲 전체가 마법진 같은 거라 생각하고 그 규칙을 파악하고 이용할 뿐이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확실히 알겠어. 지금 섀도우 드루이드들은 모든 것을 걸고 콜레스 2세를 막으려 하고 있어. 우리라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에게 눈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

미리아가 물었다.

“일단 섀도우 드루이드의 의식을 막아야 해. 그게 뭐든지 간에 콜레스 2세를 상대하기 위한 의식이라면 우리에게도 위험할 거야.”

“그럼 어서 가 보자.”

“그래.”

적은 상당히 궁지에 몰렸다. 엘프인 섀도우 드루이드가 직접 나타나서 우리에게 경고를 했고, 트리언트를 움직이게 해 놓고 저들은 물러나서 딴 짓을 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적은 쫒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반대로 약할 때 치라는 말도 있다. 지금은 무조건 섀도우 드루이드를 쳐야 할 때다.

내가 보기에 콜레스 2세보다 섀도우 드루이드가 더 위험한 존재다. 막말로 콜레스 2세가 세상을 정복한다고 해도 그자는 오래 못 간다. 저주로 죽음에서 억지로 빼내어 언데드 골렘이 된 상태라 길어야 십년에서 이십년 정도다.

하지만 섀도우 드루이드는 앞으로 몇 천 년이 지나도 존재한다. 그들이 숲 이외의 모든 것을 적으로 삼은 이상 끊임없이 이번과도 같은 음모를 꾸밀 것이다. 그리고 섀도우 드루이드들은 숲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 궁극마법진의 힘을 쓸 수 있는 인류의 적인 셈이다.

숲의 마법을 깨서 엘프를 멸종단계까지 몰아갈 생각이 없는 이상 섀도우 드루이드들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나의 오래된 조직을 부수는 것은 인과율 상 그다지 좋은 선택이 못 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걸 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게 낫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게 세상일을 순조롭게 행하는 길이니까.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이 트리언트들에게 축복하고 강화마법 좀 걸어주죠.”

“헛, 이놈들을 더 강하게 만들자고?”

“내가 보기에 콜레스 2세도 여기를 지날 거예요. 그러니 트리언트가 좀 더 잘 싸울 수 있게 해놓으면 시간을 벌 수 있어요.”

“아하, 그건 그렇군.”

크리드 경이 납득했다는 듯 손뼉을 쳤고, 이반 경은 내가 말한 대로 트리언트에게 강화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미리아 역시 정령에게 걸듯 나무를 축복하니 트리언트들은 부러지거나 잘려나간 가지가 다시 자라고 잎도 몇 배나 무성해졌다.

그 위에 나무껍질이 검은 광택을 띠며 금속성으로 바뀌니 이것은 나무가 전신갑옷을 입은 형국이다.

“이정도면 콜레스 2세도 쉽게 뚫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강화마법을 거느라 마나를 너무 소모했네.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좋겠군.”

“쉴 시간은 없어요. 바닥난 게 아니면 그냥 가죠.”

“어쩔 수 없군.”

이반 경은 크리드 경 앞이라 나한테 반말을 쓰지만 사실은 내가 스승이기 때문에 내 명령은 무조건 듣는다. 마법사가 마나가 부족할 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살행위이지만 내가 시키니 두말없이 따르는 것이다.

나 역시 마나가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대규모 의식을 방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마나가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인 만큼 약간은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다.

크리드 경도 있고, 렉스와 서피, 마리포즈도 있으니 전력상 큰 손실은 없다.

우리는 곧 이동을 시작해 어느 순간 섀도우 드루이드의 본거지가 있는 거대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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