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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08화 (108/250)

로엔의 마나뱅크 108화

“서피야, 저들을 공격해라.”

샤악

서피는 공격명령을 받자 기분 좋은 듯 내 주변을 부드럽게 한 바퀴 돌고는 바로 숨어있는 드루이드에게로 날아갔다.

역시 마수답게 지키는 것보다는 공격을 좋아하는군.

“아악, 독기가!”

흥, 서피가 내뿜는 독마기는 일반 독하고 다르지. 어떻게 보면 내가 마족의 계약자고 저들이 선량한 드루이드로 보이는 광경일지 몰라도, 마기든 신성력이든 적을 치면 무기고, 막으면 방패 아니겠어?

나는 다시 허공에 떠 있는 뿌우에게 말했다.

“뿌우야. 너도 가서 섀도우 드루이드들 정리하는 거 도와줘. 낙뢰는 이제 된 거 같으니까.”

“알았당. 소리아양, 가장.”

“네, 오빠”

쟤들이 싸우면서 연애하네. 부럽다.

날아가는 뿌우와 소리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아래쪽에서 미리아가 외쳤다.

“렌, 난 뭐해?”

아, 맞다. 미리아가 있었지.

“넌 악령의 나무에 턴 언데드 마법을 걸어. 섀도우 드루이드는 건드리지 말고.”

“알았어. 터닝!”

촤아아아

역시 성녀의 턴 언데드는 특별하네. 한번 사용하니 크리드 경이 열 번 찍은 정도의 나뭇조각이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이것도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이 악령의 나무에 걸려 있는 보호마법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다.

지금 악령의 나무는 마법적인 강화가 모두 해제되고 오로지 맨몸으로 우리 일행의 공격을 받고 있다. 거기에 내부도 낙뢰에 의해 거의 파괴되어 이제는 재생능력까지 사라진 것 같다.

활활 타오르던 불도 꺼져가는 것을 보니 저주의 힘도 사라지기 직전이다.

거의 끝난 셈이지.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나는 눈을 감고 촉수를 통해 나무의 상태확인에 집중했다.

원래 무술의 고수는 상대의 팔 한쪽을 잡고 있으면 눈을 가려도 모든 동작을 예측해 낼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촉수와 딱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악령이 나무 본체에 생기는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쯔쯔, 쯔쯔즉

역시 최후의 발악을 하는군. 나무의 조직이 재생이 아닌 분열을 시작했다.

나는 즉시 눈을 뜨고 외쳤다.

“피해요! 자폭합니다.”

“캬아아아아! 그걸 어떻게?”

“훗, 내가 여기 딱 붙어 있는 이유가 자폭의 순간을 알기 위해서였거든.”

악령의 나무는 원래부터 오래 사는 괴물이 아니다.

시전자가 최후를 각오했을 때 쓰는 저주의 최고봉으로 살아있는 동안 촉수로 최대한 많은 적을 끌어들인 후 힘이 다하면 자폭을 하게끔 되어있다.

하지만 지금 촉수에 잡힌 것은 나 혼자뿐이고.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은 얼마든지 몸을 뺄 수 있다는 거지.

“카아아아아!”

콰콰콰콰쾅

악령의 나무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폭발했다. 내 경고를 들은 이반 경과 크리드 경, 그리고 미리아는 무사히 몸을 뺐고, 나는 정통으로 폭발에 휘말렸지만 결계의 로브는 이 정도 폭발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단지 공기가 사라져 숨을 쉴 수 없는 게 조금 답답했을 뿐, 나는 머리카락 한 오라기 그을리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나를 꽁꽁 묶고 있었던 촉수들도 모두 폭발에 타버려서 재가 되니 결계로브의 성능 중 하나인 먼지제거 기능이 발휘되어 모두 허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후우, 이제 대충 정리된 건가?”

나는 뿌우와 소리아, 그리고 서피가 간 쪽을 돌아보았다. 그쪽 역시 거의 정리가 된 듯 뿌우가 섀도우 드루이드 몇을 전격으로 지져 기절시키는 게 보였다.

“다 잡아놨당. 애들이 좀 약해서 일단 죽이지는 않았당.”

“강한 자는 하나도 없었어?”

“없었당.”

“흠, 그렇다면 책임자급 드루이드는 어디론가 몸을 피했다는 소리네.”

실라브엔이나 방금 악령의 나무가 된 엘프는 이 드루이드 링의 우두머리가 아닌 게 거의 확실하다. 그들의 행동이나 말투는 전사나 순찰자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미리아에게 물었다.

“섀도우 드루이드는 지도자가 하급자에 대한 애정이 없어?”

약한 자들만 놔두고 혼자 도망가다니? 이건 인간 사회에서만 있는 현상인 줄 알았는데 설마 엘프도 그런 건가?

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지도자가 다른 일로 외출을 한 게 아니라면 하급자들이 잡히는 상황에서 안 나타날 리 없어. 만약 누군가 도망가야 한다면 차기 지도자, 그러니까 드루이드 링이 후계자만 빠져나갈 거야.”

“그렇다면 지도자가 이미 외출을 한 상황이었다고 봐야 하나?”

“그것도 이상해. 실라브엔이 이곳으로 우리를 유인한 것을 보면 지도자의 허락이 있어야 하거든. 적을 들어오게 하고 자리를 비우는 지도자는 있을 수 없어.”

“얘들이 끝까지 헷갈리게 하는군. 일단 주변을 다 뒤져봅시다. 그리고나서 잡힌 자들을 심문하죠.”

내가 이반 경과 크리드 경에게 말하자 두 사람도 같은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과 북으로 흩어졌다.

혼자 다니면 위험하긴 하지만 저 두 사람이라면 어떤 위험도 대응할 수 있겠지. 이미 큰 놈은 처리 했으니까 말이야.

나는 나머지 일행들과 함께 우리가 가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조금 더 가니 아니다 다를까 드루이드이 본거지처럼 느껴지는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가운데는 큰 구덩이가 여덟 개 뚫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드루이드 링을 이루었던 바위 자국인 것 같다. 이게 여기 그대로 있었다면 우린 더 힘들었겠지?

나는 일단 바위 자국 주변에 큰 마법진을 그렸다. 이곳의 지기를 완전히 바꿔 공간좌표를 지워버리면 바위가 봉인에서 풀려나도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한 마디로 이자들이 수백 년 동안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드루이드 링 하나가 완전히 끝장나는 셈이다.

“그러니까 바위는 제자리에 놔둬야지. 왜 함부로 움직이고 난리야.”

적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이것으로 이 지역의 섀도우 드루이드는 끝장이 난 거다. 갈 곳 없는 떠돌이가 되어 숲을 헤매는 처지가 되겠지.

난 섀도우 드루이드를 궁지에 몰 거다.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견디지 못하고 콜레스 2세를 앞세워 우리를 공격할 때까지 그들의 본거지를 하나씩 털어버리겠다.

나는 마법진을 그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하나 세웠다. 저들이 우리를 유인해서 죽이려 한 이상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야 한다.

“렌 경, 섀도우 드루이드의 지도자는 찾지 못했네.”

크로드 경이 돌아와서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법진을 그리며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요. 그자가 이 싸움을 놔두고 다른 데로 갈 곳이 한 군데 있어요.”

“그게 어디지?”

“우리가 드루이드 링을 봉인해 놓은 곳이죠. 아무래도 드루이드 링이 있어야 그들의 본거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앗, 그럼 그곳이 위험하지 않나?”

“괜찮아요. 마리포즈와 렉스는 굉장히 강해요. 섀도우 드루이드의 지도자가 얼마나 강한지 몰라도 둘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솔직히 마리포즈와 렉스가 힘을 합하면 이반 경도 쉽게 이길 수 없다. 렉스의 목띠에 담겨 있는 힘은 장난이 아니고, 마리포즈는 그것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악령의 나무와 싸우는 도중에 드루이드 링이 돌아와 우리를 공격했을 것이다.

결국 섀도우 드루이드의 지도자는 마리포즈와 렉스에게 밀려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드루이드 링의 봉인이 풀려버리면 곤란하니 빨리 이곳의 마법진을 완성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됐어요. 이제는 섀도우 드루이드의 지도자를 찾으러 가죠.”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이것은 땅의 정령과 물의 정령의 힘을 이용해 지반의 구조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지반에 근거한 좌표는 모두 얽혀 버린다.

이제는 드루이드 링의 바위들이 봉인에서 벗어나도 각자 다른 곳으로 돌아갈 것이고, 두 번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뿌우에게 이반 경을 찾아오라고 해서 마법진을 활성화 시켰다. 그리고 다시 은폐의 효과를 발동시켜 마법진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 가요. 원래 싸웠던 장소로.”

“흐흐, 확실히 렌 경은 일처리가 확실하군. 이제 이곳은 끝이란 말이지?”

크리드 경은 내 단호한 처리가 마음에 드는 듯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가니 과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 두 개가 우적우적 하며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트리언트다. 엘프의 가디언같은 존재인데 어째 본거지에 없다 했더니 지도자가 이곳에 끌고 왔었군.

쿠오오오오

렉스의 울부짖는 소리가 숲 전체를 울렸다. 얘가 완전히 광폭화 되서 날뛰나 보내.

우리는 서둘러 드루이드 링을 봉인했던 곳으로 갔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엘프 한 명이 트리언트 두 마리와 함께 렉스를 공격하고 있었다.

렉스는 트리언트의 나뭇가지 공격을 몸으로 버티며 계속해서 엘프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엘프는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계속 방어막을 치면서 피하고 있었다.

마리포즈는 포스 큐브를 잡고 파워를 주입하는데 이미 자체의 힘이 떨어져 상당히 힘든 표정이었다.

나는 마리포즈를 보자마자 외쳤다.

“마리야, 이제 포스 큐브 유지 안 해도 돼. 렉스와 같이 싸워.”

“예, 렌 경.”

마리포즈는 즉시 포스 큐브로부터 손을 떼고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마리포즈가 노리는 것은 트리언트였다. 그것들이 가지로 마리포즈를 몇 대나 때렸던 모양이다.

팍, 팍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트리언트의 가지가 잘려나갔다.

“우리도 같이 싸우지.”

크리드 경이 나서려 했지만 나는 말렸다.

“일단 마리와 렉스에게 맡기고 우리는 주변을 포위해요. 제가 알기로 고위 드루이드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텔레포트 하듯 움직인다고 들었어요.”

“저런, 그럼 못 도망가게 결계를 쳐야겠군.”

이반 경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가 드루이드 링을 해방시키려고 하는 사이에 결계를 완성시켜요.”

“알았네.”

우리는 주변에 결계를 쳤다. 이반 경이 땅과 지역 전체에 걸쳐 마법을 걸고, 나는 큼직한 나무들 위주로 하나하나 결계를 걸었다.

결계만 쳤는데도 마나가 부족해졌다. 역시 마나뱅크의 마나가 없으니 힘이 들긴 드는구나.

그 사이 드디어 바위가 포스 큐브를 깨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섀도우 드루이드 지도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수호석이여. 가랏! 제자리로 돌아가 우리를 보호해라.”

슈슈슉

바위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을 보며 지도자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바보 같은 실라브엔 때문에 우리는 큰 위험에 처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숲의 힘을 이용해 너희들을 단죄하리라.”

“역시 드루이드 링이 숲의 힘을 이용하는 매개체였군?”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적인 이치로 볼 때 큰 힘을 끌어다 쓰려면 게이트가 필요하고, 이 근처에서 게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드루이드 링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네놈들이 결계를 쳐 봤자 위대한 숲의 힘 앞에서는 종이장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마.”

섀도우 드루이드 지도자는 지팡이를 든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숲의 힘을 끌어오기 위해 드루이드 링과 접속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곧 섀도우 드루이드 지도자의 얼굴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서, 설마!”

“그래, 이미 링이 있었던 곳의 좌표를 뒤죽박죽으로 바꿔놔서 바위들은 이상한 곳으로 갔을 걸? 이렇게 되면 다시 모으지도 못하지. 아마?”

“으으으으, 어떻게 그런 비밀을?”

“그냥 그럴 거 같았어.”

솔직히 9서클 되어 봐. 마법의 이치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질걸?

나는 불쌍할 정도로 당황해 있는 섀도우 드루이드 지도자를 보며 혀를 한 번 찬 후 이반 경과 크리드 경에게 말했다.

“빨리 잡아서 심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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