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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00화 (100/250)

로엔의 마나뱅크 100화

드디어 칼론 2세가 깨어났다.

다행히도 칼론 2세는 자신이 세뇌당해 조종당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짐이 그런 굴욕을 당했다니.”

칼론 2세는 치욕감에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분노했다. 그러나 곧 흉수가 자신의 죽은 아버지라는 것을 되새겼고, 이건 외부에 밝혀지면 마족의 계약자라는 치명적인 황실의 치부가 외부에 들어나게 된다는 마이어 경의 조언을 듣고 겨우 진정을 했다.

“마이어 경,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소?”

“소신도 마땅히 대처할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여기는 이반 경의 조언을 듣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오오, 이반 경, 이번에도 데빌 베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소. 하지만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희망하오.”

“황궁에 큰 변이 있었으니 당분간 정국의 안정에 전념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 사이 우리 데빌 베인에서 되살아난 자의 행방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찾을 수 있겠소?”

“체프코트 가문에서도 못 찾은 되살아난 자를 우리라고 찾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가지 남은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오! 그게 무슨 방법이오?”

“엘프의 예언입니다.”

“이반 경께서는 엘프와도 선이 닿아 있다는 것이오?”

“우연히 한 줄기 인연이 닿았습니다. 자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시험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의 호의에 감사하오. 꼭 되살아난 자를 찾아 처단해 주시기를 기원하겠소.”

황제가 날로 먹으려고 하네. 확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줄까?

이반 경은 내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렌 경이 되살아난 자로부터 탈출할 때 비장의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공격을 가해서 겨우 약간의 타격을 입히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되살아난 자는 보통 방법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공격마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다량의 미스릴이 필요합니다. 청컨대 제국의 미스릴을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 미스릴을 사용해서 강력한 공격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니! 비전의 마법이겠구려. 알겠소. 필요한 양을 지원해 줄 테니 마이어 경에게 요청하도록 하시오.”

강력한 공격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막는데 쓰이는 거지. 덤으로 렉스에게도 미스릴 갑옷을 하나 만들어 씌워줄 거고.

렉스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이 충격파에 버티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격을 안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미리아로부터 듣고 알았다. 물론 렉스는 싸움에 임하면 목띠로부터 강력한 방어막이 쳐지게 되어 있지만 마나파동포에는 전혀 소용이 없으니 이참에 미스릴 갑옷을 하나 맞춰줄 셈이다.

훗, 우산을 열개쯤 만들고 렉스의 갑옷까지 맞추려면 황도에 있는 미스릴을 모두 긁어모아야 할 걸?

황제가 대답을 했으니 딴 소리 하지는 않겠지.

칼론 2세는 미스릴 이외에는 우리가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자 안심한 듯 했다. 이자가 구두쇠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황궁의 보물창고는 콜레스 2세가 부활하면서 재물을 다 흡수하여 텅텅 비어있고, 며칠간의 내전으로 외궁의 절반 정도는 날아간 상태다. 황궁의 복구만으로도 수도 내에 특별세를 거둬야 할 텐데 우리가 막대한 보상을 요구하면 거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릴만 다 내놔요. 그걸로 충분하니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대의 사정에 맞춰서 보상을 요구하고 모자란 건 나중에 금전이 아닌 여러 가지 의미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

어차피 이제 덴판 제국은 우리 데빌 베인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스폰서로 써먹어 줄 거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탈출할 때 뿌우가 남은 재물을 싹 긁어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왔다. 거의 아공간 주머니의 한계용량에 해당할 정도의 보물이다.

칼론 2세는 그 사실을 모르기에 콜레스 2세가 모두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세리아 공주를 영지로 데리고 가서 장기간 치료와 요양을 행하겠다고 말했고, 칼론 2세는 세리아 공주가 데빌 베인의 멤버임을 말하며 앞으로 제국의 공주로써의 모든 의무로부터 벗어나도 된다는 인가를 내렸다.

알고 보니 제국의 공주는 국제결혼 이외에는 국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규약이 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이런 규약은 왜 만들었는지 몰라도 왕국 시절부터 있었던 규약이라고 한다.

덴판 제국은 남존여비가 꽤 심하다는 것만 새삼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게 칼론 2세와의 회견은 끝나고, 우리는 다시 마이어 경과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은 임시 가주이지만 만약 아론 경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마이어 경이 이대로 가주의 자리를 승계하게 된다. 궁중마법사의 직위도 이어받기로 이미 칼론 2세와 이야기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갓 7서클이 된 마이어 경은 사실 제국의 궁중마법사이자 10대마도가문의 수장이 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마이어 경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이반 경의 눈치를 보았다. 갈등의 눈빛이다.

이반 경을 회유하여 가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건가? 어차피 마도가문은 혈연이 아니라 사승관계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반 경은 지금 소속된 가문이 없다. 우리 데빌 베인은 가문이 아니라 연합조직이기 때문에 논외로 쳐야 한다.

새로운 가주로 아론 경과 쌍벽을 이루는 이반 경을 영입할 수 있다면 체프코트 가문의 위상은 전혀 줄어들지 않을 테니 바랄만도 하다.

더군다나 체프코트 가문은 정령에 대한 지식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미 정령과 계약을 한 이반 경의 영입은 가문 내의 정책에도 부합되는 면이 많다.

단지 마이어 경이 자리를 탐내는 성격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문제인데 지금 보니 이자는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 7서클 초입의 수준으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어떻게 할까?

난 일단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저쪽에서 정식으로 요청한 것이 아닌 만큼 시간을 끌면서 이반 경과 상의를 해 보자.

그런데 이반 경은 가문을 운영하고 이런 거 안 좋아하잖아? 진짜 마법만 파는 성격이지.

역시 그만 두는 게 좋겠군.

생각해보니 우습다. 마이어 경의 눈빛과 태도만으로 나 혼자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이다.

너무 사물의 내면을 살피려 하지 말자. 통찰력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청하신 미스릴은 떠나시는 날까지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미스릴을 사용하는 공격마법이 무엇인지 간단한 이론만이라도 가르쳐 주실 수 없겠습니까?”

날로 먹으려 들지 말라고. 너 같으면 가르쳐 주겠냐?

내가 속으로 욕을 하는데 이반 경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사형 범위 공격을 미스릴 판으로 반사시켜 집중시키는 수법입니다. 혼자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전투에 임한 사람 전원이 협력해서 위력을 강화하는 것이죠.”

“오, 범위 공격의 위력을 집중시켜 단일공격으로 변환시키면 확실히 위력이 서너 배로 올라가겠군요.”

이반 경이 그런 수법을 연구하고 있었구나. 상대가 질문하자 마나파동포의 일은 이야기 할 수 없어서 자신의 연구성과를 공유해 주는 거네.

그런데 이 사람이 그걸 왜 가르쳐 주지?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이반 경을 보았다.

따뜻한 눈빛이다.

그렇군. 마이어 경의 이번 질문은 진짜 순수한 탐구의 욕망에 의한 것.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거군. 마이어 경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쯔쯔, 이 사람이 너무 순진하네.

마이어 경이 인성이 바른 사람이고 호감형이기는 해도 가문의 굴레에 속한 몸. 쉽게 가르침을 베풀 대상은 아닌데 말이야.

뭐, 이반 경이 조금 더 자세하게 이론을 설명하니 마이어 경의 눈빛에 존경의 감정이 담겼네.

어차피 당분간은 여러 가지로 얽힐 일이 많으니 적당한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이어 경이 충분히 혼자 범위공격 집적법에 대한 이해를 했다고 판단될 무렵, 이반 경은 설명을 멈췄다.

이제 범위공격 집적법을 실용화 하는 것은 마이어 경의 노력 여하에 달렸고, 그걸 이룬다면 체프코트 가문은 앞으로도 현재의 위상을 어느 정도까지는 유지할 수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이반 경은 내가 미리 이야기 했던 부분을 말했다.

“아론 경께서 옛날에 입고 계시던 결계로브가 현재 체프코트 가문에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 로브는 알려졌던 것처럼 완벽한 방어력이 아닌 암살을 위해 알 수 없는 흠이 있다는 것이 판명되어 일단은 사용하지 않고 보관, 연구하기로 했지요.”

“아론 경께서 입었던 로브라면 이번 추적에 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괜찮다면 저희에게 양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건…….”

마이어 경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한 가지 물건에 집착할 상황이 아니니 기꺼이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당연하지. 원래 그거 황궁 물건이잖아. 연구를 목적으로 체프코트 가문에서 보관한 거고. 연구해도 전혀 분석이 안 되지? 궁극마법으로 만든 아티팩트거든.

내 예상이 맞는다면 마나파동포에서 나오는 충격파도 결계의 로브는 어느 정도 감소시켜 줄 거다. 완전히 막지는 못해도 마법효과가 단숨에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의 경우 미스릴 우산이 없어도 한번 정도는 마나파동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부상을 입겠지만 말이야.

우리는 마이어 경으로부터 결계로브를 얻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나는 요 몇 년간 거의 하루 종일 입고 있던 강식장갑로브를 벗고 결계로브를 입어보았다. 구멍 난 부분을 고쳐야하겠지만 오랜만에 전생의 로브를 보니 꼭 입어보고 싶어졌다.

이것으로 드디어 내가 전생에 쓰던 모든 무구를 되찾았다.

머리에 쓰고 있는 침묵하는 모자는 여전히 나에게 말을 할 생각을 안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얘를 쓰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안정감이 드니까.

그리고 결계로브는 나에게 있어 스스로 조심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과거 나는 결계로브를 입고 있음으로써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발데스 스팅에 당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공간주머니에서 발데스 스팅을 꺼내 살펴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고, 전문적으로 결계를 꿰뚫는 힘이 있는 최고의 암살무기.

이 두 가지를 보면 역시 세상에 무적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생각하고 연구해서 더욱 다양하고 강한 마법을 개발해야 되는 것이다.

마나파동포는 일단 어느 정도 실용화 되었다. 하지만 이게 최강의 공격마법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그것이 내 한계가 된다.

수법은 유한하나 마법은 무한하다.

이 점을 항상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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