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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60화 (60/250)

로엔의 마나뱅크 60화

4장 탐욕의 제왕

원래는 프리스톤 가문을 조사하러 가는 것이 십대 가문 순회의 목적이었지만 세리아 공주를 만난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적이 먼저 수작을 걸어 온 이상 나는 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찾아내 결판을 내야 한다.

이반 경은 나에게 이야기를 듣고서야 세리아 공주의 몸 안에 숨겨진 마기를 눈치 챘다. 그는 여자를 이용해 표적에게 마인을 낳게 하는 극악한 음모에 이를 갈며 말했다.

“제가 9서클 마법진을 설치하겠습니다. 9서클의 궁극정화마법이라면 세리아 공주에게 심어진 마기의 씨앗을 제거할 수 있을 겁니다.”

“잠시만요. 분명히 9서클 백마법이라면 충분히 정화를 할 테지만 그 경우 적이 알아차리게 되요.”

내가 보이게 세리아 공주에게 심어진 마기는 단순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살아서 움직이는 듯 했고, 내 예상이 맞는다면 숙주의 몸의 일부분이 변해서 된 것이다.

제거되는 순간 숙주도 알아차리게 된다.

“렌 경의 말씀이 맞겠지만 꾸물거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의 몸속에 심어진 마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빼내거나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알아요. 하지만 그 점이라면 처리할 방법이 있습니다.”

“정화를 안 하고 처리할 수 있다고요?”

“예, 마기 주변에 결계를 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반 경은 세리아 공주의 몸속에 백마법의 기운을 흘려 넣어 채우고, 전 그것을 하나의 주머니처럼 만들어 고정시키는 거지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이반 경은 놀랍다는 듯 물었다. 마나의 형태를 고정시키다니? 아마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그건 의외로 간단해요. 우리 심장에 있는 마법의 서클도 일종의 형태가 고정된 마나잖아요. 그걸 심장 주변이 아니라 세리아 공주의 마기 주변에 치는 겁니다. 그리고 살짝 모양을 조정해서 완전히 마기를 감싸게 만드는 거지요.”

나는 조금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이것으로 공주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모를 꾸민 마족의 계약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가 있다.

이반 경은 내 설명을 듣고 과연 그런 수가 있구나 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이치는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하는 건지 보고 싶군요.”

“예, 지켜보세요.”

내친 김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리아 공주에게 갔다.

세리아 공주는 한 밤중에 나와 이반 경이 찾아오자 자다 깨어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무례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살짝 내밀고 있었지만 이반 경까지 온 것을 보고는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별 말 하지 않았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세리아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 낮에도 이야기 했지만 데빌 베인이 상대하는 것은 마족의 계약자들. 사악한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지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다시 주의를 주자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방비를 하자는 거지요.”

“방비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여기 계시는 이반 경은 8서클 마도사이고 특히 백마법을 전문적으로 수련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데빌 베인에 들어오신 공주께 백마법 결계를 심어 드리려 합니다.”

“백마법 결계요?”

“사악한 저주와 현혹마법, 그리고 마기로부터 몸과 정신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마법입니다. 한 번 심으면 십년 정도 가는데 몸에 해가 되는 것은 없고 이로운 점은 많습니다. 가령 노화를 방지하고 젊음을 유지시켜 피부를 좋게 한다던가, 잔병이 사라지고 추위와 더위도 덜 타게 되지요.”

“어머, 그런 좋은 마법이 있다면 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네요. 특히 아바마마께 걸어드리면 크게 기뻐하실 거예요.”

“이게 9서클 마법이라 시간과 노력이 장난 아니게 듭니다. 그리고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면 황제 폐하 뿐 아니라 각국의 실력자들과 십대마도가문의 가주를 비롯해 장로들까지 모두 받으려 할 겁니다. 그래서 이반 경께서는 이 마법을 비밀로 하고, 오직 데빌 베인의 가입자에게만 걸어주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 그건 그렇겠군요.”

“예, 그래서 공주께서는 이 마법에 대해 대외적인 비밀을 유지해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비밀로 할게요.”

“그럼 그 약속을 증표로 마법을 걸겠습니다. 공주께서 약속을 깨시면 마법도 사라지고 이반 경과 제가 즉시 알게 되니 명심해 주십시오.”

나는 적당히 당근과 채찍을 써서 세리아 공주가 의심 없이 백마법 결계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공주는 자신에게 9서클 보호마법을 걸어준다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듯 순순히 침대에 누워 이반 경이 주변에 마법진을 그리도록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사방에 놓인 커다란 보석과 각종 희귀 마법 시약들을 보며 놀란 눈으로 일어나 말했다.

“9서클 마법진은 처음 보는데, 정말 말로만 듣던 것처럼 대단히 많은 재물이 필요하군요. 저 보석들은 재활용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요. 한 번 쓰면 재가 되어 버립니다. 보석뿐 아니라 마법 시약 역시 일회용이라 9서클 마법은 쉽게 사용할 수가 없지요.”

나는 이반 경을 대신해서 설명했다. 이렇게 마법진을 쓸 필요 없이 그냥 9서클 대마법사가 되면 거의 공짜로 쓸 수 있지만 8서클은 부족한 부분을 재물로 메꿔야 한다.

공주는 새삼 감동한 표정으로 반듯하게 경건한 자세로 누워 살짝 눈을 감았다. 괜히 일어나서 움직이다가 9서클 마법이 잘못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사실 데빌 베인의 회원 전원에게 9서클 마법을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세리아 공주도 대충 눈치는 챘을 것이다. 이것이 특별한 조치라는 것을. 하지만 세리아 공주는 자신이 제국의 공주이고 또 나의 혼약자라 특별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할 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속에 마기가 심어져 앞으로 낳을 아기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세리아 공주가 그것을 눈치 채면 곤란하다. 적어도 우리가 상대를 찾아내 반격을 할 때까지는 태연하게 지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공주가 그것을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공주에게 마기를 심은 자는 결코 외인이 아니다.

아마 그녀에게 있어 남이 아닌 가족이나 그 정도 친밀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싸움이 벌어지면 알게 될 수밖에 없지만 그때 세리아 공주가 받을 충격은 결코 작지 않으리라.

‘어쩔 수 없지.’

나는 어설픈 동정을 버리고 냉정한 마음으로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일단 마법진이 발동되자 세리아 공주는 마나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듯 기절해 버렸다.

그 후 나는 공주의 아랫배에 손바닥을 대고 서서히 마나의 흐름을 조절했다. 이반 경은 옆에서 투시 마법을 사용한 채 내가 마나를 조종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이것은 서클의 영역이 아니다. 세밀함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 정도 세밀함은 9서클을 쓸 수 있는 자만 얻을 수 있다.

이반 경은 지금의 자신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교한 마나의 조종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마법사를 단련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다.

어떤 영역을 개척하든 경지에 도달하면 이 정도는 하게 될 거라는 수준을 보여 준 것이다.

“신의 영역인가.”

이반 경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탄하는 중이군. 암, 보기만 해도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는 예술적인 마나조종 솜씨지?

이반 경도 할 수 있으니 죽어라고 노력해 보라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드디어 백마법의 띠가 완전히 퍼져 막으로 변했고, 다시 그 막이 공처럼 틈새 없이 이어져 마기를 완전히 감싸 버렸다. 그러면서도 마기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니 이제 세리아 공주는 내가 말한 대로 좋은 효능을 얻음과 동시에 마기의 오염으로부터 보호받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리아 공주가 신음성과 함께 깨어났다. 세리아 공주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것에 놀랐고,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할 정도로 몸에 힘이 없는 것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침대 옆에 걸터앉아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세리아 공주의 어깨를 살짝 눌러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상당한 양의 백마법이 공주의 몸속에 흘러들어갔으니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그대로 주무세요. 내일 눈을 뜨면 아마 개운할 겁니다. 그리고 뱃속에서 뜨끈한 기운이 있는 것은 며칠 갈 건데 백마법이 완전히 몸에 녹아 들어갈 때까지는 참으세요.”

공주는 대답할 힘도 없는지 눈을 두어 번 깜박해서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나는 이불로 그녀의 몸을 살짝 덮어주고는 방에서 나왔다.

*

“언제라도 마족의 후계자와 싸울 준비를 해 두세요. 생각보다 빨리 한 명을 찾을 수 있겠네요.”

“미리아를 부를까요?”

“아직은 엘프의 숲에서 지내게 놔 두세요.”

나는 이번 싸움에는 미리아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다. 사실 성녀인 미리아의 힘은 꽤 큰 도움이 되지만 모처럼 엘프의 숲에 들어간 미리아를 바로 불러내기 보다는 그녀가 엘프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아 제대로 성장하도록 여유를 주고 싶었다.

마녀의 숲에서 나왔을 때, 미리아는 그녀의 어머니 카이스난의 뜻대로 엘프를 찾아갔다. 이반 경이 엘프의 숲 경계선까지 미리아를 보호해 줬고, 경계선부터는 땅의 정령을 달려 보내 엘프가 나타나 미리아를 데려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고대의 관습에 의해 엘프는 성녀만큼은 자신들의 내부로 들어오게 허락한다. 그리고 성녀가 요청하면 가능한 한 도움을 주는데 나는 미리아에게 엘프로부터 다섯 번 째 정령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오라고 조언했다.

엘프만이 다루고 소환할 수 있다는 다섯 번째 정령은 생명의 정령이라고도 하고 나무의 정령이라고도 하는데, 인간은 지수화풍의 사대 정령만 소환할 수 있지만 미리아의 경우 엘프의 제오 정령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건 정말 대박인데, 내가 그런 미리아와 함께 협동마법을 쓴다면 기존에 없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생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중에서 못 이룬 게 몇 개 있는데 그 중 가장 절실했던 것은 청춘을 즐기는 거였다면 마법사로써 하고 싶었던 것은 다섯 번째 정령을 이용한 새로운 9서클 마법의 창조였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하고 싶었던 것은 다 해야지. 여유와 기회가 허락하는 한 말이야.

그것을 위해서 이번 전투는 미리아 없이 간다. 아직 나에게는 이반 경과 렉스, 그리고 서피가 있으니까 말이야.

자, 그럼 사전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내일부터 흉수를 찾아보자. 적은 바로 덴판의 황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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