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30화
*
눈앞에 보이는 공간이 전부 적으로 메워져 있다. 적이 본진을 향해 진군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군.
다행히도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준다. 아무래도 머릿속에 직접 명령을 내리니 약간 최면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어라, 저쪽에서 기사단이 나오네. 기마돌격으로 우리를 쓸어버리겠다는 건가.
마법사들이 방어막을 치는군. 방어막 째로 돌진하는 기마돌격은 가장 파괴력이 있는 공격수단이지.
나는 적 기사단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드드드드드
땅이 흔들린다.
확실히 기세가 무섭네.
[전군, 머리 위 방패. 앉으세요.]
내가 명령을 내리자 절반 정도는 앉았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몰려오는 기사단의 기세에 압도당한 듯 앉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피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 했다.
[앉아요. 셋 셀 동안 안 앉으면 반격에 같이 휩쓸립니다. 셋, 둘, 하나.]
반격한다고 하자 다 앉았다. 마법 공격이 있을 줄 안 거다.
저렇게 방어막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웬만한 공격마법은 다 튕겨낸다는 것을 모르나 보네.
나는 즉시 카탈라난의 방어형태를 가동했다.
“마나의 안개여. 방패와 더불어 또 하나의 대지가 되어라. 터틀 섈!”
투투투툭
카탈라난 3단계 변형, 방어치중형 터틀 섈.
마나의 안개가 머리위로 치켜 든 방패위쪽으로 올라가며 짙은 회색을 띄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단한 대리석처럼 굳어버렸다.
마치 방패와 함께 인공 언덕을 만든 듯 한 느낌이랄까? 기마병들은 아군을 부숴버릴 생각으로 돌진했지만 아차 하는 사이에 그들은 아군의 머리 위를 달려서 지나가는 형국이 되었다.
앉아있던 병사들이 신기하다는 듯 자신들의 위쪽을 올려보았다.
[이때에요. 위로 찔러요!]
“앗, 그렇군.”
병사들은 내 명령에 퍼뜩 정신이 든 듯 들고 있던 창을 머리위로 세웠다. 그리고는 힘껏 위로 찔렀다 빼기를 반복했다. 딱히 표적을 노리고 하는 찌르기는 아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간 창날에 알아서 지나가는 말들의 배가 걸렸다.
마나의 안개는 위쪽에서의 압력에는 강하지만 아래쪽의 창날은 쉽게 통과시켰다. 그리고 관통하는 창날에는 마나의 안개가 씌워져 더욱 강하고 날카롭게 변하니 달리는 말의 가죽을 쉽게 갈랐다.
히히히힝
“아악!”
창날이 튀어나온 언덕을 가로지르는 기사단은 도중에 멈추지도 못하고 그대로 산화되어갔다.
생각해보니 헤지호그라는 이름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상황이 딱 고슴도치네.
[다시 전진!]
기사단을 처리한 후 바로 명령을 내렸다. 적 본진이 아군 본진에 접근하면 우리를 무시하고 그냥 공격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적의 진군을 막고 지휘부가 있는 곳까지 파고들어야 했다.
우리는 대열을 맞추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산개돌격을 했다. 마나의 안개가 더욱 짙어지면서 이제는 부대 전체가 하나의 구름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다.
“뿌우야, 힘을 빌려줘.”
“알았당. 뿌우우우우우우.”
뿌우의 힘이 스태프를 타고 마법진 전체에 퍼지자 구름처럼 변한 안개에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꽈드드등
이것이야말로 카탈라난 최고 등급인 4단계, 뇌운!
겉보기만 뇌운이 아니다. 뇌운 주변에 접근한 병사들의 무기에 전격이 몰아쳤다.
50명의 마법사와 그들이 담당하는 100명의 병사들의 몸에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힘을 빼내어 형성한 마나의 구름, 거기에 바람의 정령인 뿌우의 힘으로 뇌전의 힘을 실으니 상상 이상의 효과가 났다,
[적들은 우리를 건드리지도 못 할 겁니다. 이대로 계속 돌진해요!]
우와아아아아아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벼락에 맞는 적들을 보며 아군은 크게 함성을 질렀다. 순식간에 적의 센터라인이 붕괴되고, 우리는 일직선으로 적의 지휘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슈슈슈슈슝
콰콰콰쾅
적의 마도병단이 이쪽에 공격마법을 퍼붓는다.
그러나 소용없어. 마나의 안개는 공격적인 면보다 방어를 중시한 거라 7서클 마법도 막거든.
대규모 생체 마법진의 무서운 점은 발동시키는 조건이 까다로운 대신 일단 발동되면 구성원의 힘을 모두 모을 수 있다는 거야.
이걸 악용하면 5천명의 생명을 대가로 엄청난 힘을 쓸 수도 있지만, 난 이들의 생명을 지키고 적을 치는데 쓰는 거지.
공격마법도 소용없자 드디어 지휘부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적의 본진도 같이 후퇴를 했다.
일부는 우리의 퇴로를 차단하려 했지만, 적어도 군을 나누어 아군 본진을 치는 여유는 없는 게 확실했다.
[계속 밀어붙여요! 지휘부를 따라잡아요!]
밀 때는 확실히 밀어야 한다. 우리가 떨어지지 않고 점점 지휘부를 압박해가자, 적들의 당황한 느낌이 이쪽까지 전해졌다. 전력으로 달려서 돌진하는 우리를 떼어놓으려면 말을 타고 도망가야 할 텐데, 저놈들은 멋 부리느라 가마를 타고 있었다고.
거기에 자존심이 있어서 재빨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우리는 거의 접근을 했단 말이야.
이때다!
“뿌우, 힘!”
“뿌우우우우우우!”
“마나의 안개여. 지금이야말로 나의 창이 되어 적을 소멸하라. 기간틱 썬더 랜스!”
꽈드드드드드등
5천명의 힘이 뇌전으로 바뀌어 앞으로 뻗어나갔다. 카탈라난 4단계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최고의 공격마법. 발동 방아쇠는 내 3서클 마법인 라이트닝 볼트지만, 이게 거의 백배쯤 뻥튀기 되어 나간다는 거지. 그러니까 한 번에 라이트닝 볼트 100발을 쏘는 거 같은 느낌?
50명의 마법사가 호흡을 맞춰 쏘면 50발이 나갈 수 있겠지만, 마법진의 힘으로 100발이 된 거야. 그것도 완전 동시에 나가는 거지.
콰콰콰콰쾅
“오, 막았네.”
굉음과 폭발음 속에서도 적의 지휘부가 멀쩡한 게 보였다. 마도병단이 방어마법으로 기간틱 썬더 랜스를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황급하게 막느라 무리를 했는지 전체적으로 마나의 흐름이 헝클어진 게 느껴졌다. 아마 좀 허약한 마법사들은 피를 토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연발이 된다고! 다시! 기간틱 썬더 랜스!”
꽈드드드드등
콰콰콰쾅
“아아악!”
이번엔 뚫렸다. 적 지휘부 앞쪽이 거의 전멸해버렸다. 그나마 핵심이 되는 인물들이 있는 곳은 고밀도의 방어막이 쳐져있어 피해를 받지 않았다.
“다시! 기간틱 썬더 랜스!”
꽈드드드등
콰쾅!
이거 몇 발까지 쏘냐고?
병사들 다 죽일 각오하면 삼십 발도 쏴. 마나의 안개의 힘은 5천의 병사들에게서 나오고, 이거 계속 쓰면 그들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거거든.
뭐, 서너 발 정도는 그들 체력에 지장을 안 줄 것이고, 열 발 정도 쏘면 절반 정도는 지쳐 쓰러질 거야.
다행이네, 세 발째에 마지막 방어막도 뚫렸어. 더불어 적의 마도병단 중 절반 정도가 뻗은 거 같고.
[지휘부 인물들을 사로잡습니다. 마법사들도요. 죽이지 마시고 생포하세요.]
나는 카탈라난의 등급을 다시 3등급으로 낮추며 명했다.
뇌운은 사라졌지만 전열에는 여전히 안개의 기운이 서려있어 주변에서는 접근할 생각도 못했다.
그 틈에 우리는 지휘부가 있던 곳으로 가서 쓰러진 자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되는대로 생포했다. 지휘부를 잃은 적은 유기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우리를 둘러싼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나는 그 틈에 뿌우를 보내 아군의 본진 상황을 살폈다,
렉스와 마리가 여전히 그곳에 남아 흩어진 웨어울프들을 하나하나 쳐 죽이는 가운데, 아군 병사들도 점점 안정을 되찾고 웨어울프들을 포위해 착실하게 그 수를 줄여나갔다.
역시 웨어울프가 진형을 갖추지 않고 흩어져서 개별행동으로 싸우면 아군이 감당 못할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뿌우야, 롤랜드 장군에게 적 지휘부를 쓸었으니 기마대 위주의 별동대를 보내 이쪽을 공격해 달라고 해. 이 전쟁, 끝낼 수 있다고.”
“알았당, 우리가 이기는 구낭.”
뿌우도 승리를 예감한 듯 신이 난 표정으로 웃으며 날아갔다.
곧 아군 쪽으로부터 기마대가 떨어져 나와 이쪽으로 돌진을 해 오는 게 보였다.
이렇다 할 대응도 못하고 당황한 채 기마대의 돌격에 당한 적의 좌군이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아군 본진의 추가 지원군이 도착하자 마침내 적은 전투를 포기하고 전면후퇴를 시작했다.
그 사이 우리 부대는 전투를 멈추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했다. 4단계까지 끌어올려 싸웠으니 알게 모르게 병사들에게 피로가 쌓였으리라. 이제는 더 이상 공을 탐하지 않고 아군의 다른 병사들에게 기회를 주면 된다.
해가 질 무렵, 드디어 완전히 정리가 되었다.
적은 10명 중 1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고, 웨어울프도 대부분 처치할 수 있었다.
나중에 거의 정리가 될 때쯤에는 내 부탁으로 살상이 아닌 생포를 목적으로 웨어울프를 상대했기에 100여 마리는 확보를 했다.
거기에 적의 총사령관인 폰스키 후작을 비롯해 지휘관 30여명과 마법사 50여명도 생포를 했는데, 지휘관과 마법사는 대부분 우리 부대가 잡은 것이니 그 공로가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높다고 할 수 있겠지.
롤랜드 장군은 나와 스승님을 거의 생명의 은인처럼 대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질 뻔 한 전쟁을 뒤집어 완승으로 바꿨으니 고마울 만도 하다.
그리고 우리 부대에 속하지 않은 마법사들, 특히 페라룩 마탑의 헬브리븐 경은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스승님께 말했다.
“내 평생 이렇게 위력적인 마법진은 처음 봅니다. 생체마법진이라는 것 자체도 이론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대단하군요.”
알고 싶지? 마법진 도해를 보고 싶은 거지? 눈빛이 별빛처럼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잖아.
파우스 스승님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미스틱 엑스라는 분으로부터 전해 받은 마법진이라 이렇게까지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분석이 끝나면 페라룩 마탑과 마법진 도해를 공유할 테니 그때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아, 공유를 해주신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우스 경께서는 소문대로 인품이 있으신 분이군요.”
헬브리븐 경은 지금 마도병단 책임자 자리를 놓고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완전히 저자세로 나와 끊임없이 아부를 하네.
하긴, 저자가 지금 6서클인데 7서클 가려면 마법진에 대해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잖아. 그런데 페라룩 마탑은 우리 시라브 마탑보다 마법진 수준이 더 떨어진다고 했거든. 락티움 마탑에서는 그 점을 이용해 마법진에 대한 지식을 찔끔찔끔 전수해 주면서 페라룩 마탑을 부려먹는 느낌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초특급 마법진을 공유해 준다니 바로 넘어올 수밖에 없지.
“그나저나 적의 웨어울프 부대는 정말 의외였습니다. 어떻게 웨어울프를 조종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현혹마법으로 조종을 한다고 해도 마법사 한 명 당 한 마리가 한계일 테니. 일만이나 되는 수는 어떤 식으로든 설명이 안 됩니다.”
“서두를 것 없지요. 적의 지휘관과 마법사들을 다수 잡았으니,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포한 웨어울프들도 연구를 해야겠지요.”
“그게 좋겠습니다. 적이 웨어울프들을 더 보유하고 있다면 이 전쟁은 조심해야 할 겁니다.”
마법사들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다 알아, 뻔 한 얘기 하지 말자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겉으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파우스 스승님이 그들을 다독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