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84화 (84/250)

로엔의 마나뱅크 84화

“끄아아아아앙!”

“어억!”

마나뱅크의 게이트가 형성된 부분으로부터 충격파가 발생하는 바람에 나와 마리포즈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튕겼다.

그 때문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게이트로부터 뿜어져 나온 하얀 섬광이 뿌우의 몸을 관통하는 것까지는 보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뿌우의 비명소리.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뿌우를 보았다. 놀랍게도 뿌우의 몸이 절반정도 날아간 형태로 보였다.

남은 절반도 제대로 충격을 받았는지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머리는 온전하게 남아 있어서 말은 할 수 있는지 뿌우는 울음석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거 고의징?”

“회복 안 되냐?”

“몰랑, 안 됑, 그리고 무지하게 아팡.”

심각하네. 정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육체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소멸 직전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고통이라니! 소멸되는 느낌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봐야겠지.

사고쳤네. 실험은 실패야. 설마 정령도 흡수하지 못하는 압력의 마나라니! 아니, 아예 정령을 소멸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이라는 소리잖아.

생각은 나중이다. 어떻게든 뿌우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

나는 서둘러 뿌우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내 몸도 방금 전의 충격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전신의 뼈마디가 쑤시고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이트로부터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강식장갑로브가 작동을 멈췄다. 지금도 일대의 마나가 엉키고 섞여서 요동을 치는 것이 느껴지는 게 고밀도 마나에 의한 충격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대변해준다.

“으윽, 젠장.”

내가 무릎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자 뿌우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절반만 남은 뿌우의 몸이 절단면으로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 대기 중에 흩어지는 게 보인다.

“미안.”

나는 고통을 참고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러자 뿌우는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처연한 시선으로 날 보며 말했다.

“괜찮당. 난 정령계로 돌아갈 뿐이니깡. 그래도 넌 괜찮은 계약자였당.”

으, 그런 식으로 소멸하면 정령계로 돌아가도 거의 자아가 없는 소정령으로 존재하게 될 뿐이잖아. 단순한 퇴치와는 다른 진짜 소멸인데.

이럴 수는 없다. 나는 다시 이를 악 물고 몸을 일으켰다.

내 지팡이에 박힌 엘레멘탈 정령석, 그걸 깨뜨려서 나오는 힘으로 일단 뿌우의 형체를 유지하자. 그 다음에는 렉스의 목걸이에 담긴 힘으로 어떻게든 회복시킬 수 있을 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뿌우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서 마법을 쓸 때까지 저놈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은 급하지만 최대한 냉정을 유지했다. 지금 다시 넘어지면 못 일어난다.

“조, 조금만 버텨.”

나는 지팡이로부터 엘레멘탈 정령석을 빼어내며 말했다. 그러자 뿌우도 내 의도를 눈치 채고 끄응 하는 신음성을 냈다.

말을 할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실제로는 짧지만 나와 뿌우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다.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뿌우의 몸이 점점 분해되는 게 보였다. 아슬아슬하다. 일정이상 분해되면 자아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때, 머리를 산발하고 입가에 한줄기의 피를 흘리는 미리아가 뿌우에게 달려왔다. 충격파로 인해 날아갔던 미리아지만 조금 떨어져 있어서 나보다는 멀쩡했나 보다.

“신성강화! 치유!”

파앗

아까의 섬광과 색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전혀 다른 빛이 뿌우의 전신을 감쌌다.

“미리아 누님!”

뿌우가 감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입 다물고 집중해. 회복, 재생!”

미리아는 자신이 아는 모든 회복계 백마법을 뿌우에게 쏟아 부었다. 뿌우가 사람이 아니라 어떤 백마법이 효과가 있는지 정확하게 몰라서 일단 되는 대로 쓰는 모양이다.

처음의 신성강화로 뿌우의 몸이 분해되는 것이 멈췄다. 그리고 백마법을 쓸 때마다 조금씩 뿌우의 육체가 복귀되어 갔다.

인간처럼 육체가 치유되는 느낌이 아니라 신성력으로 몸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저 정도면 죽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더 강해질 지도 모르지. 신성력 강화를 한꺼번에 몇 번이나 받는 셈이니까.

뿌우에게는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난 전신에 밀려오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미리아야, 나한테 쓸 거 몇 개는 남겨주라.”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의 말을 던지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깨어나니 야영지였다. 미리아가 뿌우와 나를 어느 정도 회복시킨 후 이반 경에게 알렸다고 한다.

“어떻게 된 건가?”

이반 경이 물었다. 옆에 크리드 경도 있어서 반말을 한다.

나는 조금 생각을 정리한 후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마나뱅크에 대한 것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기에 뿌우를 이용해 마나뱅크와 다시 커넥트를 하려다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건 거짓말은 아니다. 뿌우와 마나뱅크를 연결하려 한 것은 진실이니까.

하지만 듣는 쪽에서는 다른 의미로 이해한다. 마법사는 가능한 한 거짓말을 안 해야 한다. 조금 약삭빠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뿌우는 마나뱅크로부터 직접 마나를 받고 있었기에 한번 시도해 봤는데, 폭발이 일어났네요.”

“흐음, 정령을 이용해 사라진 마나뱅크를 되찾는 시도라. 재미있는 발상이기는 하지만 잘못 접근해서 마나뱅크의 안전장치를 건드린 모양이군.”

“그렇다면 마나뱅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군요.”

크리드 경이 끼어들자 이반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했다.

“그렇다고 봐야할 걸세. 아예 사라진 거면 이런 식의 폭발이 일어날 일도 없으니. 하지만 마나뱅크는 아공간이라 정해진 위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군.”

어렵다기 보다는 불가능에 가깝다. 위치가 특정되지 않은 아공간에 접촉하려면 궁극마법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9서클에 오른 대마법사만이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 마나뱅크는 내가 마음먹고 외부 접촉을 차단시켰기 때문에 대마법사라 해도 연결을 할 수 없다. 위치를 찾아내 아공간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마나뱅크에는 그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 사건을 얼무버린 후, 우리는 서둘러 길을 이동했다.

수련이고 뭐고 내가 부상을 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영지를 향해 최대한 빨리 돌아가기로 했고, 이동 속도를 올리자 며칠 만에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충격파로 인해 내장이 뒤틀리고 전신의 근육이 파열되는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미리아가 치유 마법을 써 줘서 회복이 빨랐다.

하지만 여전히 내 방문 앞에는 ‘절대안정’ 이라는 푯말이 걸려있고, 나는 모든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내 옆에는 간병인으로 마리포즈만 남아있다. 그리고 하루 한 차례 미리아가 와서 신성백마법으로 치료를 해준다.

사실은 내가 엄살을 떨면서 쉬겠다고 했다. 지금 다른 데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나는 굉장한 것을 보았다. 믿기 어려운 현상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설마 정령을 소멸 시킬 수 있는 힘이라니.”

강제역소환도 아니고 그냥 소멸이다. 이건 뿌우가 일반 정령이든 상급 정령이든 상관이 없는 문제다.

말하자면 대정령인 포트라라도 그것에 맞으면 대미지를 입는다는 소리다.

“궁극마법의 공격력이란 말이지? 후훗.”

그렇다. 마나뱅크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힘은 9서클의 한계를 넘어선 파괴력을 지녔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신이든 악마든 모두 분해해 버릴만한 힘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지. 원래 큰 발명은 실패작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고.

진짜 그러네. 하하하하하하.

“마리야, 그때 차단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니?”

“저는 렌 경이 설치한 마법진으로 마나뱅크의 시스템에 직결된 상태였어요. 제가 차단한 게 아니라 명령만 전달한 거고, 마나뱅크가 차단한 거예요.”

“그렇지. 일단 마나뱅크는 그 힘을 견뎌낼 수 있다는 소리네.”

안심했다. 이번엔 성공했지만 다음번에는 힘들다는 식이면 곤란한데, 마나뱅크가 직접 제어하는 것이라면 믿을 만 하다.

그럼 정리를 하자.

공간을 격하고 마나뱅크의 게이트를 연다.

마나가 쏟아져 나오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때 쏟아져 나오는 마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나는 튕기느라 못 봤지만 마리포즈가 본 바에 의하면 광선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6서클 마법인 분해광선과 비슷한 효과인데, 무엇이든 소멸시킨다는 게 다르다.

마리포즈가 바로 게이트를 닫는다. 그걸 그냥 계속 쏟아져 나오게 놔두면 주변이 모두 날아갈 거고, 시전자인 나 역시 포함될 테니 열리는 순간 닫는 게 좋겠다.

그때 발생하는 충격파는 주변의 모든 마법무구를 무력화 시킨다. 아마 방어마법도 모두 깨질 것이다.

“이게 문제네. 강식장갑로브의 기능이 해체될 정도라면 남은 건 결계로브 정도뿐인데, 그건 나한테 없잖아.”

결계로브라면 버틸 것이다. 난 아직도 발데스 스팅이 어떻게 결계로브를 뚫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발데스를 소환해서 처치할 때까지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쪽이 어떤 방어마법을 쓰든, 혹은 결계를 써도 맥없이 뚫릴 수 있다.

“으,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복잡하네.”

체력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지 머리가 띵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마리포즈에게 쥬스를 한 잔 달라고 했다.

시원한 쥬스를 한 잔 마시니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사람은 너무 머리만 쓰면 안 된다.

나는 천천히 전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파열되었던 근육은 모두 재생되었지만 아직 놀란 신경이 안정되지 않아서인지 굳어서 빡빡하다.

“마리야, 내가 그거 쓸 때, 네가 나를 보호할 수 있겠니?”

스트레칭을 하면서 마리포즈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리포즈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완벽한 가드는 힘듭니다. 게이트는 결국 렌 경과 연결되어 있어서 완전히 닫을 때까지는 그 사이를 막을 수 없어요.”

“으, 그럼 최소한 팔은 거덜 난다는 소리네. 몸과 머리는 네가 막아준다 치고.”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쩝, 팔 하나 날릴 각오하고 써야 된다는 소린가?

아니지, 그렇게 단언하기는 일러.

나는 내 마법서를 꺼내 안에 도식을 그리며 몇 가지 계산을 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공간을 격하고 마나뱅크의 게이트를 여는 것조차 특수한 마법진을 설치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몸과 직접 연결해야 마나를 끌어다 쓸 수 있지, 공간을 격하면 안에 든 마나가 헛되이 밖으로 흘러나와 흩어져 버리는데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공간을 격하고 마나뱅크의 게이트를 열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먼 거리에서 열수록 좋다.

“계산 상 5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게이트를 열면 마리 네가 나를 완벽하게 가드할 수 있을 거 같네. 그렇지?”

“맞습니다. 정확하게는 4.98782 미터부터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그 방법을 연구하자고. 그리고 땅에 마법진을 그리는 것보다 간단한 방법도 찾고 말이야.”

거기까지 진행되면 이건 확실한 무기가 된다. 비록 게이트를 연 이후 마나가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그건 운용상의 묘로 해결하면 된다.

나는 대충 구상한 것들을 마법책에 적어놓고 가장 위쪽에 이 새로운 개념의 공격마법에 이름을 붙였다.

마나 파동포!

그게 바로 마나뱅크로부터 직접 마나를 방출해서 모든 것을 소멸하는 공격마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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