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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50화 (50/250)

로엔의 마나뱅크 50화

*

결혼 사태를 피하기 위해 시라브를 떠난 지 거의 3년이 다 되어 간다. 지금 나의 나이는 15세, 곧 16세가 된다.

어쩌다보니 예정보다 빠르게 6서클 마도사가 된 셈인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죽어라고 수련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여유를 두고 당분간 수련을 쉬기로 했다.

길은 여러 개인데 한 번 간 길이라고 무작정 따라가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반 경을 가르치면서 그것을 깨달았다.

“로엔의 9서클과 렌의 9서클은 다른 영역이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렌은 로엔의 연장밖에 되지 않는 거니까.”

난 렌이다. 로엔이 아니다. 그것을 잊으면 절대 안 된다.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사이 배가 항구에 들어섰다. 3년 전에 밀항으로 떠났던 모시모 왕국의 메르세디 항구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난 지금 마리포즈와 렉스, 그리고 서피를 데리고 시라브로 돌아가는 중이다. 서피는 원래 자신의 집이었던 마녀의 결계가 사라진 후 렉스의 목걸이를 새로운 집으로 삼았다. 원래 내 연구실의 핵이었던 목걸이라 서피가 살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이것은 렉스에게도 상당히 좋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제는 목걸이의 힘을 서피가 알아서 조정해주기 때문에 마리포즈가 없어도 목걸이의 힘을 얼마든지 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마리포즈가 없으면 자동발동 되는 방어적인 기능밖에 쓸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서피가 알아서 공격적인 힘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피의 능력도 쓸 수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투명한 상태로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주인인 나와 마리포즈의 눈에는 보이는 선택적 투명이다.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투명 능력은 상당히 고급 능력인데, 이걸 며칠 동안 계속 걸고 있어도 전혀 무리가 안 간다.

“앞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기에 편하겠군. 그렇지? 렉스.”

크르르르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렉스는 기분이 좋은 듯 작은 소리로 그르릉 거렸다. 이런 거대 괴수견을 데리고 다니면 눈에 띠여서 곤란했는데, 투명 능력을 얻게 되었으니 참 편리하다.

배에서 내린 후, 난 볼스테아 왕국까지 갈 마차를 구하러 갔다. 그런데 내 눈에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마리야. 저 사람, 그 사람 맞지?”

“프로도, 렌 님을 밀항시켜준 업자입니다.”

“그래, 그 사람. 아직 이 항구에 있었구나.”

과거 나는 독스란 자로 변신해서 프로도의 안내로 밀항을 했다. 그러나 진짜 독스가 예상보다 빨리 잡혔고, 프로도는 무슨 수단을 썼는지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내가 가짜라는 사실을 씨돔 상회에 알렸다.

“맞아. 그때 저자가 어떻게 배보다 빨리 소식을 전했는지 궁금했었어.”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막상 사람을 보니 다시 호기심이 생긴다. 마법적인 방법이라면 불가능 한 것은 아닌데, 밀항알선업자가 마법사까지 동원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게 가능하려면 적어도 마도사 수준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마리야, 저 자를 미행하자.”

“예, 타겟 확정하고 위치추적 하겠습니다.”

마리포즈는 한 번 타겟으로 삼은 자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100미터 정도의 거리 내에서는 위치를 알 수 있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천천히 프로도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한참 가니 프로도는 슬럼가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마리포즈의 말에 의하면 집 안에 두 명의 사람이 더 있다고 한다.

“전원 무기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아, 지금 프로도가 지하로 들어갔습니다. 테이블 아래에 설치된 비밀문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도 들어가자.”

집 주변을 지키는 자는 없었다. 적어도 도둑 길드는 아닌 모양이다. 아마 프로도 개인의 은신처 정도겠지.

우리는 집 앞으로 가서 서슴없이 문을 열었다.

“렉스야. 넌 여기 있다가 나오는 놈이 있으면 앞발로 다시 밀어 넣어라. 딴 놈들이 들어오려 하면 들어오게 놔두고.”

컹, 컹

렉스는 대답을 하고 집 앞을 지키고 섰다. 물론 투명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전혀 알 수 없으리라.

문을 여니 안에 있는 사람 둘이 놀라서 일어나며 물었다.

“누구쇼?”

말을 하면서 손이 허리 뒤쪽으로 가는데, 아마 비수라도 숨겨놓은 거겠지?

말로 할 생각은 없다. 이런 쪽에서 힘이 있는데 말로 하는 것은 비매너니까.

“마리포즈 경, 저놈들을 제압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익, 적이구나!”

슈슉, 카캉

두 개의 비수가 날았지만 마리포즈의 전신갑옷에 튕겨나갔다. 기사의 랜스 차징도 튕겨내는 게 마리포즈의 방어력이다.

그 사이 마리포즈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가 두 주먹으로 동시에 두 사내의 가슴을 때렸다. 상대는 검을 뽑아 마리의 몸통을 찔렀지만 역시 튕겨날 뿐이다.

퍼퍽

“어억!”

입으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가는 두 사람, 마리포즈는 그들의 발목을 잡아 살짝 비틀어 겹쳐 누르며 말했다.

“지하에 있는 프로도가 비밀 통로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따라가죠. 마리포즈 경.”

마리포즈는 몸으로 테이블을 밀고, 발로 바닥을 밟아 부쉈다. 그리고는 그대로 뛰어내려 프로도가 도망간 쪽으로 달려갔다.

중간에 파파팍 하고 함정 발동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마리포즈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요즘 여유를 두고 따라갔다.

함정의 흔적을 보니 돈을 들인 게 느껴졌다. 탈출로에 이 정도 공을 들인 걸 봐서 적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난 마리포즈가 프로도를 잡아 둔 곳에 도착했다. 프로도도 열심히 달렸지만 결국 마리포즈에게 따라잡힌 것이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전 그대들이 기억에 없습니다만.”

당연히 기억에 없겠지.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3년 전에 독스랑 바꿔치기로 밀항한 사람입니다.”

“아! 그 가짜 독스.”

“그래요. 프로도씨가 씨독 상회에 밀고를 하는 바람에 고생을 좀 했거든요.”

“이런, 씨독 상회에서 처리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굳이 변명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비겁한 성격은 아니군.

“처리를 했어요. 그래서 죽을 뻔 했는데 다행히 벗어날 수 있었고요. 덕분에 우리는 죽은 사람으로 취급되어 추적을 받지 않았죠. 그런데 프로도 씨.”

“복수를 하려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한데, 그때 어떻게 배보다 빨리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 정도 거리면 전서구로도 불가능할 텐데 말입니다.”

“그거 물으려고 지금 절 잡은 겁니까?”

“따지자면 그런 셈입니다.”

“하아, 그럼 제가 대답을 하면 이대로 돌아가 주실 겁니까? 날 죽이거나 다른 곳에 넘기지 않고?”

“그렇게 하죠.”

“좋습니다. 사실 전 뒤에 연락을 한 게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가짜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배가 떠난 직후 새를 날려 선원 중 한 명에게 그걸 알린 거죠.”

“알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왜 절 순순히 밀항시킨 겁니까?”

“둘이 있는데 가짜라는 걸 밝혔다가는 제가 칼 맞고 바다에 수장될 테니까요. 아마 선원도 배 위에서 그걸 밝혔다가 자기측 사람이 죽는 것이 두려웠을 겁니다. 그냥 모른 척 하다가 항구에서 씨돔 상회에 알리면 알아서 처리해 줄 거라 생각했겠죠.”

“그렇다면 혹시 독스가 빨리 잡힌 것도 프로도 씨가 관여한 겁니까?”

“그렇죠. 독스에 대한 조사가 생각보다 엄격해서 밀항한 증거를 가져가거나 독스를 넘겨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항구 업무 자체가 크게 지장을 받을 판이었으니까요.”

“과연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독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전 원래 어릴 때부터 사람을 잘 구별합니다. 얼굴뿐 아니라 손, 몸매, 목소리까지 민감하게 알아차리죠. 그래서 그걸로 위기를 넘긴 적도 꽤 많습니다.”

오호, 그런 특기가 있는 사람이 가끔 있지. 마법으로 변신해도 알아차리는 수준이면 진짜 웬만한 마법사보다 낫네.

이자가 마음에 든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전혀 내색을 안 하고 있다가 살짝 처리를 한 것도 그렇고, 지금처럼 잡혔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보면서 이야기 할 것은 이야기 해주는 판단력도 좋다.

난 프로도에게 말했다.

“프로도 씨, 씨독 상회가 말입니다.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된 마족의 계약자 사건과 연류된 거 아십니까?”

“예에?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확실합니다. 아마 몇 년 내로 그게 수면에 떠오르면서 마도가문의 조사가 시작될 텐데 말입니다. 그때 잘못하면 프로도 씨도 엮일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만.”

“으으, 그건! 알겠습니다. 당장 그쪽이랑은 손을 끊죠.”

“늦었습니다. 한번이라도 거래를 한 이상 마도 가문의 조사를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족의 계약자를 찾는 추적조직이 있는데, 거기 가입해서 씨돔 상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겠다면 제가 소개해 드리죠.”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그런 데 가입했다가 마족의 계약자에게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죠. 하지만 추적조직은 어디까지나 은밀히 정보를 모으는 역할이니 마족의 계약자들에게 행적이 드러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프로도 씨가 비밀을 엄수하고 배반을 하지 않는다면 나름 편의도 봐 드릴 수 있고요.”

“편의라면?”

“저 역시 마도 가문 소속입니다. 추적 조직에 속해 있기도 하고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프로도는 한숨을 내쉬며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이쪽 일을 하시면 마도 가문에 엮인 일은 대부분 처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비밀 유지를 위해 작은 일들은 스스로 해결하셔야 하지만, 그 정도 역량은 프로도씨에게 있어 보이는군요.”

“나를 이용해 먹다가 버리는 패로 쓰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

“마족을 상대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그런 식으로 운용하다가 자칫 조직원의 원한을 사게 되면 마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는 것과 다름없지요. 일단 믿으세요.”

프로도는 내 말을 듣고도 쉽게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생각한 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거절하면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으니 가입하죠.”

“거절해도 큰 문제는 안 생겼을 테지만, 가입하신다니 환영합니다. 나중에 사람을 보내 할 일을 알려드릴 테니 일단 대기하고 계십시오. 그럼.”

조직원 한 명 얻었다. 내가 이렇게 안 해도 이반 경이 알아서 조직을 만들과 확장시키겠지만 쓸 만한 인재는 눈에 띠는 대로 확보하는 게 좋거든.

호기심도 풀고 사람도 하나 얻은 난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며 탈출로를 되돌아갔다. 집에 쓰러져 있던 사람 둘이 문가에 기절해 있는 것을 보니 도망가려다 렉스에게 당한 것 같았다.

“렉스야, 이제 됐어. 가자.”

꾸웅, 끙

렉스는 문 앞에 서 있다가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길로 슬럼가를 나와 마차를 구해 나의 고국이자 본거지인 볼스테아 왕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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