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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89화 (89/250)

로엔의 마나뱅크 89화

5장 덴판의 변고

튼튼하고 안락한 마차 하나에 짐을 싫고 마리포즈가 마부석에 앉았다. 말은 두 마리를 데리고 가는데, 마법으로 공포심을 약화시켜 렉스가 곁에서 어슬렁 거려도 놀라지 않게 했다.

이번에 덴판 제국에 가는 이유는 내 개인적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반 경과 크리드 경은 같이 가지 않고 영지에 남기로 했다.

그들은 영지 이외에 볼스테어 왕국과 아도리아 왕국의 보호에도 손을 보태기로 약속했다.

콘돌스핀 가문은 왕국 전체에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기사단과 동조한 기동타격 워메이지 부대를 결성하려 하는 중이다. 이름하여 특무 기사단이다.

그것으로 왕국과의 유대를 어느 정도는 유지하게 될 거다.

권위를 유지하되 물러날 부분은 물러나 기사단의 힘을 점진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로 가자는 게 파우스 스승님과 내가 생각한 앞으로의 정략이다.

그래서 크리드 경과 이반 경이 그것을 돕기로 했다.

마스터 기사인 크리드 경과 현존하는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인 이반 경이 주도하는 특무 기사단 부대 육성 계획이다. 볼스테어 왕가에서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아도리안 왕국 역시 참여하게 할 생각이니, 우리 콘돌스핀 가문이 두 왕국의 마법사들을 통괄하는 가문으로써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이상이 없을 터이다.

미리아 역시 그녀를 위한 숲의 조성이 끝날 때까지 영지를 떠날 수 없다. 그녀만을 위한 숲의 영역은 마치 살아있는 집처럼 미리아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끊임없이 힘을 보태주게 되는 대신 완성될 때까지 미리아가 그들과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영지의 숲 조성이 끝나면 그것을 확장시켜 왕국 전체로 퍼뜨릴 생각이다. 말하자면 미리아는 우리 콘돌스핀 가문의 또 다른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후훗, 생각해보니 나는 애초에 덴판 제국으로 이주할 생각이 없었던 거군.”

이대로 그쪽과 혼담이 진행되는 덴판 제국에 내 영지가 생긴다는 예측을 했지만 그 부분에 대한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았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나는 내가 태어난 곳과 내가 자라면서 만나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좋고, 그들을 떠나 새로운 땅에 자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전생의 나는 어렸을 때 마탑에 들어가 오로지 마법사들만 인간관계를 맺으며 자랐고, 성장해서는 수십 년 동안 갇혀서 마법만 팠기 때문에 정말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릴 때 몰던을 만났고, 다시 파우스 스승님도 만났고, 계속해서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 관계가 맺어진다.

“좋구나.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인가?”

나는 하늘을 보았다. 다각 거리는 말발굽소리와 함께 마차는 관도 위를 천천히 나아가고 하늘에는 구름이 유유히 흐른다.

내 마음도 저절로 평온해졌다. 비록 사방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마족의 계약자들이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모르지만, 지금은 편안하고 여유롭다.

“마리야.”

“예, 렌 경.”

“연구소에서 나와 이렇게 돌아다니니 좋지?”

“좋네요. 연구소 밖에 나온 이후 시간이 무척 빠르게 가요.”

마리도 나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연구소에 갇혀 지내던 정지된 시간을 떠올리는 걸까?

얼굴 표정 한 번 자연스럽다. 경험이 마리포즈를 더욱 더 자연이성체에 가깝게 해주는구나.

“그런데 렌 경.”

“응.”

마리포즈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마나파동포 말이에요. 그때 충격파를 분석해 봤는데 충격파가 게이트로부터 방사형으로 퍼지더라고요. 워낙 충격이 세서 뒤쪽으로도 퍼지는데 앞쪽이 몇 배나 강했거든요.”

“흠, 그때는 위에서 아래로 열었지?”

“맞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렌 경 쪽에서 발사하는 형식으로 게이트를 여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훨씬 충격파 영향이 적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렇겠네. 물질분해 광선처럼 이쪽에서 적을 향해 쏘는 형식으로 만드는 게 좋겠어.”

마리포즈의 말이 맞다. 어차피 공격마법으로 쓸 거면 나로부터 발사되는 형식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중앙에는 일직선 형태의 분해광선이 나가고, 그 주변으로 방사형의 충격파가 퍼지는데, 충격파만으로도 모든 마법이 해제되고 마법 무구조차 일시적으로 기능을 잃을 정도이니 확실히 최강의 공격마법이라고 할 만 하다.

그러나 그런 점보다 먼저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다.

가장 귀찮은 것은 마법진이다.

마나파동포를 쓰기 위해서는 미리 마법진을 그려서 공간왜곡을 시켜야 내 몸에서 떨어진 허공에 게이트를 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실효성이 너무 없다.

공간 왜곡을 위한 마법진과 마나뱅크의 게이트를 강제 차단할 수 있는 마리포즈 중 하나라도 빠지면 쓸 수 없는 게 마나파동포다.

거기에 발동시간이 약 5초 정도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그 사이 상대가 피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면 진짜 엄청난 공격마법이 되겠지만, 아직은 실전에서는 쓰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그래, 일단 발사대를 만들자. 마법진을 대신해서 내 몸의 연장선이 되어 줄 수 있는 발사대.”

좋다. 내가 생각한 거지만 이건 말이 된다.

꼭 허공을 격하고 게이트를 열 필요는 없다. 발사대를 통하면 내 몸에서 떨어진 곳에 게이트가 열린 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발사대를 만들지를 생각해야겠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보았다. 지팡이라면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니 지팡이 끝으로부터 게이트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

단지 그렇게 하면 지팡이가 터져 버릴 가능성이 크다.

“일회용 지팡이를 만들까?”

마나파동포용 지팡이라. 이것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한번 아이디어가 떠오르니 점점 해결책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발사대만 만들 수 있다면 일단 아쉬운 대로 실전에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 없지. 기존의 지팡이 제작술을 응용하면 되니까.”

마차가 알아서 길을 가니 나는 앉아서 생각할 여유가 있어 좋다. 내 머릿속은 온통 마나파동포를 위한 발사대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찼고, 곧 나는 마법서를 꺼내 펜으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발사대 설계도는 몇 가지 형태로 나뉘었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어느 쪽이 실전에 쓰기 좋은지 시험을 해 봐야겠다.

우선 첫 번째 모델은 팔뚝 굵기의 긴 철통형 발사대다. 길이는 2미터 정도. 안쪽이 비어있는 관으로 내면에 마법진을 새겨 넣음으로써 작용을 하게 할 수 있다.

마법 지팡이라기보다는 금속으로 만든 배수관 같은 느낌이지만 들고 다니면 나름 멋도 있을 것 같다.

재료도 비교적 싸다. 물론 마법금속이니 싸다고 해도 웬만한 집 한 채 값은 들어가겠지만, 이 정도로 최강의 공격마법 발사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커서 들고 움직이는 게 쉽지 않겠군. 지팡이도 들고 있어야 하니까.”

내가 마나파동포만 전문적으로 쓰는 포지션이 아니면 조금 애매하겠다.

그 다음 구상한 것은 역시 전통적인 마법지팡이이다. 비급 이상의 지팡이라면 게이트를 열 수 있으니 이걸 여러 개 들고 다니다가 쓰는 거다.

이 정도라면 지금 들고 있는 지팡이도 같이 들 수 있고, 다른 마법을 쓰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만드는 데 제작비가 많이 든다. 말이 비급 지팡이지. 마탑에서 마도사이상급에게만 주는 수준이다. 첫 번째 구상보다 제작비가 열배쯤 든다고 봐야 한다.

게이트를 열면 지팡이는 충격파에 의해 터질 수밖에 없다. 즉, 일회용이다.

“그래도 목숨 걸고 싸우는 데 이 정도 지출은 감수해야 되는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역시 첫 번째 금속통보다는 이쪽이 실전에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추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시간은 있다. 나는 덴판 제국으로 가는 동안 계속해서 구상을 해 나갔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대부분 의미가 없는 잡생각에 불과할 뿐, 결국 이 두 가지 방법이 제일 확실하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갔다.

나는 지금의 지팡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녀석이 그 충격파를 버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미쳤냥? 누구 집을 부수려고 하는 거냥.”

뿌우가 놀란 표정으로 튀어나오며 외쳤다.

“뿌우야. 갑자기 나오지 말랬지. 이제는 마나가 달린단 말이야.”

“가만히 있다가는 집이 부서질지 모르는데 어떻게 안 나오냥!”

“안 부숴. 이 지팡이가 얼마짜린데 이걸 일회용으로 쓰겠냐.”

이건 특급 아티팩트란 말이지. 엘레멘탈 마정석을 박고 다년간 대기의 정령의 집으로 쓰여 뇌전의 기운이 지팡이 전체에 스며든 상태라고.

단순히 가치뿐 아니라 안에 창이 장치되어 육박전의 무기로도 쓸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 특화된 지팡이다. 그런 만큼 가치가 비슷한 다른 마법 지팡이를 얻어도 나에게는 이것만큼 편하지 않다.

뿌우는 내 설명에 납득이 가는지 허공에서 팔짱을 낀 채 둥둥 떠서 말했다.

“그랭, 남의 집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자기 집도 소중히 하는 법이당. 부술 생각은 하지 말고 틈틈이 보강을 해 줘랑.”

“여기서 보강할 게 뭐 있다고. 이제는 기능을 달 것도 없거든.”

“저번에 창을 던지면 내가 받아들고 싸웠잖앙. 그런데 그러면 넌 무기가 없어지는 거공.”

“그랬지.”

“내가 들고 싸울 수 있게 창 하나 안에 더 박아 봐랑. 유사시에 뽑을 수 있는 걸롱. 그러면 너랑 나랑 같이 싸울 수 있잖앙.”

“오호, 양날의 창을 만든 후 분리할 수 있게 하자고? 그거도 나쁘지 않네.”

지금 내 지팡이는 한쪽은 창날이, 다른 한쪽은 엘레멘탈 마정석이 장착되어 있다. 그렇게 양쪽의 무게를 맞췄다.

그런데 뿌우가 원하는 것은 엘레멘탈 마정석을 지팡이 중앙에 박고, 비어 있는 한쪽 공간에 얇은 창대와 창날을 설치하자는 거다.

뿌우의 경우 사람의 손이 아니기 때문에 창대가 얇아도 쓰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무게가 늘어나겠지만 거인의 벨트를 찬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고, 유사시에 뿌우가 창을 들고 허공에서 나와 협공을 해준다면 공격력은 몇 배나 올라갈 것이다.

“좋아, 그거 한 번 설계해 볼게.”

“기왕 만들어 줄 거면 창대를 좀 잘 휘어지게 만들어랑. 거의 채찍처럼 만들면 좋당.”

“남방의 연창 같은 거로군. 그거야 쉬운 일이지.”

나는 뿌우와 지팡이 개량 약속을 했고, 뿌우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다시 마법책을 펴고 양날의 창에 대한 구상도를 그리려 하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 창속에 창을 넣을 수 있다면 지팡이 속에 지팡이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대박이다. 이거 될 거 같다.

신체의 연장 역활을 하는 기능만 있는 대에 게이트를 열 정도의 힘을 모을 코어가 있다면 내가 필요한 발사대 지팡이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코어는 중급 마정석 정도로 하고, 대는 금속으로 만들면 될 거 같군. 대 부분은 휘어지는 성질을 부여하면 둘둘 말아서 따로 보관하기도 쉬우니 여러 개 들고 다닐 수 있을 거야.”

제작비는 아까 생각한 비급 지팡이와 거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걸로 나는 지팡이를 여러 개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거지.

“좋아, 좋아.”

마법책에 구상도가 그려지니 더욱 마음에 든다. 확실히 이거라면 된다. 실전에서 이전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싸우다가 유사시에 마나파동포를 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역시 궁리하다보면 다 나오는군. 나는 천잰가 봐.”

기쁨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원래 나는 천재가 맞지만, 이번 발상은 특히 내 마음에 든다.

내친 김에 나는 길을 가던 중 마탑에 들려서 필요한 재료를 구했다.

아공간 주머니에 마정석 같은 중요한 재료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모든 재료를 모을 수 있었다.

제작 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렉스의 목띠에 담긴 힘과 마리포즈의 조율 능력이 있으니 마찬 안에서도 비급 마법 지팡이 정도는 제작할 수 있다.

뿌우는 양날 창을 만들어 보겠다던 내가 갑자기 그걸 취소하고 이중 지팡이를 만드니 삐져서 말을 안 했지만, 그래도 이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 협조는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덴판 제국에 도착하기 전에 내 지팡이를 개조해서 지팡이 속에 마나파동포 발사대를 설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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