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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80화 (80/250)

로엔의 마나뱅크 80화

엘시아의 소울 크러시는 명확하게 아론 경을 겨누고 있다. 하지만 아론 경이 마음먹고 피한다면 아마 피할 수 있으리라.

단지 그 경우 다른 네 명의 마도사들이 당할 가능성이 크다. 소울 크러시를 억지로나마 막거나 피할 수 있는 마법사는 그들 중에 아론 경이 유일하니까.

아론 경이 도망가면 다른 마법사가 죽고, 도망 안 가면 아론 경이 죽는다.

네 명의 마법사는 아론 경측 사람이 아니다. 의상을 보면 각각 다른 가문 사람이다. 아마 각 가문의 가주이거나 최고의 마도사일 테지.

답은 정해져 있다. 아론 경은 당연히 도망갈 것이고, 누군가 대신 죽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럴 경우 다른 마법사는 평생 마음속으로 아론 경을 원망할 가능성이 크다. 비겁한 자로 뒷소문을 낼 수도 있다.

어쩌면 모두 한 번에 죽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엘시아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폭공격으로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아론 경은 이를 악 문 목소리로 외쳤다.

“두려워 말고 나에게 모든 방어마법을 걸게. 우리가 마나를 모은다면 마녀의 발악을 저지할 수 있을 걸세.”

“오, 과연 아론 경. 알겠소.”

네 명의 마법사들은 용기백배해서 방어마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론 경은 도망갈 생각이다. 겉으로 하는 말은 어떻든 그의 몸속에 흐르는 마나는 그가 회피형 마법을 시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면 오히려 어설프게 아론 경에게 힘을 보탠 마법사들은 거의 확실하게 죽는다. 그들도 전력으로 자신의 방어와 회피에 집중한다면 한두 명은 살 가능성이 크지만 이러면 한명도 못 산다. 아론 경은 그걸 노리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네 명의 마법사들 역시 전력으로 아론 경을 지원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아론 경이 외친 대로 진심으로 다섯 마법사가 전력을 모으면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자신의 방어도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력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거기에 네 명의 마법사들의 눈빛을 보면 오히려 잘 되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다른 가문의 가주들이나 최고 등급의 마도사들인데 이 기회에 아론 경이 엘시아와 같이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틀림없다.

‘결국 아론 경은 도망가고 네 명의 마법사들은 모두 죽겠군.’

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예측을 했다. 서로 속셈이 다르면 결국 강한 자만 득을 보게 되어 있는 것이다.

“호호호, 어디 말대로 내 소울 크러시를 받아낼 수 있는지 한 번 봐 주지.”

엘시아도 그들의 속셈을 거의 눈치 챘는지 비웃음을 날렸다.

사실 피해가 적은 방법은 네 명의 마법사 중 하나가 지금 당장 엘시아에게 공격을 퍼붓고 다른 마법사들은 몸을 피하는 건데, 그 누구도 자신을 희생해 다른 네 명의 마법사를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뭐, 나도 그들 사이의 싸움에 낄 생각이 없었으니 남을 비판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이 광경은 지켜보기가 참 씁쓸한 모양새다.

드드드드드

소울 크러시는 계속 커졌다. 이제 곧 마법이 완성되리라.

엘시아의 눈빛에 체념의 감정이 떠올랐다. 스스로의 야망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렇게 끝을 내는 게 안타까운 모양이다.

‘잘 가라. 엘시아. 다음 생에는 조금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났으면 좋겠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엘시아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때, 엘시아가 쓰고 있던 모자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너 네 스승인 로엔을 사랑했니?”

으아아아아아악! 저놈이 하필이면 왜 지금 말을 하는 거야!

야! 침묵하는 모자! 입 다물어. 다물라고!

나는 육성으로 외치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그러나 마음속은 불길이 활활 올라오는 듯 뜨겁게 타는 기분이 되었다.

원래 공간 결계의 극치인 결계로브와 자아생성의 돌연변이인 침묵하는 모자는 내가 만든 최고의 아티팩트다.

그중 저 침묵하는 모자는 다른 기능은 전혀 없고, 자아는 있지만 평소에는 입을 다물고 전혀 반응을 안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침묵하는 모자가 입을 열어 말을 하면, 그때는 기적이 일어난다. 궁극마법도 사용될 수 있다.

난 저놈을 만들고 50년간 잘 때 이외에는 항상 쓰고 다녔는데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배신자 같은 모자가 어째서 엘시아에게 말을 하는 거냐? 걔는 너의 창조주를 죽인 여자라고!

내가 당황과 분노의 파도에 파묻힐 때 엘시아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아가 있었어?”

“대답해라.”

침묵하는 모자의 감정 없는 목소리에는 묘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엘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열었다.

“내가 평생 존경하고 사랑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스승님이야. 마도에 뜻을 둔 자로써 어찌 대마법사를 마음에 담지 않겠어?”

“그런데 왜 그를 죽였지?”

“스승님은 고결하신 분이라 평생 다른 모든 행복과 젊음까지 마도에 바쳐서 결국 대마법사가 되었어. 하지만 난 그럴 자신이 없었거든. 대마법사는 되고 싶었는데 청춘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어. 난 젊고 아름다운 상태로 대마법사가 되고 싶었어. 설령 그걸 위해 유일하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있더라도.”

“…….”

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생각도 멈추어 버렸다.

그래, 나도 그걸 원했어. 누가 나에게 스승님을 암살하면 젊어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유혹했다면 거절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엘시아가 생각했던 것처럼 고결하고 숭고한 정신세계의 소유자가 아니다.

강제로 희생당한 내 청춘이 아까워 죽은 스승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청춘을 되찾을 방법만 수십 년간 연구해서 결국 환생마법을 개발한 후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 재물을 모으고……. 아무튼 그게 나다.

엘시아의 감정이 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를 이해하는 마음이 밀물처럼 내 심장을 채운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왜 우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눈물을 닥을 생각도 하기 싫다.

침묵하는 모자는 계속 말했다.

“내 창조주인 로엔을 죽인 너를 주인으로 인정하기는 싫었는데, 내 생각에 지금 로엔이 살아 있다면 아마 널 이해했을 거 같다. 난 그의 머리에서 50년을 있어서 알 수 있어.”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

“그냥, 그런데 지금 네가 필요한 게 로엔의 진명이지?”

“그걸 알아?”

“응, 말했잖아. 난 그의 머리에서 50년간 있었다고.”

“가르쳐 줘. 어서!”

“그래, 로엔의 진명은 *** *****(살레안 그로스미어)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미친 모자야. 왜 남의 진명을 함부로 가르쳐 주는 거야!

비록 진명을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엘시아의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었을 게 틀림없다.

활짝 펴지는 엘시아의 얼굴이 그걸 증명해준다.

엘시아는 즉시 소울 크러시를 해제했다.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마나와 생명력까지 대부분 들어간 마법이지만 이제는 아까울 게 없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방금 그녀는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손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모든 링크 차단! 모든 계좌 해제!”

엘시아는 비정한 목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아론 경을 비롯한 모든 마법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입에서 피를 뿜었다.

“크아아아아악!”

“커억!”

“쿨럭, 링크가!”

갑자기 마나뱅크의 링크가 끊어지니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치 피가 흐르는 경동맥이 막혀 심장마비를 당한 것처럼 고통을 느끼리라.

휘익, 털썩

허공에 떠 있던 마법사들 넷이 충격으로 비행마법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아주 높이 떠 있는 것은 아니니 죽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대부분 의식을 잃은 듯 했다.

그나마 아론 경은 불의 정령이 잽싸게 나타나 추락하는 그를 받았기에 땅바닥과 부딪치는 것은 면했다. 그래도 아직 정신이 없는 듯 신음성을 내며 제대로 서질 못했다.

나는 그나마 미리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어서 충격이 적었다. 그래도 저렇게 바로 링크를 끊어버릴 줄은 몰랐기에 링크를 끊지는 못했다.

이반 경도 가슴을 움켜잡으며 피를 토하고 있었고, 미리아는 아직 서클이 낮아 그 정도 충격은 아닌 듯 가슴을 잡고 인상을 찡그렸다.

“호호호호호, 어때? 이제 마나뱅크의 모든 마나는 나의 것이고, 너희들은 이 자리에서 가장 잔인하게 죽을 거야.”

엘시아는 거의 광소라고 할 정도로 크게 웃었다. 미칠 듯이 기쁜가보다. 사실 그녀의 지금 몸상태도 거의 죽기 직전이라고 봐야 하는데, 꿈을 이루고 마나뱅크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아론 경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었다.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나, 나는...”

역시 이 상황이 되니까 8서클 마법사고 뭐고 없구나. 만약 지금 엘시아가 아론 경에게 살려줄 테니 노예가 되라고 제안했다면 아론 경은 덥석 절하고 주인님이라고 부를 듯한 분위기다.

엘시아는 그런 아론 경의 표정을 감상이라도 하듯 살펴보았다. 정말 내 생각처럼 노예 제안을 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면 자신을 이토록 괴롭힌 아론 경을 화끈하게 죽여 속을 풀려나? 어차피 마나뱅크의 모든 마나를 독점한 순간부터 다른 부하의 도움 없이도 대륙 전체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야.

“도망갑시다. 내 한 번 정도는 마법을 쓸 수 있으니.”

이반 경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엘시아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이반 경은 몸속에 남아있는 마나로 단거리 이동마법을 쓰려고 준비 중이다. 단거리이동마법이라고 해도 이반 경 정도면 호수 밖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엘시아가 아론 경 일행을 처리하는 동안 도망가자는 거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격준비 하세요. 기회가 올 거예요.”

“저 마녀가 마나뱅크를 손에 넣었으니 승산은 없을 것 같은데.”

크리드 경이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대단한 게 이 사람은 내가 공격준비를 하라고 하자 자연스럽게 소리 없이 검을 빼어들었다.

마리포즈는 당연히 내 말에 따라 렉스의 목띠에 흐르는 힘을 받아들여 전투태세를 갖췄고, 렉스와 서피 역시 바로 준비를 끝냈다.

미리아는 내 눈치를 보면서도 신성력을 끌어올려 크리드 경에게 강화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엘시아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고 피식 웃었다.

“따로 복병을 숨겨 뒀었군? 역시 아론 경은 용의주도한 남자야. 하지만 이제는 누가 와도 소용없어. 나는 이미 질레야 질 수 없거든.”

그건 네 생각이고, 엘시아야. 네가 모르는 게 두 개 있어.

하나는 너 말고 마나뱅크의 마스터 계좌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둘은…….

나는 입을 열어 사람들에게 우리가 곧 가지게 될 공격기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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