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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79화 (79/250)

로엔의 마나뱅크 79화

4장 엘시아의 꿈

만반의 준비를 끝낸 우리는 프리스톤 가문으로 떠났다. 이미 아론 경이 몇몇 마도가문과 연합해서 결성한 공격대가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연락도 받았다.

아론 경에게는 미스틱 엑스의 이름으로 프리스톤 가문의 경계와 방어마법에 대한 내용을 보냈다. 몇 가지는 빼놓았지만 이정도면 아론 경측에서 알아서 침투, 공략하는 방법을 고안해 낼 것이다.

“우리는 프리스톤 가문 공격대에 합류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무엇을 할 건가?”

크리드 경은 나한테 계획을 듣다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미스틱 엑스 경께서 프리스톤 가문의 탈출로를 찾아냈어요. 만약을 대비해 그곳을 막기로 했어요.”

이번 사건의 해결은 아론 경과 십대마도가문에 맡기기로 한다.

아론 경이 암살을 당할 뻔 했고, 덴판 제국의 황제건도 프리스톤 가문에 뒤집어씌운 형국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세력은 엄청난 명성과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경우는 당사자인 아론 경이 해결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그에 따른 우리 데빌 베인의 이익은 이미 어느 정도 보장 받은 바 있으니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나서지 않고 만약을 위해 뒷문을 막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나아간 곳은 프리스톤 가문으로부터 거의 10킬로미터는 떨어진 숲속이었다. 숲속 한 가운데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고, 가운데에 섬이 있었는데, 프리스톤 가문은 호수 밑을 통해 이 섬까지 탈출로를 파 놓았다. 그리고 호수 전체에 환상마법을 걸어 섬이 보이지 않게 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도 자신도 모르게 섬을 피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결계와 같은 환상마법진인 것이다.

크리드 경은 잠시 호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호수의 물결이 이상하군. 환상이야.”

“이걸 알아보실 정도면 이제는 환상이 아예 안 통하는 수준이시네요.”

“물의 정령의 힘으로 알아본 거네. 아직 내 수준으로는 꿰뚫어 보기가 힘들군.”

“이 환상은 섬에 설치된 9서클 마법진으로 만들어 낸 거라고 했어요. 알아보는 게 신기한 거죠.”

이반 경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보지 못하겠군. 진실의 시야로도 파악이 안 되고, 고급 탐색 마법으로 장소를 지정하니 이상하다는 것만 나온다네.”

진실의 시야가 모든 환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환상은 쉽게 파악이 안 된다. 특히 이 마법진은 진실의 시야를 방해하는 술식까지 포함되어 있다. 내가 고안한 환상마법을 엘시아가 그래도 쓴 거다.

그런데 물의 정령을 이용하면 허실이 파악되는군. 나중에 고쳐야지.

우리는 물위를 걸어 섬으로 갔다. 환상의 결계를 통과하자 아름다운 섬이 나왔는데 면적이 집 한두 채 들어갈 정도밖에 안 됐고, 가운데에는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훌륭하군. 섬 전체가 마법진이고 탑이 환상을 만들어내는 장치이니 거의 반영구적으로 유지가 되겠군.”

“예, 그리고 호수 밑쪽으로는 지하수맥이 여러 개 연결되어 있어서 여기서 호수로 뛰어들면 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만큼 꼭 이 섬 위에서 막아야 합니다.”

“그건 염려 말게. 내가 땅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이용해 결계를 치지. 아마 엘시아 경이라고 해도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할 걸세.”

“그렇게 해 주세요. 앞으로 삼일 후면 아론 경이 공격을 시작할 테니 그때까지 준비해야 합니다.”

“하루면 될 걸세.”

이반 경이 마법진을 설치하러 가니 이번에는 미리아가 말했다.

“난 뭐해?”

“미리아 너는 숲 위에 있는 나무에 신성력을 주입해 줘. 그러면 엘시아가 흑마법을 써도 위력이 반감될 테니까.”

“알았어. 매일 아침 해 뜰 때 나무에게 말을 걸게.”

“낮에는 크리드 경과 손발을 좀 맞추는 연습을 하자. 엘시아 경을 상대로 마법을 쓰는 것보다는 크리드 경에게 강화마법을 걸어주고 맞기는 게 나을 것 같으니 우리는 서포트 역으로 돌아야 해.”

“응. 크리드 경의 정령이 내 신성력을 많이 먹은 상황이라 강화하기도 쉬울 거야.”

“그래, 넌 이번에는 공격에 직접 참가하지 말고 크리드 경에게 걸리는 저주성 마법의 해제와 강화에만 전념해.”

엘시아의 마법이 얼마나 강할지는 대충 상상이 가지만 적어도 성녀인 미리아가 숲의 힘까지 동원한다면 풀지 못할 저주는 없으리라.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크리드 경의 전투력을 얼마나 강화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가 승부처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마리포즈에게 렉스와 서피의 관리를 맡겼다. 엘시아가 마왕 발데스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다. 그녀는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은 상태이기 때문에 확률은 반반 정도라 본다.

하지만 만약 발데스의 권능을 쓴다면 렉스와 서피가 그에 대응할 것이다. 마기를 먹는 렉스와 흡수하는 서피야말로 백마법보다 더 훌륭한 대 마족용 대응책이라고 본다.

“휴우, 그럼 나도 명상을 좀 할게. 생각도 정리할게 있으니.”

나는 같이 놀아주거나 훈련해주기를 바라는 미리아의 시선을 모른 척 하고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엘시아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냉정하게 지켜보기 위해서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역시 내가 직접 손을 썼어야 했나?’

그러려고 했다. 배반한 제자는 스승이 직접 처리하는 게 규율이니까. 하지만 그걸 망설였고, 결국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아론 경에게 일을 넘겼다.

‘나는 모든 일을 명확하게 계획한대로 처리하는 성격이고, 가능하면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나 엘시아에 대한 일처리는 항상 감정이 앞선다. 분노와 함께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은 제어하기가 정말 어렵구나.’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복잡해졌다. 막상 이렇게 뒷문을 막고 있으니 점점 마음이 약해져 만약 엘시아가 이곳으로 온다면 그냥 놔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일까?

‘내가 이렇게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니.’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성이 감정을 제어한다. 엘시아는 마족의 계약자고 이대로 놔두면 절대로 안 되는 존재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은원을 떠나서 처리해야 한다.

나는 그 부분을 계속해서 생각하며 명상을 유지했다. 3일간 기다리며 미리아와 크리드 경과 함께 전투 연습을 하는 시간 이외에는 거의 잠도 안 자고 명상만 했다.

그래도 역시 생각의 수면 아래는 소용돌이처럼 거센 감정의 기복이 일어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

3일이 지났다. 상황을 보러 갔던 뿌우가 돌아와 아론 경 일행이 공격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그들은 생각보다 수는 적었지만 그만큼 정예였고, 이미 대부분 파악된 경계마법을 빠르게 부수면서 프리스톤 가문의 마탑을 공격해 들어갔다고 한다.

“반나절 이내에 승부가 날 겁니다. 만약 엘시아 경이 몸을 뺄 수 있다면 그 전에 이곳으로 올 테니 준비해요.”

“알겠네.”

이반 경은 아직까지 엘시아에 대한 심리적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는지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크리드 경은 오히려 차분한 눈빛이고 호흡도 변하지 않았다. 역시 이 정도 경지에 오른 기사의 정신력은 고위 마법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던 중 드디어 지표면에 묘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지진 같은 느낌. 그러나 가끔씩 쿵쿵 하고 큰 진동도 느껴진다.

“지하에서 싸우는 모양이군.”

“아론 경이 계속 따라붙었나 봐요.”

엘시아가 몸을 빼는 게 조금 늦었나? 아니면 애초에 아론 경 일행을 상대로 직접 나서서 싸웠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진동의 근원지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게 느껴진다.

엘시아가 오는 게 거의 확실하다.

싸움이 다가오는 느낌에 긴장이 점점 고조되지만 미리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아직 어린 미리아만 몸이 굳은 듯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는 등 긴장을 풀려 노력하고 있다.

탑이 터졌다. 제대로 문을 열 여유도 없었나?

탑 아래쪽 동굴로부터 엘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와 거의 동시에 주면 땅거죽이 같이 터지며 아론 경을 비롯해 다섯 명의 마법사가 같이 날아올라 엘시아 주변을 포위했다.

“마녀 엘시아! 더 이상은 도망가지 못한다.”

“호호호호, 역시 아론 경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 그대가 아니었으면 다른 자들은 쉽게 제거했을 텐데 말이야.”

엘시아는 크게 웃으며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다. 엘시아의 몸에 마나가 거의 없다. 저 정도면 마나뱅크에 있는 마나도 거의 다 쓴 거다.

오히려 아론 경을 비롯한 다른 마도사들은 아직 여유가 있다. 하긴, 엘시아가 마법적인 지식은 뛰어날지 몰라도 이미 나이가 들고 스스로 석화마법을 걸어 수명을 늘리고 있는 상태다.

원래 석화의 마법진에서 나오면 10분도 버티기 힘들 텐데 아무래도 마나를 소모해서 몸의 붕괴를 막는 방법을 연구한 듯하다. 그러나 이미 몸의 붕괴도 어느 정도 시작된 듯 피부가 돌조각처럼 후드득 떨어지고 있다.

실전에서는 아론 경 한명도 이기기 힘든 상황일 터, 거기에 네 명의 7서클 마도사가 돕는 상황이니 방어만 하기에도 벅찼을 거다.

애초에 프리스톤 가문에 설치된 방어마법을 아론 경에게 가르쳐 준 시점에서 이미 승부는 난 것과 같다.

아론 경은 엘시아가 뭐라고 하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자신이 할 말을 했다.

“더 이상 저항을 멈추고 항복해라. 그러면 선배 마법사로써의 예우로써 시신은 곱게 매장을 해 주겠다.”

“호호호, 아론 경. 내 마법서가 탐나나? 내 스승인 로엔의 마법서가?”

아론 경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엘시아가 정확하게 아론 경의 마음을 꿰뚫어본 것이다.

엘시아가 가지고 있는 마법서는 내가 쓰던 것이고, 9서클 마법뿐 아니라 궁극마법에 대한 기록도 상당수 남아있다. 당연히 탐나겠지.

엘시아는 전혀 항복할 마음이 없는 듯 말했다.

“날 죽여도 마법서는 발견할 수 없을 걸. 그리고 난 항복하지 않아. 이렇게 된 이상 끝장을 보자고.”

우우우우웅

엘시아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니 대기가 울리며 붉은 빛의 덩어리가 생성되었다, 그 광경에 모든 마법사들이 움찔 하며 뒤로 물러났다.

“소울 크러시. 마녀, 같이 죽을 셈이냐?”

“적어도 한 명은 데리고 가야되지 않을까?”

엘시아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소울 크러시는 스스로의 마지막 생명력까지 짜내어 공격형 마나로 전환하는 자폭 마법이다. 8서클 마법인 만큼 저걸 맞으면 아론 경도 무사할 수는 없으리라.

“한 번 볼까? 아론 경을 위해 다른 마법사들이 희생을 할지. 아니면 아론 경이 다른 마법사들을 버리고 도망갈지.”

엘시아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론 경을 비롯해 다른 네 명이 마도사들이 똥 밟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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