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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70화 (70/250)

로엔의 마나뱅크 70화

7장 음모와 음모

아론 경과의 면회는 신청하자마자 이루어졌다. 물론 내가 아닌 이반 경이 만나는 거다. 나는 그냥 옆에 조용히 앉아 있고.

“무슨 일인가? 혹시 필요한 것이 있나?”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에는 기세 싸움 때문에 딱딱한 어투만을 사용했지만, 황궁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금 친밀해졌다. 이제는 사석에서만큼은 나이가 많은 아론 경이 살짝 말을 놓고, 이반 경은 연장자에 대한 대우로 존대를 하기로 한 상황이다.

“그건 아니고, 이걸 드리려고 합니다.”

이반 경은 긴 말 하지 않고 처음부터 본론에 들어갔다. 그가 내민 물건은 작은 털뭉치였다. 토끼의 꼬리털 같은 느낌이랄까?

“이게 뭔가?”

“호신의 목걸이 입니다. 몸을 보호해 주는 물건이지요.”

“흠, 실제로 효용이 있나?”

“있습니다. 한 번은 확실하게 위험에서 보호해 줄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물건이로군.”

아론 경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다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듯이 세상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방비할 수 있다고 하면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사실은 내가 그런 소리를 들어도 안 믿을 거다.

그러나 나는 안 믿어도 남은 믿게 하는 게 마법사라는 존재다.

이반 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백마법에 능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미스틱 액스 경은 인공 자아 생성과 공간 왜곡 쪽에 능하지요.”

“으음, 인공 자아 생성이라니, 대단하군.”

아론 경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인공 자아 생성은 정말 고위의 영역이다. 이것은 미스틱 액스라는 존재가 8서클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공간 왜곡도 그렇다. 마법 중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 중 하나인 만큼 그 활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고 평가되어 진다.

이반 경의 특기인 백마법만 해도 보통 마법사는 고위의 수준에 도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영역인 만큼 우리 데빌 베인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숨에 아론 경에게 말해준 셈이다.

놀라는 아론 경의 반응을 보며 이반 경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 호신의 목걸이는 미스틱 액스 경이 기본형을 만들고, 제가 다시 마법진으로 9서클 보호 마법을 주입한 것입니다. 지금 딱 3개 제조했는데, 미스틱 액스 경과 제가 하나씩 소유하고 나머지 하나만 남은 것입니다.”

이반 경은 자신이 목에 걸고 있는 호신의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그걸 보고 아론 경의 안색이 확 폈다. 이반 경은 성격상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안다.

당대에 8서클 마법사 둘이 합작으로 마법진까지 써서 만들었다면 그 효능은 어느 정도 인정해 줄만 하다. 믿기 어렵지만 정말 위험에서 한 번은 구해준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귀한 것을 본인에게 주다니, 이거 정말 고맙군.”

참 감사의 인사도 딱딱하게 하네. 좋은 걸 줬는데 웃지도 않네.

오히려 이반 경이 살짝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한 후에 말했다.

“마족의 후계자는 하나같이 강해서 제가 직접 상대할 때에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이 두려워 할 만 한 사람은 현재 몇 명 안 된다는 뜻이지요.”

“그렇군. 무슨 의미인지 알겠네.”

마족의 계약자가 일을 벌이기 전에 그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자를 미리 제거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 못한다.

사실 아론 경도 충분히 방비를 하고 있는데, 이처럼 이반 경이 직접 말을 하면서 호신의 목걸이를 건네니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이거 내가 따로 분석해 봐도 되는가?”

“그렇게 하십시오. 만약 체프코트 가문이 이것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의 안전을 위해 대단히 좋은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허락해 줘서 고맙네.”

“다 대의를 위한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쪽에서 열과 성의를 다 해 만든 아티팩트를 선물로 주는데다가 그걸 분석하는 것까지 허락해주니 기분이 안 좋을 수 없다.

아론 경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는데, 아마 이 사람은 저게 최고로 크게 웃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우리는 데빌 베인의 조사 시스템과 마족의 계약자들을 찾아냈을 때 10대 마도가문이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할지에 대한 몇 가지 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름 중요한 내용이었지만 일단 오늘의 목적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이 아닌 아론 경 목에 호신의 목걸이를 걸게 하는 거였기 때문에 적당한 시간에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자 이반 경이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렌 경, 이 목걸이가 정말 어떤 위기에서든 한 번은 구해줍니까?”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론 경의 목숨은 구해줄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아론 경이 저것을 분석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걸 분석하려면 그냥은 안 되고 마법진을 설치해서 9서클 절대분석마법을 써야 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 바쁜 상황에 아론 경이 마법진 설치까지 할 여유가 있을까요? 적어도 즉위식이 끝날 때까지는 그냥 있을 거예요.”

“과연 그렇군요.”

“그리고 정말 저걸 분석해도 이반 경이 말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온다고 뜰 겁니다.”

“정말 그런 효능이 있다는 겁니까?”

“조금 달라요. 그런 효능이 있다고 뜨는 건데, 정확하게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시군요.”

“그러니까 저건 우리가 최대한 열심히 만든 게 맞잖아요. 9서클 백마법의 보호마법도 걸려있고.”

“그렇습니다만.”

“사실 9서클 보호마법이면 웬만한 건 다 튕겨요. 거기에 제가 이것저것 빠지는 부분을 첨가시켜 놔서 정말 대부분의 위험에서 구해줄 수 있게 된 거고요.”

“네.”

“모든 위험에서 구해준다고는 안 뜨겠지만, 대부분의 위험에서 구해준다고 뜰 거예요. 이반 경은 분명히 모든 위험이라고는 안 했어요. 그냥 위험에서 구해준다고 했고요. 분석해도 대충 인정받을 수준은 된다는 의미죠.”

“아하, 그렇군요.”

“사실 어차피 일회용이라 이 정도까지 좋은 아티팩트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고위 마법사라서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으니 최선을 다 한 거죠.”

“렌 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호신의 목걸이는 정말 훌륭한 아티팩트가 맞지요.”

이반 경은 자부심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호신의 목걸이에 실린 힘의 대부분은 이반 경의 백마법이다.

핵은 미리아가 엘프의 숲에 가기 전에 그녀의 피를 몇 방울 받아서 보석에 적신 것을 사용했다. 성녀의 피가 의외로 강력한 재료라는 것을 알고 나중을 위해 몇 개 만들어 놓은 건데 이번에 제대로 사용하게 된 셈이다.

하얀색 털은 렉스의 잔털을 마법적으로 처리한 것인데, 붉은 색에 신성력이 주입되자 하얗게 변하면서 마기를 밀어내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거기에 내가 마법진으로 7서클 마법 3개를 더 주입시켰는데, 이정도면 정말 일급 아티팩트라 할 만 하다. 궁극마법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재료도 재료고, 마법을 전부 4가지나 넣을 수 있는 것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못 할 거다.

“어쨌든 아론 경은 호신의 목걸이가 꼭 필요해요. 그게 그의 유일한 약점을 보완해 줄 테니까요.”

“아론 경에게 약점이 있다니 믿기 어렵군요.”

“엘시아 측에서 이미 오래전에 함정을 팠어요. 저는 그동안 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알면서도 방관했는데, 이제는 그를 보호해야 하거든요.”

“엘시아 경의 함정이라면 무시무시하겠군요.”

이반 경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즉위식 전후 3일씩 축제가 계속된다. 그러니까 모두 7일간 제국 전체가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다.

첫 3일간 아직 황제가 되지 못한 황태자는 연회에 나오지 않는다. 황태자는 내궁 쪽에서 제국 특유의 비밀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여기에 참관할 수 있는 외부인은 황태자의 스승인 셀만 제국재상뿐이다.

아론 체프코트 경도 의식에 참가하지 못하는데 대신 연회를 주관하는 두 사람 중 하나가 된다.

10대 마도가문쪽 사람들을 비롯해 참가한 마도사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궁중 마법사 아론 경은 잠시도 쉴 수 없다.

우리도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흥세력이기 때문에 무척 바빴다. 이반 경은 이렇게 사람 많은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참으면서 한 명 한 명 인사를 받았다.

분명히 엘시아측 암살자가 움직이는 것은 즉위식 전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꼭 그날 일이 터진다고 장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연회 중에 암살을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하객 중 한명이 암살자일 것이다. 그런데 아론 체프코트 경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꽤 신분이 높은 마도사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을 모두 찾아내서 면밀히 감시했다. 적어도 암살자는 발데스 스팅을 소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것은 마기를 뿜어내니 나와 이반 경은 찾을 수 있다.

“찾았습니다.”

이반 경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못 봤는데 그가 봤다면 내 뒤에 있다는 소리군.

나는 천천히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과연 한쪽 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남자의 가슴속에서 검은 오러를 뿜어내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저자는 누구지요?”

“텔문 가문의 가주군요.”

“아하, 그 텔문 가문 말이군요.”

우리가 미리아와 만나기 전 발견한 흑마법사와 마수 서피의 출현 장소는 텔문 가문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텔문 가문을 조사한 결과 프리스톤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는데, 그래도 설마 잘 나가는 마도가문의 가주가 직접 암살자로 올 줄은 몰랐다.

“텔문 가문의 사람들의 행적을 조사해야겠군요.”

내가 말하자 이반 경도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한쪽으로 갔다. 하인으로 분장한 채 대기하고 있던 데빌 베인의 조사원 한 명에게 내 명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태연하게 연회를 즐겼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추파를 던지는 아가씨들에게 눈길도 가지 않았다. 어차피 어린 소녀들에게는 관심도 없지만 진짜 지금은 나름 긴장했다.

나는 텔문 가문의 가주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기억했다. 지금부터 주시를 해 놔야 나중에 조사하기 편하다.

그래도 첫날부터 흉수를 찾아서 다행이다. 이자가 도주를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미리 대비를 한다면 돌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렌 경, 여기 계셨군요.”

“세리아 공주님.”

내 미래의 혼약자인 세리아 공주가 아름다운 녹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내궁에서 행하는 의식에 참가했을 텐데 끝났나보다.

“휴, 계속 서 있었더니 피곤하네요. 옆에 있어도 되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서 계시는 것보다 다음 곡에 어떻습니까?”

“댄스를 즐기시는군요. 좋아요.”

세리아 공주는 내가 댄스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몰라서 지금까지 참았던 모양이다. 원래 젊은 마법사는 궁중의 사교댄스까지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까.

하지만 난 뿌우에게 격하게 수련을 받았단 말이지. 다시 한 번 연습의 성과를 보여주지.

세리아 공주와 내가 손을 잡고 사람들 앞으로 나가자, 연주를 하던 지휘자가 눈치 빠르게 춤곡을 바꾸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비켜주는 사람들에게 살짝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회의 첫 날은 즐겁게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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