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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34화 (34/250)

로엔의 마나뱅크 34화

화르르륵, 팍

불의 정령이다. 뿌우의 말대로 꽤 아름다운 여성형 정령의 모습이 허공에 나타나며 샤날의 등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샤날의 털은 불이 붙지 않은 듯 바로 불똥을 털어내고 달렸다.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은 샤날의 손짓 한두 번에 몸이 박살나 버렸다.

어, 그런데 저놈이 왜 이쪽으로 오지?

“뿌우야, 다시 나와라.”

“뭐냥?”

“저놈 나 노려보는 거 맞지?”

“맞당. 딱 너당.”

휘익, 쿵

샤날은 그야말로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와 마지막에는 크게 점프해서 내 앞에 섰다. 난 당황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스태프로 그를 겨누며 뿌우에게 말했다.

“내가 신호하면 저놈을 뇌전으로 지져.”

“알았다. 화살촉 꽤 많이 박았으니 제대로 찌르르 할 거다.”

찌르르 수준이 아니겠지. 보통 웨어울프라면 한방에 갈걸?

그런데 샤날은 내 앞에 내려선 후에는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공격태세였으면 끝장을 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넌 마족과 계약하지 않았군.”

“나를 알아?”

“내 부하 일만을 죽인 원흉. 결과적으로 나를 파멸로 몬 자.”

잘 아네. 누구야? 이놈한테 정보를 준 놈이.

생각해보니 빈츠는 페론의 암살자도 부렸었지. 그게 원래 이놈의 수족이었다면 난 그놈들에게 집중적으로 감시당하고 있겠군.

“그런데 왜 온 거지? 나를 죽이고 싶은 건가?”

“난 사소한 복수는 관심 없다. 계획이 실패한 이상 이제는 계약의 대가를 치를 일만 남았지.”

“그래서?”

“네가 경쟁자가 아니라면 잘 되었다. 이걸 가져라.”

순간 샤날의 털이 갑자기 길어지며 내 주변을 감쌌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결계다. 시각과 음성을 차단하는 결계.

뭘 주려고 결계까지 치는 거지?

푸악

갑자기 샤날은 손을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세차게 뛰는 심장을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심장은 곧 움직임을 멈추더니 점점 오그라들어 검은 색의 보석으로 변했다.

“이건 뭐지?”

“내가 실패한 이상 다른 놈도 성공하게 놔두지 않겠다. 넌 꽤 능력이 있는 것 같으니 이걸로 다른 놈을 찾아 모두 죽여라.”

“다른 놈이라면?”

“나 말고 상위 마족과 계약한 자들.”

“또 있어? 몇 명이나?”

“모른다. 있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놈들은 모두 물질계를 정복하고 싶어하지. 이 보석을 가지고 있으면 마족과 계약한 자를 알아볼 수 있다. 단, 네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보석을 받아들자 샤날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걸 삼키면 네가 내 계약을 이어받는 게 된다. 세상을 정복하고 싶으면 삼켜라.”

“그건 됐어. 난 웨어울프가 되고 싶지는 않아.”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마음대로 해라.”

크왕

결계가 풀리며 렉스가 뛰어 들어왔다. 주인인 내가 위험에 빠지자 필사적으로 결계를 부순 듯 하다.

렉스는 바로 샤날의 목을 물어뜯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피를 빨아먹었다.

검은 보석을 가지고 있으니 색다른 게 보였다. 샤날의 피에 섞인 마족의 기운이 그대로 렉스에게 빨려 들어간다.

흠, 흑마법도 대충 다 아는데, 이 보석은 그 수준이 아닌가 보네. 마족의 기운이 그대로 다 보이다니, 훌륭하군.

마족의 기운은 렉스의 몸에 흘러들어가 퍼지면서 점점 바꼈다. 그것은 곧 순수한 힘이 되어 렉스의 몸을 더욱 강화시켰다.

얘가 웨어울프에 대한 복수심도 복수심이지만 이게 일종의 보약이었군.

이제 알겠다. 렉스는 이미 마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살짝 돌연변이라 인간을 먹는 게 아니라 마족의 기운을 먹는다.

마족과 계약한 인간이 또 있다면 렉스가 몸보신 제대로 하겠는데?

“풋,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찌 되었든 샤날 퍼보트는 죽었다. 심장이 사라지고 피가 다 빨렸으니 웨어울프가 아니라 트롤이라고 해도 죽을 수밖에 없다.

마이어 경은 샤날이 마지막에 뭔 짓을 했는지 물었고, 난 샤날이 암살자와 연관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내가 그의 일을 망쳤다는 것을 알고 나를 물어 죽이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웨어울프 킹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고, 난 파우스 스승님과 함께 시라브 마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빈츠에 대한 것뿐이다.

난 파우스 스승님께 마이어 경의 제안에 대해 말했고, 스승님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셨다.

“그래, 체프코트 가문이라면 네 재능을 꽃피워 줄지도 모르겠구나.”

아니거든요. 갸들 없어도 난 알아서 클 거거든요.

스승님이 흔들리자 조급해진 나는 얼른 말했다.

“비밀 제자란 것은 결국 이용당하는 입장에 불과할 거 같아요. 그리고 전 스승님 이외에는 스승을 두고 싶지 않거든요. 미스틱 엑스 경께 말한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않느냐.”

“방법이 있어요.”

“뭐냐?”

“빈츠를 탈출 시키는 거에요.”

“뭐라고?”

“조사가 끝나기 전에 탈출시키면 마족과 계약했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으음, 그게 가능하겠느냐?”

“미스틱 엑스 경께 부탁드리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겠구나.”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부탁한다.”

역시 스승님도 다른 가문 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거야. 이런 변칙적인 방법을 허락하시니 말이야.

나는 방으로 돌아와 뿌우를 불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마법 시약병을 건내며 말했다.

“알지? 들키면 안 돼.”

“이걸 빈츠한테 전해주면 되는 거냥?”

“응, 그자가 그래도 7서클 마도사잖아. 마법구속구만 풀어지면 어떻게든 알아서 탈출 할 거야.”

마법구속구라는 게 갇힌 사람이 마법을 못 쓰게 하는 데 주력한 거지. 외부에서 못 풀게 막아놓은 건 아니거든. 이 마법 시약이라면 마법구속구의 이음새를 순식간에 녹일 수 있다고.

뿌우는 떠났다.

그리고 난 또 다시 미스틱 엑스의 이름으로 쓴 편지를 들고 마이어 경을 찾아갔다.

“마이어 경, 미스틱 엑스 경이 이 편지를 전해달래요.”

“그를 만났나?”

“아니요. 뿌우가 가져왔어요.”

“뿌우는?”

“이거 주고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불러도 안 오네요.”

나의 천진난만한 표정에 마이어 경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편지를 받아들었다.

“으음, 그자가 빈츠 경을 데려가겠다고 하는구나.”

“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도 봐라. 그리고 서둘러 파우스 경에게도 알려라.”

“네.”

나는 편지를 펼쳐들고 조금 전 내가 쓴 글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사연이 있어 평생 마족과 싸우기로 결심했소.

하지만 반대로 무관한 사람을 마족과 연관시키는 어떤 음모도 용납할 수 없소이다.

그렇게 당한 자들의 억울함이 결국 마족을 부르는 것이오.

빈츠 경은 내가 데려가서 직접 조사하겠소. 계약을 했다면 다시 연락할 테니 진실을 왜곡하지 말아주셨으면 하오.

추신 : 내 정보에 의하면 샤난 이외에도 상위 마족과 계약한 자들이 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정복하려 하오. 조심하시오.-

-미스틱 엑스-

“큰일이군요. 스승님께 알릴게요.”

“그래라.”

나는 내가 생각해도 뛰어난 표정연기를 하며 허둥지둥 방을 나서서 스승님께 보고하러 갔다.

*

밤이 되자 난 아무도 몰래 시라브 마탑을 나섰다. 그리고 뿌우의 힘을 빌어 하늘을 날아 락티움 쪽으로 향했다.

락티움 외각의 숲에서 빈츠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강식장갑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미스틱 엑스로써 그의 앞에 섰다.

“왔는가. 콜록콜록.”

빈츠는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똑바로 서지도 못해 비틀거리는 노인이 되었다. 뿌우의 말에 의하면 이미 기적 탐사 마법에 꽤 많이 당해서 전신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라고 했는데, 정말 심한 상태인 것 같다.

“마족과 계약을 했는가?”

“아니, 안 했네. 하라는 유혹은 있었지만 거기까진 할 마음이 없었어.”

“샤날이 무엇을 약속했기에 가문과 조국을 배신한 거지?”

“당연히 마법이지! 흑마법! 정령에 대한 지식을 대체할 수 있는 흑마법의 비밀을 받았다네. 이걸 연구하면 난 10년 내에 8서클이 되었을 거야.”

저기요. 속으셨거든요. 흑마법 했다고 8서클 된다면 세상에 흑마법이 넘쳐 났게요?

나는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이 멍청한 작자가 허무맹랑한 속임수에 넘어가 자기 인생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망친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게 있어도 지금의 자네는 8서클이 되지 못할 거 같군.”

“크으, 크크크크. 그래. 난 끝났어. 몸이 잘 움직이지 않거든. 손발이 계속 떨리고.”

빈츠는 참담한 표정으로 광기에 찬 웃음소리를 냈지만 난 별로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의 최후가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한 게 나 아니겠는가.

“대가로 받았다는 흑마법서를 줘 보게. 나도 연구를 해봐야겠군.”

“큿, 거저먹으려는 거냐?”

“싫으면 말던가.”

“흥, 좋다. 여기 있다.”

빈츠는 품속에서 적갈색 마법서를 꺼내 바닥에 떨궜다. 그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마법서 앞에 버티고 섰다.

“이걸 가지고 싶으면 나를 죽여라.”

“죽고 싶은 건가?”

“쉽게 죽지는 않는다. 내 일을 망친 원흉 중 하나는 바로 네놈이니 복수를 하겠다.”

화르륵

어이쿠, 이 영감이 주문도 시전하지 않고 바로 마법을 쓰네. 역시 7서클 마도사는 뭐가 달라도 달라.

나는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불기둥이 일어나는 것을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강식장갑 로브가 있으니 피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불기둥에 둘러싸이면 시야가 가려진다. 그럼 그 뒤에 날아올 진짜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

“익스펜디움!”

허공 중에 거대한 해골 문양의 심볼이 생겨났다.

이건 흑마법이다. 저 해골이 보는 자는 모두 죽거나 눈이 멀거나 마비되거나 중독된다. 랜덤이 아니라 마력이 약하면 죽고, 아주 강해도 중독되는 거다. 지금 내 수준이라면 눈이 멀겠지.

해골의 눈에서 피가 흐르면 끝이다.

“뿌우! 뇌전!”

꽈드드등

스태프에서 나온 뇌전의 기운이 그대로 빈츠의 몸을 때렸다. 빈츠는 그 충격으로 격하게 뒤로 튕겨났지만 아직 집중력을 잃지는 않은 듯 심볼은 사라지지 않았다.

“으윽!”

앞이 안 보인다. 역시 눈이 멀었다. 마법사는 눈이 멀면 마법의 80%이상을 쓰지 못한다. 표적 지정이 대부분 시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방법이 있다.

“시력공유!”

난 즉시 뿌우와 시력을 공유했다. 뿌우의 시선으로 빈츠를 보았다.

빈츠는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주문을 시전하고 있었다. 저 몸 상태에 심볼까지 띄웠는데 또 주문을 쓰다니! 감탄할만한 집중력이다.

공격마법은 아니다. 이자는 내가 입고 있는 로브가 어떤 것인지 알아본 듯 하다.

나는 스태프를 두 손으로 쥐고 앞으로 달렸다. 아직 4서클에 불과한 나는 마법 아닌 다른 힘으로 빈츠와의 차를 메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완력이다.

쩌쩡

빈츠의 방어마법이 내 스태프질 한 방에 깨졌다. 급하게 친 거라 고위 배리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우거의 몽둥이질도 버틸 정도는 됐는데 깨진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충격이 큰 지 심볼이 사라졌다.

그래도 빈츠는 현재 시전 하는 주문만큼은 실패하지 않고 완성시켰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이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만한 주문이다.

그 주문의 이름은 바로 주문반사. 내가 어떤 주문을 쓰든 그걸 나에게 되돌리는 효과가 있다.

“미안, 그 주문이 뭔지 안다네.”

나는 주문을 쓰지 않았다. 그냥 스태프로 다시 한 번 빈츠의 허리를 쳤을 뿐이다.

빈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허리가 반으로 꺾였다. 하긴, 자기 딴에는 최대한 변화시켜 시전한 주문이 간파 당했다는 걸 믿기 어렵겠지.

그런데 이 친구야. 8서클 이상부터는 그런 외형적인 변화로는 안 속아. 마나의 흐름을 보거든.

허리가 박살이 난 빈츠는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는 듯 했다. 나는 눈이 먼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며 빈츠에게 다가갔다.

“곧 죽을 걸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게.”

“가능하면 락티움 마탑 사람들이 조사를 안 받게 도와주게.”

“그것때문에 자넬 탈출 시킨 거니 염려 말게.”

“그래, 다행이군.”

그 말을 끝으로 빈츠는 숨을 멈췄다. 모든 것을 잃고서 오히려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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