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76화 (76/250)

로엔의 마나뱅크 76화

로엔의 마나뱅크 4권 데스 나이트

1장 정령기사

미리아가 숲에서 나온 것은 이 주가 지는 뒤였다.

“늦어서 미안해요. 엘프들이 환송회를 열어줬는데, 그게 한 달 동안 계속되더라고요.”

“한 달이나? 미리아 너 완전 대우 받았구나?”

황제 즉위식 축제도 일주일에 불과한데 무슨 환송회가 한 달이란 말인가? 성녀라서 그런가?

“아니에요. 원래 엘프들은 일 년에 열 달은 놀아요. 기념일마다 한 달 단위로 축제를 벌이거든요. 이번에 제 환송회 핑계대고 한 달을 더 논거죠.”

“하하하, 그럼 올 해는 딱 한 달만 일한다는 거네. 엘프 팔자가 좋긴 좋구나.”

엘프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그들은 숲에서 사는 한 먹고 자는 문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긴 수명 때문인지 굉장히 게으른 편이라고 했는데 미리아의 말을 들으니 그게 정말인 것 같다.

“노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게으른 건 아니에요. 쉬는 시간에 각자 취미활동을 하거든요. 근데 그 취미활동이라는 게 마법이나, 검술, 궁술, 정령술 같은 거라서 다들 굉장한 수준이더라고요.”

“흐, 가장 무서운 학습력은 즐기는 데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 엘프들이 강하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서 넌 무엇을 배웠어?”

“성녀인 저를 대우해주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정령은 원래 마법의 영향을 거의 안 받는데, 백마법에 의한 강화는 일부 받아들이나 봐요. 그것도 한번 받으면 정령 자체가 성장을 하는데 도움이 된데요.”

“정말?”

이건 나도 몰랐던 거다. 백마법의 강화마법으로 정령이 성장을 한다면 같은 정령이라도 훨씬 세진다는 소리가 아닐까?

나는 미리아에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라고 말했다.

“순수한 신성력일수록 정령이 영향을 크게 받아요. 그러니까 기존의 마법 형식에 재배열 된 백마법보다는 성녀인 저의 힘 자체가 좋다는 거죠. 난 그들에게 신성강화마법을 배웠어요. 근데 그게 정령한테만 들어요.”

“크, 누가 엘프 아니랄까봐 정령 전용 강화마법을 개발해 놨었군.”

“예,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엘프는 신성마법을 못 쓰니 성녀인 제 도움이 필요했던 거죠.”

결국 필요에 의해 성녀를 받아들인 거다. 그리고 엘프의 가족이라는 인증까지 해 준 거고.

“그런데 너 엘프의 일원이 되면서 변화는 없었어? 그 정도 의식이면 틀림없이 문제가 있었을 텐데.”

“원래 하프엘프가 될 수도 있데요. 그런데 저는 다른 피가 진해서 영향을 안 받았어요. 장로 할머니가 아쉬워하더라고요.”

엘프의 피보다는 서큐버스의 피가 진한 건가. 하긴 마족이 괜히 마족이겠어? 그들 세계에서는 가장 강력한 등급일 테니 엘프의 힘으로도 지울 수는 없겠지.

나는 납득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이반 경을 보았다.

“이반 경, 미리아와 합류도 했으니 이제 크리드 경의 문제를 해결하죠.”

“정령 공유 말인가? 본거지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하려면 준비가 좀 필요하네.”

“생각해 봤는데, 본거지에는 이미 다른 세력의 이목이 침투해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는 전 대륙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직이니까요.”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조금 번거롭더라도 여기서 일을 마무리하고 본거지로 돌아가요. 그래야 비밀이 지켜질 테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지. 다행히도 여긴 정령력이 강하니 마법진 설치만 하면 충분히 가능할 걸세.”

“마법진 동력원은 렉스의 목띠에서 빼서 쓰는 걸로 하고요. 저쪽에 있는 개울가에 설치하면 될 거 같아요.”

“그러지. 아무래도 렌 경이 미리아의 정령강화마법을 빨리 보고 싶은 모양이군.”

“호호호, 아버지.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 이 인간들이. 그래, 빨리 보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마법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데.

두 부녀가 동시에 나를 놀렸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럽기도 했다.

미리아는 이반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 불렀다. 처음 양녀가 되기로 했을 때에는 서먹서먹해서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엘프의 숲 경계선까지 데려다 주면서 많이 친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었을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그런데 난 왜 아직까지 몰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걸까? 전에 한 번 거절당했어도 그냥 불렀으면 됐을 텐데, 그 뒤로는 계속 몰던이라고 이름을 불렀다.

“좋아, 결심했어.”

“뭐를요?”

“이번에 본거지로 돌아가면 몰던을 아버지라 부를 거야.”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미리아는 정말 기뻐했다. 우리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나와 몰던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다.

“아무튼 지금은 크리드 경의 정령 공유에 집중해요. 이반 경, 그럼 부탁할게요.”

“그러지. 크리드 경은 마법진이 완성될 때까지 마음을 가다듬으시오. 정령과의 상성은 마력의 크기와는 또 다른 해명하지 못할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깨끗할수록 좋다오.”

“알겠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기대에 찬 눈으로 듣던 크리드 경은 이반 경의 말을 듣자마자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갔다. 저 정도로 빨리 집중과 몰입을 하는 것을 보면 크리드 경의 정신력은 이반 경에 필적할 만 하다.

정령 공유를 받고 스트리밍 에찌를 제대로 수련하면 무력도 이반 경에 비견할 정도가 될지 모른다.

세상에 8서클 마법사와 비슷한 전투력을 가진 기사라니! 최강의 기사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게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정령을 이용해 노화를 막고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전생에 구상했던 것인데, 이게 생각대로 되면 마도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기사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니 큰 상관은 없다.

내가 엘시아가 한 일을 보고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바로 정령술이나 고급 검형에 대한 지식을 없애려 한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강함을 없애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강해질 생각보다 남을 약화시킬 방법을 생각하면 그건 이미 종족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강하면 마땅히 남도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법사 된 자의 바른 마음가짐이다.

물론 난 그래도 최강일 자신이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아닌 사람이 남을 키워서 자신보다 위로 올라가도록 놔두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제자였던 엘시아가 인간의 발전에 해를 끼친 것만큼은 참기 어려운 부분이다.

‘봐라, 엘시아야. 넌 네가 없애려 했던 정령술과 마스터 기사에 의해 실패할 것이다. 그게 인과응보라는 인과율의 법칙일 테니까.’

그리고 엘시아에 의해 죽었던 내가 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죽임으로서 얻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나는 크리드 경 옆에서 명상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 사이 이반 경은 오랜만에 본 양딸 미리아와 같이 마법진을 그렸다. 미리아에게 수식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해 주며 천천히 마법진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양딸이 아닌 친딸 같은 애정이 느껴졌다. 하긴, 사랑했던 여자의 핏줄이니 남다른 감정이 있겠지.

미리아도 그런 이반 경의 마음을 느끼는 듯 행복한 눈으로 집중해서 마법진에 대한 것을 배웠다. 절반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 이해를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니 장래에는 확실히 높은 경지에 오를 것 같다.

생각해보니 조금 무섭다.

반마족에 성녀에 엘프일족에 고위마법사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이 상태면 정령도 소환하게 될 거고 말이지.

원래 이반은 미리아에게 정령을 공유해 주려 했다. 그러나 내가 말렸다.

미리아는 스스로 정령을 소환해야 한다. 그걸 위해 수련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고통과 기쁨을 느껴야 한다.

정령공유는 남에게 빌리는 것이라 스스로 소환할 수 있는 사람은 안 하는 게 좋다.

답답하면 수련하라.

그게 내가 다른 후배 마법사에게 항상 말해주던 대사다.

삼일이 지나니 드디어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그 사이 크리드 경은 밥도 굶으면서 명상을 계속했고, 난 크리드 경의 검을 정령의 집으로 만들 준비를 했다. 기존 마법검을 정령의 집으로 만드는 수식을 새겨 넣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한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 섰다.

조금 과장됐나?

그래도 최초로 정령 공유를 받는 기사가 탄생하고, 또 거기에 정령강화마법까지 시전 되는 상황이다. 역사라면 역사라 할 수 있다.

“크리드 경, 마법진 중앙에 서게.”

이반 경이 지시하자 크리드 경은 묵묵히 걸어서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삼일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서 그런지 살짝 말라보이고 피부도 푸석푸석했지만 두 눈만큼은 맑고 깊은 느낌이 들었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럼 시작하겠네. 물의 정령 소환!”

촤아아아아

역시 엘프의 숲 근처에 있는 물가라 물의 정령을 소환하기가 조금 쉽네. 이반 경이 계약한 이후 처음으로 소환한 물의 정령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다가 이반 경에게 말했다.

“나 소리아의 힘이 필요한가요? 대지의 힘보다 나를 더 원하는 건가요?”

목소리가 예쁘다.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말투다. 듣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듯하네. 소리아는 이반 경이 지어준 저 물의 정령만의 이름이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알리는 게 좋지만 이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급할 때 소리아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아니, 난 여전히 대지의 힘을 주력을 쓸 거다. 하지만 소리아 너에게는 새로운 계약자를 소개시켜 주려 한다.”

“헤에, 그것도 나쁘진 않죠. 저 사람인가 보군요.”

“그렇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최강의 기사 크리드 경이다. 너와 계약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의 몸에는 순수한 마나가 있네요. 좋아요. 저 사람과도 계약을 할게요.”

“그럼 물의 정령 소리아는 나 이반 경과 함께 크리드 경과 계약을 하는 것으로 하겠다. 크리드 경, 동의하는가?”

“동의합니다.”

촤아아아아

크리드 경이 대답을 하자 물의 정령 소리아는 거대한 물줄기로 변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크리드 경이 서 있는 마법진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크리드 경은 가만히 서서 그 물줄기를 맞았는데, 정령의 소리를 듣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듣는 중이겠지. 정령의 계약은 상당히 자세하고 엄밀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니까.

가끔씩 크리드 경이 작은 목소리로 받아들이겠다. 라던가 맹세하겠다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냇가에서 물이 솟아올라 소리아의 형태를 만들었다가 그대로 검의 날 속에 빨려 들어갔다.

“성공이군. 물의 정령 소리아가 검을 자신의 집으로 삼았네.”

“축하드립니다. 그럼 미리아, 네 차례야.”

“응.”

드디어 내가 기대하던 순간이 왔다. 미리아는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주문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두 손으로부터 하얀 빛이 흘러나와 구슬처럼 뭉쳤다.

“오, 저토록 순수한 신성력이라니!”

이반 경이 감탄을 했다. 고위 백마법으로도 만들지 못하는 순수함은 오직 미리아만 낼 수 있다.

우리가 감탄하는 사이 미리아가 만들어낸 신성력 덩어리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크리드 경의 검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촤아아아아

냇가의 물이 갑자기 미친 것처럼 일제히 하늘로 치솟았다. 물의 정령력이 갑자기 강해지면서 사방에 물난리가 난 것이다.

정말 정령 강화가 되네. 나는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뿌우가 나한테 말했다.

“나도 저거 해줭.”

“알았어. 나중에 미리아한테 부탁해 보자.”

미리아는 힘이 빠진 듯 거의 탈진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쨌든 그것으로 의식은 끝이 났고, 크리드 경은 정령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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