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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74화 (74/250)

로엔의 마나뱅크 74화

황제가 암살된 데 이어 다음 황제의 즉위식 전날 궁중마법사의 암살 시도가 일어났다.

대륙의 질서를 수호하는 덴판 제국이기에 마족의 계약자들이 집요하게 노리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최강의 마법사라는 아론 경이 표적이기 때문에 파문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즉위식은 치러야 했기 때문에 사건 자체는 조사 명목으로 잠시 묻었다. 그러나 수면 아래서는 모든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사건의 추이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음 날, 예정대로 즉위식은 진행되었다.

새롭게 황제가 된 황태자는 칭호로 칼론을 골랐다. 덴판이 왕국일 때 침략자들을 상대로 철저하게 싸워서 나라를 지켜낸 왕의 칭호다.

칼론 2세, 그것은 바로 마족의 계약자들이 제국을 노려도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실제로 칼론 2세는 왕관을 쓰자마자 권위의 홀을 들고 외쳤다.

“내 기필코 선황을 암살하고 황실에 음모의 손길을 뻗친 마족의 계약자를 찾아내 철저하게 응징하겠다!”

복수의 맹세.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경이로운 시선으로 칼론 2세의 선언을 듣고 곧 환호로써 호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것으로 대관식은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

후궁에서 대기 중인 우리에게 황실에서 전갈이 왔다.

이반 경은 서신을 읽은 후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사로잡은 자들의 조사가 끝났다고 하는군요. 아론 경도 겨우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아론 경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거예요. 발데스 스팅이 그렇게 만만한 물건은 아니니까요.”

“그 단검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알지. 그게 내 전생체의 심장을 뚫기 위해 특별주문 한 거잖아. 직접 당해본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 그거 찔리고 산 건 정말 우리가 철저하게 대비했기 때문이라고.

“당연히 먼저 조사를 했지요. 그건 현재 물질계에 있는 무구 중 가장 흉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렌 경의 조사 실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반 경은 살짝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우리가 만든 정보조직은 이반 경이 관리를 하는데, 이번에 내가 엘시아에 대해 조사한 것은 그쪽 라인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반 경은 내가 따로 조사할 수 있는 정보조직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것도 마도가문 안쪽 깊숙하게 박아 넣은 뿌리 깊은 정보조직.

이반 경이 어떻게 생각하든 엘시아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건 정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니까. 하하하.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서신을 계속 읽어갔다.

“우리보고 비밀 회담을 하자고 하네요. 황제가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하는군요.”

“참석해야겠지요?”

“그래요. 그들이 어디까지 조사했는지도 알아봐야 하니 가서 상황에 맞춰 대화를 하죠.”

황제나 아론 경과의 대화는 이반 경이 해야 한다. 우리는 미리 상의를 통해 그들에게 어디까지 정보를 줄 지 하나하나 정한 후 시간에 맞춰 내궁으로 향했다.

*

황제의 집무실에는 이미 칼론 2세와 아론 경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론 경은 아직 거동이 불편한 지 일어서지 않고 손만 들어 아는 척을 했고, 오히려 칼론 2세가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환대했다.

‘황제가 똥줄이 탔군.’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믿고 있었던 아론 경까지 죽을 뻔한 상황이다. 자신이 안 당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심기가 편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는 즉위식에서 대놓고 마족의 계약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정치적인 대의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최고의 퍼포먼스지만 그만큼 위험을 자초한 셈이다.

“어서 오시요. 이반 경, 렌 경.”

“황송합니다.”

이반 경이 정중한 목소리로 황제의 환대에 감사하며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이반 경이 궁중 예절에 대해 완전히 익숙해졌음을 알 수 있다. 적절한 아부를 아끼지 않으면서 이쪽의 위상을 낮추지 않으니 아주 좋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차를 내놓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집무실 안에 남은 것은 칼론 2세와 아론 경, 재상인 브론시 공작, 그리고 이반 경과 나 뿐이다.

“경을 부른 것은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싶기 때문이오.”

칼론 경이 직접 입을 열어 회의를 진행시켰다. 그러자 이반 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그 사이 우리측에서도 나름대로 조사를 진행시켰으니 먼저 여기 렌 경의 보고를 들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 역시 데빌 베인은 움직임이 빠르구려. 한 번 들어봅시다.”

저쪽에서 범인을 다 데려가서 조사를 했는데, 그걸 듣지 않고 이쪽의 정보를 먼저 밝힌다는 것이다.

황제와 아론 경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 놓은 서류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우리 데빌 베인에서는 몇 년 전 텔문 가문의 영역에서 일어난 흑마법사의 의식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수인 다스 서펜티움을 소환하려 하는 의식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뭐라고! 다스 서펜티움이 물질계에 나타났다고?”

아론 경이 놀라 물었다. 칼론 2세는 그게 뭔지 몰랐기에 아론 경을 보며 물었다.

“그 마수가 위험한 존재이오?”

“다스 서펜티움 한 마리면 군대를 상대할 수 있습니다. 폐하.”

“저런.”

나는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설명을 계속했다.

“다행히도 이반 경께서 직접 손을 써서 흑마법사와 다스 서펜티움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 다행이로군. 그놈이 물질계에 적응해서 풀려나왔다면 골치 아플 뻔 했어.”

“문제는 그 정도 의식을 행하는 데 텔문 가문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후 시간을 들여 집중적으로 텔문 가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렇게 된 거군. 그래서 성과가 있었나?”

아론 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가슴에 칼빵을 맞은 사람답게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음이 느껴졌다.

“두 가지 성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텔문 가문이 프리스톤 가문과 선이 닿아 있다는 것.”

“그래, 역시 그렇겠지.”

눈치를 보니 거기까지는 조사했나보군. 범인도 잡고, 흉기도 확보했고, 결계로브가 뚫린 이유까지 알아냈으니 프리스톤 가문이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걸 뒷받침 해주는 증거를 하나 더 댄 셈이다.

적이 확실해지자 아론 경의 눈빛이 더욱 스산해졌다. 정말 연쇄살인마의 눈빛이 저런 게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쯔쯔, 아론 경, 평정심을 잃었네. 진정한 마법사라면 이 상황에서도 태연해야 하는 법인데, 끓어오르는 분노는 가슴속에 묻어두고 때가 되면 마법으로 분출해야지 머리로 감정을 올리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최고의 길만 걸어온 자의 약점인가?

그런데 난 저 정도는 아니었거든. 하긴, 난 대마법사가 된 것을 기뻐하지 않았지. 내 청춘을 잃은 것을 슬퍼했을 뿐이고, 권위와 명예 따위에 집착도 안 했지.

나는 아론 경이 지금의 벽을 뚫고 위로 올라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서 한참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반 경은 나라는 인도자를 만나 착실하게 단계를 높여가고 있다. 어쩌면 그는 정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여 지고의 경지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반 경이 아론 경보다 높은 경지라거나, 강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비교를 해도 소용이 없는데, 내 평가로는 아론 경이 조금 더 강한 면이 있다. 역시 천하를 잡은 가문의 수장답게 나도 감탄할만한 부분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성과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을 하느라 잠시 뜸을 들이자 아론 경이 먼저 물었다. 원래 중요한 것을 나중에 발표하는데 처음 정보가 프리스톤이니 두 번째가 뭔지 정말 궁금할 거다.

“이 정보를 위해 우리 조직의 미스틱 엑스 경께서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프리스톤 가문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 가지 놀라운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스틱 엑스 경이 직접 조사를? 뭔가?”

정보의 중요도와 신뢰도가 팍 올라가지? 나는 아론 경과 칼론 2세, 그리고 옆에서 한 마디도 안 한 채 조용히 듣고 있는 브론시 재상을 한번씩 보고는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미스틱 엑스 경께서는 엘시아 프리스톤 경이 아직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으윽.”

아론 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상처가 난 부분을 움켜잡으며 다시 앉았다. 칼론 2세와 브론시 재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데빌 베인은 엘시아 경이 마족이 계약자라는 결론을 낸 것인가?”

처음으로 브론시 재상이 입을 열어 물었다. 제국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자. 나는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프리스톤 가문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마법재료를 구입하고 있는데, 그 양이 가문의 힘을 넘어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프리스톤 가문의 위세는 점점 떨어지는데, 그래도 마법재료의 수집량은 전혀 줄이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나도 대충 눈치 채고 있었네. 의아하게 생각했지.”

아론 경이 증언하듯 말을 보태고, 나는 고개를 숙여 도움에 감사한다는 표시를 하며 말했다.

“미스틱 엑스 경은 그 재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생명유지와 고위의 은닉결계를 위한 재료임을 깨닫고 몇 년에 걸쳐 재료에 마법을 걸어 준비를 했습니다. 그 결과 프리스톤 가문의 경계망에 틈을 만들 수 있었고, 이번에 우리가 십대가문의 순회를 다닐 때 제대로 내부 조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집념이로군. 확실히 그 정도 준비를 하지 않으면 프리스톤 가문의 내부를 조사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엘시아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그렇게 설명을 했고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마족과의 계약은 100년이라는 기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마 엘시아 경은 100년간 마족과 계약을 유지하다가 기간이 끝나가자 계약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위해 몸을 숨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군. 계약의 기간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지.”

보통 대가라고 하면 계약자의 영혼일 터. 마족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 몸을 감추었다는 것은 말이 된다.

“마족의 계약자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 대륙을 정복하고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입니다. 프리스톤 가문에서는 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제국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 같습니다. 대륙을 정복하면 계약을 완성한 것이 되어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흥, 그들은 거의 성공할 뻔 했지.”

“과연, 그렇다면 그들이 선황을 시해하고 아론 경까지 제거하려 한 게 확실하군.”

칼론 2세도 확신을 얻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의 머리는 선황이 죽은 이유가 경쟁자 제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말로는 대륙 정복 야욕의 희생이라고 하는 거다.

“당장 군대를 출동시켜 프리스톤 가문을 칩시다. 그들이 속한 왕국도 한통속일 가능성이 크니 저항하면 용서하지 않겠소.”

칼론 2세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 거의 선언에 가까운 제의를 했다. 아론 경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야흐로 전쟁이 일어나려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지. 나는 이반 경에게 눈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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