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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07화 (107/250)

로엔의 마나뱅크 107화

3장 숲의 힘

“찾았다. 저쪽이군.”

지맥을 따라 복잡하게 흐르는 기운이 모이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드루이드 링의 바위들을 조종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곳의 위치와 거기까지 가는 길을 기억했다. 일직선으로 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지맥의 흐름으로 미로와도 같은 숲의 길을 분석해야 했다.

“저 바위들은 어떻게 할까?”

이반 경이 물었다. 아직도 쿵쿵 거리며 포스 큐브를 깨려고 하는 여덟 개의 바위. 저걸 잡아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훨씬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 거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저건 여기 있는 섀도우 드루이드들의 가디언 같은 거다. 반대로 말하면 저것만 봉인하면 섀도우 드루이드들의 힘이 반감 된다는 소리지.

“마리야, 그거 언제까지 잡아둘 수 있니?”

“렉스의 목띠가 있으면 계속 되고요. 아니면 10분 정도밖에 못 버티겠어요.”

허, 마리포즈 자체의 힘으로는 그다지 오래 못 버티는군. 어쩔 수 없다.

“렉스야. 넌 여기서 마리와 함께 저거 지키렴. 혹시라도 누가 마리를 공격하면 지켜주고.”

끄응, 끙

렉스는 나와 떨어져 있기 싫은지 잠시 묘한 소리를 내며 머뭇거렸지만 내가 뒷다리를 두어 번 두드려 주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리포즈 옆으로 갔다.

“서피 너는 이리로 와. 너는 우리랑 간다.”

샤아악

서피가 목띠로부터 나와 내 지팡이 위에 또아리를 틀었다. 역시 이 녀석은 종속계약을 한 마수답게 명령을 내리면 두 말 없이 따른다.

“이제 가죠. 저 드루이드 링이 힘을 못 쓰는 사이에 섀도우 드루이드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그런데 섀도우 드루이드를 처치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의 목적은 콜레스 2세인데 말이야.”

이반 경이 의문을 표했다. 그는 역시 엘프와 싸우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이 손을 잡은 이상 결국 둘 다 처리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엘프의 숲에 들어오자마자 저쪽이 함정을 파고 접근해 온 것을 보면 우리가 싸우려 하지 않아도 숲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공격을 당할 거예요. 차라리 우리가 먼저 공격해서 적을 쳐서 정리하는 게 더 안전해요.”

“확실히 렌 경의 말이 맞습니다. 적어도 이 구역의 섀도우 드루이드라도 처리해야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크리드 경이 동의하자 이반 경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 역시 마법진을 통한 탐색에 참가했기 때문에 길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앞장서고, 이반 경이 가장 뒤에서 따라왔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쯤 걸으니 숲의 공기가 바뀌었다. 더 이상 추위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느낌까지 들었다.

“미리아야. 얘들이 따뜻하게 하고 살 이유가 있어?”

“없을 걸? 무엇보다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냉지에서 자라는 품종이잖아. 이 온기는 일시적인 거야.”

“젠장, 그렇다면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알고 뭔가 수를 쓰고 있다는 소리군. 달리죠.”

상대가 무엇인가를 준비한다면 그게 완성되기 전에 가는 게 옳다.

우리는 전력으로 달렸다.

그런데 정말 목적지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워지더니 이제는 열기가 느껴졌다.

“렌, 저기!”

화르르르륵

거대한 화염. 어떻게 숲을 지키는 섀도우 드루이드들이 화염을 일으킬 수 있지? 설마 나무를 태운 건가?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활활 불타오르는 나무 한 그루였다.

그런데 그 나무는 가지가 모두 꺾이거나 기묘한 모양으로 비틀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아까 실라브엔처럼 엘프 한 명이 박혀 있었다.

“설마 나무와 융합한 후 스스로를 태운 거야?”

미리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에서 상당한 슬픔이 느껴졌다.

적어도 미리아는 엘프를 일족으로 생각하는 만큼 아무리 섀도우 드루이드라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보자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그러자 나무에 박힌 엘프가 말했다.

“나를 위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난 내가 지키기로 맹세한 나무와 드라이어드가 죽은 이후 살 생각을 버렸다. 지금 이미 죽은 나의 나무와 드라이어드의 힘을 빌어, 그리고 나의 생명을 바쳐 너희들을 말살하겠다.”

“죽은 나무와 융합을 했군.”

이거 꽤 골치 아프겠는걸. 섀도우 드루이드가 지독한 자들이라는 것은 이미 각오한 바 있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설마 엘프가 언데드 나무를 만들어낼 줄이야.

단순한 언데드 나무가 아니다. 숲의 마녀들의 저주의식이 다수 행해진 고목에 산 엘프가 제물로 바쳐져서 탄생한 최악의 언데드 나무다.

가히 악령의 나무라고 할 만 하다.

거기에 불을 붙였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나무들이 지독한 연기를 뿜어댔다.

이반 경이 얼른 주변에 공기정화 심볼 마법을 시전 했다. 허공중에 나타난 심볼이 존재하는 한 공기의 오염을 막아주는 마법이다.

연기는 심볼의 힘에 의해 사방으로 밀려났다.

“확실히 이곳까지 침투할 정도의 능력은 있구나.”

악령의 나무가 날카롭게 외치며 입을 크게 벌렸다.

화르르륵

나무가 불을 뿜는다. 나는 피하지 않고 두 팔을 들어 얼굴만 가렸다.

하지만 뒤쪽에 있는 미리아와 이반, 크리드 경은 옆으로 뛰었고, 서피는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자 꺾인 나뭇가지로부터 촉수인지 덩굴인지 알 수 없는 가는 줄기들이 수백 가닥이나 뿜어져 나와 흩어진 자들을 쫓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외쳤다.

“줄기 자르지 말고 그냥 계속 피해요!”

난 악령의 나무에 대해 잘 안다.

이걸 엘프가 만들 줄이야 상상도 못했지만 마녀가 자신의 집을 이용해 쓸 수 있는 최후의 마법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녔기에 꽤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촉수는 한 번 자르면 잘린 부분이 마치 뱀처럼 변해 자른 자를 끝까지 쫓는다. 촉수는 자르면 안 된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돌진해서 지팡이 창으로 악령의 나무를 찔렀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엘프의 몸통부분에 창이 박혔지만 엘프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웃었다.

“내 몸을 뚫다니. 제법 좋은 무기구나. 하지만 소용없다.”

소용없는 줄은 알아.

나는 엘프의 말을 무시하고 박힌 창을 지렛대 삼아 밟아 위로 뛰었다.

“차압!”

기합까지 지르고 전력을 뛰었더니 단숨에 악령의 나무 위쪽으로 뛰어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자 촉수들이 갑작스런 침입자를 잡으려는 듯 순식간에 나한테 몰려들어 나를 미라처럼 꽁꽁 묶기 시작했다.

그래, 계속 묶어라. 더 묶어도 돼.

압력이 느껴진다. 원래 이정도로 조이면 몸이 으스러져 죽어야 정상이지. 하지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것을 결계의 로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구다.

나는 미리 준비한 마법을 시전했다.

“끈끈이!”

촤아악

강력한 접착제를 생성하여 상대의 몸을 구속하는 마법을 자신의 몸에 대고 쓰는 마법사가 나 말고 또 있을까?

나를 묶은 촉수들은 모두 끈끈이 접착제에 붙어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묶을 때는 마음대로지만 풀 때는 아니거든.

이걸로 악령의 나무의 공격수단을 태반은 봉쇄한 셈이다.

사실 난 이반 경이나 크리드 경에 비해 아직 약하다. 나의 강점은 악령의 나무처럼 보통 사람은 전혀 모르는 괴물들에 대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몸 안의 마나는 6서클이지만 머릿속 지식과 감각은 9서클 대마법사이니까 말이지.

“됐어요. 이제 몸통을 공격해요. 촉수는 절대 자르지 말아요!”

“알았네. 디바인 크로스!”

쩌저적

캬, 역시 이반 경의 공격마법은 위력적이야. 단순에 나무가 갈라지네. 그것도 화염을 억제하는 힘까지 같이 박아 넣었으니 이제 화염의 기세도 훨씬 약해질 걸.

동시에 크리드 경이 나무 앞까지 와서 검을 거칠 게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도끼질 같았는데, 실제로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나무가 한 움큼씩 패여나갔다.

나는 다시 외쳤다.

“완전히 산산조각 낼 때까지 안 죽어요. 시간이 지나면 재생하니 멈추지 말고 계속 부숴요.”

“으으,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악령의 나무로 화한 엘프는 독살스러운 목소리로 외쳤지만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뿌우야, 창 들고 이리 와.”

“요즘 내 집을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냥?”

뿌우는 투덜대며 나무에 박힌 창을 뽑아들고 나무 위로 올라왔다.

“창을 내 앞에 꽂고 하늘에서 계속 뇌전을 일으켜 줘. 강하든 약하든 많이 떨어질수록 좋아.”

“그렇다면 소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당.”

소리아는 크리드 경이 데리고 있는 물의 정령이다. 그런데 뿌우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어째 다정하다.

나는 밑을 내려다보며 크리드 경에게 외쳤다.

“크리드 경, 소리아를 소환해 줘요.”

“알았네. 소리아 소환!”

촤악

땅에서 물기둥이 솟아올라 하나로 뭉치며 젊은 여성의 모습을 형성했다. 그리고는 뿌우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뿌우 오빠, 물안개가 필요한 거예요?”

오빠? 얘들이 언제 또 이렇게 관계가 진전된 거야?

내가 일순 황당해 하는 동안 뿌우는 하늘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물안개를 많이 만들어줭. 낙뢰를 만들 거양.”

“그래요. 오빠가 원하신다면.”

아주 제대로 사귀는구먼. 쩝 부럽다.

촤아아아아

내가 부러움 반 질투심 반의 감정에 휩싸이는 동안 머리 위쪽으로 물안개가 퍼졌고. 곧 그 안에서 우르릉 하고 뇌전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과 바람을 이용해 원래 지니고 있던 뇌전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꽈드드등

정말 낙뢰가 내 지팡이 창 위로 떨어졌다. 아까 실라브엔이 소환했던 낙뢰보다 세 배는 강해 보였다.

꺄아아아아

악령의 나무가 비명을 질렀다.

낙뢰의 힘이 창을 통해 나무 안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내부를 부수는 중이다. 내부를 부수면 외부의 재생은 늦어지기 마련.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의 공격은 더욱 큰 효과를 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끈끈이 마법으로 주변의 촉수를 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촉수가 나를 피하려 했지만 나에게는 서피가 있다.

서피는 촉수를 몰아서 나에게 붙였다.

이제 악령의 나무는 파괴되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이것만 처리하면 이제는 괴물급의 상대는 없을 것 같았다. 섀도우 드루이드 자체의 힘이 무섭겠지만 설마 그놈들이 이반 경이나 크리드 경 정도로 강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적의 본거지를 털려면 정말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몇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간보다는 훨씬 은밀한 움직임. 아마도 엘프. 바로 섀도우 드루이드들이리라.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방법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방법을 가르쳐 줘야겠지?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손을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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