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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38화 (38/250)

로엔의 마나뱅크 38화

5장 어둠의 의뢰

“어떻게 알았소?”

“자넬 보낸 자가 알려왔지. 진짜 독스는 지금 감옥에 갇혔다더군.”

“그자가 며칠도 못 숨고 잡혔나보군요.”

내 예상보다 블랭코 가문의 수색 능력이 뛰어난 가 보다. 눈치를 보니 독스는 거의 하루이틀만에 잡혔고, 조사 결과 독스라는 것이 드러난 모양이다.

그런데 그걸 프로드라는 자가 알아내서 이쪽에 급히 전갈을 보낸 것이다.

이미 배가 떠났는데 먼저 전갈을 보낼 수 있다니, 전서구 같은 것을 이용한 건가? 이 먼 거리를?

난 여유 있게 팔짱을 낀 채 클락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독스가 조사당하면 결국 우리와 거래했다는 것까지 알려지겠지. 이쪽의 피해가 막심하단 말이야.”

“상회의 이름을 건 채 밀수를 했을 때에는 대응 방법이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그쪽이 멍청한 거니 남 탓 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흥, 대응 방법은 있지만 그래도 손해는 본다. 어떻게 할 거냐?”

“전 밀수업자들 신세를 봐 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대놓고 배 째라는 식으로 말하자 순식간에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방안에 살기가 가득찼다.

그래도 난 여전히 태연했다. 솔직히 지금 위험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자들이니까. 수틀리면 그냥 다 밀어버리면 된다.

“네놈은 누구지?”

클락이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묻는다고 말할 거면 애초에 신분을 숨기지도 않았겠지.

재밌는 게 내가 강하게 나가면 나갈수록 이자들은 손을 쓰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전체적인 살기는 높아졌지만 막상 클락이나 반대쪽에 있는 두목은 조심스럽게 변했다.

이쯤에서 타협을 할까? 아니지. 원래 높은 사람은 제시를 하지 않아. 상대가 제안을 하면 결정을 할 뿐이지.

힘의 세계에서는 위아래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일단 아래가 되면 계속해서 밀리는데 이놈들 같은 범죄자들은 아예 상대가 설 자리조차 주지 않고 끝까지 몰아붙인다.

자, 타협안을 내라고. 그게 적절하면 받아들여 주지. 아니면 마리포스를 부르고.

내가 입을 다문 채 당당히 서 있자 점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칼이나 석궁을 든 자들도 안 싸우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살기를 죽이고 있는 중이다.

이윽고 클락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이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어찌되었든 사정이 있어 타국으로 나온 자를 궁지에 몰면 안 되는데. 독스 녀석은 능력도 재수도 없었던 것이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이 바닥은 당한 자가 나쁜 거잖아. 힘이 곧 정의고.

클락이 웃는 게 신호인지 다들 무기를 품속에 넣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곧 언제 싸웠냐는 듯 테이블 위에 커피를 내왔다.

“괜찮다면 앉아서 이야기 좀 하지.”

“그럽시다.”

“그러니까 자네는 독스가 되고 싶다는 거지?”

“글쎄요. 그다지 상관은 없습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우리가 자네 신분을 보증해 줄 테니까. 그에 맞는 보수를 좀 달라고. 공짜로 밀항하고 신분세탁까지 시키면 우리 쪽 체면이 안 서니까.”

“돈을 달라는 겁니까?”

“돈으로 줘도 되고, 아니면 일을 해 줘도 되지.”

“난 밖에 있는 여기사님을 수행해야 합니다. 돈은 지금 그다지 없군요.”

돈이 있어도 있다고 하면 안 된다. 내가 있는 척하면 이놈들은 바로 강도로 변할 수 있다. 아니면 강도에게 우리 신상을 팔겠지.

“그렇게 딱딱하게 나오면 좀 곤란한데... 옳지. 이럼 어떻겠나?”

“말씀하시죠.”

“여기사님도 그렇고, 자네도 꽤 실력에 자신이 있나본데, 알다시피 이쪽에서는 실력만 있으면 할 일이 얼마든지 있지 않나?”

“그렇겠죠.”

“우리가 자네에게 일을 좀 알선해 주겠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겠나.”

“어둠의 모험가 길드역할을 하시겠다는 거군요.”

“그렇지. 어차피 기사수행이라는 게 모험을 찾아다니는 거니까. 그걸 우리가 소개시켜 주겠네.”

별로 내키진 않네. 이놈들이 주선해 주는 일이라는 게 뒤가 구린 일일 가능성이 크잖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준다면 못할 이유는 없죠.”

“제대로 된 정보라면?”

“일을 해결했을 때 씨돔 상회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말해줘야 적절한 보수를 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건 염려 말라고. 우리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이것들이. 니들이 안 나쁘면 누가 나쁜데? 암살 의뢰 같은 거 하면 그냥 다 쓸어버린다.

“좋아요. 적당한 의외라면 받아들이죠. 단, 여기사님이 납득할만한 의뢰여야 해요.”

나는 성질을 부리려다가 말고 그냥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

일이 괜찮으면 적당히 처리해주고 이쪽 어둠의 조직들과 라인을 만드는 거고, 아니면 그냥 우리 갈 길 가면 되니까 말이야. 계약이나 약속 같은 것은 지킬 필요가 없다.

어차피 하이델 숲에 있는 미리아의 집에 가면 결계로 인해 우리를 찾을 방법은 없다.

내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클락은 승낙을 받자 얼른 손가락을 튕겨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곧 몇 장의 의뢰서를 안쪽 방에서 내왔다.

“지금 처리하고 싶은 일은 이것들인데, 마음대로 골라보게.”

나는 그 중 우리가 가려는 방향 쪽에 있는 것 하나를 골라 읽었다.

“골룬 광산의 마수 퇴치? 이거 마수 맞아요?”

마수 치고는 적혀있는 내용이 이상하다. 상당히 치밀하게 조사가 되어 있는데, 이건 마수가 아니라고 증명하는 듯한 내용이다.

클락은 내가 그 부분을 알아차리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지. 마수가 아닌 것은 확실해. 사람이야. 사람.”

“그러니까 사람이 마수 행세를 한다는 거군요.”

“그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놈들 때문에 광부들이 그쪽으로 가려 하지 않아. 기존에 일하던 광부 30명이 한꺼번에 죽어 나갔으니까.”

“이 광산이 씨돔 길드 소유인가요?”

“아니, 벌렌드 백작이 주인이지. 그분이 우리 스폰서거든.”

아항, 그렇단 말이지.

나는 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백작령에서 관리하는 광산에 마수가 나타나 광부들을 학살했다. 그런데 백작령에서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해결사를 구한다.

이거 뭘까? 무슨 사연이 있는 거지?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진짜든 가짜든 마수가 나왔다고 하고, 이런 식으로 묘하게 꼬인 것을 보면 마족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난 일단 확인해 보기로 했다,

스승님께는 마족 근처에도 안 간다고 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야. 난 마족이라면 이가 갈리는 사람이거든. 거기다가 지금 나한테는 마족의 기운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물건까지 있지.

“사람이라면 그놈들을 잡아서 백작령에 넘기면 되는 건가요?”

“그러면 최고고, 죽여도 되고.”

“일단 한 번 가 보죠.”

“당연한 얘기지만 비밀일세.”

“염려 마세요. 그럼.”

보수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 미리 말할 필요가 없는 게 이거 해결해도 백작령에서 우리를 제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것은 내용을 알아보고 처리하든 안 하든 그냥 몸을 빼는 거다.

딱히 호기심 때문은 아니고, 어쨌든 남의 비밀에 접하고 제거당하지 않으면 다 이쪽에 돌아오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보수는 내용을 다 알고, 우리가 살아서 도망간 다음에 정하는 거다.

최소한 이쪽 지역에서 다니는 동안 확실하게 신분세탁을 해 줄 테니 일단은 그걸로 된 거지.

나는 의뢰서를 받아들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이미 우리가 사려 했던 마차는 밖에 세워져 있었다. 클락이라는 자, 제법 일처리가 빠르다.

“마리포즈 경, 좋게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의뢰를 하나 받았는데 한 번 검토해 보시죠.”

나는 의뢰서를 마리포즈에게 넘겨주었고, 마리포즈는 그것을 받아들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클락이 밖까지 배웅을 나와 그 광경을 보았다.

나는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고 도시 밖으로 나갔다. 몰래 뒤를 따라오는 자가 있는 것을 알았지만 무시했다.

며칠 동안 꾸준히 감시하는 사람들을 모른척하며 여행을 하니 드디어 골룬 광산이 있는 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보니 위쪽 봉우리에 짙은 색의 검은 구름이 끼어 있다. 보통 구름은 아니다.

“젠장, 마수 아니면 마족 맞네.”

이건 아주 대놓고 마족의 기운이 구름처럼 일어나서 형상화 되어 있는 거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저 광산 안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나보다.

저 정도면 고위 마족과 계약을 하는 순간에 나타나는 기운이라 해도 믿겠다.

대충 상황판단이 끝난 난 뒤쪽을 돌아보며 손짓을 했다.

“어이, 잠깐만 이리 와 봐.”

숨어 있던 자들이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아 놔, 이놈들아 그렇게 어설프게 미행했는데 설마 안 들켰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긴 저게 나한테는 어설퍼 보이지만 일반인 눈에는 다르겠지.

“후딱 안 나올래? 죽는다!”

“지금 나갑니다.”

수풀 속에서 두 명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뛰어 오라고 손짓으로 몇 차례 재촉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그러니까 불렀지. 저기 위에 구름 보이지?”

“예, 먹구름이네요.”

“저거 마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데, 방비 안 하고 안에 들어가면 아마 미치거나 병들거나 저주에 걸릴 거 같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제 그만 따라오고 클락에게 내 말을 전해라.”

“마법사신가요?”

“그래, 나 마법사 맞아. 그러니 확실하게 전하라고. 토씨하나 틀리지 말고.”

“예, 예, 말씀하십시오.”

“저건 흑마법 비슷한 기운인데, 꼭 흑마법이라고 보기도 애매해. 왠지 더 지독한 느낌이거든. 요즘 떠들석 했던 소문 있지? 고위마족과 계약한 자들이 세계정복을 노린다고. 아무래도 그거하고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르니 마탑에 알리라고 해. 이 마차를 타고 가. 우린 이제 걸어가야 하니까.”

“허걱, 고위마족!”

애들이 바로 겁을 먹네. 다리 안 떨어도 되니까 어서 가라.

난 적당히 겁을 줘서 숨어 있던 자들을 쫓아버리고 마리포즈와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구름이 안개처럼 깔린 정상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로 짙은 안개다. 이걸 그냥 마시면 독가스를 마시는 거보다 치명적일 수 있기에 난 강식장갑 로브로 얼굴까지 완전히 감싸고 정화 마법을 얼굴 앞쪽에 씌웠다. 그리고도 안심을 못해서 마기에 몸이 침식당하지 않게 방어마법을 겹겹이 두른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곧 광산 입구가 있는 골짜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은 이미 지옥과도 같은 풍경으로 변해 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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