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29화
두 부대가 격돌하는 순간, 나는 카탈라난의 단계를 하나 높였다.
“마나의 안개여, 너의 주인에게 돌아가 근원을 보호하라. 미스트 아머!”
스스스스스
원래는 싸우는 데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옅은 안개가 각 병사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뭉치니, 병사들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움직일 때마다 긴 잔상이 남게 되었다.
적들은 이걸 보고 당황해서 되는 대로 공격을 했지만 안개로 둘러싸인 아군을 정확하게 공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안개 자체에도 방어력이 있다. 그것은 상대의 공격을 밀어내는 한편, 그대로 적의 무기에 감기듯 달라붙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든다.
“이익! 이게 뭐야!”
“이건 또 무슨 마법이지?”
“크하하핫, 나도 모른다. 그냥 죽어라.”
“선봉이라 걱정했는데, 이거 나쁘지 않은 걸?”
아군이 사기가 마구마구 오르는 게 느껴진다. 이쪽은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가벼운 안개 갑옷인데, 상대는 여러 가지로 골탕을 먹으니 이보다 효과적인 전쟁용 마법은 별로 없을 거다.
이래서 마법사에게 지원을 못 받는 부대는 서글픈 법이지. 반대로 마법사의 강화마법을 제대로 받은 병사는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전투력을 발휘하게 되고 말이야.
나는 그 사이 부대들이 너무 신나서 막 나가지 않도록 열심히 조율을 했다.
[27소대, 뒤로 빠지고 26과 28과 대오를 맞춰요. 싸우는 건 일단 멈추라고요.]
[15소대, 과감하게 나가요. 거기 뚫으면 그쪽은 완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둥, 둥, 둥, 둥
적들은 모르겠지. 저 북소리가 알고 보면 그냥 장식처럼 의미 없이 울리는 효과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짜 명령은 이렇게 각 소대장의 머릿속에 직접 때려 넣고 있잖아.
난전 중에 소대 별로 밀고 당기기가 자유롭다면 상대의 진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린다.
난 평면 방진으로 전진하던 카탈라난 전대를 전투 중에 우측 사선형진으로 바꾸었다. 그 바람에 적은 좌측은 너무 들어오고 우측은 밀리게 되니, 결국 적의 방진은 둘로 나뉜 형국이 되었다.
[이때에요! 35,36,37소대. 적 중앙을 10시 방향으로 뚫어요. 20,21,22소대가 그 뒤를 이어 적을 완전히 둘로 나눕니다.]
이것으로 결판이 났다. 적은 완전히 진형이 붕괴되어 사방팔방으로 공격당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 정도면 어떤 일이 있어도 뒤집기 어렵다.
“이상하구나. 정말로 겉보기처럼 전혀 무기력한 부대였다니.”
파우스 스승님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기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은데…….
뿌우, 뿌우
“엇, 적의 지원군이 나오네요.”
적의 본진으로부터 움직임이 있었다. 본진 전체가 진군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만 앞으로 나온다.
나는 뿌우를 하늘로 올려 보내 적의 규모를 살폈다. 약 일만의 수가 진형을 갖추고 우리 쪽을 향해 오는 중이다.
나는 급히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의 지원군입니다. 신속하게 현재 상황을 정리하고 진형을 재구축합시다. 1부터 20까지는 전투를 멈추고 정비하세요. 나머지는 공격을 계속하다 적이 다가오면 뒤로 물러나 후위에서 진형을 정비할 겁니다.]
일만이 아니라 오만이라도 카탈라난은 상대할 수 있다. 열배의 군세를 능히 막을 수 있는 무적의 부대인 것이다.
병사들은 내 지시에 따라 착실하게 움직여 주었다. 그런데 정작 적의 지원군은 우리 쪽으로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쪽을 피해 빙 돌아 진군을 했다.
“이상하네요.”
“우리를 포위하려는 거 아니겠느냐?”
“아니요. 스승님. 왠지 느낌이 우리를 무시하고 본진을 직접 노리려는 것 같아요.”
말을 하고보니 정말 더 그런 느낌이 난다.
무슨 의도일까?
생각해보자. 지금 싸우고 있는 선봉은 진짜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이기려고 보낸 부대가 아니란 소리지. 그럼 결론은 얘들은 미끼란 거고, 지금 나온 애들이 진짜라는 소리네?
뭐 하러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진행하는 거지?
나는 살짝 긴장한 채 지원군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그들은 우리를 포위하는 듯 한 시늉을 하면서 은근슬쩍 아군의 본진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아항, 그러니까 선봉을 공격하는 사이에 본진을 후퇴할까봐 그런 거였군.”
직접 본진을 공격하기 위해 미끼 선봉을 내보낸 거다. 바꿔 말하면 저놈들 일만이면 아군 본진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소리겠네?
상황이 좋지 않다. 내가 그걸 깨닫는 동안 적들은 그들이 원하는 위치에 거의 도달했다.
그 위에 엎친 데 덥친 격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적의 본진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총공격을 가하려는 거다.
“뿌우야, 나와.”
“뭐냥?”
“롤랜드 장군에게 적 지원군 일만이 직접 본진을 공격할 거라고 전해. 저들이 숨긴 힘이 바로 지원군 일만에 있다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우리가 갈 때까지 버티라고 해.”
“알았당.”
자, 롤랜드 장군. 뻘 짓 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주세요. 안 그러면 아군 피해가 커질 거에요.
나는 속으로 기원하듯 중얼거린 후 즉시 아군에게 명을 내렸다.
[포위를 풀고 뒤로 돌아 전속력으로 돌진합니다. 적의 지원군 중 우측을 잡습니다.]
먼저 목표를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이동지시를 내리니 병사들은 두 말없이 따랐다. 그러는 사이 적들은 완전히 자리를 잡고 드디어 악의에 찬 발톱을 드러냈다.
크오오오오오
“어, 저건?”
“웨어울프?”
일만이나 되는 웨어울프를 본 적 있는가?
들판이 완전히 개판, 아니 늑대판이 된 느낌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스승님이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나도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웨어울프는 마물이다. 이성이 없이 본능만으로 사는 존재이고, 인간을 먹이로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는 웨어울프로 구성된 부대가 있다. 그들은 대오를 맞추어 움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서로 싸우지도 않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지지도 않는다.
정확하게 목표를 가지고 아군의 본진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우리 부대 역시 적 선봉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진형을 재정비 했다. 이정도면 그다지 늦은 것은 아니다.
[전군 돌진!]
와아아아아아아
우리 부대는 크게 함성을 지르며 적의 지원군 중 하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둘 다 막으면 좋겠지만 적이 둘로 나뉜 상태라 하나씩 처리하기로 했다.
크와앙
“렉스야?”
렉스가 흥분해 울부짖는다. 얘가 늑대에 한이 좀 있어서인지 웨어울프만 보면 난리를 친단 말이야.
알았어. 참으란 얘기 안 할게.
“마리, 렉스와 함께 앞으로 나가. 적의 후미를 뚫어버려.”
“넷, 렌님.”
마리는 전신갑옷 상태로 한 손으로 렉스의 목띠를 잡고 달려 나갔다. 얼핏 보면 렉스에게 매달려 뛰는 듯 한 느낌이지만 마리의 속도는 렉스가 달리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렉스의 목띠는 내 비밀연구실의 코어이고 마리는 그걸 제어하는 힘이 있기에 띠와 접촉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힘을 빌려 쓸 수 있다.
마치 뿌우가 바람으로 변해 날아가듯 빠르게 부대의 선두로 나간 마리와 렉스는 곧 웨어울프 부대의 후미에 도달했다.
렉스는 가장 뒤쪽에 있는 웨어울프의 머리를 깨물어 버리며 몸으로 부딪쳐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마리는 여전히 한손으로 렉스의 목띠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대검을 들고 크게 휘둘렀다.
화르르륵, 파파파팍
대검으로부터 과도한 마나의 흐름에 의해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것에 닿은 웨어울프의 몸통은 대검의 날에 의해 잘리기도 전에 먼지처럼 분해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웨어울프들은 자신들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렉스와 마리를 역격하려 뒤돌아섰지만 그 누구도 둘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강해도 역시 둘 뿐이라 수천에 달하는 웨어울프부대에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웨어울프의 진격속도는 우리 카탈라난 부대보다 훨씬 빨랐고, 그들은 곧 아군의 본진에 난입할 수 있었다.
화실이나 창, 방어용 나무 벽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법사들이 급히 병사들의 무기에 강화마법을 걸어주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고, 병사들의 능력 또한 웨어울프와 맞설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크왕!”
“아아악!”
본진의 전열이 붕괴되어 간다. 그래도 롤랜드 장군이 조금 일찍 내 전갈을 받고 조치를 취했는지 전열 이외의 다른 부대는 큰 동요가 없이 뒤로 서서히 물러나며 방어준비를 하는 게 느껴졌다.
그 사이 우리 부대는 본진에 거의 도착해 웨어울프 부대의 후미를 공격했다.
“카탈라난 3단계 발동. 우리는 모두 하나, 적과 맞서 싸우는 자에게 힘을 빌려준다.”
“우오오옷!”
“힘이 난다!”
부대의 뒤쪽에 있는 병사들로부터 마나의 안개가 빠져나와 앞쪽으로 집중되었다. 실제로 근접전에서 싸우는 자들은 앞쪽의 서너 열뿐이고, 나머지는 거의 대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만큼 당장 안 싸우는 자들의 마나를 모두 앞에 몰아주는 이른바 체력 집중 단계!
펑, 콰쾅
“으하하하, 웨어울프 녀석 왜 이리 비리비리 한 거냐!”
병사들은 자신들의 힘이 웨어울프보다 오히려 더 세진 것을 깨닫고 서슴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반대로 웨어울프들은 인간이라고 얕보고 무기를 쳐내려고 하다가 오히려 팔다리가 잘리고 몸통이 꿰뚫려 죽어갔다.
거기에 렉스와 마리가 종횡무진하며 사정없이 웨어울프들을 처치하니 정교한 움직임이 불가능한 웨어울프들은 점점 우리 부대에 의해 후미가 붕괴되어 전열의 전진도 멈췄다.
우오오오오오
웨어울프 중에 덩치가 더욱 크고 전신에 검을 털을 한 놈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그러자 웨어울프들은 우리와 싸우려 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뛰어 아군의 본진속에 섞여 들어갔다.
“이런!”
저들은 진형을 유지할 필요 없이 홀로 싸워도 엄청난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반면에 우리는 이대로 진형을 유지해야만 힘을 쓸 수 있으니 적이 흩어지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옆쪽을 보았다. 또 다른 웨어울프 부대는 진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아군의 본진 서쪽을 유린하고 있었다.
[일단 서쪽부터 처리합니다. 전군 우회하세요.]
우리는 흩어진 적을 포기하고 다른 먹이를 노렸다. 그리고 곧 그들 역시 집단전에서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산개해서 아군의 본진을 파상 공격했다.
“이놈들! 맡은 임무가 본진 공격이라 이거냐?”
나는 이를 갈며 시선을 돌려 적군의 본진을 보았다. 그들은 웨어울프에 의해 혼란해진 아군에게 결정타를 가하려 전군이 전진하는 중이었다.
“스승님, 웨어울프들이 흩어진 이상 본진이 당하진 않을 거에요. 하지만 혼란 상태에서 적의 본진이 들이닥치면 큰일 납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우리가 적의 본진을 막죠.”
“그게 가능하겠니?”
“늑대때들이 하는 짓을 우리가 못할 리가 없어요.”
“좋다. 그럼 가자꾸나.”
파우스 스승님의 허락을 맡은 난 부대에 적의 본진을 행해 진군하라는 명을 내렸다.