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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09화 (109/250)

로엔의 마나뱅크 109화

*

“너희들을 저주한다. 우리는 너희 때문에 멸망했다.”

섀도우 드루이드의 지도자는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드루이드 링이 회복불능으로 흩어져 버린 게 절망을 불렀나보다.

찌릿, 찌릿

확실히 이자의 말에는 힘이 있네. 정말 말로만으로도 저주가 되어 내 심장을 자극한다.

“잠시만요.”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작은 해골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미리아의 친어머니인 카이스난이 쓰던 해골로 저주의 힘을 모으는 마녀의 도구다.

츠츠츠츠

오, 상당한 힘이네. 이자가 지금 자기 생명을 담보로 저주를 걸고 있군.

“크읏, 그것은 저주수집기!”

“바로 알아보네. 고마워. 그대의 생명력이 주입된 저주의 힘. 잘 쓸게.”

“크으으으.”

후회해도 소용없어. 한번 발동된 저주를 중간에 멈출 수는 없잖아.

나는 조용히 저주수집기가 상대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상대의 혼이 절반쯤 빠져나가 의식이 거의 사라졌을 때, 입을 열어 질문을 했다.

“섀도우 드루이드 링은 모두 몇 개지?”

“세 개다.”

“그럼 이제 두 개 남았네. 그중 가장 강한 게 너희 것인가?”

“아니다. 와테스가 계시는 링이 가장 강하다.”

“그곳에 콜레스 2세가 있겠군?”

“…….”

모르는군. 모르는 것은 대답을 못 하니까.

“실라브엔이 와테스의 링에서 온 자인가?”

“그…렇다.”

섀도우 드루이드 지도자는 거기까지 대답하고 의식을 잃었다. 상태를 보니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같이 죽자는 식으로 만만한 나한테 저주를 걸었다가 당했으니 할 말 없겠지?

그런데 잠시 후 한쪽에 몰아 놔두었던 다른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모두 숨이 끊어졌다.

“이런,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수하들까지 모두 포함시켰군.”

어째 생각보다 힘이 세더라니.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모르지만 하급 드루이드들이 모두 단호하게 죽음을 택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의 결정 하나로 모두 죽어야 한다.

역시 이들은 선한 집단은 아니라고 봐야겠군.

나는 혀를 쯔쯔 차며 고개를 돌려 미리아에게 물었다.

“미리아야, 와테스라는 자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와테스는 이름이 아니라 계급이야. 섀도우 드루이드 중 최고위를 뜻해.”

“대법관 같은 지위로군.”

“비슷한데, 와테스라는 직위는 버서커를 만들 수 있는 자에게 줘.”

“버서커?”

“응.”

미리아의 설명에 의하면 드루이드의 지도자는 능력에 따라 몇 단계로 나뉘고, 그중 가장 높은 단계의 고위 지도자가 대표가 된다고 한다.

와테스는 그중 최고위이자 가장 무서운 능력인 버서커 제조를 할 수 있는 지도자를 뜻한다는 것이다.

“현재 섀도우 드루이드의 수장이 와테스라는 것은 몰랐어. 정말 와테스라면 조심해야 할 거야.”

“조심해야지. 하지만 이제 와서 도망갈 생각은 없으니 어서 이동하자.”

“어디로 갈 건데?”

“엘프를 만나야 할 거 같아. 가능하면 높은 직위의 엘프 장로와 면담을 하고 싶어.”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중간에서 전령을 하면 어느 정도 의견 교환은 할 수 있을 거야. 안내할게.”

“그래, 이번에야 말로 처음 계획대로 미리아의 안내를 받아보자고.”

“별로 자신이 없어. 여긴 처음 와 본단 말이야.”

미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우리는 또 다시 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낮에는 해의 위치를, 밤에는 달과 별의 위치를 확인했다.

걸으면서 나는 틈틈이 미리아에게 버서커라는 존재에 대해 물어보았다.

마법에도 버서커라는 게 있다.

인간에게 이성을 잃고 주변의 모든 것을 살륙하게 만드는 저주의 일종이다. 무서운 것은 이게 저주임과 동시에 가장 강력한 강화마법이라는 것이다.

근육과 신경을 한계 이상으로 사용하게 하고, 생명력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까지는 고통도 느끼지 않고 멈추지도 않기 때문에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와 함께 마법사들 사이에는 금지된 마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마법의 버서커를 쓸 수 있는 정도로 섀도우 드루이드의 최고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새도우 드루이드는 엘프다.

엘프가 말하는 버서커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었다.

“나도 대충밖에 몰라. 그냥 들은 바로는 와테스는 사람의 감정을 조각내어 일부분만 제거할 수 있데. 그걸로 버서커를 만들어 가디언으로 삼는다고 했어.”

“감정을 조각내어 제거한다라…….”

무슨 의미일까?

“정 알고 싶으면 장로에게 물어 봐. 아마 나보다는 잘 알겠지.”

“그게 낫겠군. 알았어.”

“이제 길을 찾아서 삼일 정도만 더 가면 부족의 입구에 도착할 거야. 거기서부터는 내가 혼자 가서 장로를 만나야 해.”

“흐, 설마 이번에는 미리아 네가 나타나서 우리를 공격하는 거 아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미안, 농담이었어.”

농담은 농담인데 정말 미리아를 혼자 보내기는 싫다. 미리아 자체의 능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만약의 일이 발생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 인간 말고 렉스나 서피는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

“우웅, 서피는 마기가 있어서 곤란해. 렉스는 괜찮고.”

“오, 그럼 렉스랑 같이 가. 그리고 이 지팡이도 들어.”

“그건 네 지팡이잖아.”

“빌려줄게. 뿌우야. 문제가 생기면 네가 미리아를 데리고 빠져나와라.”

내가 지팡이에 대고 말하자 뿌우가 고개만 불쑥 내밀고 말했다.

“염려마랑. 누님의 안전은 내가 지킨당.”

그렇지. 넌 나보다 미리아에게 더 충성을 하지. 성녀의 정령축복 한 번에 완전히 넘어간 놈. 쯔쯔쯔.

한심하면서도 믿음이 간다. 렉스와 뿌우라면 충분히 미리아를 지킬 수 있겠지.

만약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대책을 세우면서 숲을 헤치고 나아가 우리는 결국 미리아가 말한 부족의 경계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

미리아는 역시 혼자 떨어지는 것이 불안한 듯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태연하게 부족 안쪽으로 들어갔다.

“또 며칠 동안 여기서 야영을 해야 하는군.”

크리드 경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습당해 싸울 가능성이 적으니 다행이지요.”

“하하하, 맞아. 사실 바위에 낑기는 순간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지. 자네의 적절한 도움이 없었다면 빠져나올 수 없었을 거야.”

“이번 전투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해요. 강력한 조직을 적진에서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많을 거라고 봐요.”

“맞아. 그런데 이제 그 섀도우 드루이드의 수장이 있는 곳을 갈 건가?”

“아니요. 그곳에 함부로 접근하면 위험할 거 같아요.”

“그럼?”

“약한 쪽부터 쳐야죠.”

“흠, 그냥 적의 본거지를 바로 공격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빠를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위험하니까요.”

“약한 쪽을 치면 뭐가 달라지지?”

“적이 본거지를 나와 우리를 공격하게 유도할 겁니다.”

“그게 가능할까?”

“제 생각대로 된다면 가능해요.”

나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대답을 해준 것도 일부러 한 거다. 여기는 숲이고, 아마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가 엿들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계획을 얘기했고, 그들은 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비를 해도 본거지를 치는 것보다는 쉽다.

만약 콜레스 2세가 그곳으로 와 준다면 좋고,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면 된다.

속으면 좋고, 안 속아도 좋은 계략이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허공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며 커다란 새가 내려앉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새가 아니라 그리폰, 엘프들만 길들일 수 있다는 숲의 마수였다.

“렌 경, 인간 마법사 렌 경이 있나요?”

엇, 엘븐 캐벌리어가 나를 찾다니. 엘프는 인간과 거의 대화를 안 할 텐데.

나는 얼른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바로 렌입니다. 숲의 가족이자 수호자인 엘븐 캐벌리어께서 저를 찾으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엘프의 예법에 맞춘 인사다. 상대 엘프는 내가 인간치고는 제법 예의를 안다는 듯 한 표정으로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여기 은견의 수정구를 가져 왔습니다. 미리아와 장로께서 대화를 하는 동안 렌 경이 지켜볼 수 있는 허가가 나왔으니 보도록 하십시오.”

아하, 미리아가 성공했군.

나는 엘븐 캐벌리어가 건네는 수정 구슬을 받아들고 바위 위로 올라가 앉았다. 그리고 손을 수정구슬에 대자 부우용 하는 진동음과 함께 수정구슬 안에서 미리아와 장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을 대고 있으니 머릿속으로 둘의 대화가 들려온다. 미리아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내가 접속한 것을 느꼈는지 질문을 시작했다.

“장로, 섀도우 드루이드가 숲의 힘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하는데, 장로께서는 이것을 막을 수 있나요?”

“저들의 영역 밖에서도 공격했느냐?”

“아니요. 실라브엔이라는 엘프가 우리를 속여서 그들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였어요.”

“그렇다면 내가 참견할 수 없구나. 하지만 섀도우 드루이드 실라브인이 너까지 속였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될 것이다.”

“실라브엔은 이미 나무와 융합한 채 우리와 싸우다 죽었어요. 그리고 북쪽의 섀도우 드루이드 링은 파괴됐고, 구성원도 모두 저주를 위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요.”

“슬픈 일이구나. 그렇다면 너와 관계된 인간들이 앞으로 이 숲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렌은 다른 섀도우 드루이드 링을 공격하겠대요. 그것이 다른 엘프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더군요.”

“그것 역시 슬픈 일이지만, 딱히 우리와는 관계가 없구나. 섀도우 드루이드는 그들만의 목적을 위해 외부의 존재를 숲에 들였고, 그 존재는 마족과 연관이 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숲의 규칙에 어긋난다. 앞으로 일어나는 사태는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렌이 물었어요. 북쪽의 드루이드 링이 파괴 되었으니 섀도우 드루이드가 숲의 힘을 이용하는 게 약해질까요? 이론대로라면 약해져야 한다고 하네요.”

“아마 그럴 것이다. 렌이라는 자는 숲의 힘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지니고 있나 보구나.”

“숲의 힘이 아니라 마법 전반에 엄청난 지식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숲의 힘도 이치적으로 따져서 생각한 거고요.”

“같은 이야기다.”

장로가 좀 걱정하는 눈치네. 인간이 숲의 힘을 분석하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지.

미리아는 계속해서 내가 미리 지시한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장로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역시 마족의 후계자를 되살려 끌어들인 게 마음이 들지는 않았나보다. 기본적으로 엘프는 선한 종족이고, 마족과는 인간 이상으로 적대시 하니까 말이지. 인간은 마족과 계약을 해도 엘프는 절대 계약을 안 한단 말이야.

“그럼 마지막으로 잠시 후 질문을 할게요.”

미리아는 일단 말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정구를 통해 좌표를 잡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모양이다.

[또 질문할 거 있어?]

나 역시 수정구를 통해 미리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대놓고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사는 곳의 위치를 물어봐 줘.]

“장로, 북쪽은 정리했는데, 남은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사는 곳이 어딘지를 알고 싶어요.”

“그것은 규칙에 따라 외부인에게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찾아가겠다면 안내인을 붙여주겠다.”

“고마워요. 장로.”

훗,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로군. 안내인은 미리아를 안내하고, 미리아는 우리를 안내하는 거니까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다는 거지.

장로도 우리가 섀도우 드루이드와 싸우는 걸 반대하지 않는군.

하긴 섀도우 드루이드 링을 부수면 숲의 힘에 대한 지분이 엘프쪽으로 넘어갈 테니까 말이야. 내 예상대로다. 이제 우리가 떠나면 장로는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잃은 숲의 힘을 자신들에게 되돌리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 상 엘프가 우리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콜레스 2세.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다. 완전한 불사체가 아닌 반토막 난 불사체인 상태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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