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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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전령이 보고를 해 왔다.
다행히도 10대 가문의 마법사들이 동원된 왕성 방위군이 샤날 백작의 웨어울프 군대를 물리쳤다고 한다. 지금은 지휘체계를 잃고 흩어져 날뛰는 웨어울프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중이라니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 사태는 이걸로 끝이라고 봐도 된다.
그리고 락티움 콘돌스핀 마탑으로 간 인쿼지터 마법사들이 빈츠를 체포해 구금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빈츠 녀석, 지금은 마법구속구를 뒤집어 쓴 채 고문을 당하고 있겠군. 사태가 사태인 만큼 기억 탐색 마법을 써서라도 그가 아는 모든 것을 꺼낼 게 틀림없다.
“문제는 샤날 백작의 행방을 놓쳤다는 것입니다. 그자는 마법으로도 탐색이 안 됩니다.”
“상위 마족과 계약을 했다면 탐지 방어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그래서 마이어 경께 정령을 이용한 탐색을 부탁드리려 합니다.”
그렇지. 탐지 방어 능력을 지는 존재는 정령으로 찾는 게 제일 빠르지. 그놈이 투명이든 은신이든 결계든 정령은 찾아낼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거 말고는 마도사가 직접 하늘을 날면서 찾는 방법이 있는데, 마도사들은 대부분 노인이라 그런 체력소모 심한 짓은 잘 안하려 하거든.
“그렇다면 나와 여기 렌 경이 같이 찾으면 되겠군. 정령 둘이 같이 탐색을 한다면 네 배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걸세.”
아, 나?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한테 불똥이 튀자 마이어 경을 보았다.
“내가 정령 소환을 유지할 수 있는 마법진을 설치해 주지. 대기의 정령이 탐색에는 최고 아니겠나?”
이자가 갑자기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거지? 아무리 부려먹기 위해서라 해도 마법진을 함부로 다른 가문의 사람에게 설치해 주면 안 될 텐데 말이야. 하물며 정령 관계 마법진이라면 체프코트 가문 독점기술이잖아. 아니지. 나는 어차피 아니까 큰 문제는 안 될 거라 이건가?
어쨌든 지금은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할 마음도 없고.
샤날 퍼보트, 이 놈을 놓치면 내 마음이 안 편할 거거든.
“알겠습니다. 마법진이 설치되는 대로 바로 시작하죠. 제가 탐색할 구역을 정해 주십시오.”
“지도의 구역으로 탐색이 가능한가?”
“예, 가능합니다.”
“좋군. 바로 시작하지.”
마이어 경은 드레이크로부터 몇 가지 재료를 꺼내온 후 사람들을 모두 나가라 하고 방안에 마법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꽤 복잡한 마법진으로 설치만 반나절 이상 걸릴 거 같았다.
마법진을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이유로 파우스 스승님도 나가야 했기에 결국 나는 마이어 경과 단 둘이서 방안에 같이 있게 된 셈이다.
마이어 경은 마법진을 설치하면서 나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그런데, 렌 경. 그대는 이 사태가 끝난 후 어떻게 할 셈이지?”
“어떻게 하다니요? 마탑으로 돌아가 수련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콘돌스핀 가문은 이제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네. 가문의 수장이 마족과 연관이 되었으니 말이야.”
나도 그게 좀 걸리네.
다른 가문에서 걸고넘어진다면 최소한 락티움 마탑에 있는 모든 마법사는 구속 조사될 가능성이 커. 수장이 계약을 한 이상 다른 마법사들도 같이 계약을 하거나 하다못해 제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거든.
마족과의 계약은 겉으로 전혀 표시가 안 나서 무서워. 그걸 알려면 기적 탐색 마법을 써야 하는데, 그게 거의 죽거나 미치게 되잖아. 최강의 고문법이라고.
한 마디로 락티움 마탑의 마법사 전원 폐인이 될 거라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그걸 봐줄 수도 없는게, 지금 피해자가 몇이야?
“제 생각에 빈츠 경은 마족과 계약하지 않았을 겁니다. 빈츠 경은 샤날과 계약을 했겠지요.”
내 추측이자 희망이야. 정식으로 마족과 계약한 게 아니라면 락티움 마탑 전체를 조사할 명분이 없는 거니까.
“그건 빈츠 경을 조사해보면 알게 되겠지.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콘돌스핀 가문은 왕국의 신뢰를 잃게 된 셈이네.”
쩝, 계속 아픈데 찌르네. 그래요. 가주가 매국노 짓을 했으니 고생 좀 하겠죠. 그 정도는 각오 했다고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지 모르겠군요.”
“별 것 아닐세. 우리 체프코트 가문이 그대들 콘돌스핀 가문을 후원하고 싶다는 걸세. 모든 일이 잘 끝나게 말이야.”
“그런 건 스승님과 상의해 주시죠.”
“아니, 아니, 우리가 콘돌스핀 가문에 도움을 주려는 것은 바로 자네 때문이니 자네의 동의가 가장 먼저 필요하네.”
“저 말입니까?”
“내가 듣기로 자네는 미스틱 엑스 경의 생체 마법진을 모두 암기하고 이해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정령 공유가 가능할 정도로 정령친화력도 있고. 아론 가주께서는 이미 자네에 대한 보고를 받았네. 대단히 놀라고 즐거워하시더군. 믿기 어려운 재능의 소유자라고 말이야.”
아, 천재는 괴롭네. 그러니까 날 당신네 가문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소린가요?
이 인간들이 눈치는 빨라서 나를 얻으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벌써 깨달았네. 아니지. 현재 최고니까 최고를 지킬 수 있다는 건가?
내가 대답을 안 하자 마이어 경은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만 동의하면 우리 가문은 콘돌스핀 가문에 적극 지원을 약속하지. 또한 자네는 아론 경의 비공식 제자가 되는 걸세. 당대 최고의 아론 경 말이지.”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나와 콘돌스핀 가문은 통째로 체프코트 가문의 손아귀에 들어가겠지. 뭐, 그 정도는 당연한 건가? 말하자면 윈윈 하자는 건데…….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스승님과 상의해도 되죠?”
“물론이지. 어차피 파우스 경도 알아야 하니 충분히 상의한 후 대답해 주게. 빈츠 경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면 되겠는가?”
“그렇게 하죠.”
애매하다. 이건 큰일이니 손익이나 명분을 냉정하게 따져서 결정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 체프코트 가문 밑으로 들어가는 건 손익과 관계없이 자존심 문제 상 싫다.
하지만 빈츠 경이 마족과 계약 했다면 이 제안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된다. 나는 몰라도 파우스 스승님은 락티움 마탑의 마법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아차!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빈츠 경이 마족과 계약했는지 안 했는지 조사하는 것은 인쿼지터 마법사들이다. 그리고 체프코트 가문은 그들을 조종할 수 있다.
결국 체프코트 가문이 마음만 먹으면 진실과는 관계없이 빈츠 경은 마족과 계약한 자가 되고 만다.
“미치겠네.”
“응? 뭐라고 그랬나?”
“아닙니다. 마법진의 조작 부분이 약간 어려워서 저도 모르게 투덜댔네요.”
“허, 한 번 설명만 듣고도 이미 조작 부분까지 이해했다고? 설치가 끝난 후에 다시 자세히 설명해 주려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군.”
설명 안 해줘도 알거든요.
그런데 이자들이 진심으로 날 회유하려 하는 건 알겠네. 이 마법진은 진짜 남한테 보여줄 만한 게 아니야. 체프코트 가문에서도 이거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걸?
나는 체프코트 가문의 성의에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남의 밑에 들어갈 마음은 없다.
내가 원한 것은 스승님이 콘돌스핀 가문을 손에 넣고, 난 그걸 제대로 키우는 거니까.
어쨌든 상대의 의도를 알았으니 어떻게든 빈츠가 마족과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 두고 보라지.
난 내친 김에 마법진을 비롯 마법 전반에 대해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체프코트 가문의 수준을 가늠하려 했다. 확실히 이들은 현재 최고의 마법사 집단답게 콘돌스핀 가문보다 몇 단계나 깊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 다 되었네. 한번 발동 시켜보게.”
“바로 탐색을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자네가 자신한다면 바로 시작하지. 그럼 구역 1부터 18까지는 자네가 찾게. 난 19부터 36까지 찾도록 하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조금 딱딱한 어투로 대답한 후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모처럼 공짜 마나로 뿌우를 부려먹는 거다. 나는 뿌우에게 꼼꼼히 찾으라고 말했고, 뿌우는 정말 시간을 들여 각 구역을 철저하게 뒤졌다.
마이어 경과 나는 두 시간 동안 한 구역을 탐색하고 한 시간 정도 휴식한 후 다시 다음 구역을 뒤지는 식으로 작업했는데, 그는 내가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시간을 집중할 수 있다는 데에 새삼 감탄했다.
난 모른척하고 계속 집중해서 찾아나갔다. 그렇게 지루한 인내의 탐색시간 끝에 우리는 겨우 샤날 퍼보트의 행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어요! 어, 그런데 이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네요.”
“9번 지역인가?”
“예.”
마이어 경은 곧 바로 불의 정령을 9번 지역으로 보냈다. 그리고는 안색이 약간 굳어 말했다.
“사람들에게 대비하라고 알리게. 그놈이 곧 도착하겠군.”
“예.”
마이어 경은 계속 불의 정령으로 샤날 퍼보트를 감시하고 난 파우스 스승님과 롤랜드 장군에게 그의 접근을 알리니 곧 마법사들이 성벽 위로 올라갔다.
이미 밤이 되어 웨어울프를 상대하기에 좋은 시간은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샤날 퍼보트는 정령이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와요!”
내가 샤날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병사들이 은촉으로 된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자 샤날은 자신이 발각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뿌우야, 공격해!”
“알았당.”
솨아아아아
뿌우가 바람을 조작해서 은촉 화살을 바위 뒤로 몰고 갔다.
센스있네. 직접 바람이나 뇌전의 힘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무기를 활용해 힘의 소모를 줄이다니.
파파파팍
크와아아앙!
화살에 고슴도치가 된 웨어울프가 바위 뒤로부터 튀어 나왔다. 보통 웨어울프보다 몸집이 두 배는 더 큰 놈이다.
그러나 덩치가 더 크면 화살이 더 많이 박히잖아.
파파파파파파팍
“애로우스톰이당! 구석구석 다 꽂아주망.”
뿌우는 주변에 빗나가는 화살도 모두 모아서 샤날에게 쏟아 부었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샤날은 다시 한 번 크게 울부짖고는 갑자기 두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저, 저, 두더지 같은 놈!”
내 살다 살다 웨어울프가 땅 파고 숨는 건 또 처음 본다. 그것도 땅속에서 계속 이동을 하는지 군데군데 땅이 볼록 튀어나오는데 이동속도가 무척 빠르다.
“뿌우, 땅속 들어가면 힘들당.”
뿌우가 내 곁으로 와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 그냥 들어가.”
“알았당.”
어차피 오래 소환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잘 됐네. 다음은 불의 정령하고 다른 마법사들에게 맡기자.
내가 뒤로 물러나려 하는데 땅속에서 샤날이 팍 하고 튀어나와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성벽을 마치 평지 달리듯 순식간에 기어 올라왔다.
“비켜라! 너희들에게는 볼 일 없다.”
반은 으르렁 거리는 샤날의 외치는 소리는 흉포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 기세에 놀라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고, 그 틈에 샤날은 다시 성채 안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