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95화
7장 자아의 성장
북부 수도 방어군의 돌튼 장군은 키가 2미터가 넘는 거한으로 바늘로 찔러도 바늘이 부러질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이게 사람이야 골렘이야 하고 감탄할 정도였는데, 그는 우리를 만나자마자 황제 폐하부터 찾았다.
우리는 돌튼 장군을 칼론 2세에게로 인도했는데, 그는 의식을 잃고 있는 황제를 보자 바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 후 우리에게 말했다.
“왜 폐하를 깨우지 않소?”
“폐하께서는 마족에게 세뇌를 당했습니다. 지금 깨우면 오히려 우리를 역적이라 부르실 겁니다.”
“뭐라고?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이오?”
“미리 말씀 드렸듯이 데빌 베인의 렌 경이 폐하를 모시고 황궁을 탈출한 뒤, 장군께 칙령이 내린 것으로 압니다. 그것만으로도 황궁의 무리는 죽을죄를 지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소. 그래서 내 직접 온 것이오. 하지만 폐하의 명을 직접 받지 않고 황궁을 칠 수는 없소.”
돌튼 장군은 잠시 입을 다물고 마이어 경을 노려보듯 보았다.
“아론 경이 잡혔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흉수가 누군지 짐작 가는 바도 없소?”
“사실은, 아무래도 선황께서 되살아나신 모양입니다.”
마이어 경이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했다. 숨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요?”
“사실 선황께서는 마족과 계약을 하셨고, 다른 마족의 계약자인 엘시아 프리스톤에게 암살당한 것입니다. 우리 체프코트 가문에서는 제국의 안위를 위해 그 사실을 숨겼었는데, 어째서인지 선황께서 살아나셔서 아론 경과 폐하를 제압한 것입니다.”
“으으으, 그런 일이 있었군.”
돌튼 장군은 드디어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마이어 경에게 물었다.
“데빌 베인과는 이야기가 끝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다행히도 이반 경이 이해를 해 주셔서 일이 부드럽게 마무리 됐었는데…….”
“마이어 경의 말씀은 잘 들었소. 경의 말대로라면 이 사건은 빨리 해결해야겠군요. 만약 일이 확대되었다가 안 좋은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돌튼 장군께 진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좋소. 남방 수도 방어군의 졸탄 장군은 내가 설득하겠소. 일단 졸탄 장군까지는 상황을 설명하고 황궁에 진입을 합시다.”
“돌튼 장군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폐하는 깨어나실 수 있는 건가요?”
“아론 경께서 풀려나신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면 이반 경이 오셔야겠지요.”
마이어 경은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며 말했다.
“이미 이반 경께 전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폐하께서 마기에 조종당하지 않도록 결계로 보호해야 할 겁니다.”
“그건 우리 체프코트 가문에서 담당하겠소. 그러니 돌튼 장군께서는 황궁의 수복에 힘써 주시오.”
“알겠소.”
이야기는 끝났다. 돌튼 장군은 말한 대로 졸탄 장군에게 전갈을 보냈고, 반나절이 지나자 졸탄 장군이 그리폰을 타고 나타났다.
졸탄 장군은 칼론 2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며 돌튼 장군의 계획에 따르겠다고 했다.
수도 방어군 사령관 두 명이 합의를 했으니 황궁을 공격해도 반역죄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황제가 깨어나서 사령관이 잘못을 했다고 판단하면 개인적인 처벌은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3족이 모두 처벌받지는 않으니 돌튼 장군은 자신의 목숨만을 걸고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곧 공격이 시작되었다.
지키는 쪽은 근위기사와 근위병뿐이라 수적으로는 황궁측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황궁의 방어시설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라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역시 돌튼 장군이 이끄는 북부 수도 방어군은 탄탄한 진을 구성하고 착착 황궁 공략을 진행해갔다.
약 3일간의 싸움으로 황궁 외부를 제압하고 내궁으로 들어갔는데, 가능한 한 저쪽 병력을 살상하지 않고 사로잡느라 예정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근위기사와 근위병은 제국에서도 혈통이 좋은 귀족자제들이 많고, 재능 또한 뛰어난 사람이 대부분이라 잃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내궁의 공략이 시작되는 날,
의외로 내궁의 방어는 없었다. 문은 그대로 열렸고, 방어하는 병사도 없었다.
놀랍게도 내궁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망갔군.”
돌튼 장군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콜레스 2세는 자신이 세뇌한 자들만 데리고 황궁의 비밀통로를 통해 이미 빠져나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론 경도 보이지 않았다. 아론 경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체프코트 가문에서는 필사적으로 아론 경의 행방을 추적하려 했지만 전혀 탐색이 안 됐다.
결국 황궁의 참변은 최대한 비밀로 묻기로 하고 칼론 2세와 세리아 공주는 결계 속에서 잠든 채 이반 경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그 기간 동안 완전히 뻗어서 마리포즈가 상황보고 해주는 것만 들었다.
“에구구, 내가 이 나이에 마나고갈을 경험할 줄이야.”
전신의 뼈마디 중 안 아픈 곳이 없고, 심장도 너덜너덜 해진 느낌이다. 무엇보다 명상을 해도 마나가 모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마나고갈 증상인데, 몸 안에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마나도 모자라는 심각한 상황이다. 렉스의 목띠로부터 필요한 최소한의 마나를 공급받아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지만 마땅히 치료할 방법은 없다.
이건 그냥 시간이 답이다. 억지로 무리해서 마나를 모으려 하면 몸이 망가진다.
“피도 너무 많이 흘렸어요. 아무리 재생을 했다고 해도 당분간 후유증이 있을 거예요.”
“마리야, 네 말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왜 진실은 항상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하루 종일 힘이 없는데다가 졸린데, 막상 잠이 들면 손발이 너무 차서 금방 다시 잠이 깬다. 이거도 오래 갈 거 같다.
에효, 내가 이런 고생하자고 덴판 제국까지 온 건 아닌데 말이야. 왜 사건 사고가 나에게서 떠나지 않는 걸까?
이것도 다 그놈 때문이야.
콜레스 2세! 욕심은 끝도 없이 많고 집념도 강해 죽여도 죽지 않는 나쁜 놈.
“콜레스 2세가 어디 갔는지 아직 못 알아냈지?”
“예,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하네요. 아직 그들이 빠져나간 비밀 통로도 못 찾았어요.”
“비밀통로는 아마 폐쇄 됐을 거야. 그런 최후의 탈출로는 통로가 있었다는 흔적도 남지 않게끔 폐쇄할 수 있는 장치가 된 경우가 많아.”
그나마 다행이지. 탈출로만 폐쇄하는 게 아니라 황궁 전체를 폭파시키는 장치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실제로 그런 장치가 없다고는 말 못한다. 그러나 콜레스 2세는 언젠가 다시 황궁으로 돌아와 정식으로 황위를 되찾을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황궁을 날리지는 않은 거겠지.
“혹시 아론 경의 행방이나 상태는 탐지 안 된데?”
콜레스 2세는 그렇다 치고, 아론 경은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체프코트 가문에서 가주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는 믿지 못하겠거든.
그러나 로즈마리는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예, 마이어 경이 불의 정령을 계속 소환하는 모양인데 아직 답이 없데요. 아무래도 아론 경이 일부로 막는 것 같아요.”
“이상하네. 아론 경이 세뇌당할 리는 없고, 일부로 막는 거면 깨어있다는 소린데 말이야.”
설마 콜레스 2세와 손을 잡은 건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론 경은 평생 패배를 모르던 사람이다. 그런데 엘시아에게 당하고, 다시 콜레스 2세한테 잡혔으니 그의 자존심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설마 정신적으로 무너진 걸까? 마법사로써 긍지를 가지고 있는 부분은 인정할 만 했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 이상 아론 경에 대해 섣부른 추측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을 알게 되겠지.
“끄응, 이반 경이 올 때까지 최대한 회복을 해야 하는데, 좀처럼 몸이 좋아지질 않네.”
“렌 경은 당분간 절대안정을 하셔야 해요. 제 생각으로는 이반 경이 와도 치유마법 시술을 받지 말고 그냥 자연치료를 계속 하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겠지? 이 정도까지 몸이 안 좋아졌는데 마법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안 좋을 거야.”
9서클 마법사였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마법도 만능은 아니다. 육체는 치유 되도 신경에 상처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면 영문을 알 수 없는 경련이나 통증 등이 평생 남을 수도 있다.
이건 반쯤 정신적인 병이라 한번 발생하면 치료하기가 극히 어렵다.
최대한 이런 후유증을 막기 위해서는 신경이 안정되는 것과 근골의 회복속도를 맞추는 게 좋다. 바로 자연치료다.
“그래, 앞날이 구만리 같은 내가 벌써부터 신경통을 앓을 수는 없지. 이번에는 완전히 자연치료로만 회복을 하도록 하자.”
“그럼 그렇게 알고 간병 준비를 할게요. 그런데 회복기간 동안 이곳에 남아계실 건가요?”
“아니, 영지로 돌아갈 거야. 내가 이동해도 몸에 무리가 안 가게 마법을 건 침대를 준비해 줘. 마차에 싫을 수 있는 규격으로.”
“준비할게요. 그 밖에 따로 지시할 것은 없나요?”
“혹시 모르니 다른 마도 가문의 동향을 조사해 봐. 아론 경이라면 가문의 방계가 아니더라도 따로 마도 가문을 키웠을 가능성이 있어. 만약 아론 경이 정말 콜레스 2세와 손을 잡았다면 손발이 될 조직이 필요할 테니까.”
이미 체프코트 가문 내에서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아론 경의 자격을 한시적으로 정지시켰다. 행방불명 상태가 풀릴 때까지는 아론 경의 권한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임시 가주는 마이어 경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마이어 경은 아론 경을 대신해서 체프코트 가문의 대소사를 관장해서 이런 상황에서도 가문을 큰 무리 없이 이끌 수 있었다.
마리포즈는 내가 명한 것을 실행하러 방을 나갔다.
내 침대 옆에는 렉스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나는 주기적으로 손을 뻗어 렉스의 목띠로부터 필요한 마나를 공급받는 중이다.
나는 다시 손을 뻗어 목띠를 잡고 마나를 공급받은 후 렉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내 최초의 친구 렉스. 이번에도 이 녀석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끄응, 끙.
렉스는 고개를 들더니 혀로 내 머리를 핥았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렉스였기에 혓바닥이 내 머리통만하다. 금새 머리카락 전체가 렉스의 침으로 젖었다.
“으그, 적당히 해라. 렉스야.”
고개를 돌려 피하려 했지만 별로 힘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놔두니 얘가 멈추지를 않고 계속 핥는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그래, 이번에 회복되면 두 번 다시 죽을 정도의 위험은 경험하지 않겠어.
강해지자. 최대한 싸울 준비를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대처할 수 있도록 하자.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강해지기 위한 구체적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