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92화 (92/250)

로엔의 마나뱅크 92화

6장 내전

파캉

“뚫었다. 어서 들어가라.”

어, 거미줄 다 끊어졌네.

그래도 다행이다. 딱 시간에 맞춰서 술식을 다 적어 넣는데 성공했다.

마정석 네 개를 박아 넣은 침대기둥은 훌륭한 마법지팡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지팡이로 쓰려고 만든 게 아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조종장치다. 그러니까 이 방안에 설치된 가장 뛰어난 마법진을 제어해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레버 같은 거다.

“세리아 공주. 귀 막고 엎드려요.”

나는 급하게 외치면서 그대로 마기를 발산하는 마법진 한 가운데에 침대기둥을 박아 넣었다.

막 근위병들이 검을 들고 나를 덮치려고 하던 참이다.

쿠아아아앙

마법진의 방어막이 내 침대기둥에 저항하며 엄청난 소음과 반발력을 생성해 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스트랭스 마법의 효과를 받고 있었기에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다행히도 세리아 공주는 내 말에 충실히 따랐다. 세뇌 당해 무조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상태인 것이 이번에는 도움이 되었다.

드득, 드드득

나는 기둥을 조심스럽게 돌려 마법진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마법진을 마기 발산용으로 개조한 지 얼마 안 된 것이라 생각보다 콘트롤을 빼앗기가 쉬웠다.

뭐. 그 부분도 다 예상한 거였다.

“으으, 저자가 더 이상 수상한 짓을 못하게 막아라.”

문 밖에 있던 근위기사가 검을 허공중에 휘두르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그자신은 방 안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지휘관이 겁을 먹고 경계하는데 부하가 용맹할 리가 없지. 근위병들이 마지못해 방 안으로 들어왔지만 나는 이미 마기를 검은 뇌전으로 바꿔서 그들에게 쏠 수 있을 정도까지 마법진을 장악했다.

파직, 파파팍

“아악!”

“9서클 마법진이 좋긴 좋네.”

드디어 마법진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안에 장치되었던 자체방어기능을 모두 파괴하고 침대기둥의 움직임으로 술식의 변화를 주니 이게 방어와 공격 양쪽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전천후 마법진이 되었다.

힘의 근원도 충실하다. 9서클 마법진에 마기까지 주입되었으니 이대로 이 방안에서 버티면 콜레스 2세가 직접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지만 내가 사고를 친 것이 전해지면 외궁에 있는 마리포즈 쪽이 위험하지. 어서 이곳을 벗어나서 그곳으로 가자.

그런데 그때, 세리아 공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렌 경, 어떻게 여기에 계시는 거죠?”

어? 설마 제정신이 든 건가?

그녀의 눈동자가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마법진이 발동하면서 생기는 파장이 순간적으로 마기를 흐트러뜨린 것 같다.

하지만 곧 세리아 공주의 눈동자는 다시 검게 변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방안을 부수면 안 돼요. 아바마마께서 며칠간 이 방에서 나오지 말랬는데…….”

살짝 곤란하다는 눈빛으로 부서진 침대를 보는 세리아 공주,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명받은 것만 생각하는 그녀가 애처롭다.

“황태자 전하는 어디 있지요?”

“지금은 밤이니 오라버니는 서쪽 궁에서 주무시고 계시겠죠.”

“서쪽이라면 이쪽이네요.”

나는 방향을 잡은 후 마법진을 조종했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의 힘이 침대기둥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침대기둥의 표면에 쩌적 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힘이 흘러들어가니 네 개의 마정석으로도 버틸 수 없나보다.

나는 침대기둥의 한계가 오기를 기다려 마법을 시전 했다.

“포스 램!”

공성형 마법은 물건에 대한 파괴력이 아주 강하다. 포스 램으로 침대기둥 한 가운데를 때리자 마침내 기둥은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고, 그 순간 힘의 방출이 시작되며 서쪽을 향해 폭발을 동반한 폭주를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몇 개의 벽을 부수었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9서클 마법을 공격용으로 전환한 느낌이니 궁의 일부가 부서질 만 했다.

나는 애초에 복잡한 황궁의 복도를 따라 이동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목표물이 있는 곳까지 가는 최단거리의 길이다. 그러니까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게 다 뚫어버렸는데, 이게 곱게 뚫릴 리가 없고 주변까지 다 파괴해 버린 것이다.

상관없겠지. 지금 상황에서 궁 조금 부서진 걸 따질 건 없잖아.

나는 세리아 공주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이틈에 어서 황태자에게로 가요.”

“이방을 벗어날 수는 없어요.”

역시 세뇌를 당해서 자발적으로 따라오지는 않는군. 어쩔 수 없지.

“으음.”

내가 세리아 공주의 뒷목을 때리자 공주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다. 나는 즉시 그녀를 안고 붕괴된 서쪽 방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한 가지 주문을 외웠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아공간 주머니의 고유 식별 룬어다. 정령계의 계약은 거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해제!”

고유식별 룬어를 통해 아공간 주머니를 파괴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주머니 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그 안에는 내 지팡이가 있고, 거기에는 뿌우가 살고 있다.

곧 뿌우와 정신적으로 연결이 되었다.

[뭐냥?]

잡음이 심하다. 아마 궁이 멀쩡했으면 이런 텔레파시도 잘 안 됐을 테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파괴가 되어서 방어장치에 틈이 생겼다.

나는 계속 달리면서 뿌우에게 말했다.

[주머니 안에 있던 거 다 주워들고 나한테로 와!]

[알았당. 근데 다른 거 주워도 되냥?]

[다른 거 뭐 있는데?]

[내가 보기에 여기는 황궁 보물창고당.]

[들 수 있는 만큼 다 들고 와!]

[알았당.]

곧 북쪽으로부터 뿌우가 돌개바람으로 변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뿌우는 날아오자마자 나에게 지팡이와 거인의 허리띠부터 던졌다. 다행히 거인의 허리띠도 거기 있었구나.

날아간 건 아공간 주머니뿐이네. 젠장, 그거 파우스 스승님의 선물인데 열 받네.

나는 바로 거인의 허리띠를 차고 세리아 공주를 뿌우에게 던지며 말했다.

“공주를 데리고 마리포즈에게 가. 나를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황궁을 탈출하라고.”

“알았당. 그럼 알아서 살아나와랑.”

길게 설명을 안 해도 뿌우는 대충 상황을 이해한 듯 바로 세리아 공주의 몸을 받아들고 외궁쪽으로 날아갔다.

사방에서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나다. 밤하늘에 돌개바람으로 변해 날아가는 뿌우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자들은 별로 없었다.

이정도면 뿌우는 무사히 빠져나갈 것 같다.

“좋아. 이젠 내 차례군.”

앞쪽에 일단의 근위병들이 할버드를 들고 내 앞을 막아섰다.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사로잡을 생각은 별로 없는 듯 했다.

황궁의 일부를 날려 보냈으니 당연한 건가?

그러나 난 이미 전투준비가 끝났다.

근위병의 할버드는 내 강식장갑로브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고, 거인의 힘이 실린 내 지팡이는 그들의 갑옷을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렸다.

“아악!”

날 평범한 젊은 마법사라 생각한다면 큰 코를 다칠 것이야. 내가 이래 뵈도 크리드 경과 꽤 진지하게 대련을 할 수 있는 몸이라고.

수십 명의 근위병과 몇 명의 기사들을 물리치니 마침내 서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감각을 집중시켜 사방을 살펴보았다. 칼론 2세가 숨어도 소용없는 게 몸 안에 마기를 품고 있는 한 나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다. 아까 이미 찜을 해 놓았기에 단순히 시선을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흑마법에도 정통하고, 마기의 탐지에는 아마도 대륙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저쪽이군.”

황궁은 넓고 미로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헤맬 생각이 전혀 없으니 칼론 2세의 마기를 탐지하자마자 바로 그쪽을 향해 달려가며 벽이든 뭐든 다 부숴버렸다. 지금은 힘을 숨길 때도 아니니 마법을 마구 써댔다. 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 정도는 익숙하다. 하지만 정말로 마나고갈이 되면 탈진이 되니 조심하자.

그렇게 몇 개의 벽을 부수니 조금 넓은 복도가 나왔고, 안쪽 방에 칼론 2세가 있는 게 느껴졌다.

“침입자다! 막아랏!”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난동이냐!”

근위기사들이 여섯, 근위병이 30정도인가? 복도를 사람을 메웠군.

칼론 2세가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

“에잇!”

몸통으로 밀어붙인다!

나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그냥 무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의 기다시피 자세를 낮춘 채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이동했다. 등 쪽으로 각종 무기가 떨어져 내렸지만 그냥 몸으로 막았다. 이렇게 무식하게 돌진을 할 줄은 몰랐는지 뒤쪽에 있는 기사들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사이 나는 복도의 절반 정도를 나아갈 수 있었지만 역시 이것만으로 끝까지 갈 수는 없었다.

“실드로 벽을 쳐라.”

처처척

“로브에 강력한 방어마법이 걸려 있으니 주로 머리를 노려라!”

미안, 이건 얼굴 가리개랑 후드까지 딱 붙게 되어 있어서 머리도 충분히 방어가 되. 하지만 눌려버리면 거인의 힘으로도 쉽게 벗어나기 어렵지.

“하압! 스파이더 워킹.”

나는 힘을 주어 천정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때에 맞추어 마법을 쓰자 내 발바닥이 천정에 달라붙었다.

다다다다

“막아랏!”

말로만 막으라고 하지 말고 니들도 천정에 달라붙어 봐.

생각했던 대로 마법사들과의 문제 때문인지 경호하는 자들 중 마법사가 없다. 이러면 사실 상 황궁의 경비는 반 토막 난 거나 다름없다.

나는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서 달렸다. 아래쪽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 가해졌지만 흘려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드디어 칼론 2세의 방문 앞에 도달한 나는 그대로 뛰어내리며 지팡이의 창날을 발출시켰다. 그러자 쌓여있던 뇌전의 기운이 같이 터져 나와 문을 정통으로 때렸다.

쾅, 파지지지직

웁스, 여분의 뇌전이 주변 기사들을 지지네. 죽을 정도는 아닐 테니까 용서해 달라고.

나는 몸을 날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칼론 2세가 막 비밀문을 열고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폐하, 죄송합니다.”

마기에 젖어 세뇌된 사람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여기는 임의동행, 다시 말해 납치다.

나는 칼론 2세를 때려 기절시키고 어깨 위에 짊어졌다.

“앗, 저놈이 황태자 전하를 납치해간다. 막아랏.”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오는 기사와 병사들, 하지만 나는 그대로 칼론 2세가 빠져나가려던 통로로 들어가 입구를 닫아버렸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니 밖에서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쉽게 파괴될 것 같지는 않았다.

통로를 따라 조금 나아가니, 안쪽도 미로로 되어 있는지 몇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어느 쪽으로 갈까 멈춰서 생각하는데 입구 쪽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마기가 느껴졌다.

“이크, 콜레스 2세가 직접 왔군.”

나는 생각할 여유가 없음을 깨닫고 통로 중 가장 좁은 곳으로 들어갔다. 콜레스 2세는 키가 3미터쯤 되는 거인 골렘이니 여기라면 쉽게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래도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나는 쉬지 않고 죽어라고 달렸다. 그러나 곧 통로 한 가운데에서 멈춰 섰는데, 아무래도 이 안의 길은 나보다 황궁 사람들이 잘 알 것 같았다.

이대로 가면 입구를 막고 있겠지.

“좋아. 이쯤에서 빠져나가자.”

이곳은 지하다. 뛰어내려온 거리가 꽤 됐으니 아래로도 상당히 내려온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지상으로 뚫고 나가지 못할 일은 없다.

나는 천정을 향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물질분해광선!”

번쩍, 팍

천정에 상당히 커다란 흠이 패였다. 그 위쪽도 통짜 돌이기는 해도 표면에 경화 처리된 부분은 사라졌다.

“스트라이킹 웨폰!”

무기에 충격파를 발생시켜 파괴력을 강화하는 마법을 건 나는 그대로 천정으로 뛰어올라 창으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적이 이곳까지 오기 전에 다른 공간으로 나가야 한다는 일념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필사적으로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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