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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61화 (61/250)

로엔의 마나뱅크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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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제가 직접 지원을 약속하고 공주를 보냈는데 인사도 안 할 수는 없다. 라고 우리는 아론 체프코트 경에게 말했고, 아론 경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덴판 제국의 황성에 가서 황제를 알현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었다.

현 황제인 콜레스 2세는 일 년에 단 한 번 황제탄신일에 대륙의 실세들을 초대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외부인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이반 경과 나를 정식 초대해서 연회를 베풀기로 했다.

그만큼 마족의 계약자를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겉으로 보기에 표면 상 대륙 최고의 권력자인 황제가 대륙 정복을 노리는 자들을 제거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체프코트 가문이 마족과 관계가 없다면 덴판 제국의 황성에 마족의 계약자가 있을 가능성은 아주 크다.

이반 경과 나는 우선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황성에서 공격당해도 어떻게든 탈출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정말 재수 없으면 이상한 죄를 뒤집어쓰고 제국의 적으로 지정될 수 있고, 그러면 마족과 관계없는 일반 기사와 병사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런데 혹시 콜레스 2세 본인이 계약자면 어떻게 합니까?”

이반 경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황제가 마족의 계약자라…불가능 한 건 아니지. 그럼 아주 미치는 건데 말이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건 암살 밖에는 답이 없네요. 어차피 황제가 마족의 계약자라는 것을 밝혀도 제국 입장에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요.”

“마족의 계약자를 암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무엇보다 황궁 내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골치 아프니 그건 일단 확인이 된 다음에 생각하기로 해요. 만약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비장의 수법을 쓸 테니까요.”

비장의 수법이 뭐냐고? 난 이반 경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무시했다.

사실 별 건 아니다. 그냥 뿌우의 집을 폭파시키는 건데 이걸 말로 꺼냈다간 뿌우가 알고 난리를 칠 테니까.

그동안 난 엘레멘탈 마정석에 마나를 주입해서 폭발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이거 제대로 터뜨리면 아마 황궁의 절반 정도는 날려 버릴 수 있을 거다.

그 뒤에는 난 완전히 삐뚤어진 정령을 달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테지만 진짜 황제가 계약자라면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할 거다.

나는 속으로 마음의 각오를 다지는 한 편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냥 황궁의 내시 중 한명이라던가, 고위 귀족 정도까지라면 어떻게든 될 테니 그 수준으로 끝나면 좋겠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대의 존재를 눈치 챘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반 경과 그 점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치밀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덴판 제국의 황성에 도착했다.

과연 제국의 황성은 변방의 소국인 우리 왕국과는 비교할 수 없게 컸다. 내가 전생에 활동하던 때에도 이정도로 크고 화려한 황성은 없었다.

내가 듣기로는 원래 덴판 제국의 황성이 이 정도까지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콜레스 2세가 즉위한 후, 지속적인 영토 확장 정책을 펼쳐 역대 최고의 성세를 누리게 된 후, 대대적으로 증축 공사를 했다고 한다.

“너무 화려해서 적응이 안 되는군요.”

이반 경의 짧은 소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이정도 화려하고 넓은 궁에는 별로 적응이 안 된다. 이런 곳에서는 주위가 산만해서 마법 수련의 효율도 나빠질 것 같다. 오히려 어느 정도 지저분하고 조금 좁은 듯 한 곳이 연구에 집중하기에 좋다.

아론 경은 어느 새 황궁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붉은 색의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건 다름 아닌 결계로브였다.

최강의 방어구 결계로브. 내가 입고 있는 강식장갑로브보다 훨씬 뛰어난 아티팩트다.

세상에 결계로브는 딱 한 벌 존재한다. 바로 내가 제작해서 입고 있던 것으로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내가 몰라볼 리가 없다.

‘저게 제국 궁중 마법사의 로브가 되어 있었군.’

나는 잠시 과거의 회상에 잠겨 멍하니 로브를 구경했다.

이반 경도 아론 경의 로브가 특별한 것임을 알아보고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로브군요. 내가 평생 본 아티팩트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 같소.”

“하하하, 역시 이반 경의 안목은 뛰어나군. 이게 바로 전설의 대마법사 로렌 프로시안 경이 입던 결계로브라네. 30년 전 로엔 경의 유일한 제자이신 엘시아 프리스톤 경이 돌아가실 때, 그녀의 유언으로 제국 궁중 마법사의 로브로 진상되었지.”

“과연 이게 전설의 결계로브로군요. 어떤 공격도 결계로브를 뚫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확실히 내가 아는 어떤 수단으로도 결계로브를 뚫을 수 없더군.”

아론 경이 진심으로 자랑하는 어투로 말했다. 좋긴 좋나 보다. 저걸 입고 싸우면 이반 경하고 붙어도 절대 이길 자신이 있겠지. 심지어 8서클 마도사 둘과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고.

그런데 말이지. 그런 식으로 자만하다가 내가 칼 맞고 죽었거든. 세상에 절대무적은 없더라고.

어! 생각해보니 저게 내 로브가 맞는다면 심장 부위에 구멍이 뚫린 거잖아.

문득 깨닫는 게 있었다. 내가 칼을 맞은 자리는 결계가 깨어졌을 테니 확실히 틈이 벌어졌을 거다. 엘시아가 어떻게든 막았다고 해도 기존의 방어력에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일 터.

후후훗, 아론 경. 님이 가장 자신하는 최강의 로브가 오히려 경의 약점이 되었네요. 완벽하지 못한 결계를 믿고 방심하면 오히려 맨몸으로 싸우는 것보다 안 좋은 법인데. 쯔쯔.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나 이외에는 엘시아의 후계자 정도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왜 엘시아가 죽으면서 결계로브를 덴판 제국에 바쳤는지 알겠군.

엘시아는 이것을 아론 경이 입을 거라 판단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프리스톤 가문이 아론 경을 제거할 수 있게 음모를 꾸민 것이다.

최강의 로브라는 함정에 뚫린 작은 구멍 하나가 얼마나 흉악한 함정인지 조금만 상상해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프리스톤 가문은 언제든지 아론 경의 심장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자기 로브는 자기가 만들어 입어야 돼.’

나는 똑똑한 척은 다 하고 사실은 자기 목숨까지 호구 잡힌 아론 경에게 애도의 염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드디어 황제의 대전에 도착했다.

우리가 조금 늦은 편인지 이미 수많은 귀족들이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 있었는데 아론 경이 나타나자 모두 대화를 멈추고 아론 경에게 인사를 했다.

공식적으로 제국의 서열 2위, 그러니까 황제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지위인 아론 경은 여유 있게 인사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우리의 자리는 아론 경의 바로 옆에 배치되어 있어서 다른 귀족들보다 오히려 황제에 가까운 자리였다. 우리는 아론 경 옆에 앉아서 다가오는 귀족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다. 이반 경은 거의 관심이 없는 듯 형식적으로 고개만 까닥했지만 나는 냉정한 눈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폈다.

그러나 마기를 지닌 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황궁 내에서 마기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어서 혹시 우리가 헛다리 집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흉수가 있다면 황궁 내부에 사는 자, 그러니까 내시나 후궁 중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경우 우리가 그곳까지 침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일반 왕궁이라면 몰라도 체프코트 가문이나 이곳 덴판 황궁에서는 뿌우를 이용한 탐색이 전혀 소용이 없다. 정령에 대한 경계까지 꼼꼼히 설치되어 있어서 함부로 뿌우를 움직이게 했다가는 난리가 날 수 있다.

캉~

“황제 폐하 드십니다.”

징이 울리고 선고관이 외치는 소리에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정렬했다. 역시 황제답게 가장 늦게 나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황제보다 늦게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큰 결례인데, 콜레스 2세는 황제의 덕을 보이기 위해 충분히 나중에 참석을 한다고 했다.

먼저 근위기사가 백여 명 정도 나열하고, 마법사도 10명 정도 더 나온 후 드디어 황제가 나왔다. 미리 후궁 쪽에 들어갔던 세리아 공주와 황후를 대동하고 나타난 콜레스 2세는 귀족들이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는 것을 가볍게 손을 들어 중지시키며 옥좌에 앉았다.

사람 머리 두 개 만한 왕관을 쓰고 황금색의 망토를 전신에 두른 황제는 깡마른 체형의 노인이었는데 두 눈만은 빛이 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해보였다. 전신에서 위엄이 철철 넘쳐흐르는 게 아론 경이 오히려 겸손해 보일 정도였다.

현재 콜레스 2세의 나이는 83세, 19세에 즉위한 후 60년이 넘은 세월동안 대륙을 호령한 셈이다.

우리는 곧 콜레스 2세의 부름을 받았다. 황제는 우리를 앞으로 부른 후 다른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최근에 대륙 전체에 명성을 떨친 데빌 베인의 이반 경과 렌 경이다. 이번에 짐은 렌 경에게 가장 아끼는 딸 세리아를 보내기로 했으니 모두 축하해 주기 바라네.”

“대륙의 평화를 위한 폐하의 노력은 만대에 걸쳐 칭송받을 것입니다.”

아론 경, 이제 보니 아부도 잘 하네.

우리는 아론 경이 한 말을 반복해 따라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나 허리를 굽히면서 살짝 고개를 돌려 이반 경과 시선을 교환했다. 미리 준비한 사인이다.

우려했던 사태대로다. 황제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그가 마족의 계약자라는 것을 거의 확실하게 알려준다.

미치겠네. 정말 뿌우의 집을 털어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쨌든 이 자리에서 폭탄 테러를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콜레스 2세의 내심 눈치를 보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다.

그리고 곧 정식으로 무도회가 시작되고, 황제가 나를 손짓으로 불러 세리아 공주의 손을 쥐어줌으로써 첫 곡을 나와 세리스 공주가 추게 되었다.

세리아 공주는 당연히 춤도 잘 추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전생에 쌓아온 경험이 있기에 그녀의 발을 밟지는 않고 부드럽게 리드할 수 있었다.

세리아 공주의 안색에 살짝 안도의 기색이 떠올랐다. 눈치를 보니 그녀는 사교댄스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능숙하게 상대를 해 주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연회장을 한 바퀴쯤 돌았을 때 세리아 공주는 내 가슴에 고개를 살짝 기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바마마가 선물로 아티팩트 하나를 내리시겠다고 하셨는데 렌 경은 무엇을 원하나요? 지팡이나 로브는 상당한 마법무구인 것 같으니 따로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아바마마께 간청해 볼게요.”

오호, 나름 혼약 예물도 주는 건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공주와 같이 지닐 수 있게 한 쌍으로 된 것이면 좋겠군요.”

“어머, 전 렌 경이 마법에 도움이 되는 아티팩트를 요구할 거라 생각했는데…….”

감동했어요? 미안해요. 뿌우의 메뉴얼에 그렇게 대답하라고 적혀 있었어요. 상대가 선물을 준다고 하면 커플로 낄 수 있는 것을 요구하라고요.

메뉴얼의 효과는 유치하지만 컸다. 세리아 공주는 내가 보기보다 낭만적인 로맨티스트라고 속삭이며 상당히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세리아 공주가 그럴수록 난 속으로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난 지금부터 무슨 수를 써서든 황제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세리아 공주는 황제의 딸이다. 그러니까 난 그녀와 철천지원수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거다.

설령 세리아 공주가 그 사실을 몰라도 내가 그걸 숨기고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불안해서라도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하지?

황제를 제거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걱정이 되는 건 내 성격 탓일까? 이건 정말 답이 안 나온다.

그러나 내 고민을 알 리 없는 세리아 공주는 음악에 몸을 맡기며 나와의 춤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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