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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41화 (41/250)

로엔의 마나뱅크 41화

6장 마녀의 결계

이반 헬비스트 경을 제자로 받은 뒤 나는 눈앞에 마수를 처리하기로 했다.

마수 다스 서펜티움은 이제 마법진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접었는지 조용히 똬리를 틀고 앉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면 어쩔 건데? 너에게는 이미 제물 혹은 보약 둘 중의 하나의 운명밖에 남아있지 않거든.

내가 고위 마족을 소환할 일은 없으니 역시 보약으로 삼아야겠지?

나는 우선 마나뱅크에 새로운 구좌를 하나 만들었다. 원래 뱅크의 구좌는 6서클 마법으로만 만들 수 있지만 난 마스터 코드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마나 뱅크의 은행장 같은 지위라 할 수 있지.

새로운 구좌의 암호는 클래러피케이션, 정화라는 의미이다.

“이반 경, 그대는 백마법에 정통하니 고위 정화의 마법도 쓸 수 있죠?”

“예.”

“그렇다면 내가 저 마수를 녹여 마기로 만들 테니 그대가 마기를 정화시키세요.”

“마수를 녹일 수 있습니까?”

“저놈은 원래 물질적인 육체가 아닌 마기의 덩어리 같은 놈이니 오히려 쉬워요. 단지 그대가 그걸 정화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지요.”

“맡겨 주신다면 틀림없이 해 보이겠습니다.”

“좋아요. 단.”

“예, 말씀하십시오.”

“마기를 정화하는 게 중화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예?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저렇게 큰 힘을 그냥 소멸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반 경은 마기를 정화시킨 후 순수한 마나로 만들어 흡수하도록 해요.”

암, 그래야 진정한 보약이지.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설마 제 몸속에 마기를 흡수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질문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위 정화 마법을 강력한 마기에 사용하면 그것은 소멸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렇지 않으려면 마기를 일단 몸 안에 흡수한 후 몸속에서 서서히 정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럴 경우 성공하면 어느 정도는 중화된 마기가 몸에 남아 순수한 마나로서 작용한다.

하지만 보통 어떤 인간이라도 마기를 몸 안에 받아들인 순간 영향을 받게 되는데, 심하면 죽고, 그게 아니더라도 육체의 변화나 정신적인 영향을 받아 미칠 수도 있다.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그 상식은 어디까지나 하급 마법사들의 영역이고, 최고가 되려면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힘은 어떤 상황에서든 보전됩니다. 단지 그것을 감지하고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거지요. 저 강력한 마기에 이반 경의 정화 마법에 담긴 힘이 부딪치는 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그렇게 비효율적인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때서야 이반 경은 뭔가 집이는 게 있는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마나뱅크에 녹인 마기를 가두어 둘 테니, 이반 경은 그곳에 접속한 채로 고위 정화 마법을 사용하세요. 그걸 반복하게 되면 결국 계좌 안의 마기가 모두 중화된 채 그 안에 남을 것입니다.”

“아아! 마나뱅크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군요.”

있지. 있으니까 그게 좋은 거라고. 하지만 그거 다 정화하려면 뼈가 빠지도록 마법을 써야 할 걸? 마기는 정상적인 마나를 오염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정화된 마나도 다시 마기로 바뀌어 원래대로 되어 버릴 터.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염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정화마법을 써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힘겨루기다.

고위 마수를 녹인 마기와 8서클 백마법사가 펼치는 정화마법의 피할 수 없는 뚝심의 승부!

내가 대충 보기에 이 둘의 힘은 비슷하니, 거의 마나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정화마법을 써야 겨우 승부가 날 것이다.

대신 이기면 그의 마나는 거의 두 배로 불어난다. 지면 마기가 두 배로 늘어나겠지만.

이반 경의 약점은 마나의 양이다. 그는 가문이나 선조, 혹은 스승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기에 자신이 스스로 수행하여 얻은 마나밖에 가지지 못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실전에 강한 워메이지라 해도 같은 8서클의 아론 체프코트 경을 만나면 이기기 어렵다. 아론 경은 무조건 방어에 치중하면서 이반 경의 마나가 바닥나기를 기다릴 테니까.

내 제자가 된 이상, 같은 서클의 다른 마법사에게 밀리는 것은 내 자존심에 걸린다. 그런 만큼 우선 마나부터 확보하자고.

난 이반 경에게 마나뱅크 안에 있는 마기를 정화하려면 쉬지 않고 마법을 써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알겠나요? 성공하면 두 배, 실패하면 당분간 마나고갈 상태를 경험하게 될 거에요.”

“꼭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우선 저놈을 녹이죠.”

대화가 끝나고, 난 다시 마법진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봉인의 마법진에 흡수의 마법진을 겹쳐서 그리고 그 출구를 마나뱅크에 연결할 수 있게 만다는 작업은 나로써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반 경이 워낙 바닥에 대지의 정령을 잘 깔아줘서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이반 경은 대지의 정령에 작용되는 마법진의 효과를 느끼고 이해하느라 온 정신을 집중시켰고, 가끔씩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마다 감탄성을 터뜨렸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성되고, 난 클래리피케이션 계좌를 열어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우우우웅

크오오오오오오

힘이 빠져나가는 것은 느낀 다스 서펜티움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광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발동된 마법진은 이전보다 더한 구속력으로 다스 서펜티움에게 압력을 가했고, 곧 이 거대한 뱀의 몸이 서서히 기화되어 마나뱅크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살려줘…….]

“허, 말을 하다니. 역시 고위 마수는 틀리군.”

[살려줘……. 이대로 소멸되긴 싫어.]

이놈 봐라? 원래 마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약하면 상대에게 죽거나 흡수되는 것이 마계의 자연스러운 법칙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난 호기심을 느끼면서 일단 다스 서펜티움에게 물었다.

“살려주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너의 노예가 되겠다.]

깔끔한 제의네. 역시 마수다워.

생각해보자. 마수를 노예로 부리면 좋은 점은? 혹은 나쁜 점은?

나쁜 점은 확실하다. 이놈이 언제 배신을 할 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마기에 오염되어 버릴 수 있다는 거.

좋은 점은 이놈보다 하위의 마수는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나한테 덤빌 수 없다는 거가 가장 크겠지?

나쁘지 않다.

그런데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고위 마수는 자존심이 강해서 죽어도 인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할 텐데, 이놈은 그걸 감수할 정도로 소멸되는 것을 싫어한다.

흠, 생각해보니 얘를 쓸 데가 있네. 어느 정도 이성을 가진 마수라면 그냥 소멸시키기에는 좀 아깝지.

“좋아. 일단 살려주지. 하지만 너의 마기는 모두 빼앗을 수밖에 없어.”

[마기를 모두 빼앗기면 난 소멸 돼.]

“아니, 소멸 안 되는 방법이 있어.”

난 즉시 바닥에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것은 기존에 그려진 봉인진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은 크기의 마법진이고, 흡수의 효과는 없지만 정화를 위한 통로는 만들어 놓았다.

마법진 작업이 끝나자 난 계속해서 다스 서펜티움의 마기를 빨아들였다.

[안 돼! 난 더욱 강해져야 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면 지금보다 강해지게 해 주지.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강해져서 마계로 돌아가고 싶은 거지?”

[정말인가?]

“말이 짧다. 난 너의 주인이야.”

[알았습니다. 주인님. 계약에 따라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상황판단이 빠르네.

흠, 생각해보자. 마수는 원래 말을 못하는 마계의 야수인데, 가끔 고위 마수는 어떤 계기로든 영성을 얻을 수 있지. 거기서 잘 하면 아예 마족으로 진화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녀석은 마족이 되고 싶은 건가?

단순히 마족이 되고 싶은 거 같지는 않다. 마족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넌 마족이 되면 무엇을 할 거지?”

[마족만 되면 돼.]

“이유는?”

[난 강해지기 위해 번식을 포기했어. 그런데 내 짝은 아직 번식을 포기하지 않았어.]

윽, 너 혹시 스스로 거세했냐? 그 위에 짝도 있고?

[마족이 되면 다시 번식할 수 있어. 내 짝에게 약속했어.]

아 놔, 이런 뜬금없는 마수의 사랑을 보았나.

이놈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마수라 일반 동물처럼 물리적인 방법으로 번식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암수가 있는 모양이고, 서로 애정도 강한가 보네.

다스 서펜티움의 생식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지만 이들의 부부애에 대해서는 흥미가 갔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 드디어 다스 서펜티움의 마기가 거의 빨려나가고 본체의 크기가 허리띠 정도로 줄어들었다.

“좋아. 그럼 이쪽으로 오라고. 전이!”

슈슈슈슉

충분히 크기가 작아진 다스 서펜티움은 내가 작동한 마법진의 힘에 빨려들어 왔다. 이것도 작지만 봉인 마법진이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압력은 거의 없기에 다스 서펜티움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이 안을 정화할 차례지. 흡수!”

쏴아아아아

마기는 온갖 부정한 기운을 흡수하여 강화된다. 흑마법사들이 자신들의 본거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시체들의 사기와 마계의 생물화가 된 시체들의 기운이 모두 마법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다스 서펜티움의 몸이 점점 검게 변했다. 또한 물 같은 성질에서 거의 진흙과도 같이 걸쭉한 느낌이 되었다.

나는 다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리포즈에게 말했다.

“마리야, 네 헬멧을 벗어 줘.”

“예.”

난 마리포즈의 헬멧을 마법진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자 헬멧은 마법진의 기운에 의해 기존에 설정된 구성식이 해체되어 자잘한 금속조각으로 변했다.

파파파파파파

금속조각들은 다스 서펜티움의 몸에 사정없이 박혔다. 검은 색의 진흙에 은색의 금속 조각이 박히는 듯 한 느낌이다.

“받아들여. 네 몸을 고형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알았습니다. 주인님.]

다스 서펜티움은 자신의 마기를 이용해 금속조각들을 녹여 표면에 씌우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서 아주 자잘한 은색 비늘을 한 작은 뱀의 모양이 되었다.

그때서야 난 마법진의 봉인을 풀고 한 손을 내밀었고, 다스 서펜티움은 내 팔에 부드럽게 감겨왔다.

“와아, 상당히 귀여운 아이네요.”

마리포즈가 감탄해서 외쳤다. 얘가 평소에는 여기사 콘셉트라 과묵하게 있지만 귀여운 것을 보면 평소 성격이 튀어나오네.

난 손을 내밀어 마리포즈에게 다스 서펜티움을 건넨 후 말했다.

“얘 이름은 서피라고 하자. 마리 넌 서피한테 관리자로써의 의무와 기능에 대해 가르치도록 해.”

“서피를 새로운 관리자로 삼으시게요?”

“비슷한 거야. 지금 가는 데에 관리자가 필요할 거 같거든. 얘를 쓰면 새로 자아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알겠어요. 서피야. 내가 네 선임자니까 잘 배우렴.”

[선임자…알겠습니다.]

아직 지능은 좀 떨어지나 보네. 아무튼 열심히 해라 서피야. 네가 열심히 하면 내가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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