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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04화 (104/250)

로엔의 마나뱅크 104화

2장 엘프의 영역

우리 일행은 영지를 떠나 엘프의 경계선으로 향했다.

이번 멤버는 나와 이반 경, 크리드 경, 미리아, 마리포즈, 렉스와 서피다.

거의 총 전력이라고 할 수 있겠군.

적의 영역으로 쳐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말 세 마리에 짐을 가득 실고 가는데, 말에는 이반 경이 정신보호 마법을 걸어서 혹시라도 적이 공격을 가해도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게 했다.

하지만 말에 실린 짐은 일종의 더미로 중요한 물품은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왔다.

나는 이번에 강식장갑로브를 벗고 결계로브를 입었는데, 아직 결계로브를 제대로 수리할 수 없기 때문에 틈이 있는 부위를 막기 위해 강식장갑로브의 위쪽 후드 부분만 따로 떼어내서 덮어썼다.

마법아이템 두 개를 겹쳐 쓰는 것은 서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꽤 안정되어 보여서 안심이다. 완전히 겹친 게 아니라 빈틈을 메우기 위한 거라서 마력 충돌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말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니 조심할 필요는 없다.

남은 강식장갑로브는 미리아에게 입혔다. 머리 부분이 없어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스릴 우산이 있으니 어지간한 공격은 다 막아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렉스, 이 녀석은 내가 계획한 대로 전신에 미스릴 갑옷을 입었다. 얇으면서도 내가 창으로 찔러도 뚫리지 않을 정도의 강도다.

거의 미스릴 우산과 비슷한 강도이니 마나파동포의 충격파로부터도 충분히 몸을 보호할 수 있을 거다.

단지 발과 콧등 부분은 갑옷을 씌울 수가 없는데 미리아를 통해 남들이 우산을 펴면 엎드려서 그 부분을 몸속에 숨기라고 이야기 해 놓았다.

이것으로 방어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강화가 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크리드 경이나 이반 경은 알아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 그쪽은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리라.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해.”

미리아가 일행을 멈추게 한 후 말했다. 엘프의 영역 경계선에 도착한 모양이다.

“그냥 들어가면 엘프들이 화를 내겠지?”

“화는 안 내고, 그냥 어디선가 수면 약을 바른 화살이 날아올 거야. 그게 안 통하면 마법 화살 차례고. 다 쓰러지면 숲의 동물들이 물어서 경계선 밖으로 옮겨.”

“누군가 나타나서 여기는 엘프의 영역이다. 라고 말해주지는 않아?”

“엘프들은 인간이 자신들을 보는 것조차 싫어해.”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해야 갸들이 공격을 안 하는데?”

“일단 나랑 있으면 공격은 안 할 건데, 나랑 떨어지면 바로 공격할 테니까 곤란하지. 화장실도 가고 그래야 하잖아.”

“그래서?”

“조금 더 가면 나무 아래에 하얀 진흙이 있는데, 그걸 몸에 발라. 그러면 엘프의 의식을 아는 자로 취급 돼. 진흙만 바르면 화살을 쏘지는 않을 거야.”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려?”

“보름 쯤?”

“보름 동안은 따로 화장실도 못 가는 건가...”

우리는 먼저 이동식 간이 화장실을 만들었다. 미리아의 시선에서 떨어지지 않고 볼일을 볼 수 있게 해야 했다. 반대로 미리아도 우리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가 걸려 몇 가지 준비를 하고 조심스럽게 엘프의 숲에 진입했다.

숲에 진입하니 과연 느낌이 달랐다. 보통 사람은 몰라도 나는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숲의 나무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래서야 어떤 수단을 써도 엘프의 시선을 피해 숲을 오갈 수 없으리라.

“그들이 왔어.”

미리아가 경고를 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아마 미리아도 나무로부터 감각공유를 받는 모양이다.

“대화를 할 수는 없댔지? 그럼 우리가 섀도우 드루이드 쪽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

“설명 안 해. 그냥 규칙에 따라 이동할 뿐이지. 그들이 알아서 판단할 거야.”

미리아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사람을 데리고 엘프의 숲으로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겠지.

우리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화살 정도는 걱정을 안 하기 때문에 일단은 경계태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조금 지나니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엘프? 설마 우리와 대화를 나누려는 건가?”

미리아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 눈앞에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상상으로 말하는 엘프와는 조금 달랐다.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예쁘지도 않았고, 신비한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외모로 따지면 미리아 쪽이 두 단계는 위다.

단지 그녀의 녹색 눈동자는 상당히 특이했다. 감정을 알아보기 힘든 눈동자. 인간과는 다르게 홍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엘프를 보며 나름 분석을 할 때 미리아가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째서 규칙을 어기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죠? 혹시 그대는 종족의 굴레를 벗어났나요?”

“아직은 벗어나지 않았어요. 자매여. 단지 벗어날 자격이 생겨서 결정해야 해요.”

“아직 굴레 안이라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요. 그대는 이미 굴레를 벗어난 것이에요.”

“그렇다면 벗어난 것으로 하지요. 이제 내 용건을 이야기해도 되나요?”

“그래요. 저는 하프엘프 미리아, 그대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는 서쪽 숲의 실라브엔이에요. 성녀 미리아의 이름은 알고 있어요. 그대와 만나게 된 게 숲의 뜻이기를.”

“우리 일행의 리더는 인간인 렌이에요. 직접 대화하실 건가요? 아니면 제가 실라브엔의 말을 들을까요?”

“아직 인간과 대화를 나누기 것은 힘드네요. 미리아가 듣고 전해주세요.”

옆에서 내가 뻔히 듣고 있는데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은 역시 관습이려나? 나는 미리아를 통해 실라브엔과 대화를 시작했다.

실라브엔은 이번에 숲의 나무와 동화를 하기로 결정한 엘프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동화를 위해 나무와 대화를 하다 보니 나무의 의지에 강렬하게 개입한 존재들이 느껴졌다.

의문을 느낀 실라브엔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를 시작했다.

별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호기심 반 위화감에 의한 본능적 위기감 반 정도의 감정으로 한 일이다.

그러자 곧 마법사들, 그러니까 엘프 중에 마법을 익힌 자들이 순수하게 나무의 의지와 동화를 하지 않고 무엇인가 의식을 행한 다음에 동화를 해 왔다는 것이 실라브엔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엘프가 나무와 동화하여 숲의 일부가 되는 것은 평소 숲이 그들을 보살펴 준데 대한 보답과도 같은 것으로, 개인적인 의도나 욕망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법사들은 숲의 의지에 개입하여 자신의 뜻대로 힘을 쓸 수 있도록 수백 년 동안 변질시켜 온 것이다.

실라브엔은 이 사실을 장로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장로는 이미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단지 일반 엘프들에게는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까지로 일이 마무리 되었다면 실라브엔은 숲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와 동화를 하지 않고 그냥 생을 마감하던가, 아니면 그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처음 계획대로 나무와 동화를 하던가를 선택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숲이 실라브엔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숲이 실라브엔을 인식했고, 자신들의 의도가 밝혀지는 것이 싫은 마법사들의 의지가 그녀를 숲에서 쫓아내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독한 고통이었다. 평생 가족과도 같았던 숲의 기운이 이제는 자신을 거부하고 노골적인 적의를 보인다. 신선한 공기가 매운 연기처럼 변하고, 나뭇잎으로부터 떨어지는 이슬에서조차 독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엘프 장로도 막을 수 없는 숲의 의지였다. 장로는 한숨을 내쉬며 실라브엔에게 숲을 떠나라고 말했다. 해결책이 나온 이후에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라브엔은 한 번 엘프의 숲을 나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스스로 굴레를 벗어난 자가 돌아온 경우는 여태까지 없었다.

너무나도 슬퍼서 며칠 동안이나 울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숲은 계속 실라브엔을 괴롭혔다.

결국 실라브엔은 숲을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부락을 떠났다. 부족이 아닌 숲 자체로부터 추방당한 셈이다.

그래도 미련은 버릴 수 없다. 언젠가는 다시 숲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실라브엔은 끝까지 살아남아 버티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저는 고통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숲을 벗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른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경계선 부근에서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미리아를 만났네요.”

“그렇게 된 거군요. 그대의 불행이 참으로 슬프게 느껴져요. 실라브엔.”

“미리아는 굴레를 벗어나 살 수 있는 하프엘프, 괜찮다면 저도 미리아를 따라다니고 싶어요. 저는 굴레 밖에서 생활할 수 있는 미리아의 보호가 필요해요.”

실라브엔의 말을 다 들은 미리아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 눈빛이다.

거두어야겠지.

확실히 엘프 혼자 숲을 나서서 살 수는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실라브엔은 인간하고 말도 섞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데. 이 상태로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면 아마 사단이 나도 크게 날 가능성이 크다.

“미리아와 같이 우리 영지에서 살면 되겠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숲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거잖아.”

“당분간의 괴로움은 참을 수 있어요. 숲을 여행하겠다면 실라브엔이 안내를 하지요.”

“좋아, 미리아는 실라브엔의 보호자가 되도록 해. 이반 경은 실라브엔이 숲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만한 마법을 걸어주세요.”

“그렇게 하지요. 결계 같은 것을 걸어서 숲이 실라브엔 양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면 되겠군요.”

잘 되었다. 미리아도 사실 숲 전체의 지리는 모르는데, 진짜 제대로 된 안내인을 만난 셈이네.

우리는 실라브엔을 일행에 합류시키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이반 경의 대인용 결계마법이 효과를 거두어서 실라브엔은 더 이상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결계에 둘러싸인다는 것은 일종의 밀폐된 공간속에 갇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상당히 답답해하는 듯하다.

뭐, 괴로운 것 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며칠을 더 가서, 드디어 우리는 첫 번째 목표지점인 하얀 진흙이 있는 나무에 도착했다. 미리아와 실라브엔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흙을 얼굴과 몸에 발랐다. 완전히 바르는 건 아니고 수박 무늬처럼 구불구불한 선을 그렸는데. 다 그리고 나니 무슨 원주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됐어. 이렇게 한 번 바르면 진흙이 말라 떨어져도 향기와 자국이 남으니까 괜찮거든. 이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엘프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미리아가 말했고, 실라브엔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목표는 숲의 북쪽에 있는 드루이드의 고리다. 일반 드루이드의 협조를 받아야 섀도우 드루이드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실라브엔의 설명이었기에 우리는 계획을 약간 수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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