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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51화 (51/250)

로엔의 마나뱅크 51화

로엔의 마나뱅크 3권 가문의 번영 편

1장 데빌 베인

“방패다. 방패로 막는 게 먼저고, 창은 적이 멈춘 후에 찌른다.”

“하나! 둘! 하나! 둘!”

가문의 울타리 밖으로 양아버지 몰던의 목소리가 들린다. 병사들을 조련하고 있나보네.

난 드디어 돌아왔다. 스승님의 집이자 이제는 나의 집이기도 한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저택이다.

“앗, 로엔 경 아니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입구의 경비병은 즉시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한 편 안에 전갈을 보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연병장 쪽에서 몰던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몰던, 잘 지냈어요?”

“하하하, 요즘 운동을 좀 했더니 몸이 좋아지는구나. 넌 여행 잘 했냐?”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몇 년은 숲속에 처박혀 수련만 했어요.”

“그렇구나. 마법 수련도 무술처럼 꾸준히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럼요. 마법도 그렇고 창술도 매일 수련했어요.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고요.”

몰던은 자신이 가르쳐 준 창술도 계속 수련했다고 하니 활짝 웃었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몰던의 성격이 많이 활발해 진 것 같다. 양치기를 하다가 용병대장 노릇을 하게 되니 박력도 더 생기고 몸도 탄탄한 근육질의 중년 남자풍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좀 커졌네. 아주 장군의 풍채가 되셨군.

몰던의 젊어진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요. 몰던, 가능한 한 오래오래 사세요.

“그런데 스승님은요?”

“마탑에 계시다. 저녁때 돌아오실 건데, 네가 왔다고 하면 아마 당장 달려올 거다.”

“하하하, 예. 그럼 오랜만에 스승님과 몰던과 함께 식사를 하겠군요.”

“그런데 여행 중에 별 일은 없었냐? 미스틱 엑스 경은 만났고?”

“만났어요. 그 일에 대해서는 스승님이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그래라. 그럼 난 애들 훈련 마무리 짓고 올 테니, 안으로 들어가서 일단 씻고 좀 쉬는 게 좋겠다.”

약간 수다스럽게 변한 몰던 이라니, 적응이 잘 안 되네. 옛날에는 하루 세 마디 대화도 많다고 했는데.

난 몰던의 권유대로 렉스를 뒤뜰로 보낸 후 집안으로 들어가서 욕조에 몸을 담갔다. 미리아의 집에는 이런 욕조 시설이 없어서 우물가에서 대충 몸을 씻었는데,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향유를 푼 욕조를 보니 이게 마치 위대한 마법과도 같다고 느껴진다.

저녁이 되어 드디어 파우스 스승님이 돌아오셨다. 몰던의 예상과는 다르게 스승님은 마탑에서의 일을 다 끝마치고 왔다.

“미스틱 엑스 경을 만났다고 들었다. 그동안 정말로 마족을 찾으러 다닌 거냐?”

걱정하시는군. 괜찮아요. 이렇게 손톱 하나도 안 상하고 멀쩡히 돌아왔잖아요.

“마족을 찾으러 다닌 것은 아니고, 수련을 했어요. 이번에 돌아온 것은 이곳에서 따로 진행할 일이 있어서에요.”

“자세한 이야기는 식사 후에 하자꾸나.”

“그러죠. 그런데 제 혼담은 어떻게 잘 해결됐나요?”

“일단 모두 거절했다. 미스틱 엑스 경이 너를 불러서 떠났다고 하니 별 말 없더라.”

“예, 그런데 여행 중에 저를 찾으러 다니는 가문이 있었어요.”

“그건 이해할 수 없구나. 굳이 너를 찾아서 무엇을 하려 했을까?”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천천히 조사해 보죠.”

“알겠다. 이제 돌아왔으니 이제는 떠나지 말고 브로스마이어 가문에 대한 것을 파악하도록 해라.”

마탑의 일에 관여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본가의 일이라면 어리더라도 후계자 타이틀이 있으니 할 수가 있다는 게 스승님의 판단이다.

“알겠어요. 스승님께서 시키는 대로 할게요.”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 생각이었다. 브로스마이어 가문은 나의 집이다. 그리고 볼스테아 왕국은 나의 조국이다.

본거지를 튼튼히 해야 비로소 공격을 할 수 있다. 특히 이번처럼 적이 여럿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마족의 계약자들이 어떤 식으로 난리를 치든 이곳은 지켜야 한다. 이제부터 그것을 준비할 거다.

나는 새삼 결심을 굳히며 식사를 끝냈다.

식사가 끝난 후, 밀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우리들은 몰던이 들고 들어온 커피를 마시며 여행 중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미스틱 엑스 경과 이반 헬비스트 경이 손을 잡았단 말이냐?”

놀라시는군. 후훗. 이반 헬비스트의 명성은 장난이 아니지. 그냥 신비의 인물인 미스틱 엑스와는 또 다르게 피부에 확 와 닫는 느낌이시겠지.

어쨌든 난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진실을 조금 숨길 뿐.

“예, 이반 경은 애인이 마족에 의해 희생된 후 평생 마족과 싸우기로 맹세했데요. 그래서 두 분이 함께 마족을 상대하는 조직을 결성하기로 한 거지요. 저도 정식으로 그 조직에 가담했고요.”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그래서 전 여행 중 대부분의 시간을 수련하느라 바빴어요. 그것 말고는 마족과 관련된 사건 몇 가지를 확인하고 처리했는데, 그건 수련의 성과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군요.”

“그럼 넌 지금 몇 서클인 거냐?”

“4서클이에요. 하지만 곧 5서클의 벽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살짝 심장 부근에 떨림이 느껴진다. 원래 6서클의 경지에 도달하면 가능한 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법이 아닌 도의 경지에 들어서면 모든 말에 언령의 기운이 서리기 때문에 평소에 거짓말을 많이 하면 마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6서클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이것만큼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

“곧 5서클 이라고! 이건 전대미문의 성장이구나. 네 재능이 그 두 분을 만나 제대로 꽃을 피운 모양이다.”

파우스 스승님은 거의 경악할 정도로 놀랐다. 16세에 5서클이라면 정말 전대미문이 맞긴 할 거다. 10살 이후 거의 1년에 1서클씩 오른 셈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수치다. 그리고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위험한 부분도 있다.

보통 빠르게 5서클에 도달한 마법사 중 태반은 평생 마도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입식 교육과 암기식 습득의 한계랄까? 6서클부터는 철저한 깨달음에 의한 도의 경지이니까.

어쨌든 난 4서클로 공인받는 천재 마법사가 되기로 했다. 파우스 스승님은 내일 바로 마탑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스승님은 이제 몇 서클이세요?”

“난 얼마 전에 3서클이 되었다. 확실히 한 번 왔던 길이라 빠르구나.”

3년 만에 1서클에서 3서클이면 확실히 빠르다. 난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을 이었다.

“이론 상 5서클이 되면 마법진을 이용해 정령과 계약할 수 있어요. 스승님도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시면 몇 년 뒤에는 정령 계약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에요.”

“오, 이반 경께서 정령 소환에 대해 가르쳐 주시더냐?”

파우스 스승님의 눈이 반짝 빛난다. 전에는 정령에 대해 알아도 가르쳐 주기가 좀 애매했는데, 이미 3년이나 지났으니 살살 이야기해도 되겠지.

난 그동안 틈틈이 만들어 놓은 정령의 기초상식과 소환법이라는 책을 꺼내 스승님께 내밀었다.

“제가 배운 걸 되는대로 정리한 거예요. 스승님께서 보시고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난 정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일단 읽어보고 모르는 것을 다시 물어보마.”

예, 그러시던가요.

난 속으로 대답했다.

그때 몰던이 살짝 끼어들었다.

“그런데 네 스태프 모양이 바뀐 것 같은데, 창에 마법을 건 거니?”

“헤헷, 그럼요. 보여드릴까요?”

철컹

난 창날을 뽑아서 몰던에게 내밀었다. 몰던은 조심스럽게 스태프 창을 받아들고는 창날에 흐르는 뇌전의 기운을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법의 창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해보니 몰던에게 줄 선물로 창이라도 하나 더 만들어 올걸 그랬네.

아버지,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쩝.

지금 내가 쓰는 스태프 창은 원래 몰던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몰던은 용병단에서 만든 창을 쓰고 있는데, 이게 마법이 안 걸린 것은 물론이고 원래의 스태프 창에 비해 무게감이나 강도, 탄성 면에서 훨씬 급이 떨어진다.

몰던이 용병단장을 안 한다면 몰라도 병사들을 통솔하고 있는데 무기는 병사들과 같은 것을 쓰는 셈이니 모양이 안 날 거다. 하지만 지금 이 창을 몰던에게 돌려줄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제대로 된 마법무구를 하나 만들어서 선물해야겠네. 이반이 오면 그의 힘을 좀 이용해야지. 그 전에 준비는 끝내 놓고.

9서클 마법진을 만들려면 엄청난 자금이 들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대충 조합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기왕 만드는 김에 9서클로 만들어야지 되지 않겠어?

난 마음속으로 몰던에게 줄 마법의 창에 대한 구상을 하며 파우스 스승님께 우리 조직에 대해 설명을 했다.

*

다음 날, 난 파우스 스승님과 함께 콘돌스핀 마탑으로 가서 정식으로 시험을 치룬 후 4서클 인증서를 받았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축하해 주었다.

스승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모두 순수한 눈빛이었다. 과거 기분 나쁜 욕망의 눈빛을 한 자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이다.

나쁘지 않아. 이런 순수한 눈빛을 한 사람들이 마법을 배워야 멈추지 않고 발전하는 법이지. 욕심이 많은 자는 작은 힘을 얻으면 더 노력하지 않고 당장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딴 짓을 잘 하거든.

그리고 스승님은 사람들에게 미스틱 엑스 경과 이반 경이 만든 조직에 대해 설명하고 다른 마탑에도 이 사실을 알리도록 지시했다.

조직의 이름은 데빌 베인. 마족을 죽이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마족의 계약자들을 찾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의 조직으로 가입을 한 자는 가문이나 마탑보다 두 수장의 명을 우선 한다는 맹세를 해야 한다. 심지어는 출신 가문을 공격하라는 명에도 거부할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을 들은 마법사들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에 마족의 계약자들의 손길이 뻗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 콘돌스핀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가혹한 맹세군. 그런데 렌 경이 이미 데빌 베인에 가담을 했다는 건가요?”

한 노마법사가 혀를 차며 물었다. 가문과 마탑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내가 외부의 조직에 들어간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파우스 스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렌뿐만 아니라, 내 생각에는 우리 가문 사람들 모두가 조직에 가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옛? 그럼 우리 콘돌스핀 가문이 데빌 베인에 흡수되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건 대의에 따르는 셈이니 크게 문제가 안 될 걸세. 그리고 일단 전원이 가입을 하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말이야.”

“그게 뭡니까?”

“미스틱 엑스 경은 몰라도 이반 경은 소속 가문이 없지 않은가? 본인의 손으로 가문을 무너뜨렸단 말이지. 그러니 잘 하면 이반 경을 우리 가문의 가주로 모실 수 있다고 본다네.”

“헛, 이반 경이 콘돌스핀 가문의 가주로!”

마법사들은 파우스 스승님의 말에 놀라서 웅성거리며 주변 사람들과 논의를 했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스승님을 이어서 말했다.

“사실 이건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부분이에요. 데빌 베인 조직 자체는 비밀리에 운용되지만 적어도 다른 가문과 의사소통을 할 가문이 필요하고, 그걸 우리 콘돌스핀에서 담당하는 거지요. 그 대가로 이반 경께서 콘돌스핀 가문에 적당한 가르침을 주시기로 했고요.”

“오오, 이반 경의 가르침이라니! 그럼 우리 가문이 10대 가문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그리고 아까 스승님께서 잘 못 말씀하셨는데, 이반 경은 정식으로 가문에 속할 생각은 전혀 없으세요. 가주를 맡지는 않으실 거고, 그냥 고문 정도의 직위만 받으신다고 하셨어요.”

가주는 스승님 거니까 말이지. 미래에는 나의 것이고.

나의 설명에 마법사들은 모두 기뻐하며 이번 일에 대해 찬성을 했다. 위험요소는 있지만 가문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될 기회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 콘돌스핀 가문은 정식으로 데빌 베인 조직의 일부가 되었다.

데빌 베인 조직은 8서클로 추정되는 미스틱 엑스 경과 8서클인 이반 경이 세운 조직이고, 두 명의 8서클이 버티고 있는 만큼 대륙의 10대 가문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데빌 베인 조직의 대외 홍보관 직위를 맡은 것으로 되었다. 조직이 행한 일들과 정보를 다른 가문에 알리고 때에 따라서는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직위다.

미리 구상한 대로 일이 처리되고, 그 사실을 알리는 사자들이 대륙 각지의 마도가문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콘돌스핀 가문의 번영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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