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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98화 (98/250)

로엔의 마나뱅크 98화

8장 마나파동포

이반 경과 미리아가 도착한 후, 칼론 2세의 몸을 조사했다.

마이어 체프코트 경을 비롯한 덴판 제국의 주요 인사들은 이반 경만 오면 칼론 경이 곧 깨어나 정국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반 경을 보자마자 크게 안심한 표정으로 서둘러 칼론 2세에게로 인도했지만, 예상보다 칼론 2세와 세리아 공주의 상태는 심각했다.

“몸 안에 마기를 머금은 이물질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작은 보석 종류가 여섯 개 정도 있는데, 놀랍게도 보석으로부터 얇은 촉수와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뻗어있습니다. 이것들을 제거하면 아무래도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콜레스 2세는 자기 몸의 일부를 칼론 2세와 세리아 공주에게 심었구나.

“보석은 놔둔 채 마기만 제거할 수는 없나요?”

“보석은 살아 있습니다. 마기를 제거하려 하면 요동을 쳐서 숙주의 몸을 파괴하도록 작용하더군요.”

“쩝, 그렇다면 마땅한 방법이 없군요.”

“제 생각에 보석자체의 생명력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촉수들을 끊어낸 후에는 제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군요.”

“최소 10년은 걸리겠네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 놔, 이놈의 콜레스 2세. 백마법으로 마기를 제거하거나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독한 방법을 썼구나.

나는 이반 경의 설명을 다 듣고 그가 가져온 보석분석표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정말 식물의 씨앗과 거의 같은 형태라 할 수 있었다. 단지 보석이니 조직 자체는 광물성분이고, 살아있는 원동력은 마기이지만 생명력 유지는 기생충처럼 숙주의 몸으로부터 마나를 빨아서 보충하는 형식이다.

이것에 당하면 숙주는 마기에 오염될 뿐만 아니라 항상 몸 안의 마나가 부족하여 점점 육체와 정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마법사는 이 보석 몇 개만 몸에 심어지면 마법을 못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콜레스 2세, 이자가 나에게도 이 벌레를 심으려 했었지?

아! 벌레 생각을 하니 또 다른 생각이 났다.

“이거 자폭 기능도 있을 거예요.”

“폭발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다면 사실 상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콜레스 2세를 죽여도 그 순간 벌레가 폭발할 수도 있으니…….”

그러게 말이야. 내가 왜 그걸 눈치 못 챘을까. 그냥 마기에 세뇌 당했다고만 생각해서 자세히 조사를 안 한 게 실수였던 건가. 하긴 알았어도 소용이 없었겠지.

그나저나 문제네. 칼론 2세가 못 깨어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난리를 칠 텐데 말이지.

“일단 결계 안에 있을 때에는 콜레스 2세 쪽에서 폭발은 못 시킨다고 봐야겠죠?”

“지금까지 안 터졌으니 틀림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일단 그놈의 보석을 정확하게 분석해야겠네요.”

“방법이 있나요?”

“죽지 않아도 되는 부분 하나를 어떻게든 빼내야지요. 의식이 없으니 심장 아래는 동결시켜 버리세요.”

“그렇게 하면 확실히 한두 개는 빼낼 수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걸 9서클 분석마법으로 조사해서 약점을 찾고요.”

“예, 그럼 조사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이반 경이 나간 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리아가 들어왔다.

“렌, 괜찮아? 치료해 줄까?”

“아니, 당분간 자연치유를 하기로 했어. 너무 심하게 당해서 마법치료는 한두 달 더 있다가 하려고.”

“응, 엘프들도 웬만하면 마법치료는 안 해. 어차피 숲의 기운과 정령력으로 생명력이 강화되니까 놔두는 게 좋더라고.”

“숲의 조성은 잘 됐어?”

“응, 영지는 대충 안정기로 접어들었어. 그래서 좀 자리를 비워도 괜찮아.”

미리아는 해맑게 웃었다.

“렌이 이렇게 됐는데 성장기라도 나와야지. 우리 나무들은 착해. 그 정도는 이해해 줘.”

그래그래, 나무들은 착하지. 너도 착하고.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부상으로 누워있으니 이런 걸 새삼 느끼게 되네.

“그런데 렌.”

“응?”

“실비아 공주와 결혼할 거라며?”

“어? 어. 일 년 안에 정식으로 혼약식을 올리기로 했어.”

“그럼 나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다니?”

“난 너의 마녀잖아. 렌이 귀족이라서 결혼 못 할 거는 알고 있는데, 그냥 애인이라도 해야 될 거 같아서.”

허걱, 미리아 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전혀 눈치 못 챘네. 얘는 내가 제자로 받아들여 몇 년간 기르면서 가르친 셈이라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거기에 요즘에는 좀 괜찮아졌지만 그때는 성숙한 여성 아니면 거의 매력을 못 느끼던 시절인데, 열 살이 겨우 넘은 여자애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잖아. 거의 딸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내가 당황해 하고 있는데 미리아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계속 말했다.

“난 어차피 하프엘프화 되어가고 있어서 아이도 못 가진데,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마족과 계약이라도 하기 전에는 말이야. 그래서 아이는 마음 비우고 렌의 애인이나 하려고 하는데 허락 안 해 줄 거야?”

“아, 그러니까…….”

진짜 머리가 멈추고 혀가 굳는다. 이렇게 여자에게 약하니 어떻게 하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네.

나는 한참동안이나 버벅대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대답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쪽으로는 좀 약해서 실비아 공주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좀 없다. 지금은 네 제안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아, 그렇구나. 맞아. 지금은 실비아 공주에게 잘 해줘야지. 정부인이니 최대한 잘 해줘. 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게.”

해맑다. 너무나도 해맑다.

미리아는 정말 애인이 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구나. 아무리 지금 사회가 귀족은 애인 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조금 거리낌이 있을 텐데.

하프엘프라서 그런가?

어쨌든 미리아는 더 이상 애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시간이 많고,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프엘프가 되면 수명이 인간의 세 배 정도는 되고 그 기간 중 대부분을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 십년 이십년 정도는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하겠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솔직히 기쁜 마음도 있다. 미리아는 지금도 충분히 귀여운데, 조금 더 크면 정말 예뻐질 것이다. 단순한 미모뿐 아니라 성녀의 기운과 마녀의 기운이 묘하게 얽혀 흘러나오는 기운은 마법사인 나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으로 느껴진다.

신비의 여인! 나의 마녀! 그리고 성녀.

최고의 애인이 되겠네.

윽,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지? 안 되겠다. 다른 일에 집중하자.

“그러고 보니 미리아 너 식물에 대해 잘 알지? 광물 성질을 지닌 식물에 대해서는 아는 거 없어?”

“광물성 식물?”

“응, 사실은 이번에 콜레스 2세가 자기 몸의 일부인 보석을 주얼 버그라는 놈으로 변형시켜서 사용하는데, 이게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 뿌리를 내리더라고, 거의 식물하고 습성이 똑같은데 혹시 비슷한 거 아는 바 없어?”

“주얼 버그는 알아.”

“주얼 버그가 원래 존재하는 거였어?”

이건 또 의외네. 나는 그게 콜레스 2세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보다.

“주얼 버그는 엘프 드루이드가 쓰는 저주 중 하나야. 보석에 동충하초의 성질을 부여하는 건데, 밀렵꾼들이나 벌목꾼들이 숲에서 낮잠을 잘 때 침투해서 병들게 하는 데 쓰여.”

“오호, 그런 게 있었어? 왜 난 몰랐을까?”

“그거 마법으로 잘 탐지 안 돼. 그리고 숙주가 죽으면 부서져서 가루가 되니까 흔적도 안 남아.”

“무섭네. 엘프가 그런 과격한 저주도 쓰는구나.”

“엘프 드루이드 중 인간을 증오하는 섀도우 드루이드 일파가 있어. 그쪽에는 무서운 저주 많아. 우리 마녀들의 저주술도 태반은 그쪽에서 나온 걸.”

“아하,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콜레스 2세가 살아난 이유도 그쪽에 알아봐야 할지 모르겠네.”

“거기까진 잘 몰라. 혹시 연관이 있나 점 쳐 줄까?”

“이제는 의도적으로 오러클 능력을 쓸 수 있게 됐니?”

“엘프들한테 배웠어. 근데 이건 내 숲의 정기를 모아야 되는 거라 지금까지는 못 쳤어. 이제는 영지에 돌아가면 몇 년에 한번은 가능해.”

“그것 잘 됐다.”

미리아의 예지능력은 정말 잘 맞는 대신 발동 시기가 랜덤이라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점으로 발현시킬 수 있다니 이제는 중요한 순간에 선택의 근거를 하나 더 얻게 된 셈이다.

물론 오러클 능력에 맹목적으로 의지하면 오히려 그게 원인이 되어 예지가 실현되는 역류 현상이 일어나겠지만, 어느 정도 대비하는 정도는 괜찮다.

미리아는 영지로 돌아가면 콜레스 2세와 섀도우 드루이드 들이 연관이 있는지 점을 쳐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녀가 아는 주얼 버그에 대해 설명을 계속했다.

“그것들은 유사 생명체라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일단 숙주 안에 들어가면 숙주가 죽을 때까지는 살아. 뿌리 같은 것을 내려서 빼내기도 힘들고.”

“빼내기가 힘들다면 빼낼 수는 있다는 거네?”

“응, 걔들도 어차피 나무잖아. 엘프들은 식물에게 부탁을 할 수 있으니 나오라고 하면 나와.”

“헐, 그럼 힘들지도 않네. 엘파라면 말이야.”

“애들이 작아서 말을 잘 못 알아들어. 그래서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말을 걸어야 해. 식물에게 부탁하는 게 은근히 힘이 들거든.”

“흠, 그럼 칼론 2세에게 들어가 있는 주얼 버그에게 한 번 말을 걸어볼래?”

“그러지 뭐. 난 아빠가 심각한 표정으로 렌한테 가기에 뭔가 했더니 주얼버그였구나.”

해답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다. 나는 서둘러 이반 경을 다시 불렀다.

조금만 늦었으면 칼론 2세는 엄하게 하반신 동태가 되었을 것이다.

이거 한번 얼리면 깨어나도 회복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것도 그 상태에서 몸 안에 들어있는 이물질을 빼내는 수술을 하면 피가 흐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물지도 않기 때문에 깨울 때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반 경도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미리아에게 섀도우 드루이드와 마녀의 저주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이반 경에게 마녀의 저주술에 대해 가르쳐 줘야 할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피의 저주술은 유사시에 목숨을 구할 수도 있으니 배워둘 만 하다. 피를 제어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하니 하급 마법사에게 가르쳤다가는 오히려 죽기 십상이지만 이반 경 정도라면 충분하다.

내가 이것저것 생각하는 사이 미리아는 칼론 2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주얼버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곧 손을 떼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것들은 마기로 변형되어 있어. 내가 나오라고 해도 말을 안 들을 거야.”

“역시 주인이 부르기 전에는 안 되나?”

“그건 아니고, 얘들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그냥 마기가 강한 존재가 말하면 따를 걸.”

“아하, 그런 식이란 말이지?”

이건 또 방법이 있지.

나는 렉스의 목띠에 기생하는 서피를 불러냈다.

“서피야, 미리아가 말을 걸어줄 테니까 넌 애들에게 나오라고 해 봐라.”

“알겠다.”

서피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온 다음에 뭘 해야 할지는 말을 안 해도 아는군. 맛있는 쿠키가 눈 앞에 쌓여 있는 것처럼 느끼겠지.

곧 우리는 치료를 시작했다. 미리아가 주얼버그에게 말을 걸고, 서피가 마기를 흘리며 나오라고 명하는 것이다.

몇 번 반복하자 드디어 주얼 버그가 반응을 했다. 정말로 주얼 버그는 촉수를 모두 거둔 후 몸 밖으로 기어 나왔다. 숙주인 칼론 2세의 육체에는 거의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

“되네. 그럼 계속 해. 세리아 공주 꺼도 모두 뽑은 후에는 이반 경이 치료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려울 것 같았던 치료가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나도 몰랐다. 더불어 섀도우 드루이드라는 새로운 단서까지 얻었으니 이제는 콜레스 2세를 찾을 방법이 생긴 것이다.

두고 보자 콜레스 2세, 내 꼭 너를 잡아서 그날 흘린 내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그걸 위해서는 마나파동포를 완성시켜야겠지?

좋아. 제대로 연구를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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