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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73화 (73/250)

로엔의 마나뱅크 73화

8장 죽지 않은 자의 분노

허리가 쑤시다. 크리드 경과의 대전연습이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적당한 곳에 앉아서 쉬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쉴 수가 없다.

아론 경이 이반 경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연회 3일째라 이제는 인사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텔문 가문의 가주가 눈치를 보고 있다.

오늘 저자가 암살을 결행할 것은 이미 정해진 부분이다. 문제는 언제 하느냐다. 그리고 어떻게 접근하는가의 문제다.

그냥 놔둬도 될까? 모른다.

우리의 임무는 아론 경이 죽지 않게 하는 거다. 호신의 목걸이가 있으니 한번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텔문의 가주가 연속해서 공격을 한다면?

그걸 막아야 한다.

또한 주변에서 협조를 하는 자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여섯 명이 텔문의 가주와 접촉을 했다. 전혀 연관을 찾을 수 없는 자들도 셋이나 있었다.

확실히 엘시아는 오래전부터 착실히 자신의 비밀 세력을 키워온 모양이다.

어쨌든 아론 경만큼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불안하다.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텔문의 가주가 어떻게 아론 경을 칼로 찌를 거리까지 접근할지를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엘시아에게 당한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설마 텔문의 가주가 아론 경에게 애정고백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크리드 경은 오늘도 음식 옆에 있다. 우아한 포즈로 상당한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중이다. 그러나 어제와는 눈빛이 다르다. 먹으면서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아까 마차 안에서 스트리밍 에찌 검법서를 반쯤 읽었다. 아마 그 내용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겠지.

위치적으로는 딱 좋다. 음식이 있는 쪽은 크리드 경의 영역이고, 반대편은 내 영역인 셈이다.

쑤시는 허리를 한손으로 살짝 움켜잡은 채 집중해서 사방을 살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텔문의 가주와 접촉했던 자들 중 하나가 텔문의 가주 쪽으로 접근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저자를 이용해서 어떻게 할 거지?

나는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손거울을 소매로 살짝 가린 채 반사된 모습을 보았다.

“어억! 네놈이!”

아, 놀라라.

텔문의 가주의 배에 칼이 꽂혔다. 칼은 그의 몸을 완전히 관통해서 피에 젖은 칼날이 등으로 튀어 나왔다.

찌른 자는 바로 텔문의 가주와 접촉한 자. 놀랍게도 동료에게 칼을 맞은 것이다.

“텔문 소리안,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화르르르, 펑

마법의 화염구가 텔문의 가주의 얼굴에 정통으로 박혀 폭발했다. 머리가 반쯤 탄 텔문의 가주가 허공을 날아 바닥에 쓰러지는 광경에 모든 사람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미, 미친! 근위병!”

신성한 덴판 제국의 황궁에서, 그것도 대관식 전야제에서 암살이라니!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근위기사들이 재빠르게 사람들을 해치며 암살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암살자는 텔문의 가주를 공격한 다음순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검을 꺼내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크윽, 이것으로 여한은 없…다.”

“이런!”

근위기사들은 급히 확인을 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범인이 죽었으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판단이 안 서는 듯 그들은 아론 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땅에 쓰러져 있던 텔문의 가주가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아론 경이 급히 텔문의 가주에게 다가가서 주문을 시전 했다.

“동결, 마비. 소리안 경. 움직이지 말게.”

가슴이 칼에 관통당하고 머리가 불에 타서 절반쯤 사라진 상황이다. 즉사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숨이 붙어있으니 얼른 마법으로 죽지 않게 처치를 해야 했다. 그래야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고, 또 초대 손님이 죽으면 제국의 체면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일이 순식간에 벌어져서 내 반응이 조금 늦었다. 설마 텔문의 가주가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일을 벌일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러니까 텔문의 가주는 아론 경에게 접근한 게 아니다. 아론 경을 접근시킨 것이다.

화염구로 튕겨나가는 위치도 절묘하게 아론 경 근처였다. 반사적으로 그가 마법을 사용하게끔 유도하는 위치를 미리 선정해 놓은 게 틀림없다.

마도가문의 수장쯤 되는 자가 스스로의 죽음을 전제로 일을 꾸미니 확실히 무섭다.

푸욱

“소리안 경?”

아론 체프코트 경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을 찌른 자의 이름을 불렀다.

믿고 있었던 결계의 로브를 뚫고 단검이 몸속을 파고드는 느낌은 고통이라기보다는 신기함이랄까?

내 경험으로 볼 때 그렇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아론 경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다. 이반 경이 즉시 아론 경의 등 뒤로 다가와 마법을 시전 했다.

“상급 재생!”

파스스스스

백마법의 힘이 아론 경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살이 급속도로 재생하며 박혀있던 단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데스 스팅의 기운이 격렬하게 반응을 하며 원래는 마비의 효과를 내던 게 고통의 효과로 바뀌었다.

“끄아아아아아!”

아론 경이 비명을 질렀다. 검은 박힐 때보다 빠질 때 더 아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체면이고 뭐고 따질 여유도 없어 보였다.

“포스 램.”

텔문의 가주가 다시 마법을 썼다. 그가 노린 것은 이반 경이다. 공성용 마법으로 이반 경을 밀어내려 한 것이다. 상대가 방어막을 쳐도 방어막 째로 밀어버릴 수 있는 마법이다.

한손은 밀려나오려는 발데스 스팅을 다시 집어넣으려 필사적으로 힘을 쓰고 있었는데, 남은 한 손으로 저정도 마법을 시전하는 것을 보니 과연 한 가문의 가주다웠다.

그러나 이반 경은 이 상황이 돌발상황이 아닌 예정된 일이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였다. 한발 빠르게 마법을 시전한 이반 경의 몸 주변에 비눗방울과도 같은 기포가 수백 개나 생겨났다.

파파파팡

포스 램의 기운은 작은 비눗방울형 물체를 수십 개나 부수었지만 그걸로 끝이다. 힘이 이반 경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스스슥

다른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한순간이나마 이반 경을 떼어낼 수만 있다면 그들의 음모가 성공한다고 믿었기에 주저 없이 손을 쓰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내가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발 먼저 마법을 완성시켰다.

“그리스!”

미끈

“어억!”

바닥을 미끄럽게 해서 밟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마법.

가장 간단한 1서클 마법이지만 이걸 멀티로 동시에 몇 군데나 깔 수 있는 마법을 개발했다. 2개를 깔려면 3서클이고, 3개는 5서클이다.

그것도 미리 정해진 위치가 아닌 저들이 움직이는 발밑에 정확히 깔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아니면 한번에 3명을 동시에 미끄러지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정도 되니까 멀티 타겟팅이 되는 거다.

두 명은 크리드 경의 영역에 위치했다.

“크리드 경!”

“염려 말게.”

퍼퍽

부드러운 슈크림 쿠키가 사람 몸에 박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크리드 경은 마침 들고 있던 디저트 용 과자를 던졌고, 그게 사람 등에 박혔다. 나름 마법이 걸린 방어용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도 뚫렸다.

저게 바로 마나 주입의 위력이라는 거군. 과자에 마나를 주입해서 경화할 정도라면 크리드 경의 수준은 내 예상보다 높다.

대단한데!

나는 감탄을 하며 몸을 날려 마지막 한 사람의 허리에 태클을 걸었다.

“놔라!”

상대는 급한 김에 소매 속에 숨겼던 마법의 크로스보우를 나에게 쐈다. 이반 경의 머리를 향해 날리려 했던 모양인데 나에게 방해를 받자 내 어깨에 대고 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입고 있는 로브는 강식장갑 로브. 물리력에 대해서 기사의 전신갑옷보다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한다. 손가락 마디 굵기의 철판에 강화 마법을 건 수준일까? 자이언트의 일격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니 크로스보우의 쿼럴도 이걸 뚫을 수는 없다.

“이익!”

정교한 크로스보우다. 한 번에 두 발까지 쏠 수 있게 되어있는 구조다. 그자는 바로 조준을 내 머리로 바꾸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사이에 내 손은 놀고 있을까?

내 주먹이 상대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참고로 난 오늘도 자이언트 벨트를 차고 있다. 거인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리다.

살짝 힘조절은 해서 머리통이 터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안면이 움푹 들어가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다른 자들은 근위기사들이 잡아 누르고 있었다. 처음 화염구를 터뜨린 자가 즉사한 상황에서 살아있는 용의자가 나왔으니 얼마나 기쁠까?

주변이 정리되는 듯하자 나는 다시 아론 경을 보았다.

그 사이에도 발데스 스팅에 걸린 마법은 작동을 했다.

아론 경의 육체는 마법으로 조종당해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데빌 베인 놈들, 배신을! 나와 함께 황제를 암.”

“입을 다물고 상처 치료에 집중하시오. 아론 경.”

이반 경은 발로 텔문의 가주를 차면서 아론 경과 함께 물러났다. 딱 적당한 시점이었고, 발데스 스팅은 그 여파로 아론 경의 몸에서 완전히 빠져 버렸다.

빠진 발데스 스팅의 검날에는 전에 내가 아론 경에게 선물한 호신의 목걸이가 감겨 있었다. 토끼의 꼬리처럼 생긴 하얀 털이 검날을 휘어 감아서 몸속에 깊이 박히는 것을 막아준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숨에 심장까지 파고들었을 것이다.

사실 웬만한 무기라면 아예 살에 닿지도 못했을 텐데, 발데스 스팅 정도 되는 무기니까 완벽히 막을 수는 없었나 보다.

아론 경은 단검이 빠져나가자 육체 조종의 효과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에 상황인식을 못 했다.

이반 경은 차분하게 백마법을 사용해 아론 경을 치료했고, 그 사이 나는 텔문의 가주를 넘겨받아 죽지 않도록 처치를 하는 한 편 몸속을 뒤졌다.

별 것은 없었다. 얼굴까지 까맣게 타서 지금은 이자가 정말 텔문의 가주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텔문의 가주는 살았다. 본인에게는 그냥 죽는 게 더 좋았을 테지만, 죽일 수는 없다.

아론 경 휘하의 마법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다른 자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그들 자신이 아론 경을 돌보고 싶었지만 이반 경이 기세를 올려 마나의 파동을 팍팍 뿜어대고 있으니 감히 접근을 하지도 못했다.

잠시 후, 아론 경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휴우, 이제 괜찮네.”

“마기가 몸속에 침투했으니 잠시 이대로 정화를 계속하겠습니다. 아론 경은 상황을 정리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아론 경은 이반 경에게 몸을 맡기고 주변에 있는 자신의 수하 마법사들에게 수습에 대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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